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회 願行(力)으로 성취하자 (20:59)

Buddhastudy 2012. 2. 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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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불설아미타경( 석가가 기원정사에서 제자 사리불에게 아미타불이 머물고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공덕을 설명하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설법한 내용)이거든요. 그리고 48대원이라고 하는 불교경전 안에 밀교의 속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통불교 안쪽에 통한 그런 경전이거든요. 그래서 아미타경은 사람이 입적하시고 돌아가시고 나면은 많이 읽히는 그런 경전이기도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큰스님들께서 번역하시고 또 주석도 많이 달아놨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270여 종이 주석서가 붙어 있고요, 그다음에 구마라습이라든가 현장 큰스님, 이런 분들도 다 번역을 하신 그런 경우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대왕께서도 아미타경을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으신 경우가 있으십니다.

 

 

 

그럴 정도로 아미타경은 좋은 명상과 좋은 생활과 좋은 염불기도,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들이 사는 모습은 다 이게 찰나적인 거거든요. 찰나적이다라는 것은 순간적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육체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오래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한순간 한순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영원불멸한 자기 생명체계를 구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설명이 시작된 것이 아미타경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지명이라고 하시는 훌륭한 스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좋은 경전도 많이 책을 내셨고 하신 그런 스님께서 정리해놓은 것이 있는데, 이 책에 발췌해놓은 내용을 잠깐 보면은 이 스님께서 아미타경에 대해서 설명 말씀드린 내용이 있는데 잠깐만 같이 공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미타경을 수지하고 공덕을 짓는 것은 곧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그런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바꿔 얘기하면 이 사바세계 사는 것을 예토. 아직 시원찮은 세계라고 들여다보는 안목에서 이 똑같은 세계에서,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 벗어나서 무엇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 극락세계를 보고 살고자한다라고 하는 그런 원력에서 이걸 원행이라 그러거든요.

 

원행에서 출발된 그런 의미구조가 아미타경에 하나하나 잘 설명돼 있는데요. 보면은 번역에 의해서 살펴보면 여기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간 곳에 극락이라는 세계가 있으니 거기에는 아미타불이 지금도 설법하느니라. 요게 요체거든요. 우리가 공감하고 공부해야 될 이유는 뭐냐 그러면요, 지금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쉽게 표현하면은 구원해 주시고, 나를 건져주고 계시고, 나를 지켜주고 계신 분이 저 아미타불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좀 더 그걸 확대하면 뭐죠? 관세음보살이고 지장보살이고 대세지보살이고 그렇죠. 불교를 일으키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이런 모든 제불보살님은 다 무엇으로 존재해요? 지금, 나를 위해서 저 제불보살님이 다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있는 사실이라는 거에요.

 

이걸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원효대사께서는 저 시중에 나가셔서 아미타불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만 부르는 사람에게는 곧바로 극락세계가 열린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극락세계가 열린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말로 쉽게 표현 하면은요, 첫 번째 자유로움이 생깁니다. 해탈세계가 열립니다. 너무 쉽죠. 그죠? 쉬운 게 아니구나. 자유로운 해탈세계가 열린다는 거에요. 해탈지견(자유)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평온함이 평화로움이 자기한테 깃들어 온다는 거에요. 이게 두 번째. 세 번째가 뭐냐 하면 건강함이 쫓아다닌다는 거에요. 네 번째는 뭐냐 하면? 행복감이 행복은 따로 어떤 구체적으로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다만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가 느끼는 거에요. 행복감이 보다 많이 치수가 높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정말 중요한 게 뭐였죠? 다섯 번째 뭐에요? 풍요로운 것이 베풀어져 있다는 거에요. 이거 좀 안 적으면 안 될 거 같아. 첫째는 뭐죠? 자유를 얻게 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내용 안에서 들여다보면은 마음속 안에 평화로움이 있거든요? 평화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를 평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이거를 평화라고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세 번째는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찾아옵니다. 네 번째는 여러 번 말씀 드린 것처럼 행복감이에요. 다섯 번째는 뭐가 깃들어 오느냐 하면 반드시 풍요로운 것들이 깃들어 옵니다. 이거 외우셔야 돼.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느냐 그러면 반감이라는 걸 가지고 살아요. 항상.

