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37. 이 세상에는 4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Buddhastudy 2018. 11. 15. 20:43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때 프라세나지드왕이 즉, 그 나라의 임금이 부처님을 방문해서 부처님께 법을 청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세상에는 4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가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두 번째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세 번째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네 번째가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이렇게 4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인가?

지금의 인생이 불행한 사람이에요.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천한 집안에 태어났고, 신체에 장애가 있고, 병이 들고, 집안이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고, 이렇게 해서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다. 이 말이오.

 

이렇게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보시할 수가 없고,

마음이 괴로우니까 남에게 좋은 말도 할 수가 없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악심으로 악담을 하게 되고, 화내고 짜증내고,

조금만 하면 남과 다투게 되고,

남을 원망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고.

이렇게 살아간다.

 

그러니까 현재도 괴롭지마는 그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그 삶 가운데에서 이렇게 악심을 품고 악행을 행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 까지도 괴로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어둠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두 번째 경우는 비록 신분이 천하고 신체에 장애가 있고, 가난하고, 배운 게 없고, 여러 가지 조건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불행한 조건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집안에 태어나서 자라고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가운데에서 가난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베풀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치지만, 그것을 능히 이겨내고,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타인을 위해서 자비롭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고 하더라도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오히려 보시하고,

 

이렇게 그 나쁜 조건 하에서도 선한 마음을 내고, 선한 행위를 조금씩 조금씩 해나간다면, 그는 좋은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미래에는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태어나기를 양반집에 태어나고 부잣집에 태어나서 현재 경제적으로도 여유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고, 몸도 예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세상 사람이 볼 때 남부러울 게 없다는 거요.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서 남을 없신 여기고, 가난한 사람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물건을 뺏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고 이렇게 방탕하게 생활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을 해치고, 입에서는 욕설을 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면,

, 지위가 높기 때문에 돈이 많기 때문에 남을 없신 여기고 남을 해치는 사람 이 세상에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게 되면, 나쁜 씨앗을 심어서 나쁜 과보를 받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 비록 현재에는 지위가 높고, 부유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잘 갖추어져있다. , 밝은 곳에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사람이다.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현재에도 부유하고, 배운 게 있고, 교양이 있고, 얼굴도 예쁘고, 신체도 건강하고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서 남부럽지 않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보면 베풀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 주고, 자기가 잘났다고 뽐내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고,

 

이렇게 해서 선행을 쌓아간다면 이 사람은 미래에도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 이런 사람이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부디 어두운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지금 밝은 곳에 있다면 더더욱 앞으로도 계속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살기 때문에 어둠에 물들어서 계속 어두운 곳에 살 수 밖에 없는 생활을 하거나

밝은 곳에 태어나서 게으르고 방탕해서 도리어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면 이런 사람을 두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프라세나지드 왕에게 왕이라는 지위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바로 왕이기 때문에 남을 도울 수가 있다.

왕이기 때문에 남의 재산을 뺏고 남을 죽이고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왕이기 때문에 선정을 베풀면 온갖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 백성의 행복을 허물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다면 특별히 고행을 한다고 뭘 먹는다 먹는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셔도 많은 선행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르쳐서 왕이 선정을 베풀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서 불교에서 바라는 사람에게는 4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가 범부중생이오.

범부중생이라는 말은 어리석은 중생이다. 라는 말이에요. 어리석은 중생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식 표현이 뭐요?

쥐가 쥐약을 먹고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것 같은 자기를 해치는 길을 자기를 살리는 길인 줄 착각하고 사는, 행복을 향해서 쫓는데, 결국은 불행을 가져오는, 이런 사람들을 범부중생이라고 말한단 말이오.

 

이 범부중생은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사람이오. 소위 말하면 악행을 행하는 사람이죠. 살아있는 다른 생명을 해치고, 그 과보로 자신이 단명과 병고에 과보를 받는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뺏고 해서 그 과보로 비난의 과보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삶을 어리석어서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 이것을 범부중생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요.

 

비유를 들어서 말한다면 농사꾼이 농사를 지을 때, 이렇게 농사를 짓는 게 범부중생이오.

