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알콜중독 남편과 사춘기 아들

Buddhastudy 2019. 5. 31. 20:24


스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남편의 알콜중독과 화가 나면

분노를 표출하는 행동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저도 그때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어릴 때는 공부도 잘하고 순했는데

지금은 사춘기를 험하게 하고

비행하는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작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그래서 아이 문제와

남편과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에

멀리 이사를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매일 108배 기도를 하고

스님 법문 들으면서 저 나름대로

기도문을 찾아서 하고 있는데

저한테 맞는 기도문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기도문도 받고 싶고요 .//

 

 

남편이 애를 먹이는 게 완전히 부당하다, 범죄에 해당이 된다. 가만히 있는데도 술먹고 와서 때리고, 집에 있는 도구를 훔쳐가고, 성폭행을 하고,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면

남편이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신고해야 돼.

 

내 자식이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신고해야 되고,

남편이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신고해야 되고,

부모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신고해야 됩니다.

 

만약에 내 자식이다. 내 부모다. 내 형제다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데도 신고를 안 하는 거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적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에요.

자기 가족으로 봐주는 것 밖에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신고를 하라는 거예요.

범죄자로 신고하라는 거요.

남편을 신고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신고한다?

 

남편이 때리면

폭력범을 신고하는 거지

남편을 신고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경찰한테 잡혀가면 이튿날 면회는 가야 되요.

그건 폭력범을 면회 가는 거예요? 남편을 면회 가는 거예요?

남편을 면회 가는 거예요.

이걸 구분해서 살 정도로 지혜로워야 됩니다.

 

만약에 폭력범인데도 남편이라고 용인을 해주면

사회정의를 무시하는 민주시민이 아니고

남편이 감옥에 갇혔는데 면회도 안 간다 그러면

그거는 도덕적으로 부부의 예의가 아니에요.

제 말 이해가 되세요?

 

이거를 구분을 못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다는 거예요.

이걸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걸 딱 구분을 하면,

남편하고 대화하다가 남편이 때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웃으면서

너 폭력이다 이거, 이건 범죄야.”

 

전화 또로록 해서

여기 폭력범 제지해주세요.” 이렇게 전화해야 되고,

이튿날 아침에는 아이고 유치장에 있기 힘들지,” 이렇게 면회를 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성질내서 이러지.

너 면회 오지 말고 나를 꺼내줘.” 이러잖아.

꺼내주는 건 폭력범을 꺼내주는 건 불법이야. 그건 내가 못해.

그러나 아내로서 너를 면회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이렇게 딱 당당해야 된다 이 말이오.

 

아니 그러니까 이혼하고 싶으면

아이들이 볼 때, 자기가 지금 아이들을 걱정하는데

엄마아빠가 안 싸우고 사는 거를 아이들이 좋아할까?

엄마아빠가 서로 자기 고집을 해서 이혼하고 엄마하고 사는 걸 애들이 좋아할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별거는 이혼보다 더 못해.

그런 식으로, 스님 법문을 지맘대로 응용하잖아.

 

스님이 아이들 스무 살 될 때까지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혼하지 마라 그랬는데

이혼하지 마라는 건 싸우지 말라는 뜻이지,

별거를 해서 이혼 서류만 안 꾸몄다고

, 나는 애가 스물다섯 될 때까지 참았다.’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법륜스님 법문이 자꾸 부작용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이혼을 하는 건 자유인데, 그럴 때 아이들한테 이렇게 선언을 해야 돼.

나는 너희들보다도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

너희들 생각하면 내가 이 고난을 겪어야 되지만,

난 도저히 내 힘이 없어서 내가 그런 엄마의 파워가 없어서 내가 죽을 지경이다.

나부터 살고 봐야 되겠다.

그러니까 나는 별거를 하든 이혼을 하겠다.

미안하다.

너희는 너희 인생을 결정해라.

내가 스무 살까지는 같이 살려고 했는데, 내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 나부터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선언을 솔직하게 하라는 거야.

 

아빠하고 살려면 아빠하고 살고, 엄마하고 살려면 엄마하고 살고, 고아원에 가려면 고아원에 가고, 엄마는 엄마로서의 친권을 포기하겠다.

이렇게 네가 선택하면 살지마는, 내가 너한테 친권을 주장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

나는 왜?

내가 힘들어서 엄마역할을 제대로 못하겠다.”

이렇게 선언을 솔직하게 하고 결정하는 건 괜찮아, 하려면.

 

그런데 남편하고 관계가 안 맞는다고 별거를 하면

자식이 나중에 남편보다 10배 더 자기를 힘들게 하는 과보가 뒤따라온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것을 막으려면

남편과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기도문?

내가 예를 들어 이분이 저한테 자꾸 뭐라고 대꾸를 해서

성질이 팍 나서 팍 한 대 때리고 싶은데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까

저 사람 아끼는 물건을 때려 부순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이고, 그래도 나를 사랑하니

나를 안 때리고 물건만 부수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때리고 싶은데,

차마 나를 사랑해서 그래도 때리지는 못하고

내가 아끼는 물건을 부수는 걸로 분풀이를 하구나.

