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94회] 어떻게 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Buddhastudy 2019. 5. 14. 20:46


저는 우연히 작년에 아르바이트하던 도중에 사장님께서 금강경을 항상 일일 일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궁금해가지고 그것이 뭐지? 하면서 저 혼자 불교에 관심이 생겼고 또 혼자 금강경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상에 빠지지 말라는 내용인 것 같았고요

근데 제 삶에 대입해 보니까 저는 자기 생각도 너무 많고

그로 인해서 제 생각대로 이뤄지면 갑자기 기뻤다가 안 이뤄지면 막 슬펐다가

이렇게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지금 마음에 어떤 불편이 있는데요?

혼자 살았다는 건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요?

그게 환경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럼 출가한 스님인 나는 혼자 살까? 여럿이 같이 살까?

그런데 혼자 살아도 나는 괜찮은데 왜 환경 상, 내가 자기보다 더 문제지.

 

혼자 있는데 왜 불완전해. 혼자 있으면 편하고 좋지.

아니, 같이 있으면 귀찮잖아요.

 

그러면 엄마하고 같이 있으면 되잖아.

그럼 지금 몇 살이에요?

그러면 결혼하면 되잖아.

 

? 25살이 일러요? 옛날 같으면 애 3명은 될 텐데.

집이 왜 필요해요? 결혼 생활에 왜 집이 필요해? 방하나 얻으면 되지.

방 하나 얻어서 살 여자가 없다 이거야?

 

그런데 결혼생활을 집을 구해야 되고, 뭘 구해야 되고, 뭘 구해야 되고 그러면 그거 구할 때까지 자기 35, 40살이 되어도 결혼 못해.

둘이 좋으면 셋방에도 살고, 둘이 좋으면 헛간에도 살고 그러면 되지.

 

아니 그러니까 자기가 너무 똑똑한 여자, 예쁜 여자를 구하면 그럴 수 있는데, 그런 여자는 그렇게는 안 살려고 그러니까, 자기만 좋다면,

자기하고 라면 셋방 아니라 헛간도 좋다. 이런 여자가 있을 수 있잖아. 10살쯤 많은 여자라든지.

 

? 웃어요?

남자는 여자보다 열 살 많아도 되고, 여자는 남자보다 10살 많으면 안 되나?

안 그러면 한번 결혼했다가 그만 둔 사람하고 한다든지,

이렇게 생각하면 못살 이유가 뭐가 있어?

 

그런데 그게 뭐 살아보면 아무 차이가 없어.

새 옷 사나 헌 옷 사나 별 차이가 없는 게 하루만 입으면 헌 옷인데 뭐.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거는,

자기가 혼자 살아서 외롭다고 하니까

그러면 둘이 살면 되지 않느냐.

 

혼자 살기 때문에 외롭다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둘이 살아야 된다면

그 둘이가 꼭 내가 원하는 대로 얼굴도 예뻐야 되고, 나보다 나이도 작아야 되고, 뭐도 해야 되고...

이러면 사람이 없잖아. 그러면 죽을 때까지 외롭게 산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사람이 필요하다면 사람이면 되지,

그렇게 뭘 조건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거고,

 

두 번째 혼자 있다고 외롭지 않는 길도 있다.

소나무는 산에 혼자 있지, 소나무가 옆에 소나무가 있으면 괜찮고,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니잖아. 나무도 그렇고, 돌멩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개도 그렇고 다 그래.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

내가 살아보고 경험해 보는데,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거 아니야.

 

둘이 있어도 뜻이 안 맞아서

부부가 한 침대 위에서 자는데, 남편이나 아내가 토라져서 딱 뒤로 누워있으면

그 벽에 제일 이 세상에서 높은 벽이라고 그래.

토라져서 뒤로 누워있는 그 벽 쳐다보면, 그 등이 제일 외로움을 가져온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야.

 

산속에서 우리가 혼자 살아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 않으면, 혼자 있다고 외로운 거는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지금 다기 방 안에 거기만 혼자 있다뿐이지, 문만 열어도 아파트고 어디고 사람이 바글바글하잖아. 그런데 왜 외로워?

 

내가 그래서 얘기하는 거야. 자기가 외롭다는 건 혼자 있다고 말하는데

그 혼자가, 방 안에 혼자 있다는 이야기 아니야.

벽하나 건너 옆방에 사람이 하나 있잖아.

결국은 한 방에 잘 사람이 필요하다, 이거 아니야. 안 외로우려면.

그래서 내가 아까 그 얘기 한 거야.