봄에 밭 갈고 씨 뿌려야 되는데, 봄에는 날씨도 따뜻하고, 꽃도 피고 얼마나 놀기 좋습니까. 그죠? 이 좋은 봄날, 들놀이 가고 꽃놀이 가야지 어떻게 밭 갈고 씨 뿌리를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밭 갈고 씨 뿌리지 않고 들놀이 다니는 사람이오.

 

여름철에는 어떻게 하느냐? 거름을 주고 김을 매야 되는데,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땀이 나고 더운데,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맛있는 거 먹고, 수영을 하고 이래야지, 이 더운 날에 어떻게 김을 매느냐 이거야. 그래서 김을 매지 않아.

 

그런데 가을이 되어 다른 사람의 논밭에는 곡식이 누~~렇게 잘 익어 있는데 자기 논밭에는 잡초만이 무성한 거요.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왜 딴 사람 논밭에는 저렇게 곡식이 잘 되었는데, 내 논밭에는 아무것도 된 게 없느냐.

 

나아가서는 이웃 사람을 원망합니다.

저 사람들이 내 논밭에 있는 곡식을 해치지는 않았느냐. 뽑아가서 자기 논밭에 심지는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이런 사람이 범부중생이다.

 

//두 번째 사람은 현인입니다. 현명한 사람, 이런 얘기에요.

현명한 사람은 남을 해치게 되면 그 과보가 하나의 나쁜 짓을 하고 100의 나쁜 결과를 받는다. 이걸 아는 사람이오. 인과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오. 남에게 손해를 안 끼쳐.

 

그래서 농사꾼에다 비유한다면 봄에 놀고 싶지마는 참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가을에 수확을 위해서. 그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거요. 노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꾹~~~ 참고 가을에 수확을 생각하고 식량이 떨어져서 남의 집에 빌러 갈 그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여름에는 덥지마는 김을 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서 가을에 수확을 해서 처마 밑에 쌓아놓고는 행복해 하는 사람이오. 남을 해치지 않는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는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게 현명한 사람이오.

 

그런데 누가 이 사람보고 양식이 없다고 양식을 얻으러 가면 절대로 안 주는 사람이오. ?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도 남들처럼 놀고 즉, 꽃놀이 가고, 물놀이 가고 했으면 내가 이 양식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 내가 일할 때 너는 놀러다니지 않았냐. 그러니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남을 해치지는 않지마는 남에게 이익도 주지 않습니다. 이게 현명한 사람이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성인이에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보살이다. 이렇게 불릴 사람인데, 이 성인은 봄에 밭갈이를 하고 씨를 뿌릴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밭갈이 하고 씨를 부리느냐? 들놀이하는 것보다 밭가는 게 더 재미있고, 꽃구경 하는 것 보다 씨 뿌리는 게 더 재미있어. 운동도 되고.

 

이렇게 땀 흘려 일하고, 밥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음식 맛이 너무너무 좋아. 그래서 봄에는 봄을 만끽합니다. 씨를 뿌리고 이렇게. 여름이 되면 어떠냐? 덥다고 더위를 피하게 되면 공연히 짜증만 납니다. 그러니까 더운 가운데서도 김을 매서 땀을 쫙~~~ 흘리고, 찬물 몇 바가지를 덮어쓰고 목욕을 하고 나면 그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여름을 만끽합니다. 가을에는 가을을 만끽하면서 추수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확을 하기 때문에 누가 와서 식량을 꿔달라거나 하면 기꺼이 줍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을 먹고 잘 씹어서 잘 소화하고 똥을 눈 사람에게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가 똥만 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애를 썼습니까. 그죠? 그 따끈따끈한 똥을 개가 와서 먹을 때,

이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네가 공짜로 먹느냐?” 하고 쫓는 사람이 없단 말이오.

 

거기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죠. ? 나는 이미 내가 필요로 한 것을 다 누렸기 때문에. 그것은 찌꺼기에 불과하단 말이오.

그것처럼 나는 봄을 만끽하고, 여름을 만끽하고 가을을 만끽했어.

