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5]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 피올라 현대선 1강 "집짓는자와 부수는자" 5회

Buddhastudy 2024. 6. 10. 19:27

 

 

모든 것이 다 평등하면

너 나가 평등한 게 아니고

너 나가 없어지기 때문에 평등한 거예요.

 

모든 게 의식 안에서는

경계도 없고

너니 나니 그래서 금강경에

사상을 없애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게 여기서, 이 자리가 되면

저절로 다 실현되는 거예요.

따로 수행할 것도 없어.

이 자리만 보면.

바로 사상이 없어져.

정말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그런데 이 자리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이게 궁극의 깨달음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로 돌아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뭔 소리냐?

 

이거를 이렇게 보이면서

이게 모두 다 의식이고

여러분의 그 바탕인 의식자리, 그리고 생명의식 자리에 본래진여 자리를

제가 인식하게 해드렸잖아요.

근데 이것도 사실은 미세한 분별이라는 거예요.

 

이것에 의지해서

이거 아닌 거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과 감각이

미세하게 요거에 의지해서

이거 아닌 거, 요거 이전 거

이런 것을 지금 미세하게 분별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거는 초견성이고, 이 분별까지 넘어서야

그래서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이거를 죽비라고 해도

나는 동시에

이게 죽비라고 이름 부르기 이전 자리를 보고 있으면서 죽비라고 하면

그러면 이거는

이게 이 이전 자리를 못 보면서 죽비라고 하는 사람하고

말은 똑같을지 모르겠으나

경지는 다른 거예요.

 

못 보는 사람은 이것만 보고 있고

깨어난 사람은 전체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의식이 됐기 때문에

중도라고 하는 거예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라는 것은

여러분이 대상화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아니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일체전체예요.

심지어 일체전체라는 분별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것도 넘어서 있는 거야.

 

그런데 살아있어.

그래서 모든 분별을 다 만들고 있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까지 다시 돌아와서 만들고 있어.

그런데 거기에 떨어지질 않아.

 

이걸 분명히 죽비다하면서도

이 말에 여기 와서 들러붙지 않는다고.

들러붙지 않아요.

중생은 죽비다 하면 들러붙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예쁘다 하면 예쁘다에 둘러붙어

밉다 하면 밉다에 들러붙어.

그래서 예쁘다에 들러붙으면 탐심이 나고 가지려고

밉다에 들러붙으면 밀어내려고 하는 분별심이 나요.

 

그런데 깨어난 사람은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다 분별망상인 것을

계속 정견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아까도 말했지만

그 아름다운 호수 물결이

저녁노을에 반짝거리는 것 같은 움직임에 불구해요.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하든, 뭘 하든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라든가

아니면 그런 분별하면 안 되지라는 게 아니라

뭐든지 자유로운데 어디에도 안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난 폭풍우가 올라오는데

그 위를 서퍼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놀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유희삼매다 무쟁삼매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무쟁산매라는 건 뭐냐 하면

아무것과도 시비분별하고 싸우지 않는다.

도대체 싸움이라는 게 없다, 그 마음 안엔.

어울림만 있을 뿐이다.

 

제가 맨날 동그라미하고 화살표 얘기를 자꾸 하잖아요.

그러니까 화살표라는 상에 떨어지시면 안 돼.

화살표라는 게 따로 여기 화살표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이것도 화살표 아니야, 이것도 그죠?

뭔가 여러분의 분별이 탁 일어나서.

 

근데 여기서 여러분은

저 사람이 이랬다이걸 따라가야 돼?

아니면 그냥 보는데, 아는데, 보고 다 알아.

근데 어디에도 빠짐이 없는 거야.

그럼 이 자리만이 살아있어요.

이 자리만이.

 

여러분이 슬프거나 화나도 마찬가지예요.

화나 슬픈 감정에 빠지면

그때부터 인생이 집 짓는 자가 바로 시작돼.

그런데 화난 거의 실체를 보고, 슬픈 거의 실체를 보면

화가 났지만, 화 속에 빠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마치 허공에 날아가는 새 날갯짓처럼 흔적도 없이 화가 사라져요.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는 말이 성립돼.

모든 게 투명해져요.

모든 게 투명하고,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너무나 맑게 보여.

더러워도 상관없어요.

투명하게 더럽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비유를 내가 해볼게요.

컴퓨터를 켜면

컴퓨터 화면에 온갖 글이나 그림이나 이미지나 사진 같은 게 다 뜨잖아요.

그런데 이 컴퓨터 뒷면의 본체를 보면

화면에는 이런 글자, 그림, 사진 뭐 이런 게 다 떠도

컴퓨터 본체에는 전기의 움직임만이 있어요.

