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3회 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 (42:13)

Buddhastudy 2012. 2. 12. 22:51

  방송 보기: 불교TV

그래서 그 안에 들여다보시면은 원을 가지셔야 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무슨 원이요? 원력이 있으셔야 돼. 반드시 이것은 극락세계를 들여다보려면 뭐가 있어요? 원하는 것이 있어야 돼. 원하는 것이 있어야 되요. 원할 줄 알아야 돼. 내가 무엇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원동력이 자기한테 있어야 되거든요. 아까 여기 말씀 드렸죠. 그죠? 자성 불이에요. 스스로, 스스로 성품을 가져서 부처가 되지 않으면 부처를 들여다볼 수가 없다는 거에요. 아무리 귀한 것이 있어도 내가 스스로 영원한 생명과 자비원만한 생명과 무한능력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도 그것을 끄집어내지 않는 모든 사람들한테는 그것이 자기한테 없는 거에요.

 

아무리 귀한 것이 있어도 자기가 끄집어내서 자기가 사용하고, 자기가 느끼지 않고, 자기가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거에요.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몸으로 이걸 받아들이셔야 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력을 딱~ 세워야 돼. 목적을 딱~ 세우셔야 돼. 불교적인 개념은 뭐에요? 윤회를 끊는 거에요. 윤회를 끊는 것은 계속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을 계속 반복적으로 사는 거 있잖아요. 아니 부부가 평생 싸우는 거 하고, 반복적으로 계속하잖아. 그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라고 하지만 평생 싸워봐야 아무 남는 것이 없어. 참 묘한 것이 있어요.

 

인과 관계 속에서 해결 안 되는 사람들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더 괴로운 사람 많이 있어요.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도 많잖아요. 물질은 적어도 더 행복한 사람, 가족이 더 많아요.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괴롭거든요. 비인간적인 삶을 계속 살게 되고요. 우리가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적으로 사회를 들여다보면요, 전체적으로 사회를 들여다보면은 가진 자의 횡포가 점점 커져가지 가난한 사람들이 뭔 죄가 있어요. 죄를 지을래야 지을 것이 없는데 뭐. 가장 물리적인 것밖에는 못하는 거에요. 그게 반복적으로 생기거든요. 그런데 지혜가 생기면 몸이 가난해도, 몸이 가난해지면 마음이 피폐되거든요. 자폐가 생기거든요. 그러니 이걸 바꿔주기 위해서 불교를 공부하는 거에요. 이걸 순환시켜주기 위해서 염불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공부를 합니다.

 

죄를 헤아리지 말고, 불평을 헤아리지 말고, 아픔을 헤아리지 말고, 반대로 광명을 헤아리는 거에요. 감사를 헤아리는 거에요. 풍요로운 것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야 되요. 그러면 이게 아미타 세계가 자기한테 생겨요. 그래서 이것의 원은 뭐냐 하면 모든 고통을 소멸하고, 원이 뭐냐 하면 고통을 이거를 소멸하고 원이 이거에요. 그다음에 윤회에서 해탈하는 거에요. 간단합니다. 이 말은 같은 거거든요. 그다음에 하나 더 들어가는 것이 뭐냐 하면 행이 들어갑니다. 반드시 실천해야 된다는 거에요. 이게 뭐냐 그러면 우리말로 얘기하면은 기도를 꼭 해야 되고, 반드시 수행을 해아 된다는 거에요. 그러면 즐거운 것이 생긴다는 거에요. 이걸 낙이라 그러거든요.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이걸 득이라고, 행득이라고 그래요. 얻는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이 말은 결국은 무슨 뜻이냐 그러면 즐겁게 된다는 거에요. 이 말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만족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만족하다는 거에요. 그러면 아미타수행을 통해서 그러면 이게 극락세계에 가서 할 일이에요? 지금 할 일이에요. 지금 여기서 느끼셔야 되요. 지금 부자가 돼야 되고, 지금 행복해져야 되고, 지금 즐거워야 되요. 지금 아름다워야 되고, 지금도 힘찬 자기 삶에 대한 문호를 자기 안에서 깨우쳐 내셔야 된다는 거에요. 이게 뭐냐 하면 그래서 순서가 다 같아요. 믿는 자는 아미타불이 외호 하고 자기 안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해요. 이때 아미타불이 나한테 내재해있다는 것은 법신 보신 화신의 생명체가 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다르지 않습니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 뭐죠? 병 불행 고통 속에서 그것이 자기 세계의 전체라고 보고 사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많이 존재하거든요. 98% 이상이 자기를 주재한다는 뜻입니다. 정리되시죠? 반드시 뭘 세워요? 원을 세우셔야 되요. 그래서 근본 원은 모든 고통을 자기한테 소멸하고 윤회로부터 끊는 거에요. 그러면 다시 거꾸로 얘기하면 부처가 되는 거에요. 자성불이 되는 거에요. 언제 살아서 그대로 살아서. 지금 현재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을 때 지금 자성을 성취하는 겁니다. 그런 예로 우리가 찾아서 보면은 등공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등공이라는 것은 등공대라는 데가 있어요. 신라시대 때부터 고려 초를 건너가면서 건봉사 위에서 31인이 각자, 각자, 각자 이렇게 30년을 나무아미타불을 수행했거든요. 275개월 동안을 기도를 했어. 스님들이.

