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062회]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는데 지금이라도 복수해주고 싶어요.

Buddhastudy 2015. 3. 20. 21:52

 

 

우선 저기 뭐, 충분히 이해는 되었는데, 자기 종교하고 관계없이 답을 줄 수도 있고, 자기 신앙과 관계있게 내가 답을 줄 수도 있는데, 구약의 하나님,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야. 징벌의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면 어떻게 된다? 처벌을 해. 벌을 줘. 그래서 소동과 고무라 같은 얘기도 나오잖아 그죠? 유황불로 지져버리거나,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징벌을 해.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 즉 기독교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 쉽게 얘기하면 유대교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인데, 예수님 이후에 하나님, 즉 신약의 하나님은 크리스트교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고, 포용의 하나님이에요.

 

그럼 그거 분기점은 예수님의 어떤 마지막 삶의 모습에서 나오잖아. 그죠?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이럴 때 예수님은 뭐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랬잖아.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건 용서의 하나님이오. 그런 면에서 자기가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러면 크리스천답게 사물을 봐야 된다는 거요. 그게 바로 신앙이라는 거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랬어. 여기서 기독교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게,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는 글귀였고, 불교에서는 보왕삼매론 10번째,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이런 구절이 있어요.

 

아따 젊을 때 아무리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이거 안 맞는 얘기에요. 억울하면 뭐해야 된다? 밝혀야지 왜 밝히려고 하지 마라 그래요. 이 구절이나, 내가 볼 때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구절이나 동격인데, 억울함을 당하면 밝혀야지. 왜 밝히려고 하지마라 그럴까? 이게 참 힘들었는데, 이제 이해는 되요. 아직도 내가 자신은 잘 안되는데. 억울함을 밝혀야 되고, 원한이 맺히면 보복을 해야 되지만, 그러나 이해는 조금 하게 되었어요. 내가 고문도 당하고, 뭐도 당하고 이렇게 살아보면서, 나이 들면서. “,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고문을 당했을 때, 진짜 손가락이 총이라면 다 쏴 죽일 정도로 증오심이 극에 처했는데, 그 고문하던 사람들이 당하는 사람이 힘들어서 쉬는 게 아니고, 하는 사람이 힘들어 쉽니다. 고문할 때 휴식은 저희가 힘들어서 휴식하는 거요. 휴식시간에 3명의 장정이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그 날이 날짜도 안 잊어버려요. 1115일이요. 1115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예비고사 시험 치는 날이오. 이건 나이 드신 사람들은 알죠? 예비고사 시험을 항상 정해놨어. 1115.

 

그날인데, 둘러앉아서 얘기가 뭐냐 하면 우리 딸년이 오늘 시험 치는데 잘 쳐야 될 텐데. 이것이 시험을 잘 못 치면 내가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지방대학 가면 내가 어떻게 생활비까지 다 된단 말인가? 이러고 앉아있는데, 그냥 평범한 학부형들의 얘기에요. 옆에서 동의를 하는 남자들 3이 앉아 담배피우면서 하는 얘기가. 그때 내 마음속에 있는 증오심이 눈 녹듯이 녹는 걸 느꼈어요. “, 저 사람, 그냥 평범한 사람이구나.” 내가 볼 때는. 뭐요? 악마 같았는데.

 

그런데 집에 가면 한 아내의 사랑하는 남편이겠고, 한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어쩌면 정보기관에 일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겠구나. 이게 이해가 딱 되니까, 그냥 그 증오심이 내려갔어요. 그리고 내가 나와서 성경을 다시 뒤져봤는데, 뒤 구절을 내가 제대로 안 읽었어요. 뒷 구절이 뭐라고 되어있냐 하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되어있어.