 

제가 후배 소개로

코인 채굴기 하는 회사를 한번 저 간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코인 자체는

화면 안에서는 무슨 비트코인이 지금 생성 중이라든가

무슨 파일코인이 화면에

지금 몇 개 가지고 있다.’ 그림으로 뜨고

뭐 이러는데

채굴기라는 게 뭐냐하면

컴퓨터가 돌아가는 거거든요.

그냥 컴퓨터가 돌아가면서

어떤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화살표처럼 하나의 그 알고리즘을 딱 체결하는 거예요.

그거를 하는 뒤에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는 그냥 전기의 파동 움직임만이 있어요.

그게 실상이야.

그걸 화면으로 전환시켜서

화면에서 우리한테 보여주는 것뿐이에요.

너 지금 파일코인 몇 개 가지고 있다

비트코인 몇 개다.’

 

여러분 컴퓨터, 지금 여러분이 컴퓨터로 저를 보고 계시죠?

이게 컴퓨터 본체에서는 그냥 전기 파동만이 움직이고 있다니까

 

이런 전환이 일어나는 게 분별이라고요.

그 실상은 이 생명의식이 그냥 이러고 있는 거예요.

분별에 떨어지기 전엔 그냥 이것만 이러고 있다고

이게 바로 우리의 본 모습이야.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 거대한 매트릭스라고

생명의식이

분별이라고 하는 매트릭스 세계 속으로 빠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거기에 주인공인 네오가 되셔야지.

 

우리는 누가 나를 칭찬하면 좋아하고

누가 나를 욕하면 싫어합니다.

 

근데 갓난 애기도 그래요.

갓난 애기 누가 나서 되게 못생겼네한다고

애가 막 울거나 아니면

어우 어쩜 이렇게 천사같이 이뻐요한다고

애가 깔깔대고 웃나요?

애는 그런 거에 전혀 관계가 없어,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애하고 다른 점은

그걸 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면서도

애와 같은 그런 경지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본질을 보니까.

 

본질이 뭐예요?

그냥 이거거든

그냥 생명의식이 지금 놀고 있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이 분별을 하고

자꾸 뭔가를 자기 마음 안에 쌓으면 쌓을수록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냐?

잠재의식이 자꾸 쌓여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고통의 심해로 가라앉습니다.

 

근데 여러분 잘 생각해 봐.

자기가 행복하고 즐겁고

만약에 로또가 당첨됐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하고 앞으로 만나주겠다고 해 라든가

아니면 너무나 바라던 일을 이루었다든가

이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때요?

너무 가볍죠.

막 하늘을 날아갈 것 같죠.

 

이게 뭐냐?

마음 안에 있던 그 분별의 산물들이

일시적으로 비워진 것 같다는 거야.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24시간 내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여러분이 정견해서 깨어나면 그렇게 된다니까

이건 내가 보증합니다.

 

?

모든 것이 다 그냥 이게 놀아보는 거야

이게 놀아보는 거라고요.

 

근데 왜 이렇게 얼굴들이 심각하세요?

인생은 전혀 생각할 게 없어요.

여러분, 이게 다 환영이라고

그냥 여러분의 분별이 만든 매트릭스 세계야.

 

그러니까 쾌락과 고통도 마찬가지예요.

쾌락과 고통도.

우리는 쾌락을 좇고 고통을 멀리하고 싶죠.

근데 사실 쾌락도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정말 천하진미에요’.

그래 넌 앞으로 10년 동안 이거만 먹어이러면요.

그게 한 달도 못 가서 고통이 돼요.

살려주세요’, 한다고.

 

또 우리는 뭐 어떤 건 귀하다, 어떤 거는 볼품없는 싸구려다, 천하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 분별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분별이 뚝 떨어져야 돼요.

뚝 떨어지고 실체를 보기 시작해야 돼.

분별이 뚝 떨어지기만 할 수는 없어요.

?

사람 마음은 뭔가를 붙잡기 때문에.

분별에 떨어졌는데

그러니까 진짜로 깨어난 사람만 뚝 떨어지지

중생심은 그 대신 대체재를 찾아요.

 

그래서 제가 자꾸 화살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중엔 화살표도 뚝 떨어지게 되지만

그러나 그때까지는 여러분이 화살표를 이용해서

모든 게 이런 걸 보셔야 돼.

 

자기가 지금 마음에 뭔가가 와닿는다. 뭔가가 무거워진다, 좋다.

또는 알쏭달쏭하다.

알긴 알겠는데 막 와서 체험이 닿지 않아요.’ 등등이

모든 것이 화살표야 다 잊으시라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난 모르겠어요하는 그게 바로 이거라고

여러분이 내 말을 알아듣고자 막 집중하는 그것이 바로 이거라고.

아무 차이가 없어요.