 

그래서 기도를 할 때 이게 뭐냐 하면 신라 경덕왕 17758년 무술년에서 발징화상께서 원곡사를 중수하고 그때 당시때 건봉사가 원각사라고 아마 얘기가 있었던가 봐요. 그다음에 염불만일회를 그때 지었어요. 이미. 지어가지고 이것이 한국불교의 염불만일의 효시인데 발징화상이 정신, 양순등 스님들과 31명이 염불을 드렸는데 뜻을 같이하는 신도가 1,820명이 환희심이 일어 자원했어요. 그래서 이 자원을 하시는데 이 가운데 120명이 의복하고 무슨 침구, 이런 것들을 보시를 하고 1,700명이 음식을 시주하여 주야로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는데, 신라 원성왕에 왕이 바뀔 정도로 변해갔어요.

 

원성왕 3년에 787년에 그러니까 서기 787년에 염불만일회에서 선행을 닦던 스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났으면 시주를 하던 신도들도 모두 극락왕생하였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다 같이 드러났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때 현상을 보고 그 275개월을 기도하던 스님들이 원성왕 3년인 회양할 때 건봉사 중심으로 해서 사방 허공으로 몸이 그대로 떠올라 날아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얼마나? 1.5km, 1.5km면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갔거든요? 1.5km정도 날아오른 스님들은 육신의 허물을 그대로 땅에 떨어뜨리고 맑고 맑은 정신만을 등공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가 돼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보고 세월이 많이 지나와서 그 세월이 흘러서 1900년 광무 4년에 들어서 다비식을 거행한 곳, 몸을 살렸다고 해서 소신대를 마련했고, 이 소신대의 뜻을 길러서 풍화작용에 무너지고 허물어져 폐허가 됐어요. 옛날에 등공대가 거기에 집도 있고 아마 그랬던가 봐요. 제가 올라가 보니까 탑이 하나 있을 뿐이거든요. 거기 등공대까지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는데 그 길을 해탈의 길 내지는 행복의 길이라고 명명된 길이 있습니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할 수만 있으면 그 실을 한 번씩이라도 다 걸어 다녀와야 할 만한 아주 좋은 해탈의 길입니다. 한번 가보셔야 돼. 그래서 거기에 연대월, 이름도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거든요? 연대월. 100여 년 전입니다. 100여 년 가까이 전인데.

 

연대월보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어마어마한 돈을 보시했어요. 얼마나 한 줄 아세요? 100원 냈어요. 그때 돈으로 100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죠. 그래서 그때 동참하던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그때 천원을 마련했어요. 천원은 엄청난 돈입니다. 그래서 갑인년에 19144월에 역사를 시작해서 을묘년 19155월에 역사를 마치고 등공탑을 세워서 그 뜻을 만천하에 알렸고 그에 소신대 등공탑이 있다고 해서 이걸 등공대라고 지금도 거기에 자리가 있습니다. 새겨놓은데 고대로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양에 가면은 진전사라고 있습니다. 가보신 분들 더러 있으세요? 거기는 불교 부처님의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 사찰이거든요. 불자는요, 거기는 꼭 갔다 오셔야 돼. 아주 좋은 사찰이고 거기에 국보가 있으시고 보물이 있습니다.