 

이 과보라고 하는 이 양식이

그냥 똥 같은 거요.

삶을 살고 남은 하나의 찌꺼기에요.

 

그런데 그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면

누가 사용해도 좋다. 이것이 보살이에요.

 

그러니까 범부중생이 볼 때는 범부중생끼리 욕합니다. 저 나쁜 놈, 욕심쟁이, 게으른 놈, 이렇게 하면서 자기는 범부중생이 되기를 원해요.

현인은 존경합니다. “, 그 사람 참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 현인하고는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현인을 존경을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요. ? 나한테 별로 이익이 없으니까.

 

그런데 성인은 좋아합니다. ? 나한테 이익이 있으니까. 그런데 성인을 욕합니다. 바보 같은 놈이라고. 저렇게 피땀 흘려 농사지어서 남 줄 바에야 뭣 때문에 하노? 바보. 특히 가족 가운데 성인이 나오면 엄청나게 욕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성인을 좋아합니다. 존경하고. ? 떡고물이 생기니까. 이것이 범부중생이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정말로 현명하게 사는 것은 범부중생보다는 현인이 낫지마는 현인은 해탈지도 못 나아갑니다. 만약에 흉년이 들어서 농사가 망치게 되면, 현인은 범부중생보다 더 괴로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일 안하고 놀 걸.’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설령 흉년이 들어서 농사가 망치더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이미 자신은 사는 그 순간순간에 행복을 누렸기 때문에. 그래서 보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거요. 자기를 이롭게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면 4번째는 어떤 분인가? 이건 부처님에요. 붓다에요. 깨달은 이다. 부처님은 무위, 함이 없는 삶이에요. 마치 나무가 산소를 생산해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근원을 제공을 하지마는 나무가

내가 너희들에게 생명의 근원을 제공했다.” 이런 생각도 없다는 거요.

뭇 중생을 이롭게 하지마는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도 없다.

 

함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한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뭘 했다, 뭘 베풀었다.’ 이런 생각도 없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는 아무런 바라는 마음이 발붙일 데가 없죠.

그러기 때문에 섭섭하거나 원망하거나 이런 게 일체 없습니다.

 

이렇게 함이 없는 삶, 이걸 우리가 선에서는 할 일 없는 자, 이걸 도인이라고 그래. 도인은 어떤 사람이냐? 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맨날 노는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지런히 일을 하지마는 그래서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지마는 도무지

자기가 부지런하게 뭘 하고 있다.’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무념의 상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왜냐하면 나와 중생이 나와 세상이 둘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 얼굴을 씻겨주며 , 내 좋은 일 많이 했지, 너 앞으로 알아.” 이렇게 하지 않아요. ? 자기 몸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는 했다는 생각이 없는 거요. 그래서 부처는 일체중생을 다 자기 몸과 같이 생각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은 법이 뭐요? 연기법이죠.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다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를 보면 별개 같지만 연관된 전체를 보면 하나일 뿐이죠. 이런 데서 우리가 보살의 길, 붓다의 길을 가야 된다.

 

이 세상에 속가에 있을 때는 최소한도 어디는 올라가야 된다? 현인은 되어야 되겠지. 그러나 현인의 길은 수행자의 길은 아닙니다. 적어도 부처님 법을 만나서 수행자다 라는 말을 얻으려면 성인의 지위에 올라야 된다. 보살의 지위에 올라야 된다.

 

그래서 이 성인의 지위에 오르는 첫 단계, 첫 번째 단계를 뭐라고 그래요? 수다원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성인의 류에 들었다. 그래서 선으로 말하면 초견성은 해야 된다. 법의 이치를 꿰뚫어 알아야 된다. 비록 넘어지더라도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위치까지는 도달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이 이런 발심을 안 해요. 그걸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습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 많은 분들이 온갖 고통 속에 있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확연히 마음이 열려서 다 수다원과에 들어서 그 다음에 정진을 하는 거요.

, 그래서 우리가 보살, 붓다의 길로 나아가자. 4종류의 사람 중에 적어도 3번째 4번째는 되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