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83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Buddhastudy 2019. 4. 5. 20:03


죽음이 자연의 섭리임을 받아들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 직장에서 제가 의도치 않게 SNS 상에서 떠도는 폭력적인 콘텐츠를 검열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이런 생각들이 흔들리는 거 같습니다.

 

매일매일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격하면서

나 자신이나 소중한 다른 사람이 무로 돌아간다는 게 예전과는 조금 더 다르게

두렵고 고독하고 허망한 일처럼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장점으로는 가족이나 일상의 소중함을 잘 못 느꼈다면은

이제는 그런 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저희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고 저희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까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예전만큼 담담하게 대응을 잘못하겠더라고요.

물론 이게 섭리이고 제행무상이나 불생불멸이라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실제로 제가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머리만큼 행동이 잘 따라주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수행을 해야 되고 어떻게 대체해야 되는지 여쭈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 시계를 차고 있잖아요. 15천 원짜리에요.

이것도 3년 차다가 어디 가서 놓고 잊어버리고 왔다든지, 잃어버리면 좀 찾아져요? 안 찾아져요? 섭섭하죠.

 

그런데 하물며 나를 낳아줬거나 오랜 친구거나 같이 살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헤어지는 거 아니오. 그러면 그게 섭섭할 수밖에 없잖아. 그죠.

심리적으로 섭섭할 수밖에 없다. 넘어서서 슬플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상적으로 이해가 되는 거요.

자기도 지금 그런 거요.

 

그런데 문제는 이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내가 괴로워한다고

이 시계가 찾아집니까? 시계를 찾아야 됩니까?

 

필요하면 찾아야 되고,

그런데 이미 내가 미국에 놔놓고 비행기타고 와버렸다면 이거 찾으러 미국까지 갈 수는 없잖아. 그죠. 그러면 포기해야 되는 거란 말이에요.

또 이게 부서져버렸다면 어때요?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헤어지는 것은 섭섭하지마는

괴로워한다고 내가 슬퍼한다고

어머니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는

우리는 안 죽으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안 죽을 수는 없는 거라는 거요.

 

병이 안 나면 해결된다.’

병이 안 날 수가 없는 거라는 거요.

 

그런데 그걸 괴로워하거나 슬퍼한다고 그러면 도움이 되느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요. 현실적으로.

 

그러니까 그렇게 알기 때문에 우리가 슬픔이 일어날 때,

, 내가 슬퍼하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거요. 그냥.

 

내가 죽음을 보고, 헤어짐을 보고

슬퍼하구나이렇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데도

우리는 이게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슬픔이라는 거요.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 때문에.

 

헤어지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 때문에 슬프다는 거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아까 저기 누가 법륜스님이 빨리 죽지 말고 오래 살아라그랬는데,

법륜스님이 죽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고

죽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죽는 일이 일어나면 슬프다는 거요.

 

이 말 이해하셨어요?

그러니까 죽음하고 슬픔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헤어짐하고 슬픔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요.

 

저 청년이 여자 친구하고 헤어져서 슬프다면

헤어지는 거하고 슬픔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는 거요.

 

헤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헤어짐이라는 게 일어나면 슬프지,

헤어지고 싶을 때는 헤어지면 기뻐요? 슬퍼요? 기쁘다는 거요.

 

북한의 김일성이 죽었다. 김정일이 죽었다 할 때

한국 사람들은 기뻐했어요? 슬퍼했어요?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가 있어요.

그건 죽었으면 하니까 죽으면 기쁜 거요.

 

그러니까 죽음이 슬픔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안돌아가셨으면하는데 돌아가시니까 슬프고

안 아팠으면하는데 아프니까 슬픈 거요.

 

그런데 안 아팠으면, 안 돌아가셨으면하는 거는 우리들의 집착이라는 거요.

안 죽을 수가 없고, 안 아플 수가 없는 인생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그거를 늘 놓치면 슬픔이 일어나고

슬픔이 일어나면 아 내가 놓쳤구나. 내가 집착하고 있구나.”

이렇게 돌아오는 길 밖에 없어요.

 

(집착을 놓을 수 있는 수행방법이 있을까요?)

집착은 뭐, 예를 들면 이게 뜨거운 불덩이라고 하자.

이걸 내가 딱 쥐고 뜨거워.

앗 뜨거워, 앗 뜨거워

내가 놔라.”

어떻게 놓는데요? 어떻게 놓는데요?” 이래.

자기 지금 묻는 거 똑같아.

 

어떻게 놓기는, “앗 뜨거워이렇게 놓지.

앗 뜨거워이렇게 하지.

어떻게 놨니?

그냥 놨다.

 

그게 집착인 줄 알면

그냥 놓는 거지.

 

그럼 이 사람이 쥐고 어떻게 놓는데요?” 라고 묻는다는 거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요? 놓기 싫다는 거요?

. 놓기 싫으면 쥐고 있으라는 거요.

쥐고 있으면 손을 데는 거요.

 

그러니까 집착을 하면

과보가 따른다. 손을 덴다는 과보가 따르고

손을 데기 싫으면 어떻게 하라? 놔야 되는 거요.

 

어떻게?

그냥.

어떻게??

그냥,

 

그러니까 방법을 논하는 건 놓기 싫다는 것이 핵심인데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자꾸 생각한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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