 

뭐가?

1등을 해야 돼?

하고 싶은 건 이해가 돼. 나도 돈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싶은 건 이해되지만,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죽을 때까지 자기는 괴롭게 살다 죽어야 돼.

 

예쁜 여자 보면 그 여자하고 연애해야 돼.

지위가 높은 사람 보면 나도 그렇게 출세해야 돼.

돈 많은 사람 보면 나도 그렇게 돈이 많아야 돼

운동선수 보면 나도 그렇게 축구를 잘해야 돼. 나도 달리기를 잘해야 돼.

이렇게 생각하는데 되는 게 없잖아.

 

그거는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는 있는데,

그게 안 된다고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거지.

그러면 자기는 죽을 때까지 괴로울 수밖에 없어.

 

별로 아는 눈치가 아닌데, 얼굴 표정이.

나이 든다고 알아지는 거 아니야. 오늘 알아야 돼. 오늘.

이왕지 말을 꺼낸 김에 오늘 해결을 되어야 된다 이 말이야.

 

첫 번째 질문에서는

혼자 있다고 왜 외로울까?’ 이걸 자기한테 자꾸 물어야 돼.

 

스님이 혼자 있는데 왜 외로우냐? 나는 안 외로운데 너는 왜 외로우냐?” 이럴 때,

나는 왜 혼자 있다고 외로울까?’ 이걸 자꾸 탐구해 봐야 돼.

 

혼자 있는 건 혼자 있는 거지

혼자 있는 거 하고 외로운 거 하고는 아무 관계없어.

 

어떤 사람이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 , 외롭다.’

낙엽하고 외로운 거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

가을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런데 우리는 마치 가을이 낙엽이 외로움을 가져오는 거 같이 착각한다 이거야.

 

그런 것처럼, ‘혼자 있는 게 외롭다.’

여기 지금 둘이 같이 결혼해 살다 지금 막 이혼하고 싶은데도 애 때문에 못하고 이런 사람은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지 알아?

저 박수치는 분들은. 하하하.

 

그러니까 혼자 있는 건

좋음이 될 수도 있고, 외로움이 될 수도 있는데,

혼자 있으면 반드시 외롭다, 이런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혼자 있는 게 자기가 외로움을 타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게 혼자하고 직접 관계되는 건 아니다.

 

혼자라고 관계가 되는 거라면 자기가 누구하고 같이 있으면 된다는 거야.

그런데 그 같이 있는 것도 또 내 요구조건에 맞아야 된다는 거야.

그게 문제라는 거야.

 

같이 있으면 된다면 남자라도 되냐? 그러면 선배하고 같이 자취를 하면 되는 거고,

나이가 어려야 되냐? 그러면 후배하고 같이 자취하면 되는 거고

그게 이성이라야 된다, 그러면 이성은 자취, 동거가 안 되잖아. 연애를 해야 되니까.

그러면 이성을 구하면 되는 거란 말이야.

 

그런데 그거 내 요구조건을 또 다 따지면 안 구해지지.

그런데 다시 돌아가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경지가 제일 좋고,

혼자 있어서 외롭다면 사람을 구하면 된다 이 말이야.

그때 요구조건을 너무 따지지 마라.

 

두 번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데 왜 괴로울까?’ 이걸 자기가 질문해 봐야 돼.

이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돼?

원하는 대로 된다고 또 반드시 좋다고 할 수도 없어.

 

경찰은 도둑을 잡으러 뛰어갈 때 잡고 싶나? 안 잡고 싶나? 잡고 싶어.

도둑놈은 잡히고 싶나? 안 잡히고 싶나? 안 잡히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이게 원하는 대로 다 돼?

 

그럼 다 학생은 서울대학교 가고 싶어.

다 대학생들은 재벌회사나 공무원이나 고시에 합격하고 싶어.

그러면 10명 중에 1명 뽑는데 그거 안 됐다고 괴롭다면

그래서 아마 우리 국민이 불만족도가 높을지 몰라.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거야.

 

내가 원하면 도전하면 되고

안되면 포기하면 되고

그래도 하고 싶으면 또 도전하면 되지

괴로운 거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거야.

 

11:29

이 분이 금강경 공부를 한다, 그러는데,

아상이라는 게 뭐냐? 아상.

상을 짓는다.’ 이런 말을

어떤 생각을 하면 다 상을 짓는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돼요.

상의 개념, 상 짓지 마라. 오늘 철학적인 얘기를 조금 하면요,

 

자 여기 물컵이 있습니다.

