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71회 학생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교사 멘토링)

Buddhastudy 2013. 7. 3. 22:33
출처 YouTube

 

. 우리가 어떤 같이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데.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그러나 권유사항이 있다 이 말이오. 권유사항이. 예를 들면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에 속한단 말이오. 남의 물건 훔치거나 뺏는 것.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하는 것. 그 다음에 거짓말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 이런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에 속한단 말이오. 이런 것은 그것이 왜 해서는 안 되냐 하면 우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까? 그죠?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손해를 끼치고, 남을 괴롭히고, 남을 속이고 이러니까. 이거는 해서는 첫째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도 안해야 되지만은. 그럼 사람이란 건 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면 가만있어요? 거기에 따라서 나름대로 보복을 해요. 보복을 하니까 내가 피해를 줄 때는 조금 줬는데 돌아올 때는 커지는 거요. 언제든지.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 종아리가 만지고 싶어서 만졌다. 그거는 사실 조그마한 일인데. 그거에 따른 피해가 돌아오는 건 상대가 느꼈을 때. 나는 요렇게 만져 본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입은 피해는 크단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상대가 입은 피해가 크니까. 상대는 그걸 보복할 때는 나한테 자기 입은 피해에 따라 보복을 할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내가 1이라는 일을 행하고 돌아오는 것은 10이 된다 이거요. 그러면 이건 굉장히 어리석은 일 아니오? 내가 10원 벌려다가 100원 손해나는 건 어리석다는 거요. 그러니까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누굴 해친다? 자기를 해치기 때문에 이거는 행하지 말라고 되어있단 말이오.

 

그런데 머리가 좀 길다 바지가 좀 길다. 바지가 좀 짧다. 귀걸이를 했다. 이거는 남에게 피해주는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생각해? 그래요? 공부를 못한다. 이거 피해줘요 안줘요? 피해주는 게 아니라 약간 이익을 주잖아 남한테. 그러니까 이런 거는 야단칠 일은 아니라는 거요. 야단칠 일은 아니라는 거요. 벌을 가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거요. 대화가.

 

그럼 머리가 조금 길다. 이런 규칙이 있기 때문에 애가 문제가 되는 거 아니오. 그죠? 그럼 이건 검토가 필요하단 말이오. 이 규칙이 없애버리면 해결 되는 일인데. 그러니까 이것은 선생님들이 의논을 해보고 굳이 이런 규칙을 정해 놓을 필요가 있느냐? 그런데 이게 뭐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거도 아니고, 이건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느냐? 이렇게 돼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안 될 거고.

 

그런데 의논을 해보면 애들이 싸우고 해가지고 머리 길러서 반에 ..술집에 간다든지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이런 문제들은 일부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가 되면. 그럼 그 아이는 난 머리 기르려는 그냥 기르려는 거지, 술집에 가는 그런 목표 때문에 기르는 거 아니다 할 때는 이것 때문에 기르면 안 된다 할 때는 본인이 승복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럴 때는 아이들에게 뭐가 되어야 되느냐? 이 세상을 사는 데는 어떤 규칙이 필요하다.

 

밥 먹는 시간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건 1시에 먹어도 되고, 2시에 먹어도 되고, 3시에 먹어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관습적으로 12시에 먹는다. 12시 반에 먹는다. 이렇게 정해졌으면, 그 때 먹기 싫더라도 내려와서 먹어야 이게 문제가 같이 풀린다 이거야. 그러니까 현재에 이것은 꼭 잘못됐다. 니 행위가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지만은. 이것이 현재의 법이다 이거야. 현재의 규범이다.

 

그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는 내가 동의할 수 있든, 동의 할 수 없든. 현재의 규범은 지키고. 두 번째는 이 규범이 잘못됐다고 싶으면 개정을 요구할 수가 있다 이거요. 그러니까 이걸 아이하고 토론이 필요하다는 거요. 이게 옳지 않다고 한다면 네가 이 규정은 잘못됐다고 한 번 제한을 해 봐라. 제안을 해 봐라. 선생님한테 제안을 하면 내가 교장선생님한테 올려 보겠다. 이렇게. 그러나 이 규칙이 정해져 있는 한은 우선 이것을 지켜야 된다는 거요. 이렇게 토론이 필요하다는 거요.