알았다 *~!이거나

모르겠는데요. 이거나 똑같다니까 이 자리에서는

근데 뭘 자꾸 찾는 거예요?

그것만 보면 되지.

뭘 더 알아들으려고 이렇게 그냥 화면 속으로 들어오시려고 그래

아는 게 아니라니까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이것만 정견하는 거예요.

이게 다 뭔 짓이야?

이 짓이라고요.

 

여러분이 집에 거울이 있을 거예요.

거울을 한번 보시면

여러분 마음속에서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나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또는 뭘 하고 싶은 탐심이나

이런 것들은 거울에 비칩니까? 안 비칩니까?

안 비치죠.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을 요 앞에 이렇게 떠올려 봐요, 이미지를 .

떠오르죠?

근데 이거는 거울에 비춰요? 안 비춰요?

나만 보죠.

그래서 이런 게 바로 분별망상환영이라는 거예요.

 

불교의 공하다라는 말이

바로 이렇게 이미지가 이렇게 떠오른 요것이 공하다는 거예요.

?

실상이 아니잖아.

 

공하다는 말이 이런 뜻이에요.

있긴 있지만 이런 현상이 있긴 있죠.

그런데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있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없다고는 말 안 해요.

이런 현상이 있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있지는 않다해서

있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여러분이 공부가 잘 안 될 때는

거울을 가서 봐

그러면 이 비추고 있는 그것만이 진실이야.

나머지 머릿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

누구를 탐진치하는 마음, 욕심, 기타 등등

복잡한 뭐 어쩌고 저쩌고

전부 다 망상, 그냥 이거다

그렇게 하시면 바로 해결돼.

 

그다음에 또 우리 해븐존 강의에서

사랑이든, 해탈이든 스무 번씩 하는 거 해보셨죠?

그때 아는 자리, 보는 자리가 딱 나오잖아요. 드러나죠.

그게 지금 있어요? 없어요?

수월님, 지금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근데 왜 우리는 그게 분명히 1년 내내 있고

내 평생 있어요.

근데 왜 그거는 도외시하고

왜 이렇게 상만 쫓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생이 집 짓는 자가 된 거예요.

 

실존하지도 않는 그 이미지 같은 것을 쫓아다닌 거예요.

자기가 만든.

 

여러분들은 지금 그래도 뭐 처자식이 중요하고, 내 재산이 중요하고 하시겠죠

물론 중요합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이

과거 100생애 동안 운회하면서 수많은 가족을

배우자만 해도 100명이에요.

자식만 해도 수백 명이야.

그거 한 500생 천생쯤 되면 셀 수가 없어.

어떤 때는 왕으로 태어났고, 어떤 왕비였고, 어떤 때는 거지였고

어떤 때는 무당이었고, 어떤 때는 사당놀이패였고

어떤 때는 귀족이었고

도대체 어느 걸 나라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거를 아직도 쫓아다니고 있으면

계속 앞으로 그렇게 뺑뺑이 돌 거예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그러니까 이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꽉 찼어.

잘 생각해 봐요.

 

이거는 다시 말하면

이 지구 학교를 졸업 안 하겠다는 거예요.

난 계속 재수할 거야.

계속 재수하면서 돈 더 벌 거야.”

 

그래 많이 벌어봐.

지금 세계 최고인 부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죽을 땐 다 놓고 가고

다음 생에 거지로 태어날지 몰라요.

?

거지 경험을 안 해봤으면 그거로 태어나야 돼.

 

계속 우리가 이걸 졸업할 때까지

여러분 앞에 이 삶이라는 걸 졸업할 때까지

삶의 마스터가 될 때까지는

모든 걸 체험해 봐야 돼요.

 

그러니까 아직도 자꾸 뺑뺑이 돌고 있는 거야, 뺑뺑이.

재수, 삼수하면 좋아,

백수 이백수 하니까 문제지.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본질이 뭐예요?

내 의식이야.

의식이 그게 중요하다고 의미부여를 했을 뿐이에요.

스스로 중요해?

스스로 중요하면 다른 사람도 중요하다고 해야지

다른 사람 안 중요하잖아.

 

내 새끼는 나한테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은 개 쳐다보듯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허투루 살라든가, 인생을 다 무시하고 출세간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이 절대 아니에요.

그것도 분별이야.

그것도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경지에 빠지는 거예요.

세간 출세간 나눠서 이쪽에 가서

나는 다 초연했느니라하고서 사는 것은 자기 분별이에요.

그것도 왜 한쪽에 치우쳤잖아.

 

부처님 가르침은 중도예요, 중도.

우리가 모든 분별로부터 초월하고

초월했다고 하면 또 분별이야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걸 다 품어 안아야 해요.

그러니까 어디로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냥 지금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일체를 다 품어 안게 돼요.