, 여기 뚜껑이 있어요.

여기 수건이 있습니다.

 

높이를 기준으로 해서 한번 보세요.

뚜껑을 기준으로 하면

이 물컵보다 높아요? 낮아요?

수건보다는 높아요? 낮아요?

 

뚜껑은 물컵보다 낮아요.

뚜껑은 수건보다 높아요.

그럼 이 뚜껑은 높아요? 낮아요?

 

그러니까 컵보다는 낮고 수건보다는 높은 데, 비교하지 말고,

이 뚜껑 자체, 이 뚜껑 자체만 딱 가지고 이건 높아요? 낮아요?

 

그러니까 이럴 때 질문자가 쓰는 용어, 높아요? 낮아요? 라고 질문자가 물었기 때문에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다?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럴 때 이 뚜껑을 낮다 하는 거는 이 컵하고 비교해서 낮은 거예요.

그럼 이 뚜껑이 낮은 거예요? 내가 낮다고 인식한 거예요?

. 이건 낮다고 인식한 거예요.

 

이 낮다라는 이 생각, 이 인식은 뚜껑에서 온 게 아니에요.

낮다하는 것은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인식상의 문제다. 이 말이오.

인식상에서 낮다라는 인식을 한 거지, 이 정신작용이지, 이 물질에서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이 수건하고 비교했을 때, 뚜껑이 높다하더라도 높은 것도

객관적 존재가 아니고, 이 인식상의 문제라는 거요.

높으니 낮으니, 옳으니 그리니, 맞니 틀리니, 크니 작니, 빨리가니 늦게 가니,

이런 것들이 이걸 만상이라고 그러는데, 만 가지 생각이, 만 가지 물건이 실지로 다 어디서 일어나는 거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요.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 일체유심조.

일체가 다 마음에서 만들어진 거다.

 

컵이 마음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아니라,

이 컵에 대한 우리들의 크니 작니, 물컵이니, 커피잔이니, 찻잔이니 하는 거는 이 존재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인식상에서 생겨난 문제라는 거예요.

이건 동의하십니까?

 

그런데 요렇게 2가지가 오래 있으면, 항상 이 2가지에서 인식을 하면

오늘도 낮다고 인식하고, 내일도 낮다고 인식하고, 모래도 낮다고 인식하고

이렇게 인식을 오래 하다보면 어떤 착각을 일으키느냐 하면

뚜껑자체가 낮은 거로 인식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비교해서 낮다고 이 조건에서 잠시 인식한 게 아니고,

뚜껑이 낮기 때문에 내가 낮다고 인식했다. 이런 착각을 한다는 거요.

 

그러면 이 뚜껑이 낮다는 것은 인식상의 문제인데, , 주관적인 문제인데,

이 뚜껑이 낮다, 작은 거라고 생각 한다는 거요.

 

이게 작기 때문에 내가 작다고 인식했다.’

이러면 이 존재가 객관적으로 작은 거요.

그럼 이것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주관이 객관화 된 거요.

 

주관이 객관화 된 거를 뭐라고 하느냐?

상을 지었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내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저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그래.

 

그럼 이 나쁘다 하는 것은 나의 인식상에서 일어난 문제에요.

내 느낌이, 내가 보기에 인상이 나쁘다 이렇게 이해해야 되는데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이건 상을 지은 거요.

 

그러면 박근혜가 나쁘다.’ 이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뭘 지은 택이다?

상을 지은 거요.

트럼프 나쁜 놈이다.’ 이래도 상을 지은 거요.

 

누가 생각하기에 나쁘게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윤리관이나, 내 도덕관이나, 내 느낌으로 볼 때 나는 저게 나쁘게 느껴지는 거요.

 

내가 지금 빨간 색깔의 안경을 끼고 이 흰 벽을 보면 내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빨갛게 보여.

만약에 파란색 안경을 끼고 보면 파랗게 보여요.

그럴 때 내가 말을 이렇게 하는 거요.

, 벽 색깔이 붉네.”

, 벽 색깔이 파래서 참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상을 지은 거요.

 

그러면 이 2사람 사이에 논쟁이 생기는 거요.

그렇게 우리가 지금 논쟁하는 게 부부지간에 아까 저기 첫 번째 질문자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이것의 정확한 표현은

내 눈에 빨갛게 보인다.’ 이렇게 표현해야 됩니다.

내 눈에 파랗게 보인다.’ 이렇게.

 

그러면 이건 시비할 수가 없어요.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데 어떻게 할 거요.