 

수업시간에 떠들고 싶다고 다 떠들면 다른 애한테 방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된다. 이거 내 떠들고 싶은데 내 말하고 싶은데 선생님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 할 수가 없는 거 아니냐. 같이 의논해 보면 되겠죠. 그럼 아이들 전체 한 반에서 선생님 우리 이거 다 원해요. 우리는 다 머리 기르는 걸 원해요.” 이러면 이건 규칙으로 건의 해 볼만 하다.

 

그러면 여기서 너희들은 다수가 원하지만 일본사람들이 다 독도 우리 땅이라고 그래도 독도가 일본 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너희가 다 바꿔야 된다 해도 이 세상엔 너희만 사는 게 아니라는 거요. 기성세대도 살고. 부모세대로 사는데. 그럼 거기하고 의논 조율을 해야 된다는 거요.

옛날처럼 박박 깎았는데 그래서 그런 게 반영 되서 요만큼 됐는데 더 이상 긴 거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규칙은 지켜야 된다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럼 뭐 귀걸이 달고 오는데 뭐가 문제냐? 안 된다 그러면 자기도 달았잖아. 선생님 왜 달았어요? 이런단 말이오.

 

선생님 왜 화장했어요? 이런단 말이오. 난 선생이니까. 그럼 선생하고 학생사이에 화장하고 안하고. 선생님해도 되고. 학생 안 해도 되고. 그런 게 어디 있냐 이거야. 애들이 볼 때는 이해가 안 된다. 이런 문제가 제기 될 거 아니겠어요? 이건 토론이 필요하다는 거요. 대화를 해서 규칙이라는 의미를 아이들이 가질 수 있도록. ~ 이건 내가 특별히 원하지 않더라도 정해졌을 때는 개선을 요구하되 일단 지켜 가면서 개선을 요구하자. 개선 한 번 노력해 보자든지.

 

그러나 이것은 너는 이러고 싶은데 이건 상대에게 이렇게 피해가 가지 않느냐? 그럼 그 사람한테 물어 보면 안 된다 그럴 거 아니냐? 그래서 이거는 안 되는 거야. 이렇게 대화가 필요하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 문제는 풀어 나가야 될 일이다. 무조건 뭐 정해져 있으니까 안 돼.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죠. 그럼 애들이 그러죠. 누가 정했는데? 누구 맘대로 정했냐? 왜 우리 머리를 왜 네가 정하냐 이거야. 내가 아이라도 그렇게 생각이 되겠어. 왜 내 머리 문제인데 그걸 왜 네가 정하냐? 나한테 물어 보지도 안하고. 이렇게 나올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에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법률적으로도 미성년이라는 게 있다는 거요. 미성년일 때는 권리가 다 주어지지 않는다. 권리가 유보된다. 범죄를 저지르면 권리가 유보되듯이. 미성년은 권리가 유보 된다. 이것을 아이들이 알아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은 너희들이 생각할 때는 내 머리이지만은.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미성년자가 성년과 같은 이러이런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규칙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들의 권리가 유보된다.

 

그럼 이 권리는 언제 회복이 되느냐? 법적으로 20살이 되거나 18살이 되면 이 권리는 회복이 되니까 그 때까지는 이것을 유보해야 된다. 대신에 너희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이것이 100% 성년처럼 책임을 안지고. 일정한 부분은 아주 심각한 게 아니면 미성년자로서의 감해지는 것도 있잖아 그죠? 이런 혜택도 있다. 그래서 부모가 보호자고. 이것은 너의 진로지만은. 그것은 권리의 일부가 누구한테 있다? 선생님에게 있거나 부모에게 있다. 권리가 위임되어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아이가 이해를 해야지. 애들이 그런 거 이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미성년자는 권리가 일부 유보된다. 완전한 한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것들을 해서 아이들이 이해하고 같이. 이런 게 문제가 제기되고 사건이 생길수록 토론을 해 볼 수가 있지. 대화를 해 볼 수도 있고. 그런데 여러 분들이 애니까 너는 무조건 내 말 들어야 된다. 니가 뭘 잔소릴 하느냐? 이거는 앞으로 갈수록 좀 어려워지죠.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원 하는걸 다 해야 된다. 이건 안 돼요.

