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4] 분별에서 벗어나는 길 / 피올라 현대선 1강 "집짓는자와 부수는자" 4회

Buddhastudy 2024. 6. 4. 19:14

 

 

여러분이 이런 얘기를 많이 들으시잖아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런 얘기 많이 들으시죠?

 

청원 유신 선사가 하신 말인데

그 말이 이제 처음에는 이래요.

 

내가 깨닫기 전에, 공부하기 전에, 처음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산이 산이 아니게 되고 물이 아니게 되더라.

근데 나중에 완전히 깨닫고 보니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든 한마디 해봐라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가 일으킨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설명한 거예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건 불교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기독교에도 옛날 그 중세시기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신부는

크게 깨달으신 분이었어요.

프란시스코 성자 같은 분도 그렇고

깨달은 사람이 종교 또

이슬람 수피에도 깨달은 사람 많아요.

 

그러니까 어떤 종교가

우리만이 진리고 너넨 다 못 깨닫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 가보면

모든 종교가 다 쇠퇴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그냥 일반 직장인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모여서

주말마다 모여서 얘기하고 공부하고

그 안에서 깨닫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그게 사실 더 미래에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아요.

 

어쨌든 분별에서 벗어난다, 또는 부순다 라고 하는 것이

과연 뭐냐 그거를 한번 얘기를 해봅시다.

분별에서 벗어나는 게

결국 부수는 자가 되는 거예요.

집 짓는 거를 부수기 시작하는 자 아시겠죠?

 

그런데 아까 내가 전 시간에 그 얘기를 했어요.

산은 산 물은 물이었어요.

지금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저 가로수는 가로수고 버스는 버스죠.

 

근데 여러분

지금 자기 손등을 자기 눈앞에 올려봐요.

올려봤죠.

이게 뭐예요?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뭐라고 대답을 하냐면

내 손이죠.

이렇게 얘기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손이죠라고 대답하기 이전에

이거는 이게 딱 올라왔을 때

여러분들이 보면 누군가가 여러분 앞에 갑자기 자기 손을 이렇게 들이민다고 하면

여러분 처음에 니 손이구나하지 않아요 깜짝 놀라요.

깜짝 놀라는 건 손인데 왜 놀랍니까?

그건 분별이 시작되기 전에

뭔가가 움직인 거에 대해서

아직 확인이 안 됐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놀라는 거예요.

그럼 그게 뭐냐고

 

즉 분별하기 전에

여러분들은 이미

분별하기 이전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계속 분별 세계 속에서만 맴도는 거야.

그러니까 뭐 이런 게 휙 지나가면

놀라고 이러는 거야.

 

근데 깨달은 사람은 놀랄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게 다 그냥 이거의 움직임이거든.

놀랄 게 새로운 게 없어.

 

여러분이 이거가 손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이건 뭔가?

다시 한 번 들어봐요.

이 손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이건 뭔가?

들었다 내려봐요.

뭐죠?

 

이제 말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이거를 굳이 이름을 붙여서 내가 의식이라고 해보자는 거예요.

살아있는 의식의 움직임이잖아.

또는 생명

아까도 말했지만 아는 자리, 보는 자리,

뭐 별 이름이 다 붙어요.

 

이게 참 이름이 너무 많다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리라고 해도 돼.

뭐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자리라고 해도 돼요. 그죠?

 

처음에 이걸 손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걸 손이라고 하기 이전 자리를 보기 시작한 거야.

그럼 살아있는 어떤 생명의식이

이것을 일으키고 있고,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알고 있다라는 거를

지금 인식하고 있죠.

이게 바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경지예요.

 

내가 산이라고 봤던 것이

옛날엔 이런 분별에 떨어졌는데 순간적으로

저거 산이지

근데 이제는 저거 산이지라는 그 산 풍경 이전에

여기 내 의식이 먼저 있는 거야.

그다음에 산이라는 분별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죠?

 

그러니까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너는 너일까요?

너는 여태까지 너는 너였는데

이제는 너는 너이기 전에

나의 생명의식이 비추어지는 어떤 현상인 거야.

이게 참 경이로운 거 아니에요.

 

모든 걸 이렇게 비추고 있는 여기 이 뭔가가 있어.

이 말에 떨어지지 말고, 이 뭔가에 집중하시라고

이게 지금 여러분을 살고 있거든.

이게 여러분의 참나야

참 모습이라고

 

이게 이렇게 소리를 듣고 있고

눈앞에 보여주고 있고

소리가 들려지고 있어요.

내가 듣는 게 아니고 보는 게 아니고 들려지고 있고

보여지고 있고, 나타나고 있어요. 삶이

이렇게 뭔가 있잖아 이거.

