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956회 업식을 고치기가 힘듭니다.

Buddhastudy 2014. 7. 25. 21:15

" altHtml=""> 출처 YouTube

 

 

사람들이 높은 산에 오른다고 내가 만약에 다리를 다친 사람, 휠체어 탄 사람이 나도 다른 사람처럼 높은 산에 오르겠다. 이렇게 하면 사실은 노력은 많고 결과는 적으니까 그럴 때는 꼭 높은 산에 올라야 되는 거는 아니다. 이렇게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 것처럼 뭐든지 고치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다 고친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예를 들면 코가 약간 낮다고 세운다고 꼭 좋은 거는 아니에요. 코는 숨 쉬는데 역할이 있기 때문에 숨 쉬는데 지장이 있으면 수술을 해야 되지만, 꼭 보기 좋으라고 높일 필요가 있느냐? 이건 좀 생각해 봐야 된다 이거요. 고치는 거 자유지만.

 

왜 코가 크면 좋아 보일까? 그럼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코가 크면 좋아보였을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양문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어릴 때 하얀 얼굴에 노랑머리에 오똑한 콧날의 인형을 갖고 놀았어요? 안 놀았어요? 그게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형, 피부가 하얗고, 코가 오똑하고 눈이 땡그라면 굉장히 예뻐 보이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요. 으흠. 그러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자연스럽게는 그것마저도 사실은 형성되어진 거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뭐, 자기는 그러고 싶다면 해도 된다. 이거요.

 

그러나 그건 반드시 해야 되는 거는 아니다. 코가 있는 역할은 숨 쉬는 역할이고, 눈이 있는 역할은 보는 역할이고, 귀가 있는 역할은 듣는 역할이 근본이요. 이빨이 가지런하면 좋지만 가지런한 게 핵심이 아니고 튼튼해서 음식을 씹는데 지장이 있느냐? 없느냐? 이게 핵심이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기능보다는 어떤 유행을 따르기 때문에 일이 자꾸 많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본 수입 중에 얼굴 뜯어고치는데 지금 드는 돈이 경제적으로도 굉장하고, 시간적으로도 많이 보내고, 또 심리적으로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 부작용도 발생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사실은 굉장한 부분의 낭비가 많이 되고 있어요.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하나하나 예를 들면 끝이 없겠죠. 그래서 그것을 고치면 좋다하더라도 즉, 법륜스님도 지금 영어를 잘할 수 있으면 좋아요? 안 좋아요?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영어를 할 줄 모르잖아요. 그러면 내가 영어를 배우면 좋지만,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영어를 배워서 그 목표를 할 수도 있지만, 꼭 그게 효과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필요할 때는 통역을 데리고 하고, 내가 놓여있는 상황, 이 선에서 더 많은 영향을 투여를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느냐? 이건 선택의 문제다. 이거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형성된 그런 심리적 불안이나 이런 거, 개선되면 물론 좋지. 그러나 그 형성된 게 너무 어릴 때 형성된 거는 현실적으로는 고치기가 불가능하다. 이 말이오. 형성 되어진 거니까 변화시킬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러나 현재 본인 수준의 노력정도 갖고는 잘 안 고쳐진다. 그럴 때는 그걸 고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 한번 죽었다가 다시 나야 된다. 그런 정도로 하든지, 아니면 그 정도의 약점은 그냥 안고, 알고 살든지. 이거 선택을 해서 자기가 갈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렇게 어디가면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그러면 이 불안이 지금은 상대편 때문에 생겼다고 하니까 내가 헤어지거나 직장을 떠나거나 이렇게 했잖아요. 이 심리적 불안이 상대편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어릴 때 심리적 불안이 형성되어서 이게 직장가도 그런 현상이 있고, 결혼해도 앞으로 그런 현상이 생길 거고, 절에 와도 또 그런 현상이 생길 거고, 처음에는 괜찮다가 상황이 바뀌면 괜찮다가 어차피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이거 고치면 된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 형성된 거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변화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이런 줄을 알고, 심리적 불안은 있지만 떠날 필요는 없다는 거요.

 

이게 왜냐하면 장소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 나로부터 온 거기 때문에. 그럼 이렇게만 알아도 벌써 인생의 방황이 절반은 해결이 되는 거 아니오. 불안은 있지만 불안이 장소를 떠난다고 해결되는 건 일시적이지 그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요. 그러면 그런 불안이 있을 때 밖을 탓하지 말고 나를 보는 거요. , 내 속에 심성이 불안심리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저 사람 때문에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가 호흡을 관찰하든지, 이렇게 진정한다면 잘 안되더라도 장소를 옮기고 떠나고 이럴 필요는 없어진다는 거요. 그것만 해도 인생의 얼마나 큰 덕이에요. 그러니까 공부를 그런 식으로 하라 이 말이에요.

 

기준은 정해진 거 없어요. 그 상황 상황을 얘기해야,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아, 그거는 남처럼 봐야 되고, , 그거는 도와줘야 되고 이런 게 있지. “스님, 옷을 어느 정도 입어야 됩니까? 저는 항상 헷갈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답을 할 수가 없어요. 그날 날씨를 봐서 더우면 조금 가볍게 입고 추우면 좀 두껍게 입어야지, 오늘 옷을 어느 정도 입어야 되느냐? 이런 말을 할 수가 없고, 그다음에 옷을 입어야 됩니까? 벗어야 됩니까? 할 때도 어떤 답이 없어요. 목욕탕 안에서 물으면 벗어야 된다고 그러고, 목욕탕 밖에서 물으면 입어야 된다 그러지. 그것도 그냥 답이 있는 것처럼 진리를 그렇게 이해하면 그건 전혀 잘못된 생각이오.

 

아니오, 돈 있으면 도와줘도 괜찮아요. 도와주는 게 오빠한테 꼭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조금 더 관찰해 보면 알지. . 이렇게 도움이 받는 것이 습관화 되면 어때요? 그 도움이 도리어 자립을 헤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어려울 때 도와줌으로 해서 그것을 거름처럼 삼아서 어때요?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도 정해진 거는 없어요. 그리고 이미 내가 그걸 선택을 했으면 그렇게 해서 사업 실패하더라도 내가 미련을 버려야 되요. 도와주는 걸로 끝내야 돼. 도와줬기 때문에 성공해야 된다. 이런 요구를 하면 실패하면 오빠를 미워하게 되요.

 

그리고 도움을 달라고 했는데도 독립된 인간이기 때문에 안 도와줘도 아무 죄가 안 돼요. 내가 안 도와줬기 때문에 죽었다 하더라도 그거 갖고 죽은 뒤에 울 필요는 없어요. 으흠. 그 인간 살다가 죽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요. 왜냐하면 이미 죽어버린 뒤에 내가 안 도와줘서 죽었다는 얘기를 한다고 살아오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것도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요.

 

자기에게 도움 되면 얻으면 되고 안 되면 그만두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