 

학부형이 애를 두둔한다하면 학부형을 불러서 학부형들이 이해가 돼야 돼 .그러면 학교 규칙을 안 지키려면 아이를 다른 학교로 옮길 수밖에 없다. 당신이 원하는 데로 대안학교를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안 그러면 당신들이 이런 거를 아이들에게 두발이나 이런 거를 자유롭게 하는 그런 건의를 학부형 차원에서 해서 교육위원회를 통과해서 제도를 바꾸게 해라. 판사보고 법 바꾸라고 하면 안 되잖아. 판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인데. 법은 국회에서 바꿔야지.

 

그렇지만 교사는 규칙을 집행하는 사람이니까. 이 규칙이 우리끼리 정해졌으면 의논해서 바꾸면 되는데. 이게 교육전체 차원에서 주어졌다면 거기서 바꿔야 되겠죠. 그럼 당신들이 건의를 해라. 학부형이 건의를 해라. 그럼 내가 교장선생님께 건의를 해 보겠다. 학부형들이 연대를 해라. 학부형 회의를 소집해서 사인을 해서 올려라. 이런 문제로 풀면 되죠. 사랑으로 보살펴 달라. 그런 건 굉장히 추상적인 거 아니에요? 그죠.

 

이해가 되셨어요? 더 할 말이 있어요?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누가 정했냐? 이런 반발이 있다는 거야. 내 머리를 너희가 정하냐?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이제 권리가 어떻게 유보되느냐? 그게 너희들이 아직 성년으로서 대우를 못 받는다는 그래서 투표권이 없는 거 아니냐? 너희들은. 이러이런 유보된 게 있다는 거요, 보호받아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일부를 어른들이 정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거를 그러면 네가 집에 가서 부형들이 이런 교육 문제를 개선하든지 네가 건의를 올리면 선생님이 해본다든,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거를 지켜가면서 하자.

 

비판하기 보다는 권유를 해야지. 봐줘도 되면 규칙을 어떻게 다 지켜요? 그렇다고 또 없앨 수도 없잖아. 그죠? 없애려면 이게 부작용이 생기고, 그런 정도 수준은 놔 놓고 좀 빠진 놈 빠지고, 새나가는 놈 새나가고 이렇게 살아야지. 우리가 절에 살면서도 규칙을 너무 엄격하게 지키면 못살고 다 도망가요. 그런데 규칙이 없으면 어떠냐? 굳이 여기 와서 살 필요가 없어요. 원칙이 있어야 된다. 원칙이 있어야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오지. 그러나 그걸 너무 이렇게 빈틈없이 하면 숨이 막혀서 못살아요.

 

그러니까 약간의 사람이라는 건 또 그렇게 약간의 예외도 있고 그래야 또 살잖아요. 이 세상에 일부일처다하면 그렇게만 살면 좋은데 세상은 실제로 안 그렇잖아. 다 이래저래 좀 바람이 새기도 하고, 그래야 또 사고가 되기도 하고 덮기도 하고, 제각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보면 중학교 3학년인데, 나는 착실한 사람에 속하니까 앞자리 좌석이 앞에서 한 1/3쯤 되는 키가 봐서 요렇게 앉아있으면 괜찮은데, 뒤에 저기 나이도 중학생인도 그때는 두 살씩 많은 애들도 있고, 뒤에 또 덩치 큰 애들 이런 애들 보면 중3인데 벌써 어때요?

