오늘은 불교의 자력 신앙과 타력 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머릿속이 꽉 막혀 있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해결 안 되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답이 나온다거나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인지, 신의 계시인지
일상생활 중에, 또는 기도 중에
한 번씩 이렇게 떠오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자력신앙인가, 타력신앙인가를 놓고 봤을 때
불자가 아닌 분들도
여러 가지 불교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타력신앙은
타인이 대신 빌어주거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원하는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길로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런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운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타력이 아닌 자력으로 그런 운을 불러모아서
그 힘이 모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문제는 해결되고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에 대해서도
또 ‘제불보살님의 가피’와 또 ‘신장님들의 호위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드디어 이제 인류에게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영혼과 정신의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익만으로 살던 세상은 이제 끝났습니다.
요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매일 같이 나오는 뉴스만 봐도 다 아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이기적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면
제발로 나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삿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닌지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남을 위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도를 행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절에 오셔서 시주를 많이 하고
대작불사를 하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중에 보살의 마음을 내어서
좋은 마음을 쓰면서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타력신앙을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누군가 대신 기도해 주고 빌어줘서
원하는 소원이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학입시 때
어머니들이 자제분들 합격 기원을 발원해 주는 기도 같은 것입니다.
원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영혼이 왕생극락을 할 수 있도록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서방정토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을
[자력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타력신앙]은
누구라도 죽었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그때 나오는 빛을 따라가면 성불을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렇게 나무아미타불만 외워서 성불할 수 있느냐고
그 당시에도 따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옛날 사람들은 글도 못 읽었고 못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부처님 법아래
어떤 중생도 구제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나무아미타불만 간단하게 외우면
성불을 한다고 방편을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력신앙 타력신앙
딱 구분지어서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한 예로 설명드리자면
불상조각을 하시는 분들 이렇게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조각가분들은 예를 들어서
석상인 경우에, 돌덩어리를 이렇게 갖다 놓고
관세보살상을 이제 조각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 조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우선 내가 조각을 해야 되니까
[내 힘으로, 자력으로] 이 돌을 깎아 나갑니다.
-근데 내 힘으로 이렇게 깎아나가다 보면
조각하던 도중이라도
조각가의 눈에는 점점점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단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점점점점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죠.
그럼, 그때부터는 이 조각이라는 행위는 같지만
돌을 깎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습을 드러내는 [관세음보살님의 힘을 빌려서]
관세음보살님을 [상처를 내지 않는다]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순간인 것이죠.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이미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것이고,
그 관세음보살상을 내가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가가 본 관세음보살님의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순간 이 조각가가
[자력의 조각]에서 [관세음보살님의 타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조금 말이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 조각가는 자력이나 타력을 스스로 의식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무심으로, 일심으로 열심히 조각해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자력에서 타력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저 불상 하나 조각해서
조각가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면
자력으로 마무리가 되었겠지만
수많은 불자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감동을 하고, 기뻐하고, 또 위로받을 수 있도록
오직 불상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을 것만 생각한다면
그때부터는 타력이 발생하게 되어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 조각상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나오게 된 작품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바라고
또 스스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절의 법당에 가셔서 불상이나 이런 조각상을 봤을 때
이렇게 신비로운 분위기나 이런 게 느껴지는 것이
다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죠.
또 불교와 연관된 조각상이나 탱화나
이런 데서 느낄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운전하고 갈 때
내가 모는 그 차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죠.
내가 직접 그 자동차를 만들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도로 위에 끝없이 그어져 있는 차선, 신호, 잘 포장된 도로
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타력에 의한 것이죠.
차에 넣는 기름도
내가 땅 파서 퍼 올린 기름이 아닙니다.
잠시 동네 마트에 장보러 갈 때 타는 자동차도
물론 차값, 기름값 다 내 돈 주고 사셨겠지만
그 돈의 가치보다 훨씬 많은 것을
타력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차들이라든가 도로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분들이
다 관세음보살님이시고, 그 가피를 입는 것이죠.
이런 모든 것들을 감사할 줄 알 때
타력이 발동합니다.
가피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또 쉬운 예로
내가 서울대를 합격했다고 본다면
내가 공부를 잘해서 간 것 같지만
서울대를 만든 사람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또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도 있었고요.
또 그 시험을 칠 때 문제를 출제한 출제위원은
수험생들보다 몇십 배의 시간과 공을 들여서 문제를 만듭니다.
그 시험지 종이도 종이 조각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점점 살기가 좋아져서
이 세상에 그냥 가질 수 있는 것들도 정말 많지만
신세를 지고 있는 모든 것에 비해 내가 한 일을 본다면
정말 몇만 분의 1도 안 되는 것이죠.
나라에 내는 세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꼭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내가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보답을 해야 됩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이치가 그렇습니다.
내 개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소원은
운과 때가 맞지 않으면 좀처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서
자력으로 열심히 해나가던 도중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일로
의식을 바꾸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타력으로
제불보살님의 가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력과 타력을 구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심으로, 일심으로 노력하고 있을 때
스스로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단 공무원이든, 중소기업의 신입사원이든
내가 처한 위치와 입장에서 뭐든 열심히 해보는 것입니다.
시작도 안 해보고 부처님 가피를 얻으려면
뭐 될 리가 없겠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타력으로 바뀌면서
가피를 입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어느 직업, 어느 직장 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편하겠다고 요리조리 조건 따지면서 회사 다니는 분들은
애초에 시작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교에 있어서의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남녀노소 사회 각 계층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오늘 이 본문이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우시면
두세 번만 반복해서 잘 한번 들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 건지 아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편안한 밤 되시고
또 기도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