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6] 에고가 하는 깨달음 / 피올라 현대선 2강 "내가 공부하는게 아니다" 1회

Buddhastudy 2024. 6. 11. 19:28

 

 

오늘은 자기가 공부하지 말아라이런 주제로 강의를 하는데

자기가 공부하지 말아라그러면

찰나님, 자기가 공부하지 말아라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이게 그건 뭔 소리야?

그 말 듣고서 느낀 바를 좀 한번 말씀해 보세요.//

 

...

 

예 좋습니다. 그게 1단계예요.

자기가 공부하지 말아라, 기본 1단계

 

1단계는 다 아시죠?

나라는 게 허상이다.

오온으로 만든 생각과 느낌 속에 있다.

이 몸도 생각과 느낌 속에 있잖아요.

 

우리가 밤에 잠잘 때 이 몸이 없어요.

대상화가 안 돼요.

?

생각과 느낌이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생각과 느낌이 있고 난 다음에 몸이 있고

생각과 느낌이 있고 난 다음에 마음이 있는 거지

생각과 느낌이 쉬고 있고 잠잘 때처럼 중단하면

몸도 마음도 없어요.

그때 있는 게 뭘까?

 

그래도 나를 숨 쉬게 하고

심장 돌리고

잠 잘 자게 하는 뭐가 있잖아.

 

여러분, 그 자리가 지금 여기 있어요? 없어요?

있으니까 이렇게 보고 듣고 하지.

생각과 느낌 이전에 보고 있잖아요.

그냥 그게 여러분의 생명이고, 순수의식이고, 본래 면목이요.

아주 간단한 얘기예요.

 

그건데 자기가 공부하지 말라고 그러면

자기 생각과 느낌으로 어떻게 조작하고, 우주 체험을 하고

또는 법이란 이런 거구나

정리해서 노트 필기하고, 외우고

경전을 읽고, 이해해서 무슨 진리를 붙잡으려고 들고

이런 게 다 자기가 공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공부는 알음알이는 많이 늘어나는데

실제로 자기 본성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치매 한 방이면 다 흩어져요.

치매 한 방이면 다 사라질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쓸데없이.

 

근데 우리나라에 아마 불교 신자가 1000만이라고 하면은

내가 볼 때 99%는 그런 공부할 거예요.

1%만 아마 제대로 공부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1%에서도

1단계를 벗어나서

2단계에도 또 자기가 공부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얘기를 오늘 주로 하려는 거예요.

내가 볼 때 여러분 여기에 다 해당 돼요.

 

이때 2차 단계에 자기가 공부한다는 건

어떤 자기냐 하면

생각이에요.

생각이 공부하는 거예요.

 

생각이 공부하면 어떻게 되느냐?

생각이 거창한 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알아요.

 

근데 문제는

이 생각이 스스로 영원히 실재하는 게 아니고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환상이에요.

그게 문제인 거야.

 

환상이 그림자가 빛을 이해했어.

근데 그림자가 빛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림자가 빛이 되는 순간 그림자는 없어져요.

그림자는 빛 앞에서 없어져야 돼.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자기가 공부하지 마라.’ 1단계는

자기 생각과 느낌과 이런 오온식스존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2단계에 가서는

더 미세한 생각, 더 미세한 느낌을 가지고

요리조리 얽어매서 생각으로 공부하지 말아야 한다.

좀 전에 찰나님이 그런 답변을 하셨잖아요.

 

근데 사실은 그것도 생각이야.

그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서

자기는 그러면서 자기는 공부 안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도 생각인데.

 

그래서 실제로 이 살아있는 이 자리를 만나야 돼요.

그리고 이 자리로 살아야 돼. 그냥.

그때부터는 그게 생사초월이에요.

그게 법력이고 그게 정견력이야.

 

그렇게 돼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생각으로 자꾸 정리해서

선문답은 이렇게 풀면 되고, 이럴 땐 이런 답하면 되고

이런 사람은 아마 나뿐만 아니라

누가 인가를 해주고 너 깨달았다해도 별로 사는 게 재미없을 겁니다.

깨달음은 해 봤자 옛날하고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왜 그러냐면

옛날식으로 공부하니까.

자기가 여전히 살아서.

