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15. 저의 고민은 시아버님 스트레스입니다

Buddhastudy 2024. 5. 20. 19:46

 

 

저의 고민은 시아버님 스트레스입니다.

만날 때마다 아기 얘기를 하십니다.

전화도 자주 하길 바라시고요.

그래서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이고

아버님이 하신 말씀들이 떠올라서 잠도 잘 못 잘 때도 있고//

 

 

 

, 어른들이 나름대로 자기 걱정이 돼서 한 말인데

젊은 사람한테는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첫째는 아버님이 많이 외로우시구나이렇게 생각을 하고

두 번째는 “‘손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시구나

그래서 저런 말씀하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별일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노인은 우리가 설명한다고 생각이 바뀌고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필이 꽂히면 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오듯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게

노인의 특성입니다.

아버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 노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농담 삼아 한 번 더 하면 100번입니다이렇게 할 만큼

이게 노인들의 특성이기 때문에

그러려니하고 지나면 좋겠다 싶네요.

 

말씀하시는 거 지금 제가 가만히 들어봐도

영감이 많이 외로우시구나

그리고 손자를 많이 기다리시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잖아요.

 

근데 그걸 일일이 대꾸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잘 안 되네요이렇게 그냥 얘기하는 방법이 있고

우리도 원하는데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그게 어디 나고죽는 게 사람 마음대로 안 되네요.”

그냥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거나

 

안 그러면 곧 생길 거예요.”

이렇게 위로를 해드리거나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일이지

그걸 뭐 그렇게 심각하게 하고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 대답까지 연구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냥 보면, 무슨 얘기든지 하거든요.

어린애들한테 물어보면

힘든 게 뭐냐?” 내가 물어보면

제일 힘든 게, 왜 어른들은 자기만 보면

너 몇 살이니? 너 이름이 뭐니? 너희 아버지 뭐 하니?”

왜 이런 걸 묻느냐는 거야.

하나같이 똑같이, 너무너무 귀찮다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우리가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가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아버지가 뭐하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애하고 대화하는 방식이 그렇잖아요.

 

애를 딱 만나면

애하고 뭐 할 말이 없잖아, 애하고 무슨 얘기하겠어요?

그러니까 첫 번째 묻는 게 너 몇 살이니?”

두 번째 묻는 게 너 이름이 뭐니?”

세 번째 묻는 게 너희 아버지 뭐 하니?”

이렇게 묻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 대답이

그게 4살인지 5살인지 7살인지가 중요한 거예요.

그냥 7살입니다.

이름이 뭐니?” 하면 개똥입니다.

그러고 너희 아버지 뭐 하니?” 그러면 아무 얘기나 해도 돼요.

그 아무 관심을 안 갖고 하는 얘기거든요.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뭔가 말을 해야 되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면

이렇게 정형적인 말을 해요.

 

만약에 자기가 결혼을 안 했으면

친정아버지를 만나면 특별히 할 말이 있으면 몰라도

돈을 달라든지 뭐 할 말이 있으면 몰라도

할 말이 없으면

언제 결혼할래?” 이렇게 묻는단 말이에요.

집에 있으면 너 언제 취직할래?” 이렇게 묻던지

그게 일반적으로 이렇게 할 말이 없을 때, 정형화된 사람들의 대화법이에요.

 

스님 만나면

사람들이 할 말이 있으면

자기 고민을 얘기하든 뭘 하는데

별 할 말이 없으면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스님은 왜 출가했어요?” 이렇게 물어요.

 

이게 정말 출가한 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고

저 사람이 나한테 별로 할 말이 없구나.

내가 그렇게 물으면 금방 알죠.

그러면 내가 왜 출가했는지, 뭐 연애하다 실패했는지, 사업하다 실패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이런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빙긋이 웃으면 돼요, 그냥.

 

그게 할 말이 없을 때 하는 사람들의 대화법이다.

사람이 만나면 말은 해야 되고, 특별히 용건은 없고

그러면 결혼했으면 애는 언제 가질 거니?

이게 일반적인 말이고.

 

혼자 있으면 언제 결혼할 거니?

집에 있으면 언제 취직할 거니?

이런 게 일반적인 대화법이에요.

그걸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어, 귀찮아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일정하면 보면

외로우시구나

손자를 기다리구나

이 정도 그냥 이해하고

적당하게 대답하면 돼요.

곧 생기겠네요.” “곧 생길 거예요이렇게 희망을 주든지

잘 안 되네요이렇게 얘기를 하든지.

 

뭐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

무슨 노력을 하노?

그런 말이 더 이상하잖아. ㅎㅎ

그러니까 아버님이

둘이 같이 있어야 아기가 생기지그러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집에 가더라도

같이 집에 있어라그러면

,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그냥 오늘 가면 돼요.

 

특별히 의미를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얘기예요.

노인들의 얘기는.

그 앞에서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자세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예민한 거예요.

어쩌면 자기가 아기가 잘 안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까

괜히 아버지 말에 시비를 거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아버님의 얘기는

노인들의 일반적인 얘기에 들어간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더 할 말 있으면 해요.

 

...

 

 

그래 말버릇이 그런 걸 어떡할 건데

사람 성격이 그런데

그걸 뭐 친정 어머니하고 비교해?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른데 그걸 비교해서

이 사람은 점잖은데 너는 왜 안 점잖냐?”

이 사람 말이 조용조용한데 너는 왜 목소리가 크냐?”

이렇게 하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요?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친정아버지는 안 그런데 저 사람은 남을 고려 안한다

이런 거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에요.

성격이 서로 다른 거예요.

 

우리 아버지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구나이렇게 봐야지

당신은 나쁘고 우리 아버지는 좋다

이렇게 보는 거는 분별심이라 그래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