 

창녀촌에 갔다와가지고 막~ 자랑하고 이러면 아이들이 부러워가지고 우우~ 몰려 앉아가지고, 듣고 뭔지도 모르면서도 듣고 그러잖아요. 고등학생이면 더하고. 그다음 소풍갔다오면 고등학생들 술 먹어서 뻗어가지고 그럼 니어커 가가지고 싣고 갖고 오기도 하고, 그래도 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내가 아는 아무개 아무개 다 커가지고 다 선생님도 되고, 그 중에 국회의원도 된 사람도 있고, 높은 사람 된 사람도 있고, 다 그래요. 으흠.

 

그러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선생이 그냥 눈감아주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켜가면서도 그리고 또 조금 심하다싶으면 가위 갖고 자르기도 하고, 다 지나면 또 재미잖아. 자르기도 하고 단속도 하고, 또 숨어서 좀 하고, 이렇게 사는 거요. 인생이라는 게. 그게 뭐~ 크게 이렇게 남을 해치는 게 아닐 때는, 이게 엄격하게 지켜질 수가 없어요. 그렇게 우리 학교 다닐 때 영화관 가지마라해도 어때요?

 

사복해서 어떻게어떻게 가가지고 보는 사람이 있고, 선생님 맨 영화관에 가서 어때요? 들어오고 나가는 거 체크해 잡아서 벽면에 보면 정학 먹은 놈, 21주 주욱~ 이런 거 이름 붙여져 있고 그러잖아요. 여기 기계로 밀어서 고속도로 내 가지고 다니지, 나팔바지 입고 다녔다가, 만보바지 입고 다녔다가. 이렇게 유행 따라 아이들이라는 건 하기 때문에, 요즘은 또 그 한때는 또 바지를 먼지를 일으키면서 끌고 다니더니 요즘은 또 없어졌데? 한때 유행이란 말이오. 진짜 어른들이 볼 때 저 미쳤지 저거 왜 저러나? 싶은데도,

 

그것도 엉덩이 이만큼 내려가지고 어때요? 다 보이도록 바지를 해서 다니기도 하고. 그게 옛날은 옛날대로 유행이고, 요즘은 요즘대로 유행이고. 그것도 단속은 해야지.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저런 거는 그냥 아이들의 유행이다 이렇게 해서 문제 삼지 않는 마음을 갖되 또 선생님이 너무 또 그렇게 풀어주면 안되잖아요. 규칙은 또 강조를 하고, 그러나 또 내면에서는 다 자란 아이들의 한때 유행이니까 또 용인하는 쪽으로 해주고,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어요. 다 됐어요?^^

 

별 고민도 없네 뭐.^^ 그런데 결론을 한번 이렇게 맺어봅시다. ~ 여러분이 부모가 한번 되 봐요. 그런데 애를 옛날에 우리 부모가 한 7~ 8명 낳았잖아. 그죠? 그래서 이 애를 제대로 젖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죠. 그럼 그냥 낳아서 한마디로 말해서 마당에다 그냥 버려 놓다시피 한단 말이오. 그러면 이 애기를 누가 돌보냐 하면, 그냥 2살짜리는 6살짜리가 돌보고, 6살짜리는 10살짜리가 돌보고, 10살 되면 밥해서 동생들 다 밥 주고. 이렇게 해서 형제끼리 어때요? 저그끼리 산단 말이오. 부모 없으면. 밭에 일하러 가고 어디 가고 하면.

 

그러면 거기에 자기들끼리는 질서가 생겨요? 안 생겨요? 질서가 생겨요. 엄마는 9명의 아들이 다 1:1로 똑같지만 자기들끼리는 질서가 쫙 있어. 이게 인간세상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벌써 질서의식이 생긴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요즘은 1~2명을 낳으니까 엄마하고 애하고 관계밖에 없단 말이오. 아빠하고 애하고. 질서의식이 없다는 거요. 그러니까 어릴 때 눈 뜨자마자 벌써 질서의식이 훈련이 되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 있다는 거요.