 

여러분이 우리 피올라 마음학교의 선문답 공안 10개를 일단 풀은 거는

그걸 넘어섰다면

내가 저 사람은 제대로 초연성은 좀 맛을 봤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초견성은 어느 정도 한 거야.

한마디로 소 발자국 정도 본 거야.

소를 올라탄 것도 아니고 소 발자국 정도로 본 거예요.

 

그럼 소 발자국 봤으면

소도 붙잡아서 십우도 얘기를 하자면

코뚜레를 딱 붙들고

말도 잘 듣게 잘 목우를 하고

올라타서 피리 불고 다니고

나중에 소도 없어지고 나도 없어지고 해서

진리 그 자체가 딱 돼야 하는데

갈 길이 먼 거예요.

근데 그 갈 길을 빨리 단축시키는 방법이 이게 뭐냐 하면

자기가 공부하지 않는 거야.

 

그럼 공부하지 말란 얘기냐?

이렇게 흑백 논리에 떨어지면 안 돼요.

그거를 옛날에 그 만공스님이 표시를 어떻게 했냐면

자기 휘하에 중이 한 1천 명 가까이 있었어요.

난 수덕사에 1천 명이 다 들어 앉았는지 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1천 명 가까이 있었대요.

그 시대에 일정 시대 때.

 

그런데 그 제자들한테 그랬대요.

1천 명 앉혀놓고.

공부하지 않는 공부를 해라.

맨 공부만 하겠다고 하니

그게 분별망상이지 무슨 공부냐?

공부하지 않는 공부를 해라

그 얘기를 했어요.

 

오늘 제가 공부하지 않는 공부에 대한 얘기를 할 거예요.

우리가 알던 과거의 나는 뭐냐 하면

식스존의 나예요.

즉 생각이나 감정이나 느낌하고

끝없이 내가 자기 동일시를 해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나라고 하고 있고

느낌으로 나도 모르게 이걸 나라고 하고 있고

또 나도 모르게 마누라나 남편이나 뭐 자식이나

기분 나쁜 소리 하거나 남의 속 뒤집어 넣는 소리 하면

벌써 네가 어쩌면 그럴 수 있냐?’라든가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이 있나?’라든가

이런 어떤 분별심에 의해서 감정이 올라와서

벌써 상대방을 반쯤 마음속에서 죽여놨어.

 

이미 자기도 모르게

오온을 자기 동일시하고 있는 이 업습 속에 살고 있어요.

여기 안 그런 분 손 들어봐?

아무도 손 안 드네.

 

그런데 이런 그 업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이 살아있는 이 대 생명의 자리, 이 자리가 확연해지고

그게 51%가 되고, 나중에는 100%가 돼야만 성불인 거예요.

 

그 자리가 완전히 돼서

그다음에 식스존을 마음대로 써도

그게 늘 식스존이야.

그렇게 되면 그게 3차원을 벗어나서 4차원으로 가고

4차원을 벗어나서 5차원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자기가 공부하지 말라라는 건

1차로는 이런 식스존의 자기지만

2차로는 더 미세한...

 

원래 우리가 그러잖아요.

추번뇌(거친 번뇌), 세번뇌(미세한 번뇌),

추번뇌는 내가 번뇌인 걸 알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내가 이런 느낌을 느끼는구나

이걸 아는데

세번뇌는 아직 자기가 너무 미세해서

어느 순간 갑자기 우울해.

내가 깨달았다는데

나도 지금 내 경험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깨달은 사람이 왜 이렇게 우울할까?”

깨달은 사람이 왜 이렇게 속이 상할까?”

이런 게 왜 염려가 될까?”

이게 세번뇌에 벌써 넘어간 거예요.

미세한 번뇌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뭐냐 하면

그 미세한 잠재 업습

끝없이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 주고

그래서 너 잘 돼야 돼하는 이 에고가

그 대신 자기는 거기에 붙어서 빌어 먹고 살고 있어.

그 놈이 그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한은 여러분은

4차원으로 못 가.

즉 완전한 보살과 성불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

계속 걱정 염려해야 되는 3차원에 살아야 돼.

 

다시 말하면 물질세계에 속한

몸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거예요.

 

에고는 끝까지 몸을 붙들어요.

몸과 마음을 붙들어.

