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28) 이기심- 지체장애아인 내 아이

Buddhastudy 2010. 7. 2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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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인간의 이기심을 봐야 합니다. 여러 분들이 결혼을 할 때 사랑으로 결혼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결혼을 해서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오거나 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괜히 결혼했다 이런 생각이 들고. 돈을 못버는 정도가 아니라 내 돈 까지 가져가는 수준이 되면 손해 난다고 싶으니까 그냥 혼자 사는 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이 돌아갑니다. 그럼 이게 사랑이에요? 돈 문제에요? 돈 문제에요. 이것처럼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름하지만은 실제로 밑바닥에 흐르는 건 다 이기심입니다. 이해타산을 따져요. 아까 앞에서도 나왔지만은. 뭐 한 1020년 살다가 아이고 저 인간하고 도저히 못 살겠다. 헤어질까? 이렇게 마음먹다가도 헤어지지 못하는것도 이기심이에요. 지금 내가 뭐 또 헤어지면 또 어디가 사노. 또 애들은 어떻게 하노. 이렇게 또 이해타산을 따져서 그냥 하루하루 사는거요.

 

그러니까 이게 딱 성격에 부딪혀서 꼬라지 보기 싫을 때는 그게 비중이 확 높아져서 헤어지겠다고 마음이 들고. 또 그게 좀 가라않고 저녁에 하룻 밤 자고 일어나면 그게 좋으니까 생각이 바뀌고.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거요. 마치 슈퍼마켓가서 물건 살 때 물건 제품은 마음에 드는데 돈이 비싸고 그죠? 어떤데 가보면 어때요. 값은 싼데 품질이 좀 문제고. 이거하고 똑같애요. 그래서 살까말까 살까말까 망설이듯이. 여러분들이 늘 그렇게 무의식 세계에서 마음의 밑바닥에는 이해를 가지고 늘 이렇게 저울질 하면서 산단 말이오. 그걸 내려놔야 살던 안살던 편안하지. 그걸 움켜쥐고 있으면 늘 사는 게 고달퍼요. 그런데 이게 부모가 자식을, 그것도 똑같잖아요. 여러 분들이 자식을 낳아도 자식이 이렇게 생기기도 잘 생겼고,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들으면 자식이 있는 게 행복하죠. 그런데 이렇게 신체장애가 오거나, 말을 안듣거나 이러면 자식이 있는 게 괴롭죠. 이것도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이해관계요.

 

그런데 부부는 내가 선택했잖아 그죠? 그런데 상대도 선택했죠. 그런데 자식은 내가 선택했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했어요. 안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거 선택 안하잖아 그죠? 나 혼자 일방적으로 선택한거란 말이오. 그러면 책임 소재로 따지면 이건 어떻게 된다? 무한책임을 져야되는거요. 이걸 만약 회피 한다면 그거는 인생을 사람답게 살겠다는 것을 포기하는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운다. 지체부자유자다. 이게 힘들다는거는 물론 저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인생에서의 하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셔야 되요. 우는 거를 그냥 노랫소리로 듣는 이런 자세로 받아 들여야 된다 이거요. 우리가 결혼을 해도 밤에 잘 때 남편이 너무 코골면 처음에는 못살겠다 하지만 코고는것 빼고 다른 것도 괜찮으면 살다보면 코고는 게 뭐다? 노랫소리로 들리죠. 코안골면 오히려 잠이 깬다 그러잖아.

 

그런 것처럼 이 울음 소리를 그냥 하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되요. 저도 지금 그런게 조금 있어요. 저도 어제 갈때도 비행기 타고 가서 자고. 오늘 아침에도 비행기 타고 오면서 잤거든요. 저는 차에서 자거나 비행기에서 자는 경우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이렇게 요를 깔고 자는 경우보다 실제로 날 수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몸이 어느 정도냐. 이렇게 요를 펴고 누우면 오히려 이상해요. 늘 앉아서 이렇게 약간 기대서 자다보니까. 애들이 흔들어 줘야 자듯이 흔들려야 잠이 와요. 차타면 금방 잠이 오는데 오히려 이렇게 누우면 잠이 안와요. ? 하도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생활을 해서. 그래서 오늘도 비행기타고 오는데 사람들이 잠이 안와서 고생을 했는데 그래 스님하고 얘기 하려고 오니까. 스님 막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더라는거요. 그래서 나보고 하는 얘기가 비행기에서 잠이옵니까? 그러더라고 .