 

그런데 이게 5~ 6 되어서 유치원에 들어와서 그때부터 선생님이 돌봐주고 하니까 거기서도 역시 질서의식이 별로 안 생겨요. 선후배관계처럼 형동생관계 이런 게 별로 없잖아. 질서의식이. 나쁘게 말하면 봉건적 질서라고 할 수 있지만 좋게 말하면 사회의 하나의 질서잖아. 그죠? 그러기 때문에 애가 어떻게 해도 엄마는 하나나 둘일 때는 다 그냥 그래그래 알았다. 봐준단 말이오. 이런 방식에서 첫째 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아이들의 어떤 질서의식, 공동체 생활 속에서의 어떤 규범이라든지 이런 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아이들이 머리론 이해되는데 마음에서는 안 받아들여져요.

 

옛날 사람들은 머리로는 거부해도 마음에서는 받아들여진단 말이오. 왜냐하면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여기 첫째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변화된 삶의 방식에 맞추어서 제도가 마련되든지. 안 그러면 이 제도를 고집하려면 애들을 하나씩 낳더라도 그러면 애를 낳아서 한군데서 모아서 키우든지. 그런데 이게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에 질서는 윤리나 도덕 기본질서는 과거에 우리 삶의 패턴에 따른 거고, 그다음에 우리들이 애를 낳고 키우는 이 방식은 새로 자라난 아이들은 다른 인간이라는 거요.

 

우리와 다른 인간이 지금 만들어졌다는 거요. 이게 지금 마찰을 빚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이 힘들지만, 애들은 애들대로 힘든 거요. 이게 누구 잘못이 아니고. 이게 하나의 역사적인 변환기에 일어나는 문제죠. 그럼 얘들이 자라서 엄마가 되고, 거기서 애들이 자라고, 이러면 좀 다르겠죠. 왜냐하면 기성세대가 그런 세대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여러분들이 원하는 그런 방식으로 옛날 내가 학교 다닐 때 학생들 질서 찾던 방식으로 잡으려고 하면 애들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러면 지금 애들에 맞춰서 하는 게 좋으냐? 그 얘기는 아니라는 거요. 아무튼 이렇게 형성됐기 때문에. 그러니까 세대 차이를 느끼는 거죠. 이런 문제가 지금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그래서 집에서도 애 하나도 부모가 감당을 못해서 지금 전전긍긍하는 이런 상태인데, 옛날엔 나 다닐 때만 해도 부모가 뭘 무게 있게 짊어지게 한 게 없어. 짊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그냥 뭐, 돌봐주지도 않았지만 짊도 안 짊어줬다는 거요.

 

그래서 뭐 그냥 내 맘대로 밥만 먹고 그냥 돌아다니고 애들하고 놀고, 그냥 개구리나 잡고 가재나 잡고 이렇게 놀고, 학교 가고, 학교 초등학교 갔다 와도 왜 그랬냐하면, 부모가 내가 초등학교만 나와도 내가 중학교만 가도 부모가 나보다 지적 수준이 낮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인생에 간섭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까도 내가 얘기했는데, 애들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아니에요. 공부하고 싶은 게 10이면 엄마가 하라는 건 100이니까. 저항이 생기잖아. 저항이.

 

애들이 밥을 안 먹으려 밥이 먹기 싫어서 밥 안 먹는다고 그래요? 엄마가 자꾸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하니까 애가 저항하는 방식이 어릴 때 6~ 7살 땐 뭐한다? 밥 안 먹어. 이게 애의 저항방식이오. 자학이죠. 그럼 엄마가 아이고 잘못했다.” 하고 떠다 먹여야 되고, 그럼 사춘기가 되면 밥 안 먹어이러면 엄마가 눈도 깜짝 안하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때 저항방식은 뭐요? “집 나가.” 그러면 찾으러 다닌다고 난리죠. 그런데 나이가 20살이 넘었는데 집나가.” 이래봐야 눈도 깜짝 안하니까 그럼 죽을 거야.” 이렇게 나오죠.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가 없단 말이오.

