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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28_6. 달마도를 걸어놓으면 나쁜 기를 차단할 수 있다는 데, 사실인가요?

Buddhastudy 2017. 12. 5. 20:31


어느 순간부터 달마도는 불자의 상징처럼 되어져 있습니다. 그 모든 불자들을 보면 액자에 (부처 불)자도 써서 걸어놓은 경우도 있고, 달마도를 걸어놓는 경우도 있고, 관세음보살 모습을 걸어놓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달마도를 걸어놓으면 수맥을 차단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염력이라는 게 있겠죠. 아까도 제가 얘기했지만 심즉시불이라. 마음이 부처다. 마음을 거기에 의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내면 거기서 가피가 느껴진다는 느낌 같은 것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 할 때는 어떤 대상을 통해서 희망을 구하는 것 자체는 그게 어떻게 보면 종교의 본질일 수도 있습니다.

 

달마대사를 분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되요. 달마대사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인도에 반야다라라고 하는 분의 제자에요. 그 분은 왕의 아들이었어요. 향지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3째 아들이죠. 반야다라라 스승에 의해 출가를 해서 40년 동안 도를 닦습니다. 그리고 전법을 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건너오시는 거죠.

 

중국으로 오셔서 중국 초조가 되시는 분이 달마대사에요. 그래서 이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와서 가장 먼저 찾아간 분이 누구냐 하면 양무제라는 분을 찾아가세요. 그래서 이 양무제라고 하는 분은 대단히 불심이 돈독한 분이었어요. 사방 10리마다 절을 하나 짓고, 5리마다 암자를 지을 정도로 대단한 불심을 가진 분이었어요. 이 분은 너무나 불심이 돈독해서 수많은 경전을 편찬하라고 했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드리는데 신하들에게 시켜서 공양을 드리는 게 아니고, 당신이 국밥을 퍼서 줘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아주 신심이 대단한 분이었어요.

 

그 신심 있는 황제가 달마대사라고 하는 분이 오셨다고 하니까 그 분을 초청하죠. 그리고 그 분에게 공양을 대접을 합니다. 융숭한 공양을 대접하고 난 이후에 달마대사에게 물어요. “나는 5리에 암자를 하나 짓고, 십리에 절을 하나 지을 정도로, 그리고 수많은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고, 수많은 경전을 편찬을 했다. 내가 지은 공덕이 얼마나 되겠냐?”하고 물어요. 그때 달마대사가 없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없다라는 부분을 잘 생각해야 되요. 불교에서 없다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게 아니에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무량겁이라고 얘기하죠. 무량수라고 얘기하죠. 숫자로 표기할 수 없는 부분을 우리가 (없을 무)자를 쓰는 경우도 있어요, 아예 없는 것도 (없을 무)자를 쓰지만, 그 양이 한량없어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달마대사에게 없다라고 얘기한 부분은

공덕이라고 하는 상을 가지고 공덕을 베풀면

그것은 유루의 공덕이 된다.

언젠가는 닳아 없어지는 공덕이 된다.

 

그러니까 네가 상이 없는 공덕을 지었거든

그것은 무루의 공덕, 새지 않는 영원한 공덕이 되어야 되는데,

네가 짓고자 하는 공덕은 무루의 공덕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네가 절을 얼마만큼 지었고, 스님들에게 공덕을 올렸고, 경전을 편찬하고 이런 자랑을 하고 있는 그 부분은 언젠가는 닳아 없어지는 공덕이므로 그것은 진정한 공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양무제는 그 뜻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달마대사를 내쳐버렸습니다.

 

달마대사는 그 길로 돌아서서 소림사라고 하는 곳에 가서 9년 동안을 면벽수행을 합니다. 9. 9년 동안 면벽이라는 것을 통해서 수행을 하든 차에 바로 혜가라고 하는 분이 와서 눈밭에서 출가를 원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는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겠다.”고 얘기를 했을 때 이 달마대사가 돌아앉아서 네가 무슨 마음으로 나한테 출가하려고 그러냐? 뭘 구하고자 하느냐? 네 신심이 어느 정도냐?”라고 그러니까 칼을 뽑아서 팔을 잘라요. 그래서 그것을 공양으로 올립니다. 혜가가. 대단한 신심이죠.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출가를 허락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팔을 잘라서 공양을 올렸는데, 그 팔을 자르는 순간에 눈밭에서 파초가 올라와서 그 팔을 받습니다. 그 팔을 다시 달마대사의 도력으로 붙여주죠. 그래서 한쪽은 상해를 입었던 팔을 갖고 출가를 했던 분이 바로 혜가선사라고 하는 분이에요. 그때 출가를 허락해 놓고, 달마대사가 묻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그럴 때 혜가가 내 마음이 괴롭습니다. 내 마음이 지금 너무너무 불안합니다. 이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럴 때 달마대사가 뭐라고 얘기를 하냐하면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놔보라.” 그러거든요. 불안한 마음을 내놓으라니까 보여? 안 보여? 있어 없어? 내 놓으려고 하니까 없습니다.” 하니까 이제 네 마음 편안해졌다. 마음을 내놓으려고 하니 내어놓을 형태가 없는 그 마음을 네가 괴롭다. 즐겁다고 얘기할 이유가 없는 거다.”라는 그 부분이 바로 달마와 혜가가 제자와 스승으로 만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전에 달마대사의 모습이 이렇게 흉측해진 것은 달마대사가 중국 쪽으로 오시다가 어느 나라를 왔는데 보니까 주변 30리 정도에 악취가 나서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그 악취 때문에 다 떠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원인을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는데, 달마대사가 보니까, 큰 이무기가 죽어서 썩어 가고 있는 악취가 사방 30리에 사람을 살 수 없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달마대사가 ,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당신이 정말 잘생겼다는 거예요. 누구처럼? 월도스님처럼. 정말 잘생기셨던 달마대사였는데, 그 악취가 나는 그 어마어마한 이무기가 썩어서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 안 되어서 자비심으로, 당신의 잘 생긴 육신을 벗어놓고, 그 이무기의 당신 혼이 들어가서 그것을 끌고 가서 저 먼 곳에 갔다가 버리고 돌아와 보니까, 어떤 놈이 자기 잘생긴 육신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게 누구냐 하면 그 산신이 자기의 모습을 벗어놓고 그 잘생긴 달마대사의 육신을 가지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육신이 없이는 중생제도를 못하니까, 그 산신이 벗어놓은 그 육신을 이용해서 자기가 달마대사가 탈을 바꾼 거죠. 그래서 달마대사의 모습이 그렇게 흉측하게 생긴 거예요. 원래 달마대사는 잘생겼습니다. 이치가.

 

그래서 그 흉측한 달마대사 상을 걸어놓으면 거기에 산신의 모습도 있고, 달마대사의 도력도 있어서 가피가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거기에 가피가 있는 게 아니고, 기대하는 우리 마음에 가피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모쪼록 그런 부분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르지 않고요, 가피를 얻으려거든 삼산사와서 관세음보살 많이 부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