 

그래서 내 이랬죠. 당신들이 오늘 내리면은 집에가서 자지만은 나는 오늘 3시간씩 법문하는 것을 오늘 3번해야 되는데. 만약 비행기에서 안자고 왔다면 나는 죽는다. 그러니까 안죽으려면 자야 된다 이거요. 몸이 자기 안죽을려면 미리 자야지 안자면 어떻게 하겠냐 내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그래. 스님은 시차도 없어요? 이래. 시차느끼면 난 죽어야 되. ? 여기서 비행기타고 미국가서 내라자마자 일을 해야 되. 올 때도 스케쥴이 그렇게 짜져있어. 그러면 만약에 시차를 자꾸 고집하면 몸이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야되.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가기전에 여기서 일이 많아서 밤샘하고. 밤샘 했으니까 어쨌든 대게 졸리면 굿을 해도 잔다 이러잖아 그죠? 그게 비행기 간이든 어디든 신경써요 안써요? 대게 졸리면. 그냥 자는거요. 흔들어 깨우면 일어나 보면 한국에서 잤는데 일어나 보면 미국에 와 있어요. 밥도 안먹고.

 

그러니까 자고 일어났으니까 주야가 바뀌던 말던 일을 하면 되잖아. 몸에서 느끼죠. 몸에서는 그런 기운을 느껴요. 그래도 여러분들도 밤 12, 1, 2시 되면 아무 할 일 없으면 졸리지만은. 급한 일이 생기면 졸려요 안 졸려요? 안졸리듯이 내려서 일이 있으면 안졸리는거요. 몸은 느끼지만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당장 눈앞에 일이 있어서 전개가 되는데 그러면 강연하면서 자겠어요? 해야지. 그러니까 이런 얘기 이렇게 자꾸 자기 까르마, 습관 시차가 바꿨다. 밤인데 어떻게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없어요. 그거 다 한가하다는 얘기요. 한가하다는 얘기. 바쁘면 한끼 굶어도 다 잘 살고. 밤샘하고도 다 잘 살아요. 한가하니까 다 그런거요. 그런 것처럼 아이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지는 의식이 있으면 이런 얘기 꺼리가 없습니다. 책임 의식이 없다는 거요.

 

그래서 책임 회피하는게 뭐요?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왜 저런 애가 태어났느냐.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애가 태어 났냐?' 이런 얘기 하는 건 책임 회피하겠다는거 아니에요? 자기가 선택해 놓고 자기 마음에 물건을 샀는데 자기 마음에 안드니까 지금 바꿀려는 생각 하는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못 바꾼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하셔서는 안된다. 이 아이를 만약 기독교 신자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이 아이를 신체장애아가 있는 지체 부자유아를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서 내가 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내도록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선물이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되요. 우리 지체부자유아를 이렇게 보호해서 이렇게 돌보는 사람들 보면 자기자식 아니죠. 수녀님들은 결혼도 안하잖아. 그런데도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모아서 돌보는 사람도 있잖아.

 

그런데 왜 자기 자식인데 그 한 명을 못돌봐서 이렇게 아우성을 쳐요? 그러니까 여기 무한 책임을 져야된다. 다만 이건 있을 수 있어요. 이런 아이에 대해서 내가 돌보는 것 보다 내가 귀찮아서가 아니고. 내가 돌보는것 보다 이런 것을 돌보는 전문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돌보는게 아이에게 더 좋다 할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아이를 그 전문가가 돌보도록 하고 내가 밖에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 그 전문가에게 주는 것.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반기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것은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이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때 정을 못 떼가지고 전문가한테 안 맡기면 이것은 부모의 집착이고. 내 아이를 어디갔다 시설에 갔다 맡겨 버리려고 귀찮아서 맡겨 버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거는 돈을 아무리 주고 시설에 맡겨도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되요. 이 아이가 어떻게 하는게 좋으냐. 내가 돌보는게 좋다면 내가 다른 걸 다 포기하고 이 아이를 돌봐야 되고.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점점 크면서 좀 더 전문가가 돌봐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문가에게 돌보게 하고. 내가 대신 그 시간에 많이 노력을 해 가지고 그 돌보는 경비를 내가 부담을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렇게 해야지. 이것을 책임회피 하려고 어떻게 적당하게 기도해가지고 해결하려고. 그래서 기도하는 게 여러 분들이 하는 기도는 스님이 볼 때는 그래요. 심보가 더러운 사람들이 주로 기도를 많이 해요. 나쁜 짓 해 놓고 과보 안 받으려고. 좋은 일은 하나도 안 해 놓고 복만 자기가 다 받으려고. 그걸 부처님한테 가서 빌고. 하느님 한테 빌고 이렇게 해. 심보를 고치는 게 불교지. 더러운 심보대로 도와주는 게 부처님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래서 법의 이치를 알아라 이 말이오. 법의 이치를 알고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러니 아이에게 어떻게 병 나아주세요. 부모가 자식 병 낫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러나 이미 이렇게 이루어져 왔다면 그 아이를 수용하는 게. 즉 과보를 기꺼이 받아 들여라. 또 엄격하게 얘기하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기질이 있다 하면 이것은 부모의 그 아이를 뱃속에 있을 때 부모가 지나치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도 다 나의 책임이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내가 내 삶을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이 아이를 받아들이고 언제든 도움이 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