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58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행복할 수 있다

Buddhastudy 2016. 3. 18. 21:17


 

안녕하세요. 우리 옛 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이런 말이 있죠? ‘호랑이한테 물려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얘기치 못한, 상상도 못한, 생각도 못해본, 그런 불행한 일이 닥친다. 이런 얘기요. 우리가 살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나한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런 일들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닥치면 대부분 혼이 나간다. 넋이 나간다. 정신이 빠진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죠. 넋 나간 사람이 된다. 혼미해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면 넋이 나가버려요. 그래서 잡혀먹는데, 그런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살길이 열린다. 그러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깨어만 있으면, 지금 여기에 깨어만 있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수행과 같은 말이에요. 수행이라는 게 뭐냐?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수행하면. 그런 게 아니고. 수행을 하면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괴로울 일이 없다. 이런 얘기요.

 

보통 우리가 기도라 하면, “부처님, 오늘 비 안 오게 해주세요.” 그럼 비 안 오고, “오늘 비 오게 해주세요.”하면 비가 오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수학을 하게 되면, 이런 건 수학적으로 간단하게 설명 할 수 있어요. 수학을 안 하는 사람은 기도하면 이루어져요?” 이렇게 나한테 자꾸 물어요.

 

수학적으로는 경우의 수라는 거 알아요? 내가 원하면 비가 오기도 하고, 원하는데 안 오기도 하고. 비가 오기를 원하지 않는데도 비가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한다. 몇 가지 경우가 생겨요? 4가지 경우가 생긴다. 4가지 경우 가운데, 오라는데 오는 거 하고, 오지 마라는 데 안 오는 경우에는 기도가 성취된 게 되고, 오라는데 안 오고, 오지 마라는데 오면 기도가 성취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사위를 던질 때, 1의 눈이 나올 확률이 얼마냐? 그러면 수학적 확률은 1/6이에요. 그러면 실제로 주사위를 던지면, 1의 눈이 6번 던지면 1번 나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6번 던지면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고, 6번 다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 1의 눈이 한번 나올 확률이, 그 가운데, 제일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즉 실제로는 경우의 수가 1의 눈이 한 번도 안 나올 경우, 한번 나올 경우, 두 번 나올 경우, 세 번 나올 경우,...여섯 번 나올 경우.

 

이렇게 7가지 경우가 일어나는데, 이 가운데 어느 확률이 제일 높나 하면 한번 나올 확률이 제일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한번 나올 확률이 제일 높지만 그러나 한번 나온다.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다. 이거야. 그런데 이 실험횟수가 계속 되면, 즉 무한대가 되면 1이 나올 확률이 1/6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렇게 우리가 말 할 수 있다. 그런데서 이것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나올 확률도 있고, 안 나올 확률의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나오면 내 기도가 들어졌다해서 기분이 좋고, 안 나오면 내 기도가 안 들어졌다해서 기분이 나쁘니까 고와 락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된다. 이걸 윤회라 그래요. 윤회. 이걸 윤회하는 고통이다. 윤회고라 그래.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게 윤회고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이 복을 비는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되고 안 되고에 따라 고락이 되풀이 되니까, 이건 윤회의 세계 안에 있다.

 

그러면 불교의 이상적 목표는, 궁극적 목표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거다. 해탈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고락으로부터 벗어난다. 고락의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거를 해탈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되기도 하고, 안되고도 하는 거를 그 중에 어느 쪽에 확률이 좀 높도록 해주세요.” 이게 기도가 아니다. 그게 수행이 아니다. 어떤 게 수행이냐? 준비된 자, 즉 비올 것에 대비해서 우산이 준비되어있으면 비가 안 오면 좋지만, 비가와도 상관이 없다. 이게 해탈이오.

 

비가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할 수 있는데, 오는 경우에도 괜찮고, 안 오는 경우에도 괜찮기 때문에 나는 비로부터 자유롭다. 이런 얘기요. 이게 해탈이오. 우리는 지금 기도를 비 오게 해주세요. 비 안 오게 해주세요.” 이걸 기도라고 생각해. 진정한 기도는 비가 오든 비가 오지 않든 상관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거다. 그게 해탈이다. 비로부터 자유다. “우리 남편 술 먹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술 안 먹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는 항상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기도다.