 

이거를 선사들이 이거’ ‘이거하는 거예요.

이거’ ‘이 자리시신마’ ‘이 뭐꼬하는 그거예요.

이게 바로 시신마’ ‘이 뭐꼬야

 

이 뭐꼬의 그게 대상이지만

대상이라고 하면 또 분별이 떨어지니까

이게 바로 이 뭐꼬라고.

 

이 죽비를 이렇게 들면서

이거를 죽비라고 해도 안 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해도 안 된다.

너희들은 어떻게 말하겠느냐?” 라고 선방 수자들한테 물어봐요.

이걸 죽비라고 해도 30방이요.

아니라고 해도 30방 때리겠다. 어떡할 거냐

 

요게 바로 요 얘기예요.

죽비만 보고 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거 딱 들어가면 죽비

그렇지만 이거 이전 자리를 못 보고 있는 거야. 여러분

이거 이전 자리가 바로

일단 의식이 먼저 있어야 될 거 아니여

이 자리가 먼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걸 못 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죽비라고 해도

이거라고 하는 우리는 벌써 분별에 떨어졌는데

이거가 인식되려면

이거 아닌 허공도 같이 인식돼야 돼.

이게 연기법이거든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동시에 여기 나타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게 바로

중도, 전체를 보는 거야.

 

우리가 이것만 보는 거는 이거에 떨어진 거예요.

중도가 아닌 거야.

바로 의식이 여기 붙잡혔잖아요.

그래서 이름이 바로 죽비이러고 있잖아.

 

근데 죽비라는 게 일어나기 전에 의식을 보면

이것도 의식이지만

요 옆에 허공도 의식 아니에요?

전부 다 의식이잖아.

어디에 떨어질 데가 없지.

 

그래서 이걸 죽비라고 해도 안 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해도 안 된다.

어떡할 거냐?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뭐라고 답을 하실까? 수월님 답 해봐.

그렇게 뚫어지도록 보셨으니 답이 나와야 될 거 아니야

 

이게 생각으로 찾으시면 안 돼.

그럼 답을 못하는 거야.

이미 자기가

이걸 지금 봤잖아. 이제 이걸 봤잖아.

여기에 어떤 한계가 있어요?

요만하다든가 요만하다든가 이 크기도 없잖아.

그 자리를 얘기하는 거거든.

 

이걸 죽비라고 해도 안 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해도 안 된다.

어떡할 거냐?

근데 그 자리가

이렇게 다 보여주고 있고, 들리고 있고 다 나타내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걸 표현하면 되는 거예요.

 

일해도 좋고 뭐 일해도 좋고 춤을 한번 추셔도 좋고

이게 바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경계예요.

아시겠죠?

 

그런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경계에서는

우리가 이런 이게 죽비다. 이건 허공이다라는 경계의 쉽게 떨어지는 게 아니고

그 이전에 이 자기 의식자리

이 자리를 인식하게 돼요. 먼저

이게 이게 살아있어요.

이 자리가 이게 살아있어서

이게 보고 이렇게 비춰지고 보이고 들리고 하는 거예요.

이게 이 몸도 살리고 있고

 

이건 이게 허공조차도 인식하게 하는 거지

이게 허공이 아닙니다.

이걸 또 허공이라고 갖다 이름 붙이지 마세요.

그럼 3차원에 갇혀요.

아시겠죠?

 

이렇게 되면

이게 모든 게 다 의식이기 때문에 일체가 평등해져요.

이걸 평등지라고 하는 거예요.

 

분별이 시작되기 이전 자리

그래서 평등지라고 하는 거예요.

 

부동지라고도 합니다.

부동의 자리

평등한 자리.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무상정등각이에요.

위가 없다라는 말은

위만 없나? 꼭대기가 있나 보다.’

이게 아니에요.

 

위가 없다라는 건

밑도 없다는 얘기고, 옆도 없다라는 얘기예요.

탁 트였다는 얘기예요.

 

. .

모든 것이 바르게 똑같다라는 얘기예요.

같을 등자잖아.

모든 것이 다 평등하다라는 거야.

 

모든 것이 다 평등하면

너 나가 평등한 게 아니고

너 나가 없어지기 때문에 평등한 거예요.

 

모든 게 이 의식 안에서는 경계도 없고 너니 나니.

그래서 금강경의 사상을 없애라.

아상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게 여기서 이 자리가 되면 저절로 다 실현되는 거예요.

따로 수행할 것도 없어.

이 자리만 보면 바로 사상이 없어져.

정말 일촉직입여래지죠.

 

그런데 이 자리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이게 궁극의 깨달음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로 돌아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뭔 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