 

그런 거 고문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짓는 죄를 알까? 모를까? 경찰이면 경찰에 충실 한다고 지금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역사를 다시 보면,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요즘 말하면 교도소공무원이에요. 그러니까 아침에 나오면 출근해서 뭐한다? 법원에서 사형집행 된 사람, 사형시키는 거요. 교수형 시키고, 총살형 시키듯이 그냥 십자가에다 못 박는 사람이오. 그럼 그 사람은 자기가 지금 무슨 큰 죄짓는다는 거 알까? 모를까? 모르겠지. 그런데 그 사람을 지옥 보내면 그 사람 얼마나 억울할까? 그죠?

 

내가 죽는 입장에서는 원한이 사무치지만, 그 사람은 그냥 일상 업무하는 거요. 그럼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어부야 말로, 지옥에 갈 인간이지만, 어부는 그런 생각 할까? 안할까? 안하고 그냥 고기 잡을 거 아니오. 그죠? 그래서 제가 아, 예수님의 용서는 그냥 나쁜 놈이지만 용서해 주겠다가 아니라, 근본은 저들은 죄가 없다는 걸 예수님이 자각하신 거요. 저들은 죄가 없다는 거, 그들은 일상 생활인이에요. 그들은 죄가 없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에, 용서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쁜 놈인데 용서해주는 건 어떻게 되요? 3번까지는 해주는데 더 이상은 못해줘요. 보복을 해요.

 

이게 몇 번째고. 이렇게 되는데, 용서해줄 것이 없는 용서라야 뭐다? 영원한 용서가 되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금강경에도 똑같이 나오는 거요. 인욕바라밀, 시명인욕바라밀, 인욕바라밀이라고 할 때 인욕바라밀 할 것이 없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오. 인욕바라밀이 인욕바라밀이 아닐세, 이 말은 뭐요? 참는다는 게 참을 것이 있다면 그건 인욕바라밀이 아니다. 참을 것이 없어야, 그것이 참으로 인욕바라밀이다. 이런 얘기요. 참을 것이 없다는 거는 그 사람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그게 진정한 참음이다.

 

이런 데에서 만약에 자기가 크리스천 이라면 그 아이들, 자기를 왕따시킨 아이들이 내가 볼 때는 나쁜 놈이지만, 그 애들은 지금 세월이 흘렀는데, 자기가 어릴 때 나쁜 짓 했다는 생각 할까? 못할까? 가서 만나서 물어봐라. 너 어릴 때 나를 이렇게 괴롭혔는데. 이러면 모르지. 그냥 어릴 때, 어리석은 애들이니까, 했지. 내가 언젠가 초등학교 친구들하고 만나서 우리는 36명밖에 안 돼. 남녀 합해서. 그래서 29명이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어릴 때 나이가 60이 다 되어도 얘기하면 어린 시절, 초등학교 친구니까, 초등학교 얘기 밖에 안하나.

 

여자애들이 뭐라고 얘기 하냐 하면, “너그 그때 말이야. 우리 고무줄 놀이할 때 고무줄 끊어먹었다고 얘기하니까, 남자애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해요.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거요, 그래서 여자애들은 어느 정도로 기억을 하느냐? 몇 학년 때, 어느 장소에서, 누가 끊어먹었는지 다 아는 거요. 그런데 남자애는 아무도 몇 학년은 고사하고, 어디는 고사하고, 자기가 한 줄도 몰라. 그러니 이게 우리 인생이라는 거요. 그래서 우리 인생은 가해자는 별로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거요. 자기가 한건 아무도 기억을 못해요.

 

나는 지금 초등학교 1학년 때 숙제 안 해가서 여자선생님한테, 30센티 자로 손바닥 맞은 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선생한테 물어보면 알까? 모를까? 가서 한번 따져봐야지. 할매한테 가가지고. 몰라. 그렇기 때문에 그거를 자기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로 돌아가서 그 친구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나쁜데 그 나쁜 원인은, 그건 어리석어서 그래. 뭘 몰라서 그래. 그러니까 만약에 여기 한국 아이들이 7명이 있고, 거기에 엄마가 베트남 애가 하나 와서 얼굴이 까맣찝찝하다 그러면 초등학교 친구들이 놀릴까? 안 놀릴까? 그런데 그 아이들이 나빠서 놀릴까? 아니야.

