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573회 아름답게 사는 중용의 삶

Buddhastudy 2014. 1. 29. 21:29

출처 YouTube

 

대강 사세요. 그런 걸 지적 결벽증이라 그래. 정신적으로 결벽증이 있어가지고 지적결벽증. 이게 뭐~ 집안에 정리정돈이 안 되어 놓으면 불안하고 이런 결벽증이 아니고, 이건 약간 지적 결벽증이야. 병이야. 그게. 중용과는 전혀 거기가 먼. 그래서 이 병을 치료하려면 대충 살아라. 대충. 적당하게. 그러면 중용으로 돌아갈 거요. 중용으로 살려 그러면, 중용은 지금 얘기하듯이 그런 거는 지적결벽증으로 중용을 정의하는 사전식 표현이야. 그러니까 스님 책을 읽은 결과가 그렇다면 앞으론 절대로 스님 책을 읽지 마세요.

 

스님 책하곤 거리가 멀리 간다. 자꾸 멀리 간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책은 앞으로 덮어버리고 대충 살아라. 욕도 좀 얻어먹어가면서. 진정한 중용은 적절히 치우쳐가면서 가는 게 중용이다. 적절히 치우쳐가면서. 치우치지 않고 똑 바로 간다고 절대화 시켜버리면 이미 치우친 거요. 한쪽으로 치우쳐버려. 약간씩 치우치는 걸 용인해야 중용이 될 수가 있어요. 시간과 공간상에서 주어진 조건마다 늘 이게 위치가 달라지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거를 100% 뭐라고 하기에는 어려워요. 그러니까 적절히 치우치는 거 까지 용인해야 진정한 중용이 된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대충 사세요. 얘기 길게 할 것도 없고.

 

자기가 지금 약단 지적결벽증이다. 병이다. 그렇게 병적으로 살면 옆에 사는 사람이나, 말 듣는 사람이 좀 답답해진다. 본인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하는데 딴 사람이 볼 때 별로 안 아름다워지고, 본인은 잘 살라고 하는데 딴 사람이 볼 때 별로 잘 안 살고, 본인은 자유롭게 사는데, 본인은 살다보면 자기가 갇혀있고 결과는 그렇게 됩니다.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본인이 지금 치우치고 있어. 지적 결벽증이에요. 결벽증은 도가 아니에요. 중용도 아니고.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느니? 없느니? 이런 건 중요하고 거리가 멀어요. 보상에 의해서 내가 열심히 살면 나는 그 보상의 개에요. 보상에 내고 속박 받는다. 이 말이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 것은 노예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대충 살아라는 이 말 속에 다 들어있어요. 남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 그냥 그러고 인생이라는 거는, 내 하고 싶은 데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도 되지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 다 살면 안 돼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하기 싫은 일이 있고 그게 까르마요. 업식이고. 그 다음에 해야 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어요. 그건 상황에 따른 윤리요.

 

이것은 늘 상호 안 맞어. 그래서 그걸 조합하면 네 개가 생겨.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에요. 이건 아무 문제가 없어.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돼. 하고 싫은데 안 해도 되는 일. 이것도 성질대로 하면 돼. 그런데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는 일,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일. 이거는 마음을 거슬러서 의지를 넣어서 해야 돼. ? 그렇게 할 때 손해가 덜 와. 그런데 과보를 받을 생각하면 괜찮아요. 그러니까 예쁜 여자가 지나간다. ~ 한번 껴안아 주고 싶다고 가서 콱~ 껴안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대신 감옥에 가서 한 3년 살면 돼.

 

그럴 때 원망하면 안 돼. 아이고, 옛날 같으면 조선시대 같으면 10년은 살아야 되는데, 요새 하도 세월이 좋아 가지고 3년 밖에 안 산다. 아이고, 하고 싶은 거 한번하고 한3년 또 감옥 살면 어때요? 그죠?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해도 괜찮아. 그 사람한테 피해 가는 거 그런 거 너무 생각 할 필요 없어. 그런데 그거 한번 껴안고 싶다고 껴안고 3년이나 피해를 본다. 할 때 누가 손해다? 내가 손해니까 그건 하고 싶더라도 뭐한다? 안하는 거요. 그 본성을 거스른다.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짜증내고 싶을 때 짜증내도 되는 사람이 있고, 짜증내고 싶다고 짜증 내 버리면 엄청난 손실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속으로는 타도 겉으로는 어떻게 해야 된다? 웃어야 되요. 아시겠어요? 본성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내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