 

애는 자기가 엄마한테나 부모한테 이길 수는 없잖아. 어리니까. 그러니까 투쟁을 협박을 하는 게 뭐로 협박한다? 자기를 해쳐서 상대를 가슴 아프게 한단 말이오. 이런 방식으로 저항을 하니까 부모가 자식한테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 방식이 안통하지. “밥 안 먹어하면 턱 뺏어버리지. “그럼 먹지마라.” 3일을 안줘버리지 뭐. 달라고 애걸복궐 할 때까지. “집나간다하면 밀어내고 문 딱 잠가버리면 되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요. 현실적으로. 부모는.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방법 중에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할 수 없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이렇게 이해를 하고 풀자는 거는 우리가 그게 어렵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한 방법들이 있지. 매듭을 풀어라하면 칼로 탁 잘라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걸 우리가 선택할 수가 없다는 거요. 다수 사람들이. 현실이 그렇다는 거요. 그런데서 앞에서도 제가 얘기했지만, 그 애들 교육하려면 줄 딱 세워가지고 규칙 안 지키는 건 뭐, 딱 손봐버리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아까 누가 질문하듯이 초등학생 정도 남자선생 덩치가 이따만한 게 자식이멱살을 딱 잡고 두 번 세 번 이 자식이 이러면, 말 듣지. 지가 어떻게 할 거요? 딱 보니까 이거 보통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엄마가 이 놈의 새끼야. 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이렇게 말만 하지 전혀 그런 엄마 목소리하고 똑같은 선생님이 얘기하니까 안 되죠.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 현실이 이게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거요. 그러면 본때를 엄마하고 틀린다는 본때를 보여줘야 되는데, 그러면 이게 말썽이 나가지고 여러분이 집행을 못하잖아.

 

그러니까 딱 질서를 잡으려면 여러분이 자신이 탁 있어서 교육적인 원칙이 있어서 교장선생이 아니라 학부형 누가 와도 국회의원이 와가지고 해도, 딱 국회 가서 증언을 해도 나라가 이래서 되겠냐? 교육이 이렇게 해서 되겠냐? 우리나라 교육이.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 하고, 이롭게 하는 거 하곤 다르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게 어느 정도 돼야 된다. 화가 나서 때리는 문제가 아니라, 이 질서를 안 지키면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뭔가 훈련되는 방식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학부형한테도 그럼 그렇게 해서 당신 자식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이렇게 우리가 토론을 할 자신이 있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그 수준이 지금 안 되어 있지 않느냐는 거요. 우리가. 그럼 안 되어 있으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럼 그 속에서 또 우리들이 아까 얘기한데로 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거지.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이 제도적으로도 바꿔야 되고, 이 가정교육. 결혼생활. 전체를 바꿔야 되는데, 지금 내가 그걸 어떻게 바꾸며, 한 애도 못 키워가지고 절절절 매는 애, 그걸 40명을 모아놓고 내가 그걸 어떻게 하겠냐?

 

그러니까 너무 욕심을 내지마라.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에게 적어도 고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이들을 좀 기본적인 다시 세상을 살아가는데 셈본은 해야 되잖아. 그죠? 기본적인 학습은 해야 된다. 성적이 12등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하고 관계없이도 이건 알아야 되지 않느냐? 대한민국애가 태어났으면 대한민국 역사도 알아야 되고, 산맥도 알아야 되고, 강도 좀 알아야 되고, 바다도 알아야 되고. 알아야 될 거 아니오. 곱셈 덧셈도 할 줄 알아야 되고, 한글도 쓸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런 기본적으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공부는 해야 된다. 이거요. 그걸 못하면 가르쳐 줘야 되고, 그거를 할 줄 알면 칭찬해주고, 그러니까 얘가 성적이 몇 등이냐 하는 걸 중요시 안해야 된다는 거요. 어차피 이게 올라가면 저게 내려가고, 저게 내려가면 저게 올라가는 세상에 선생님이 그걸 갖고 자꾸 논하면 안 되지. 그래서 그런 학습 지진아가 성적 지진아로 보지 말고, 이게 기본적으로 기초학습이 안됐으면 선생님이 남아서 가르쳐 줘야지.