그래서 여러분을 윤회의 길로 안내해.

 

그래서 초견성하기는 쉬워요.

견성하기는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쉬워.

 

근데 지금부터가 사실은 순례의 길이야.

어쩌면 좋아요.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또 공부하라고 그러니.

 

그런데 이 공부에 좋은 점이 있어요.

이거 부처님이 이 공부를 어떻게 말씀하셨냐면

이 공부는 하면 한 만큼 얻는다.

이 공부를 하면 한 만큼 누린다.

이 공부를 하면 한 만큼 좋아진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게 뭐냐하면

그만큼 자기가 법력과 정견력이 증진된다는 얘기야.

 

그래서 에고가 공부할 때 생기는 병폐는 뭐냐 하면

나는 견성한 사람이다하면 이미 틀린 말이에요.

어디가 틀렸나?

초롱님 한번 얘기해 봐요.

나는 견성한 사람이다. 어디가 틀렸어?

 

...

 

그러니까 그렇게 세 가지 분별이 벌써 일어난 거예요.

, 견성성불, 했다라고 하는 과거 시제에 빠져버린 거예요.

 

이 자리에는 과거 미래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말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잖아.

그러니까 견성이라는 말은 사실은 말이 좀 잘못된 말이야.

성품을 봤다가 아니야.

 

[견이 곧 성이다] 이 말이에요.

[보고 있는 것이 성품이다]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현재 진행형]이 돼야 돼.

계속 보고 있는 거지.

봤다, 그럼 지금 안 보고 있어?

 

그러니까 나라는 것도 사실은

생각을 자기가 써서

분별을 일으켜야만 나라는 것도 있어요.

그다음에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다음에 했다’ ‘안 했다과거형, 완료형 이런 것이 다 분별인 거예요.

그리고 내가 깨달음에 대해서 좀 알지라고 하면

그것도 또 틀린 말이에요.

왜냐?

아는 게 아니거든, 이거는.

그냥 되는 거지

이걸 그래서 합한다고 하는 거야. 합한다고.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이 모니터를 보고 있는 눈길

제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성품

이거는 여러분이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에요?

 

여러분 자신 아니야.

여러분 자신이잖아.

그것이 이미 되어 있는데

자꾸 그걸 생각으로 대상화하는 거야.

그놈이 예고예요.

그래서 그게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무슨 뭐 범아일여니, 우아일여니, 우주관된 체험이니

이런 것들은 다 체험이지

견성이 아닌 이유가

체험이라고 하는 거는 왔다가 가거든

일어났다 사라져요.

그래서 외도 공부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범아일여니, 우아일여니 이런 것은

물론 저도 범아일여, 우아일여 하려면 아무 때나 돼요.

근데 그 자체가 분별 망상이기 때문에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근데 그런 걸 목표로 해서 공부하면 안 돼요.

 

근데 이 에고가 대개 보면

10가지 속임수를 갖고 있어요.

 

1_ “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우월감

남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고 있어요.

나는 깨달은 사람이야.

너는 아니지.

 

2_깨달음을 정리, 정보화

깨달음이란 어떤 것이다라고 생각으로 정리해서 정보화했어요.

그래서 생각으로 그거를 논리화하거나 정보화해서

법상을 만들어 갖고 있어요.

심지어는 노트에 정리해서 수시로 봐.

 

3_ 깨달음을 이용해 뭔가를 추구

깨달음 이용해서 뭔가를 얻거나 추구하려고 들어요.

돈을 얻으려고 하거나

명예를 얻으려고 하거나

또는 무슨 뭐 어쨌든 그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등을 쳐서 뭘 어떻게 하려고 하거나

뭐 이런 게 있어요.

 

4_ 자기가 깨달음의 주체가 되려 함

깨달음의 주체가 내가 되려고 들어요.

자기가 깨달음의 주체가 돼.

깨달음의 주체는 그 자리가 주체예요.

이 자리가 주체지 내가 주체가 아니에요.

 

5. 무아니 무슨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착각

내가 무아다라는 그 무아라는 감을 중시하다 보면

무아감이 이렇게 증폭이 돼요.

그래서 무슨 짓을 하냐면

무아니까 아무 짓이나 해도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 내버려.