여러분의 안목이 탁 열리면.

이건 정견 하나만으로 이게 다 해결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 이 우주가

무엇에 의지해서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있어요?

스스로 있다라는 건 여러분 착각이에요.

예수님도 뭐라고 그러냐면

니가 이 세상을 다 가진들

니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어요.

 

여러분이 이 세상을 보는 그 눈이 없으면

이 세상은 없어요.

이 세상을 보고, 인식하고, 아는 그 자리가 없으면

세상에 없다고.

 

그래서 세상에 있기 전에

[이게] 먼저 있는 거예요.

 

모든 일은

그래서 이 앞에서 일어납니다.

보는 자리, 아는 자리, 느끼는 자리, 앞에서 일어나요.

그다음 분별들이야.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이 자리 다음의 분별들]이라고요.

 

근데 우리는 자기 분별 때문에

뭐가 하나 이렇게만 떠도

바로 난리 났다고 쫓아가기 바빠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 소식

이것도 의식이고

이런 의식이 지금 없는 곳이 없고

모든 것이 이 위에서 내 분별에 의지해서

이것은 막대기고

이것은 볼펜이고

이것은 사인펜이다.

이런 분별 세계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 사실을

계속 정견해 나가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정말 무정설법을 듣게 돼요.

보고 듣게 돼요.

 

무정설법이라는 게 뭐냐 하면

돌멩이, 구름, 자갈 이런 것들이 설법을 한다는 거예요.

 

유정이라고 하는 건 동식물을 얘기하지만

무정은 광물을 얘기해요, 천지자연.

이런 것이 설법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 돌멩이가 무슨 설법을 할까요?

여러분 이 컵이 무슨 설법할까?

 

자 이거 자체가 뭐냐 하면

생명의식이 있기 전에

이건 컵이 아직 아니에요.

의식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그게 분별이 일어날 때 이게 컵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깨어나지 못한 사람은 컵만 보지만

깨어난 사람은 여기에서 일체가 의식이라는 걸 보는 거예요.

컵이라는 분별이 있기 전 소식을 본다고.

 

모든 게 이거예요, 모든 게.

의식이라고 하는 자기 생각을 보는 게 아니고요.

그건 분별이고

그것도 분별이에요.

살아있는 이것을 본다고.

 

여러분 자기 앞에

이 손가락, 5cm를 봐요.

이게 살아있는 자기야.

이걸 허공이라고 분별 떨고 있는 게 망상이고요.

 

이 앞에 뭐가 있어?

내 생명이 투사한 그 무엇이 있잖아.

이게 내 생명력이 여기 있잖아.

일체가 다 이것 아님이 없잖아요.

 

제발이지 정견을 해서

살아있는 정견의 눈이 되세요.

그래야만 이 고해의 집에서,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실 수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면

세간과 출세간이라는 것도

내가 아까 분별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될 거는

그 차안을 벗어나서 피안으로 간다든가

세간을 벗어나서 출세간의 경지에 머무른다든가

이런 건 다 분별 망상이에요.

 

그게 아니라

차안이 피안이 돼야 되고

세간과 출세간이 하나가 돼야 됩니다.

그게 중도예요.

그게 바로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경지고

여러분이 가는 처처에서

여러분이 극락을 만드시는 거고

그게 빛과 소금이에요. 성경에.

 

그러므로 은연 중의 마음으로

출세간법을 만들고

,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뭐 초견생했어, ’견성했어

이런 망상 떨고 계시면 안 돼.

나 이 만치 알아

 

이 모든 게 분별이에요.

그래서 깨달으면

깨달았다고 하는 그 자체가 분별이 되는 거예요.

진짜 깨달으면.

 

그러나 씨앗도 뿌려야 추수를 합니다.

안 그래요?

깨달았다고 가만히 있는데

돈이 들어와 떡에 들어와?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그러니까 뭐 고요하고 적멸하고, 또는 뭐 이렇게 평화스럽고

내 마음을 좀 더 기쁘게 해주는 이런 특별한 경계나 경지를 찾지 마시고

앞으로는 자기 공부하는 데 몰두하세요.

 

공부하는 게 뭐냐?

일부러 내가 좀 힘들거나

[내가 싫어하는 경계를 기꺼이 맞이하세요.]

왜냐하면 그게 공부를 시켜주잖아

언제까지 도망 다닐 거예요?

그게 출세간이에요.

도망다니는 게 출세간이라고.

 

세상살이 먹고 사는

이거 다 피해서 절간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다 먹여주고 공부만 해라.

 

그런 제가 경험해 봤는데요.

그런 안에서 그런 공부만 하고 있으면

나중에 세상에 오면요.

인간 구실을 못해요.

정말 이 세간살이가

그야말로 살아있는 공부를 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