 

그런데 이게 섭수가 있어야 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섭수가 왜 이루어지지 않느냐 그러면 늘 마음속에서 반감을 일으키고 살아. 모든 삶이 자기 안에서 출발해서 자기가 돌아오고 있다라고 하는 이 법칙을 조금만 이해를 하면은 불평할 것이 없어지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해탈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이런 문제를 딱 한마디로 정의한 것이 뭐라고 했냐하면 나무아미타불(자유, 평화, 건강, 행복, 풍요)이다. 이런 얘깁니다. 천수경에 보면요, 나무 문수보살 보현보살 쭉~ 하고 나오죠? 그 끄트머리에 보면. 결론은 뭐죠? 아미타불이에요. 是我本師시아본사에요. 나의 근본 본질이 뭐라고요? 아미타부처님이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러면 아미타경에서 지금 설법을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하면 우리 안에는 본질적으로 이걸 보고 뭐라 그러냐 하면 본성이라고 그러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본성.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이건 근본에서 생겨나는 성품이다라고 해서 이것이 본성이라고 그러거든요. 이 본성은 아미타불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에요. 이게 아미타불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이 본성은, 우리의 본성은 아미타불이다. 라고 이렇게 요거를 자각하는 거에요. 제일 먼저 이걸 이해하게 하려면 뭐라고 끄집어 와야 되냐 하면 이걸 내가 먼저 이해해야 되요. 그래서 이거를 처음에 먼저 보고, 듣고, 알고, 아는 거는 곧 얻는다와 같은 말이거든요. 이것을 우리가 똑같이 이렇게 표현할 수, 볼 수가 있거든요.

 

 

우리한테는 누구든지 똑같이 가지고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자유로움, 평온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풍요라든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요? 다 자기로부터 출발한다는 거죠. 지운스님이라고 동화사 강주하시던 훌륭한 스님 있거든요? 텔레비에도 가끔 보이시는 아주 잘생기고 예쁘게 생긴 스님이시잖아요. 그 스님 책에 이런 명상수행 중에 이런 명상수행이라는 게 이런 구결을 만들어서 책으로 내놓으신 분이 있거든요. 그 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잠깐 읽어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 수행하는 것, 예경하는 것, 생활해 가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어디에서부터 비롯된다고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거랍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아가는 것이래요. 그다음에 자기의 고통을 자기가 없애는 것이라는 거에요. 자기의 잘못을 자기가 용서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깨달은 사람 아니에요. 그죠? 내가 나를 깨우는 것, 내가 나를 깨우치게 하는 겁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안에서 일어나는 혁명과 같다 그랬어요. 안에서 일어나는 혁명과 같다 그랬습니다. 바깥경계에 전혀 동요되지 않으니, 그러니까 그런 모든 현상에 웬만하면은 동요되지 않는 삶을 구현할 수 있으면 이는 시간과 고통을 구제하는 지혜의 평온한 길이 열린다. 이렇게 돼 있어요.

 

아주 오늘 아침에 이거 들여다보면서 너무 좋은 글이어서 다 외울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뭐죠? 자기 고통을 자기가 없애는 것이고, 자기의 잘못을 자기가 먼저 용서해 줄 때 다른 삶의 삶도 용서가 돼요. 누누이 우리가 감사 명상 진행하고 예경하면서 느끼던 거죠. 드리던 말씀까지 똑같은 여태 공부해오던 내용과 비슷하죠. 그래서 그와 같아서 들여다볼 내용이 뭐냐 그러면요, 이런 것은 자기가 지금 현재에서 지금(보고) (듣고)라고 하는 모든 존재(알고)가 이렇게 인식(얻는다)해야 되요. 인식이요. 다시 말하면은 도움받고 있다고 하는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는 인식이 우리한테 핸드크림 손에 스며들 듯이 해야 된다는 거에요. 너무 쉽다.

 

이거를 다시 바꿔 얘기하면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한번 부르는 그 은혜 공덕. 이 은혜 공덕만이라도 뭐가 생겨요? 이것이 곧 자기 진리를 조금이라고 터득하고 이해하고 느끼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 반드시 뭐가 생겨요? 얻는 것이 생긴다. 이때 얻는 것은? 다섯 가지. 해탈이 생긴다는 거에요. 자유로워진다는 거에요. 두 번째 평온해진다는 것, 세 번째 건강이 그냥 바르게 진리를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것만으로도 이 진리에 그냥 서비스처럼 이것은 그냥 근본적으로 그냥 그냥 따라오는 거에요. 경전에 보면 뭐라고 그랬냐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 그랬어요. 그래서 인식을 하셔야 되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극빈의 모습으로 병자의 모습으로 행인의 모습으로 시장밖에 조그마한 수례를 끌고 가는 그 모습으로 장사인의 모습으로 이게 다 아미타불의 화현이라는 거에요. 전부 아미타불의 본신에서 흘러나와서 보이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점이 딱 뭐에요? 지금 보고 있고 느끼는 것에서 자기를 좋게만 생각하기 시작하고, 자기를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자기를 인정할 줄 알고, 자기를 신뢰롭게 자꾸 바꿔가는 생각을 훈련을 자꾸 하는 것을 그걸 습성화라고 그러거든요. 자기 습성화를 자꾸 자기를 반대적으로 자꾸 자기를 조언해 가면은 다른 일은요 자유로운 것들은 스스로 찾아다니고요, 부는 스스로 찾아온다 그랬습니다.