 

될 확률이 설령 많다 하더라도, 그거는 안 될 수도 있는 기도, 고락이 되풀이 된다. 그런데 수행을 해서 해탈을 하게 되면, 안 먹으면 좋지만, 먹어도 상관이 없다. 일찍 들어오면 좋지만, 늦게 들어와도 상관이 없다. 우리 아들 건강하면 좋지만, 아파도 상관이 없다. 그게 해탈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준비되어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상황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되어도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중생은 경계에 끄달리는 사람, 수행자는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자,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자,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속담을 빌리면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할 때 호랑이한테 물려갔을 경우에 정신 차리는 자,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올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하셔야 되요. 아시겠죠? 그런 사람이 된다. 안되더라도 되는 걸 목표로, 한발 한발 가야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뭐하게 해주세요.” 됐다고? “아이고, 가피를 입었다.” 안 되었다고 기도해봐야 소용없네.” 이거는 중생계, 윤회의 세계에요.

 

그거는 힌두교 믿는 사람이나, 불교 믿는 사람이나 기독교 믿는 사람이나, 무슬림 믿는 사람이나, 산신 믿는 사람이나, 칠성 믿는 사람이나, 똑같아요. 그래서 이 해탈을 추구하는 경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종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다. 다른 세계다.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다. 그러니까 이 종교의 세계는 비가 오고 안 오고에 구애받는 세계라면 이거는 비가 오고 안 오고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빌 때, 뭘 대상으로 비느냐? 하는 거는, 이 해탈의 세계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부처님한테 빌면 예쁘고, 하나님한테 빌면 예쁘고 이런 게 아니다. 그건 틀렸다 옳다가 아니라 같은 성격이다. 기복이면 같은 성격이지, 하느님한테 빌든, 부처님한테 빌든, 예수님한테 빌든, 관세음보살님한테 빌든, 같은 세계, 같은 과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목표가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이 해탈의 길로 가는데, 그 전에 자기 종교가 불교라고 해서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고, 기독교라고 해서 특별히 불리할 것도 없고, 종교가 없다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과거 자기 종교가 무엇이든, 있든지, 없든지, 있다면 무엇이든지, 그거는 우리는 상관할 바가 없다. 그건 여기 앉아있는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있든 상관할 바가 없는 것처럼. 다만 여기에 참여한 사람은 뭘 지향해야 된다? 해탈을 지향해야 된다. 열반을 지향해야 된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걸 지향해야 된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이런 말도 있죠. 오늘 저기, 한군데 갔더니 그런 질문을 합디다. “성당에 다니다 여기 다니는데, 신앙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무슨 갈등? “성경에 나로 말미암아, 나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랬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 그런데 그런 말만 있나? 이런 말도 있지 않느냐.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이런 말이 있죠. 여기 교회 다니는 사람 몇 명 안 되나? 대답 신통치 않네.

 

그러면 내가 진리요, 내가 진리다. 진리가 나고, 내가 진리다. 불교에도 똑같은 말이 있어요. 부처님 뭐라고 그랬어요? 나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나를 본다. 이렇게 말했어요. 직지인심 견성성불. 손가락 갖고 탁 퉁겨서 가리키듯이 자기 본성을 보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 된다. 이런 말도 있어. 그러니까 진리가 곧 나라면, 나로 인해서 구원받으리라. 나를 통하여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나를 진리로 대치하면 오직 구원은 진리를 통해서, 진리에 의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하다. 이런 얘기 아니오.

 

진리라는 것이 뭐요?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 원리, 이런 얘기 아니오. 그러니까 지금 여기 모인 사람은 안 되더라도 바로 나는 그렇게, 진리에 의지해서 해탈의 길로 가는 자다. 그것을 올해는 목표로 해서 정진을 부지런히 해봅니다. 아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