 

어떻게 생각해요? 월급까지 받는데 왜 안 가르쳐 줘? 우리 인도에선 월급 안 받고도 가르쳐주는데. 애들. 그러나 성적을 갖고 자꾸 문제 삼는 거는 이거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 아니냐는 거요. 그거는. 그런 측면에서 내가 많이 할 수는 없다. 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기본적인 거는 내가 직업의식의 입장에서도 그 직업이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최소한도 어느 정도는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첫째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에요. 그리고 뭐 그렇게 뭐가 그렇게 애가 닳아서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선생님을 해요? 괴로울 일이 뭐가 있어?

 

조그만 애들 강아지 같은 거 모아놓고 이렇게 얘기해가면 한둘이, 강아지들 모아 놓으면 다 따라오는데 몇 이는 저리로 가면 놔 놓고 그냥 이렇게 교육을 하면 되고, 나중에 또 끝난 뒤에는 또 간곳도 찾으러 가야지. 염소새끼도 찾으러 가는데, 사람새낀데 어떻게 안 찾으러 가고 버리겠어. 그러니까 다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움도 버려요. 의무감도 내려놓고. 그다음에 에라 모르겠다. 부작용이 그렇단 말이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오늘도 제가 학부형한테 이런 요즘 무기력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네? 아이들이.

 

무기력 한 거, 그게 짐을 무겁게 져놓으니 과부담이고, 그래서 그 짐을 좀 덜어주고 학원 다니지 마라. 애가 무기력 해진단 말이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네가 학원을 다녀야 되는데 네가 싫다니까 그래 봐줄게. 다니지 마라. 이러니까 애가 열등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학원 안가는 건 좋은데, 열등의식은 있다는 거요. 딴 애들 친구들도 다니니까. 그래서 그건 잘못됐다. 그래서 무기력한 거는 내가 옛날 청소년 교육할 때 경험에 의하면 부형 같으면 애들 데리고 올 때 상담으로...

 

애를 데리고 서울에 직장 버리고 아파트 팔고 시골로 이사 가라. 맹자어머니처럼. 그래서 시골에서 살고, 애 재능을 봐서 그 재능을 살릴 수 있으면 중소도시로 이사를 가보고. 그것도 그만큼은 못하겠다면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때 직장을 그만두든지 해서 애 데리고 인도에 무전여행을 해라. 이렇게 해서 애에게 기회를 주라는 거요. 자각할 수 있는. 아무리 무기력해도 인도에 가서 밥도 못 먹고 있는 우리 수자타아카데미 동네 같은데 가서 애들이 있으면 자기 삶에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 수 있고, 쟤들 좀 도와줘야 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인간은 다 그런 심성이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하는 어떤 기회를 아이들한테 제공하라는 거요. 아이들은 그런 거 보는 게 없잖아. 기회가. 엄마한테 잔소리 듣고 해라 해라 해라. 이 소리만 들었지. 그래서 학교에서도 그런 기회를 제공을 할 수 있으면 하면 좋죠. 그런데 요즘은 학교에 제도시스템이 안 그렇다니까. 문젠데. 그렇게 해서 이런 거를 어떻게 우리가 변화를 가져올 거냐? 이건 선생님들이 연구를 해 봐야지. 개별적으로 하면 안 될 거 아니냐? 이런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거는 어떻게 하자. 그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걸 개선하자. 이렇게.

 

그런데 다 여러분들도 월급만 주고 학교 오지마라 그러면 제일 좋죠. 그럼 선생님 아니오. 월급을 안줘도 와서 애들 가르쳐라 하는 걸 좋아해야지. 그러니까 그 뭘 말하느냐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얘기요. 월급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가면, 이것은 직장생활이 행복해 질 수가 없다는 거요. 그러니까 나름대로 나가서 그 아이들에 대한 연구 일지도 적으면서 문제아 상담도 하면서 연구를 좀 해봐요. 가볍게. 아무리 힘들다 해도 조만한 애들이 7810살짜리 15살짜리는 애들 아니오. 중학생이면, 중고등학생이면 좀 다르긴 하지만.