무아잖아.

그렇게 되면 무아라는 생각에 떨어지는 거예요.

부처님이 말한 무아는 그런 무아가 아니에요.

있다 없다이전에 공한 걸 말씀하시는 거지

무아다하는 하나의 단편에 떨어진 게 아니에요.

 

6_ 삶이 귀찮고 무의미를 느낌

저도 사실 이런 게 한동안 좀 있었는데

빨리 죽고 싶더라고.

왜냐하면 할 거 다 하니까 사는 게 지겨워.

의미가 없고 귀찮아.

할 거 다 했는데 빨리 열반으로 가고 싶지

이게 똑같은 걸 반복하는 이런 삶을 뭘 더 살아야 되나?

맨날 돈 벌어서 직장 다니고

직원들이 고객들하고 맨날 법 얘기나 하고 있고

자식한테는 맨날 너 그래서 되겠냐 정신 차려라이런 소리나 하고 있고

여러분 잘 생각해 봐.

이거 맨날 판에 박힌 다람쥐 쳇바퀴.

 

그래서 심지어는 사실 깨달은 사람 중에

스스로 열반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요.

말이 좋아야 열반이지, 사실은 자살한 거야.

 

그런데 제가 그걸 자세히 가만히 정견해 보니까

이것도 미세번뇌야.

이것도 내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생과 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생에서 사로 건너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7_ 공체험에 사로잡힘

그다음에 또 공체험에 갇히거나 사로잡혀요.

이것도 대승불교에 많아요.

모든 게 공한데.

색즉시공만 알아, 공즉시색은 모르는 거야.

이거 다 미세번뇌 얘기에요.

그러니까 모든 걸 공책임으로 돌려.

뭔 짓을 해놓고도

, 공한데 니가 왜 그런 거에 분별하고 있냐?” 하면

상대방이 할 말이 없어.

공이잖어.

니 돈도 내 꺼고 내 돈도 내 거야.

공이니까.

 

8. 세상을 멀리함

그다음에 또 일체를 초월했다면서 세상에서 멀리해요.

혼자 독야청청해서

생업의 책무를 등한시하고

예컨대 저 같은 사람이면은

야 니들이 알아서 해라. 나는 그런 지저분한 일 안 한다.

나는 고결하고 초연한 사람이야.

나는 조용히 따로 놀란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안 간다.”

혼자 산골에 초야에 묻혀

뭐 이런 사고방식으로 흘러요.

 

9. 깨달음의 상을 갖고 다음 단계를 추구

그다음에 깨달음의 상을 갖고

또 그 경지를 막 만들어서 또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다음 단계는 뭡니까?

마스터는 뭡니까?

그다음에 삼명육통三明六通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뭐 그런 질문을 또 나한테 하는 분이 있어요.

그다음 단계는 뭡니까?

 

누가 공부하고 있는 거야?

그다음 단계 성취하는 사람은 누구요?

 

저는 삼명육통이란 게 없다는 게 아니라

이게 큰바위 얼굴처럼 자연이 되는 거지

벼가 익으면 자연이 고개를 숙이고

벼의 낱알이 익어서 곡식이 열리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건데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10. 사람들을 혹세무민

또 자기만의 어떤 이상한 신계니 뭐니 해서

이상한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 이런 사람들이 또 있어요, 가끔.

 

 

 

그래서 어쨌든 그게 다

에고가 미세한 그 망념을 가지고

여전히 자기를 지배하려고 하는 그러한 경향성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끝까지 정견해야 돼요, 끝까지.

 

이제부터는 여러분은 추번뇌하고 싸우는 게 아니야.

세번뇌하고 싸워야 돼.

 

여러분 속에 흘러

과거생부터, 수없는 과거생부터 쌓이고 쌓여서 온 그 잠재업습이

아주 미세한 감정이나 느낌으로 얼마나 출몰을 하는데,

자기가 모르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거를 싸그리 정화하는 것이

한마디로 성불이에요.

그러니 성불이 간단해요? 아니면 갈 길이 멀어요?

 

멀다고 해도 틀리고 가깝다 해도 틀려요.

?

멀어도 한 방에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고

가까워도 못 찾고 계속 헤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그렇게 법이라는 게 정해진 게 아니에요.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