 

오늘 설법이 뭐냐 하면 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지금도 설법하시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지금도. 듣거나 말거나. 그렇다. 여기 좀 보십시다. 오늘 제목이 뭐냐 하면 원행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 원력 중에서 48원 중에 두 번째에요. 두 번째 원행이라고 붙였습니다. 원력으로 성취하다. 이런 뜻으로 설명을 드릴 수가 있어요. 무조건 여긴 하자입니다. 되게 해주세요. 이런 거 없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하는 거에요. 밥을 먹는 것도 자기가 먹고요. 생각도 자기가 하구요. 화장실 대신 가주는 사람 있어요? 절대 없습니다. 우리는요, 몸으로 부딪쳐야되요. 생각으로 부딪치고 감정으로 부딪쳐서 이 세계를 이겨가는 거에요. 이걸 예토라고 보지 말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 이 모든 게 다 극락세계 화현이라고 아시면 돼요.

 

저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에 의해서 아미타세계에 법장비구가 48원으로 세워놓은 세계라고요. 이 세계를 스스로 조금씩 섭수해 가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그동안에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대세지보살. 이런 수행공부 다 많잖아요. 결국은 돌아오는 것이 뭐냐 하면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의 본신세계로 딱~ 바로 들어오는 거에요. 거기에는 중생들이 아무런 괴로움이 없으므로 극락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들여다봐요. 고통이 없는 세계가 있어요. 절대 그렇게 안 됩니다. 일생 살면서 안 아픈 사람 없구요, 늙지 않는 사람 없구요, 괴롭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극락에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극락에 표면적인 우리가 인식하는 이 현실세계로의 눈만을 들여다보고 나면은 이게 전부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은 3차원 4차원의 눈이, 안목이 딱 열리게 되면은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자기에게 섭수가 되요. 접수가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은 내가 찰나 찰나 살아가다가 중생이 이 한순간으로 없어져 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안에 들여다보면 뭐가 생겨요? 원행, 원력. 원력은 곧 원행입니다. 원하는 것을 바로 실천하시면 되요. 지금부터 좀 행복해 지시고, 지금부터 좀 웃으시고. 그래서 이제 괴로움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상을, 자기의 자만심과 오만심을 자꾸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부작용이 생기는 거에요.

 

반대로 거기서 나타나는 것이 부자유(자유)라고 하는 것이 생기구요. 불안(평온)이 생기고요. 병고(건강)가 쫒아다니고요, 불행(행복)이라고 그럽니다. 이게 가난(풍요)이죠. 이 다섯 개념 반대잖아요. 그런데 볼 때 뭘 봐야 되느냐 그러면 좋은 것을 봐야 되요. 자유로움을 봐야 되요.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의 습생이 어떻게 변해 왔느냐 하면 아이고 나는 이것도 걸림이 있고, 이것도 안 되고, 이것도 모자라고.’ 늘 이 생각에서 못 벗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그걸 중생이라 그러고요. 아미타경에 출현하신 아미타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연유는 내가 똑같이 보는 세상에서 부자유로 보고 있는 안목을 생각을 그렇게 원하는 행을 거꾸로 반대로만 봐주기만 하면은 부수적으로 그냥 선물처럼 쫓아다니는 거에요. 이게.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신은 고통만이 자기꺼라고 자꾸 우기는 거에요. 극락세계에서는 딱 나타난 것이 사리불 존자 아시죠? 사리불 존자. 반야심경에 등장하신 사리불존자께서 사리불아. 극락세계에 부처님이 어째서 아미타불이라고 한 줄 아느냐? 그 부처님의 광명은 한이 없어서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도 조금도 걸림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 부처님 수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은 한량없으므로 무량수 무량광을 깨달으시고 성취한 이가 아미타부처님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우리 경전 안에 있는 게 아니고, 다른 경전에서 지명스님이라고 하는 훌륭한 학자이신 스님이신데, 스님이 이렇게 설명해놓으신 거에요.

 

여기에 이상세계라고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극락세계의 위치는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간 곳에 있다고 하지만 먼 곳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극락세계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찰나 속에 있는데 그것을 멀리서 들여다보고 구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10년을 고행을 해야 된다던가, 5년을 고행해야 든가, 100일 기도를 해야 된다든가, 그거는 방식으로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런데 고걸 거꾸로 엎어놓고 시작하는 거에요. 100일 기도를 하더라도 내 삶에 사는 이 사바세계는 전부 극락세계로 가득 차 있다고 보시면 돼요. 자유롭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라고 설명해놓은 것과 똑같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