 

 

 

금생에 살면서 공정도 좋고, 보궁 같은데 참배하는 것도 큰 공덕이지만 종조사찰 진전사 같은 데를 꼭 원을 세워서 참배하는 그런 원을 세우세요. 그게 부처님 법을 뿌리는 것이고, 부처님 법을 세우는 것이고, 부처님 법을 후대에 남기는 길이라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기 좀 보세요. 우리가 왜 이런 삶에 대한 고통이 왜 자꾸 반복적으로 쫓아오는가? 왜 반복적으로 이렇게 쫒아오는가 이걸 들여다보면 딱~ 기인된 원인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 나라고 하는 생각이 자꾸 자기를 지배하는 거에요. ‘내가 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내가 대접받아야지.’ 이렇게. ‘내가 무슨 위치지.’ 이거 자꾸 들여다보는 거에요.

 

왜 이런 생각이 자꾸 있느냐 하면 자기가 자기를 보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거 다 껍데기인데. 이 사바세계 모든 것은요, 다 변해가는 과정에 있지 고정불변한 실체가 세상에 없다는 거에요. 이거 꼭 이해하셔야 돼. 어떤 것이든지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거에요. 사랑도 병도 불행도 모든 것은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거에요. 다 변해가는 거에요. 그것만이 옳다고 말하지 말아야 되요. ~ 묘한 거에요. 그런데도 칭찬을 많이 해야 돼. 그래도. 그래도 자꾸 연습을 해야 돼. 그래도. 그러면 자꾸 연습을 하다 보면은 칭찬을 하게 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돼. 칭찬을 자꾸자꾸 하다 보면은 자기가 예뻐져 있는 존재가 돼 있어요. 그게 필요로 하죠.

 

나라는 생각이 그게 자기아상이 자기를 지배하게 돼요. 자기 아만을 자기가 지배하게 돼요. 이기심이 자기라고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그게 나중에 한번 두 번 해보다가 통하잖아요. 그럼 자기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과정을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 내버리고 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폐가 생기고 자해가 생기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게 사회적인 문제도 되고. 그래서 그런 행위가 딱 하나 근본적으로 나라고 하는 생각에서 출발이 돼요. 그런데 기억해야 될게 뭔지 아세요? 우리는 서로 상호 의존적이라는 거에요. 저 남편과 내 아내와 내 자식과 내 형제와 내 이웃과 내 사회는 다 서로 고통을 같이 나누고 있고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거에요.

 

서로 의존적 존재이지 서로 배척적 존재가 아니에요. 이 생각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이 밝아져요. 이렇게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이 곧바로 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무량광을 하나씩 자기에서 드러내는 거에요. 이거는 아무리 많이 써도 소멸하지 안지 않습니까? 저 좀 보세요. 저는 강의해도 끝도, 끝도 없이 하거든요. 무량광이에요. 무량광 무량수에요. 우리 불자님들께서 이 영원한 광명과 영원한 생명을 가진 그런 존재라고요. 다만 자기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당신의 입장도 기울여 줄줄 아는 조금만의 자비심을 베풀 줄 안다면. 냄비에 갖다 돈 내는 것만 불전함에 돈 내는 것만 이게 보시가 아니라니까. 그렇다 그러고.

 

이 사바세계는요,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존재해있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해야 됩니다. 받아들이고 수용하셔야 돼. 고정불변, 불변의 실체는 세상에 없는 거에요. 모든 것은 순간마다 변해가고 있거든요. 2% 내에 있는 시비분별하고 지나간 것에 집착하고 있는 그 2%가 전체라고 자꾸 들여다보는 이 어리석은 생각을 그만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98%의 위대하고 원동력 깊은 불성의 힘을 끄집어내자는 것이 아미타경 공부의 요체에요. 존재 실체를 깨우치지 못하는 것의 고통이 가장 근원적으로 커요. 이게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거든요.

