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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학스님의 금강경 13_6.무일의 진리적 인생 구가론

Buddhastudy 2017. 5. 24. 20:15



대승소승이라는 말이 나와서 좀 더 부연설명을 드리면, 오늘 금강경 특강자료 13 14, 거기에 무일 우학스님의 진리적 연생 구가론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좀 보시겠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무일의 진리적 인생 구가론. 이 말은 무엇인가하면 진리는 노래하면서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 두 번째는 어떻게 하면 진리적 인생을 펼쳐나갈 것인가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1.삼세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읽어보겠습니다. 삼세적 삶.

삼세라는 말은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 그러잖아요. 다음 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생도 생각하면서 넓고 길게 보고 살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김대승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후손도 좀 생각하면서 복도 좀 지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2. 초연지색이라. 초연적 삶이라.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대들보가 내려앉아도 눈만 꿈벅꿈벅한다. 세상에 놀랄 일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 아주 독실하게 잘 믿으면 뭐 그런 게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초연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리고 또 좋은 일이 있다하더라도 이 불교를 좀 아는 사람은 너무 까불대지도 않아요. 뭐 그냥 좋구나. 그 정도죠. 그게 바로 초연적 삶이죠.

 

3. 정진적 삶이라. 다부진 생활을 하며 일이 끝날 때가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의지로 밀어 붙인다. 아주 중요한 말이죠. 인생이 끝날 때까지는 인생이 끝난 게 아닙니다. 요즘 한번 봐봐요. 정치계보면 그 나이 많은 사람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죠.

 

인생은 죽을 때까지도

끝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숨이 떨어지는 그 날까지 우리는 늘 근신하면서 관세음보살 부르면서 금강경 독송하고 사경하면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잖아요. 삶이라는 것이. 그런데 왜 정진하지 않느냐 이 말이죠.

 

4. 대승적 삶이라. 대승지색.

여기 얘기했잖아. 금강경은 대승적 삶을 사는 대보살들을 위해서 설해진 경이다. 그러면 대승적 삶이란 어떤 거냐? 큰 수레라는 말이니까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생각하며 그 밑에 말이 재미있네요.

 

어차피 놀 판이면

크게, 굵게, 화끈하게 논다.

 

이 사바세계라는 것은 바로 삶의 놀이터거든요. 사바세계가 바로 노는 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하면 크게 한번 살아보자. 그 말입니다. 이왕 사는 인생, 대승적으로 살아보자. 이거죠. 스케일을 크게 해서 자잘한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크게 바꾸자. 그러면 큰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 말입니다.

 

5. 수행적 삶이라. 했어요. 수행지생이라.

거기에 최고 원인입니다. 최초 원인을 나한테 두며, 내가 바로 서야 남도 일으켜 세운다는 자세로 수신, 득력을 한다. 수신이란 말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닦아가는 것을 수신이라 그러잖아요. 수신. 자기 자신을 닦아가는 겁니다. 늘 자기 자신을 닦는 그런 수행자적 자세로 산다면 이 세상은 그래도 보람 있는 삶이 될 수 있어요.

 

득력이라. 늘 힘을 길러야 됩니다. 내공을 길러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수행하듯이, 실지로 수행해야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경도 좀 읽고,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도 경 좀 읽고, 또 낮에 틈나면 사경도 좀 하고, 이런데 재미를 붙여야지, 어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그런 일에 너무 신경쓰다보면 자괴감이 느껴지게 되고, 남하고 비교하다보면 스트레스 받고 그러잖아요. 경전을 읽고 있는데, 자괴감이 일어날 이유가 뭐 있으며 경전 읽고 있는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수행하면서 언제든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되요. 그리하다보면 삶이 절대 허망하지 않다.

 

하여튼 우리는 불교 공부하는 것도 억지로 남을 위해서 온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자기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 난 가야 한다. 어떤 일 보다도 만사 제쳐놓고 여기 올 줄 알아야지 그 사람이 수행적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6. 자비적 삶이라. 자비지생이라.

초목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통째로 사랑하며

모두가 행복했을 때 나도 행복하다는 신념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가족을 조금 확대하면 세계가 되잖아요. 가족이 행복했을 때 나도 행복한 거지, 가족 하나가 아프거나 가족 하나가 참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가족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아프고, 그만큼 자기 자신도 힘드는 거죠. 그런데 그런 가족 개념이 없다면 그게 무슨 가족이냐? 우리는 이 우주, 이 세상에 사바세계에 다 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행복했을 때 나도 행복하다. 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굉장히 중요한 말이오.

 

불교정신은 자비정신이라 이러잖아요. 자비정신. 그래서 우리는 방생도 하게 되고, 다른 생명체도 함부로 죽이지 않고 그러는 거거든. 자비심, 그 마음 가운데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 선량하고, 그 사람이 세상을 잘 사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보는 겁니다. 자비심이 있어야 되요.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 방생도 하는 거지, “아 그 미물, 장어 살려주면 뭐하냐? 자라 살려주면 뭐하나? 미꾸라지 살려주면 뭐하나? 다 쓸데없는 소리다.” 그렇게 말하면 자비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행이 다 우주에 미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요. 그래서 호남평야의 곡식이 잘 되면, 저 강원도 산골짜기 소가 살찌는 도리가 있어요. 그 관계가 없는 거 같은데도 호남평야에 곡식이 잘 되어야지 강원도 산골짜기 소가 살찌게 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남이 잘되면

나도 잘 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했을 때

나도 행복하다.

 

이 생각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 그러면 진리적 인생 구가론,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삼세적 삶.

초연적 삶

정진적 삶

대승적 삶

수행적 삶

자비적 삶

 

그러면 다시 본 책으로 오셔서 190페이지. 거기 중간쯤에 보면 부처님의 자비공덕이 충만함으로 모든 신장들이 환희하며 무수한 중생들이 찬탄의 노래를 부른다. 그 밑에 게송이 있습니다.

 

편일체처 부착어일체처

편일체시 부착어일체시

바로 우리는 보살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게송 한글 부분을 크게 한번 읽어보고 마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십시오.

 

모든 것에 두루하되

그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때에 두루하되

그 모든 때에 머물지 않는다. -육조혜능-

,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