 

손이 약간 이상해도 놀리고, 하는 짓이 이상해도 놀리고 그런단 말이오. 그건 아이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오. 어리석어서 그래. 어리석어서. 그거는 선생들이 잘 깨우쳐줘야지. 그래서 자기가 이제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그때는 죽여 버리고 싶은 애들이지만, 이제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그 애들도 어때요? 어리석어서, 뭘 몰라가지고 그렇게 돈 뺏고, 때리고, 그렇게 한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된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탁 놓고, 아이고 애들 몰라서 그렇다. 이렇게 놔야, 지금도 그 친구들 만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자기들 그 친구들 만나면 화가 솟고, 그러다가 잘못하면 술 먹다가 주먹 날아갈 수 도 있고 그렇게 되는 거요. 그러면 자기가 보복은커녕 자기가 지금 폭행죄로 어디가야 된다? 감옥에 가야 되는 자기화를 자기가 부른다. 그래서 그걸 다 털어야 돼. “, 그때 돌아보니 그때 참, 애들이 다 어리석어서 나도 어리석고 너도 어리석어서 그랬다.” 어리석어서 화를 자초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부모가 싸우면 애들은 다 상처 입잖아 그죠?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보니까, 어릴 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른이 되어서 결혼해 보면 싸우는 게 다 이해가 되요?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는 그게 상처가 되지만, 나이 들어 보면, “, 그래. 엄마도 그런 일이 있었고, 아빠도 그럴 만 했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내 어릴 때 있던 상처가 부모로부터, 입었던 상처를 내가 스스로 치유해 나가야 돼. 자기가 , 그래. 애들이 어려서 그랬구나.” 이렇게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누구 상처가 치유된다? 내상처가 치유되지, 그 애들한테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니오. 내 상처가 치유가 돼. 자기가 상처가 치유가 되어야 자기가 건강하게 되는 거요.

 

직장 가서도 이게 치유가 안 되면, 자기 직장 가서도 또 왕따 당해요. 이게 치유가 되어야 왕따를 안 당하는 거요. 사실은 누구 왕따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 이런 상처가 있으면 자꾸 왕따 시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민감하게 대응하면 이제는 왕따 시키는 거요. 그래서 자초하게 된다 이 말이오. 그리고 아직 자기 대학 3학년이라 안 그랬어요? 졸업한 뒤에 취직할 생각하세요. 자기 지금 취직 있어도 못가잖아. 학교 다녀야 되는데. 그런데 뭘 그걸 갖고 지금 신경 써. 1년 반이나 남았는데.

 

아이고, 자기가 무슨, 마 다녀라. 자기 1년 쉬었다 봐야 어차피 또 1년만 늦어지지. 휴학해서 뭐할 건데? 이렇게 상처치유하면, 휴학 안 해도 돼. 휴학하면 시간만 낭비해. 대학을 휴학해가면서 다닐만한 가치가 없어. 내가 보기엔. 그냥 휴학 하지 말고 그냥 퇴학을 해버려. 자퇴를 해버려. 다니기 싫으면. 뭣 때문 자꾸 시간 낭비하려고 그래. 그리고 빨리 20살이 넘었으면 뭐해야 된다? 아무 직장이나 구해서 자기 밥벌이 해야지. 나이가 25이나 되는 게 아직도 부모한테 밥 얻어먹고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빨리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든지, 안 그러면 학교 치워버리고 직장을 구하든지 빨리해서 밥벌이를 해야 돼. 시간 휴학해서 시간 끌고, 그게 바로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거요. 내 조언은 그래요. 듣고 안 듣고는 네가 알아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