 

물질이 좀 없어지거나 몸이 좀 아프거나 이건 감각적인 거고, 인과적인 거 이런 문제, 또 재물이 없어지거나, 무슨 좋은 물건이 없어지거나, 이런 깨지는 거, 없어져 가는 거, 이런 것도 다 세상에 무너짐의 고통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들여다볼 것은 뭐에요? 자기 존재성, 그걸 아미타경에서는 분명히 얘기하잖아요. 너는 아미타불이다.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내가 곧 본신이 아미타불인 것처럼 당신도 모두 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본성이라는 거에요. 그걸 가르쳐주는 거에요. 그리고 그 아미타불이 펼쳐낸 48대원으로 성취될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거에요. 그런 존재성에서 무얼 찾을 수 있어요? 극락세계가 당신에게 있다는 거에요. 요걸 바꾸어 가고자 하는 이야기가 불교 공부 안에 내용이죠. 시간상 좀 줄이겠습니다. 33쪽을 좀 보십시다.

 

오늘 제목을 뭐라고 지었느냐 그러면 모든 것은 이미 성취되게 하자. 그러니까 극락세계는요,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서 그 세계를 자기가 찾아내는 거에요. 그리고 얻는 거에요. 원하는 만큼 이루어집니다. 오늘 글자 보면은 실개금색원이거든요. 이게 실다이 모든 것이 금색으로 화해서 변해오라 이런 뜻이거든요. 3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따라 하겠습니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몸에서 찬란한 금색이 빛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요런 뜻입니다. 이게 세 번째 원이거든요.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 그러면 이미 우리에게 이미 저 금색이, 세상에 가장 좋은 게 금 아닙니까? 금색처럼 좋은 게 없잖아요.

 

이미 금색을 우리한테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게 납득이 안 되시는 거에요. 이미 벌써 모든 이 모든 것은 다 실다이, 이것도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실답게, 이미 벌써 금색의 광명이 이미 다 나한테 갖추어져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 원을 이미 성취되게 하자는 뜻입니다. 빌어서 어디서 옮겨 오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금색 되게끔 살자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요즘 말로 바꾸면 뭐라고 말해요? 보다 많이 풍요롭고, 보다 많이 넉넉해지고, 보다 많이 사랑스럽게, 이게 즐겁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 극락세계의 요체죠. 이유 없이 그런 거에요. 안에 들어가면.

 

실개금색원, 이러거든요. 실개금색원. 이건 뭐냐 하면 모든 것을 다 넉넉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다 풍요롭게 채워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의 2%의 작용도 못 하면서 그것이 자기의 가난이 전부 자기를 가난으로 지배하고 산다는 이런 어리석음 속이 어디 있어요. 생각 바꾸는 거에요. 따라서 부처님의 원을 세워서 아까 말씀드렸죠? 틀림없이 믿으셔야 돼. 뭐라고 믿어요?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꼭 믿는 거에요. 내 안에는 저 아미타 부처님의 생명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는 극락세계가 있는 그런 존재라는 뜻입니다. 요게 믿음이에요.

 

그리고 원하세요. 뭘 원해요? 할 수 있는 일을 원하세요. 해 나갈 수 있는 일을 원하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지 말고 천천히 해나가는 거에요. 원을 세웠으면 그 원에 대한 목적이 딱~ 생기잖아요. 그러면 그 길을 가야 되요. 뭘 하다 보면은 별의별 게 다 오거든요. 별의별 시비가 다 생기고, 별의별 안 좋은 일들이 세상에 꾸역꾸역 생겨오게 돼 있거든요. 그게 이 세상의 도리라고요. 원을 딱 세우는 것은 거기에 개의치 말고 자기 할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거에요. 제 경험에 의하면요. 끝까지 이겨요. 지는 법이 없어요.

 

그 일에 대해서 성취도라고 하는 것은 거의 100%로 돌아와 있는 것을 저는 확인해요. 크든 작든 그 일들은 다 원하는 자에게는 원하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 그걸 행득이라고 그랬거든요. 반드시 삶에 대한 것에 답을 주신다는 거에요. 원하는 것이 생기게 된다는 거에요. 그게 불설 아미타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원이 일체중생이 다 풍요로워지게 하고, 일체중생이 가난하지 않게 살게 하고, 일체중생이 고통받지 않는 삶을 원해서 생긴 것이 48원 아닙니까? 오늘 세 번째 했습니다. 금색처럼 부처님이 금색의 광명이 나는 것처럼 그런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이겨가는 그런 불자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참여해 주신 불자님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