 

그러니까 그걸 좀 지켜보는 마음이 있어야 돼. 그리고 사춘기 애들은 좀 지켜봐 줘야 되요. 다 그렇게 사고 쳐가면서 사는 거요. 인생이라는 게. 그런데서 그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는 어떤 그런 기회들을 줘야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큰 문제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대학가도 사회 나와도 뭐 ~ 이렇게 자라서 학교선생님으로 가도 선생님이 뭐 앤데, 애한테 어떻게 할 거요? 애기를 낳아도 엄마가 애긴데 뭐.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춘기 때 그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렸다는 거요. 나이가 들어도 그냥 어린애 같은 사고, 행동양식.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 거죠. 이러면 이게 악순환이 되겠죠. 그러면 이게 사회가 일정하게 가면서 어때요? 사회가 내리막길로 걸어가죠. 성장동력이 떨어집니다. 결국은 핵심은 인간성 문제요. 왕조 같은 것도 다 보세요. 나라를 건국해서 쭈욱 가다가 그다음 떨어지잖아요. 다 이게 왕들의 그 리더십의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건강하게 안 키워진다는 거요.

 

이런 문제를 혼자서 어떻게 다 할 수는 없다. 스님은 이 문제에 관심을 지대한 갖고 있지만, 저는 이거는 부모들의 수행을 통해서 부모들 그 개인을 먼저 구원을 하고 그를 통해서 아이들도 건강해지는 이런 방식밖에 현실적으로 내가 선택할 건 없어요. 저는 애들을 데리고 이렇게 해보면, 다 부모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애들 고쳐놔봐야 소용이 없어요. 데려가서 한 일주일 열흘 교육시켜 데려다 놔도 갔다 오면 부모들 좋아하지. 애가 뭐, 지가 알아서 방청소도 하고 이러니까. 그런데 일주일 가면 도루묵 된단 말이오.

 

그래서 너무 걱정하지마시고 큰 시대의 흐름 속에 우리가 살고 있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짐을 가볍게 내려놓고 그러나 또 직업의식이든 또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뭐가 있다? 역할은 있다. 그 첫째 나를 가볍게 하는 훈련. 그러면 아이들도 좀 가볍게 대하는 훈련, 욕심을 내려놓으면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해진단 말이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좀 찾고 혼자서 힘들면, 친구들하고 같이 찾아나가는 이런 곳으로부터 우리가 시작하면 이렇게 힘들지 않고 시작해 나갈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게으르지 마라는 거요. 그리고 연구 좀 하고. 개선하고. 이렇게 해 나가다보면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도 개혁할 수 있고, 조직을 통해서도 개혁할 수 있고. 방법을 찾아서 연구해서 개혁 할 수도 있고, 대안학교를 만들어서 개혁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겠죠. 그런데서 좋은 방법들이 정책으로 모아져 나가면 지금 보다 개선된 모습을 또 보여줄 수 있을 거고. 그렇게 못하면 사회가 또 쇄락하는 방향으로 갈 거고. 거기에 우리가 지금 속해있고, 각자 자기 책임을 다해야 된다.

 

스님은 크게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쇄락하고 성장하고 쇄락하고 하는 거,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건 인정을 해요. 그래서 가슴 아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처럼,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사는 사회, 여기에 대한 최선도의 내 노력은 해야 될 거 아니냐? 그게 없다면 사람의 삶의 생기가 없어지죠. 그러니까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데 까지 노력을 해야 되고, 굶어죽는다면, 살리는 노력을 해야 되고, 사람들이 힘들다면, 뭔가 환경이 파괴된다면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이걸 다 해야 된다. 이러면 자기 능력부족에서 자괴감이 생기고. 그러면 또 다시 에라 모르겠다.”하면 놔놓고 도망가고,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을 즉시해서 우리가 그렇게 능력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현실에 출발해서 그러나 우리가 힘을 모아간다면 우리가 좀 더 큰 규모의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서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큰 부담 없이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