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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학스님의 금강경 12_2. 무일의 6대 불교요약

Buddhastudy 2017. 5. 16. 19:20



불교 공부를 하다보면 어떨 때는 연기사상이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또 어쩔 때는 해탈해야 한다고 해탈이 어쩌구 저쭈구 하다가 말이 많아요. 그러한 점들에 대해서 오늘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유인물, 금강경특강자료 11, 12의 다번, 무일의 6대 불교요약. 그것을 보시겠습니다.

 

1. 지극한 평온

오늘 나온 것이 아까 열반, 니르바나, 적멸, 열반적정이 나왔는데, 이 열반은 불교에 있어서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분야에서 얘기되고 있는가? 이념, 불교의 이념적인 면에서 봤을 때 열반이라,

 

불교 이념이 뭐냐?

열반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요. 열반은 지극한 평온, 좀 더 나아가서 최상의 행복, 이런 것을 열반이라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대부분 중생들은 스트레스, 불안 등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이 열반의 세계는 지극한 평온의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꼭 맛을 봐야 하는 그런 세상이지요. 불교이념 열반이다.

 

2. 인연의 소중함

불교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불교 사상은 연기사상이다. 이렇게 말해요. 읽어보겠습니다. 연기. 연기. 이 연기는 인연생기의 준인 말이라 하는데, 모든 것은 다 인연되어져서 일어난다. 그렇죠. 인연법이 아닌 것은 없어요. 인연의 소중함. 인드라망이라. 다음 까페 불교 인드라망 하면 이 자체가 연기를 나타내는 겁니다. 다 인연되어져서 일어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생활적인 면에서는 인연의 소중함,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연은 아주 많은 말을 하지만, 창조, 또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지라는 우연론, 이것은 아주 배격합니다.

 

창조 또는 우연은 없다.

다 인연 소치다.

 

불교사상은 연기,

합쳐서 연기사상,

 

이렇게 말해요. 읽어보겠습니다. 연기사상, 연기사상.

 

3. 대 자유의 구가

불교 목적은 해탈입니다. 풀 해. 벗어날 탈. 풀고 벗어난다. 나를 옥죄고 있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풀고 벗어난다. 그래서 해탈이라 했어요. 이것은 바로 대자유의 구가입니다. 대자유라. 우리는 늘 자유를 그리워합니다. 자유. 대자유. 특히 마음가운데 대자유. 아주 중요하지요. 그래서 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우울증이 된다거나 화병이 된다거나 그래요.

 

불교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이 자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얽매임, 구속, 집착, 이런 데서부터 벗어납니다.

그럼 좀 살만하지요.

그래서 불교의 목적은 해탈에 있다. 이렇게 봅니다.

 

4. 초월적 사랑

불교 정신은 자비입니다. 그래서 합쳐서 자비정신, 이렇게 말해요. 읽어보겠습니다. 자비. 자비정신. 사랑 자, 슬퍼할 비. 그러니까 요즘말로하면 사랑과 연민, 이런 것이 있어야지 불자다. 보살이다. 이런 얘깁니다. 그래서 이 불교정신을 잘 구현해야 하는데, 그 불교정신의 핵심은 자비에 있습니다. 거기 초월적 사랑이라 했는데 자비를 억지로 말한다면 초월적 사랑 또는 연민 이런 것입니다.

 

불교인들을 보면 좀 무뚝뚝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몰인정하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요. 다른 종교인으로부터. 불교 본래 정신은 이렇게 거룩합니다. 자비정신을 늘 얘기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근접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지로는 이 자비정신을 늘 염두에 두고 여기에 접근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5. 항상 깨어있음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불교주의라 그래요. 불교주의. 우리가 민주주의 공산주의 그런 말 쓰죠? 바로 불교 주의는 각성을 말해요. 각성. 각성. 성품, 깨닫는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품을 깨닫는다하니까 깨달음이고, 또 나아가서는 불자라면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항상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음. 이렇게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이 무지, 어리석음, 어둠, 이런 것 때문에 늘 실수를 하게 되고, 늘 방황을 하게 되죠. 두려워하게 되고 그러죠.

 

그런데 깨어있으면 괜찮습니다. 깨어나 버리면 되잖아요. 우리가 눈을 감고, 혼돈 속에서 있으니까 온갖 망상이 일어나고 두려워하고 그러죠. 악몽을 꿀 때도 눈을 떠버리면 되잖아요. 눈은 안 뜨고 계속 그 속에서 해매면 될 일이 아니죠. 아주 악몽이 꿔질 때는 바로 밝음의 표상, 이 관세음보살 또는 부처님을 불러야 되요. 그러면 눈이 확 떠집니다. 그러면 눈이 떠지면 그만이라. 바로 이 사바세계의 현실생활이 다 고라. . 삶이 힘듭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살면서 우리가 늘 깨달음, 항상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불교주의라해서 늘 강조합니다. 각성입니다. 한자로 말하면 각성입니다.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각성, 각성주의

 

6. 참 좋은 세상

그 다음에 불교의 이상이 있습니다. 불교이상. 우리가 최고의 좋은 세상, 그런 것을 말할 때 불교이상이라해서 정토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정토. 깨끗한 땅이라 했는데, 요즘 말로하면 행복한 세상입니다. 참 좋은 세상, 이것을 정토세상, 정토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또 늘 그러한 이상세계를 구현해야 하는데, 그 이름이 정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바세계는 혼탁해요. 사바세계는 힘들어요.

 

돈이 있다 해서 행복하지 않아요. 또 권력이 있다 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오늘 여기 앉아서 공부하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해요. 아무 생각 없어. 일체 고민거리가 없어지고, 여기가, 이 자체가 바로 정토세계죠. 여기는 뭐, 권력이 있는 사람, 돈이 있는 사람, 그거 다 소용없어요. 이 법당 안에서는.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이 법당에 좀 자주 나오시는 게 좋죠. 현실 정토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