그래도 나를 아끼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네. 여보 고맙소.”

이렇게 기도를 해야 돼.

 

오늘 내 얘기 듣고 여자들 속 뒤집어 지겠다.

기도는 그렇게 해야 돼.

그래서 자기 치유를 해야 돼.

 

그러니까 그 인간의 행동 속에 아직도 나에 대한 사랑이 일말 남아있기 때문에 때리지 않고 그릇을 부수고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사는 거야.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일말 남아있는,

나는 100을 원하는데 이 인간은 10밖에 안 남아있어.

10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질 때 내가 행복해진다.

 

그러니까 화를 내면 , 화를 내지 때리지는 않구나.”

그릇을 집어던지면 그릇을 집어던질 뿐이지 나를 때리지는 않구나.”

그래도 나를 아끼는 마음이 있구나. 여보, 고마워요.”

 

마음을 요렇게 쓰면 그런 행동에 대해서 자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돼.

그럼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이걸 먼저 해보고 이래도 안 되면 그거는 이혼을 하는 건 좋은데.

이거를 내가 안 된다.’ 그러면 자기는 이혼할 자격이 없어.

이걸 먼저 해봐야 돼. 자식을 위해서.

.

 

욕을 하는 거는 때리고 싶지마는 입으로 말로해서 하는 거고,

집어던지는 것도 때리고 싶지마는 말로 하는 거고,

때리는 행위는 나쁜 행위이기는 하지만 그거는 죽이고 싶을 때 때리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마저도 뭐다?

자기는 그래도 다 사람은 우리가 볼 때는 그 사람은 엄청나게 나쁜 행동을 한다는데,

본인은 그래도 지나름대로는 자세가 한 단계 낮출까? 안 낮출까? 낮춘단 말이오.

자기 나름대로는.

자기 수준에서는 한 단계 낮추어서 하니까

이 분에 대해서 그 사람의 본심을 내가 보는 놈이 있으면 이 문제를 훨씬 평정심을 유지하고 대할 수 있다.

 

그렇게 한번 오늘 가서,

이렇게 하면 절을 하다가 염주를 집어 던집니다.

? 그게 나를 사랑해? 사랑하는 자체도 싫어. 예잇!”

 

그런데 그렇게 자꾸 절을 하면

내 마음에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을 할 때도 내가 그걸 보고 있으면

욕을 할 때는 그래도 사랑하니까 때리지는 않구나.”

물건 집어 던질 때, “아이고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 나름대로 자제를 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가 그런 관점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날까 안 날까?

이게 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오.

 

화가 나는데,

후우, 하나, , ...평정심을 유지해야지. 평정심을 유지해야지

이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까 저 철학 하는 것도 거꾸로 한다는 거요.

 

그냥 그 본심을 진실을 사실을

사실을 꿰뚫어보면 마음은 저절로 평정심이 유지가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겠다고 해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거요.

화가 나는 거를 참는 게 화를 해결하는 법이 아니고,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화 자체가 안 일어나는 거요.

 

그게 자기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자꾸 기도하면 처음에는 안 되지마는,

어느 순간에 집어 던질 때

아이고, 그래도 그릇 깨는 거로 다행이다.” 이렇게 마음이 만약에 일어나면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돼요.

일어나면 자기는 웃을 수 있는 거요.

그릇을 던지는 거 보면서 빙긋이 웃어.

 

왜 웃어?”

아이고, 그래도 당신은 아직 사랑하는 구석이 있네요.”

그게 무슨 소리고?”

아이고, 나 때리고 싶지,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데 차마 나를 못 때리니까 그릇을 깨네. 고마워.”

이러면 이게 막 판이 갑자기 뭐랄까? 확 뒤집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거요.

 

이런 기적을 만드는 게 수행이거든요.

이건 태산을 옮기는 거 보다 사실은 더 어려운 일이에요.

그걸 한번 자기가 해보겠다하면 그걸 먼저 도전하라는 거요.

 

자기가 이게 변화가 안 되면 애한테 간섭하면 안 돼요.

자기도 안 되듯이 애도 지금 안 되는 거요. 노력해도.

 

이게 되면 어떠냐?

안되면 애를 이해가게 되고

되면 아이에게 희망이 되는 거요.

, 우리 애도 되겠다.”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지금 뭐, 이혼하나 안 하나, 애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거 다 놔버리고

지금은 자기 문제로 딱 돌아와서 남편이 그릇 깰 때 욕할 때

내가 그래도 나를 사랑해서 그릇을 깨구나,” 하는 마음이

내가 일어날 수 있나 없나 이것만 생각해요.

 

이게 되면 세상이 변하고,

이게 안 되면 까르마, 주어진 업식대로 살다가 죽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