오 그래? 내 눈에 빨갛게 보이는데 네 눈엔 파랗게 보여?”

그러면 연구가 되는 거요.

 

이게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연구하다보면 어때요?

아 내가 안경을 끼고 있구나.’ 이게 탐구란 말이에요.

옳다 그르다’ ‘나쁜 놈 옳은 놈이렇게 논쟁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지?’ 이렇게 들어가는 거요.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 이렇게 주장해요.

한 사람은 신이 없다.’ 이렇게 주장하면 여러분은 이걸 어떻게 접근합니까?

스님, 진짜 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묻는다 이 말이오.

 

신이 있다. 신이 없다.’ 이렇게 주장하면 여러분들이 사물을 어떻게 봐야 된다?

이 사람은 지금 신이 있다고 믿고 있구나.’

이 사람은 신이 없다고 믿고 있구나.’

두 사람은 뭐가 다르다? ‘믿음이 다르구나.’

 

믿음이라는 건 다를 수 있어요? 없어요?

다를 수 있어. 그래서 헷갈리지 않아.

한 사람은 신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신이 없다고 하면 우리는

, 이 사람은 신이 있다고 믿고 있구나, 이 사람은 신이 없다고 믿고 있구나.’

, 두 사람은 믿음이 다르구나. 두 사람은 견해가 다르구나.’

두 사람은 지금 느낌이 다르구나. 두 사람은 관점이 다르구나.’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 다른 것이 아무런 갈등이 안 되는 거요.

 

누가 빨갛다 파랗다 그러면

, 두 사람 안경 색이 다르구나.’ 이렇게.

 

그러니까 상을 짓는 것은 주관을 객관화 시킨 거요.

그러면 뭐가 생긴다?

옳고 그름, 진위의 논쟁이 생기고, 여기에 갈등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우리의 갈등이 다 이런 문제에서 생긴다.

그래서 상을 버려라 하는 것은 색깔이 없다고 해라이게 아니라

 

내 생각이구나.’ ‘내 믿음이구나.’

이거는 상을 버리는 거요.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을 수가 있나? 없나?

없어요. 뭘 보면 느낌이 일어나고, 뭘 보면 생각이 일어나고, 뭘 보면 자기 견해가 일어나는 거요.

그런데 그걸 객관화 시키니까 그걸 진리라고 생각하는 거요.

작은 걸 왜 쟤는 크다고 그럴까?’ 이렇게 접근하니까 여기에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 저 사람은 저걸 작다고 보구나.’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갈등이 없어지죠.

 

그래서 상을 버려라.’ 이렇게 말하는 거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마라.’ 이렇게 접근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무 생각도 안할 수가 있나? 없나?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걸 잘못 이해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마라그러니까 생각이 자꾸 나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생각 안 해요.

그러면 우리는 온갖 생각을 하고, 온갖 믿음을 가지고, 온갖 관점을 가져도 갈등이 없을 수가 있다.

 

이게 다양성이에요.

다양하게 생각 수 있고, 다양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가치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는 거요.

음식 맛도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요 같아요?

다르죠.

 

내 입맛에 맞다.’ 이렇게 말해야지,

요 음식 맛있네.’ 다른 사람이 먹어보고 맛없다 그러면

너 입맛이 왜 이러냐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다.

 

입맛이라는 건

자기 부모 따라 어릴 때 먹던 게 고정되어서 나타는 현상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됩니다.

 

다른 거,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되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되요.

 

어떤 사람이 나를 좋다 한다고 나쁘다고 할 필요 없죠.

저 사람 좋아하구나.’

만약 오늘 강의 듣고 , 법륜스님 훌륭하십니다하면

내가 훌륭하다고 착각하면 안 돼요

저 사람 느낌이 지금 그렇구나.’ 아시겠어요?

 

누가 비난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어요.

저 사람 느낌이 그렇구나.’ 존중해주면 되요.

 

그럴 때 우리가 아까 저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다. 그랬잖아요.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마음이 저절로 뭐해진다?

편안해지는 거요.

 

어떤 사람이 막 성질내고 욕을 하면

아 저 사람 화가 났구나.’

왜 나보고 욕 하노?’ 이렇게 접근하기 보다

, 저 사람 화가 났구나.’ 이렇게 접근하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데

 

어떻게 하면 내 마음 편안해 질까이러면 죽을 때까지 못 편안해져요.

마음이라는 건 편안해지고 싶다고 편안해지는 게 아니고

관점을 바꿔버리면 마음은 저절로 편해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