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Q&A 7. 관찰자효과와 시크릿/ I am 의식과 Am의식의 차이/ 강박에서 벗어나기

Buddhastudy 2024. 6. 25. 19:02

 

 

현대과학의 주춧돌 양자역학의 실험을 보면

이중 슬릿을 통과하도록

전자를 발사하였을 때 인간이 관찰하지 않으면

결과가 파동으로 존재하고

관찰하면 입자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진 위그너는

의식을 언급하지 않고는

타당한 양자 이론의 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

오직 의식이 있는 인간만이

관찰을 통해 파동함수를 붕괴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입자의 물리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명, 의식을 가진 관찰자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이를 보면 존재란

인식이 필요하다고 이해가 되고

이성적 과학에 의해서도 시크릿이 증명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는지

아니면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는지 질문드립니다.//

 

 

 

--관찰자 효과의 오류

 

이중 슬릿실험이요, 대단한 발견이고 성과이긴 합니다.

그런데 오류가 있어요.

 

첫 번째 먼저 인간인 내가 인식의 주체라고 규정하는 것

현상을 내가 보고 있고,

따라서 내가, 인간인 내가

존재의 파동함수를 결정한다고 여기게 되지만

알고 보면 뭐예요?

 

 

--보고 있는 인간 또한 인식된다

 

현상을 보고 있는 이 인간으로서의 나라는 것도 어떻게 돼요?

인식되죠.

인식되잖아요.

결국 나 또한 인식된 거란 얘기에요.

 

 

--인식의 진정한 영역은 궁극실재(일원성)의 영역

 

그럼 진짜 인식이란 건 무엇이며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을까요?

 

인식이라는 것의 영역은 말 그대로 궁극실재의 영역이에요.

일원성의 차원이에요.

이것이 궁극실재라고 지칭하는 그 영역은 이론성의 차원이기 때문에

인식대상 자체가 아니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실감하려면

깊은 의식의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 무엇이라고 짧게 설명드릴 수는 없어요.

 

다만 인식의 주체를 나 혹은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각입니다.

인간마저도 이미 인식된 것입니다.

인식된 것이에요.

 

 

--질문 자체에 에 대한 집착이 있음

 

여기서 드러나는 게 있어요.

나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질문 자체에.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한 집착을 일단 내려놓고서

인식 작용 그 자체, 아는 작용 그 자체를 탐구해 들어가야 합니다.

 

다만 관찰자 효과가

시크릿의 내부 원리에 해당하기는 해요.

맞아요.

관찰자가 내가 아니라서 그렇지.

 

 

--‘는 관찰자가 아니라 인식이 나타나는 통로

 

나는 뭐다?

그 인식이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존재 함수라고요.

 

진실을 말하자면요.

모든 것은 이미 인식된 것이고요.

인식하는 자는 인식된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서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깊이깊이 스스로 사유를 한번 해보셔야 돼요.

 

 

--

다음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심상화를 할 때, I am의 자리,

순수존재의식의 느낌 안에서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이나 카페 글을 보다 보면

순수존재의식 I am’이 아닌,

순수의식 Am’에 해당하는 무한히 모름에 가까운 앎의 자리에서

심상화를 하는 글을 보기도 합니다.

 

심상화를 할 때 AmI am

어느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질문드립니다.//

 

 

--I am Am의 모습

 

네 좋습니다.

이것은요 표현의 차이일 뿐이지

I am 또한 Am의 모습이에요.

 

다만 나라는 허수의 작용이

보다 뚜렷하게 작용하는 의식층을 I am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유식학적 분류를 조금 인용해 보면

8 아뢰야식이라는 의식이 가장 심연의 Am 의식에 가깝고요.

자아의식 층인 제7 말라식이 I am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는 해요.

 

그런데 이와 같은 분류는 참고만 하세요.

그리고 딱딱 맞아떨어지지도 않아요.

이러한 분류들은.

 

 

--합일된 직관에 머무르기

 

그보다는 어느 자리에서 스트레스를 해야 할까요?로 고민하시기보다는요.

대상과 주체의 느낌이 하나로 합일된

직관적인 앎 자체에 머무르시기를 추천드려요.

 

대상과 주체의 느낌이 하나로 합일된

직관 그 자체에 머무르시는 거예요.

또한 I am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또 필요하기도 합니다.

 

 

--내가 있음을 안다’ = I am =

 

이게 I am이라는 표현 자체가 영어로 된 것이죠, 영어죠.

이걸 우리말로 번역을 해서

내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이제 번역했지만

사실 I am이라는 이 상태는요

어떤 이렇게 존재 상태라기보다는요

내가 있다라는 어떤 상태라기보다는요

진짜 나로 여겨지는 그것이 내가 있음을 (안다)’에 가까워요.

앎이에요.(앎 자체를 말한다)

 

I am 의식 자체가

모든 것의 배면에 존재하는 앎을 뜻합니다.

[주시자 수행을 통해 각성하는 앎이 바로 이 배면의 앎이다.

물론 이후에는 이 앎을 넘어

앎의 근원으로 향하는 탐구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앎의 느낌을 각성하는 훈련이 필요하기는 하죠.

그게 명상이 되는 거겠죠.

 

물론 이 앎이라는 것에 대해 훨씬 더 또 깊이 알기 위해서는

앎의 대상과 앎의 그림자

앎의 대상과 앎의 관계

앎의 그림자와 앎의 관계

이런 것에 대한 이제 자각이 필요하긴 해요.

그런데 이걸 설명을 하려면 또 몇 날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서는 생략을 할게요.

 

어찌 됐든 간에 I am이라는 것은

내가 있다라는 어떤 상태로 이렇게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내가 있다라고 우리가 딱 말을 할 때

사실은 그건 뭐냐 하면

무언가가 내가 있다라는 사실 자체를 아는 것이거든요.

아는 것이거든요.

 

I am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의 be동사 자체가

우리나라 말로 이렇게 똑 부러지게 해당 자체가 없어서 생겨난 오해이긴 한데

Am 의식 혹은 I am 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앎 그 자체라는 사실

배면의 앎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면 돼요.

 

 

--

다음 질문 들어갈게요.

저는 직장인입니다.

또 부업으로 하는 사업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투자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시간과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것은 결핍이 있다라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지 직장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제한의 관념을 허용하고

상대성의 관점에서 사업에 필요한 인맥과 자유로운 삶을 사는 모습을

명상 등을 통해 매일 잠자기 전에 심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제가 하는 방법과 방향이 잘 가고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의문 또한 허용하고

상대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놓치는 부분과 보완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질문을 드립니다.//

 

잘하고 계신 거예요. 정말 잘하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약간 쫓기는 듯 보여요.

일종의 강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님한테 가장 필요한 거는

모든 것이 가장 적절할 때

적절한 방식으로 찾아온다라는 앎이 있으면 돼요.

 

 

--‘가 한다 =강박의 발생

 

또한 이 모든 것을 내가 한다라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개인, 몸뚱이인 나)가 한다라는 관념이 있으면

긴장하고 강박이 생깁니다.

게다가 이 는 아주 협소한 몸에 동일시되어 있겠죠.

 

협소한 몸에 동일시 되어 있는 의 느낌에 갇혀 있다 보니까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고

오히려 나는 못할 것만 같고

이런 느낌이 올라와요.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움이 생기고

이게 안 되면 죽을 것 같은 착각도 올라오고, 의심도 올라오고

그럼 또 긴장하고 강박이 윤회하게 되죠.

 

그러니까 먼저 이 강박에 휩싸여 있는 나는

어떠한 관념과 동일시 되어 있는 지를

천천히 살펴보시기를 권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