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2회]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하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까요

Buddhastudy 2019. 6. 7. 20:09


8살 아이가 불안장애가 있어 치료 중이며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저의 불안감이 높습니다. 노력하지만 제 생각에 빠져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하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까요//

 

 

이 세상에는 능력이 100인 사람도 있고, 110인 사람도 있고 120인 사람도 있고

평균이 100이라면 그보다는 낮은 90인 사람도 있고, 80인 사람도 있는데,

각자 다 자기 나름대로 괜찮아요.

 

예를 들면 개는 개 대로 괜찮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괜찮고,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괜찮고,

그런데 내가 개에다 기준을 두고 다람쥐보고 너 왜 개만큼 크지를 않나

토끼보고 너는 왜 고기도 먹을 줄 모르나?”

이렇게 문제를 삼으면 다람쥐가 모자라는 것 같고, 토끼가 모자라는 것 같이 된다. 이 얘기에요.

 

각각의 존재는

각각 고유의 특징이 있는 거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한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괜찮은데,

키를 비교해서 170인 사람을 기준으로 잡아 너는 왜 키가 작나?”

얼굴이 이렇게 생긴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너는 왜 저렇게 생겼나?”

이렇게 자꾸 문제를 삼으면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 그러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존중해야 되는 거요.

그 장애가 없어야 된다.’ 엄마가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은 장애 있는 아이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요.

누구로부터? 엄마로부터.

 

너는 문제다이런 걸 자꾸 무의식적으로 듣기 때문에

아이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고, 인생이 불행해진다.

 

그러니까 장애가 있으면 뭐하면 된다?

치유하면 되는 거요.

 

그럼 치유에는 3가지가 있어요.

치유를 해서 회복이 되는 경우가 있고, 치유를 해도 회복이 안 되는 치유도 있어요.

그러면 보통 그만두게 되는데,

아니에요. 치유를 하면 현상 유지한다, 즉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치유도 있고

 

치유가 되는데도 병이 점점 깊어진다. 그럼 약 효과가 없느냐?

아니에요.

이 병에는 낫는 약은 아직 없고,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치유법도 있다.

 

어떤 의사가 치유를 할 때,

내가 약을 먹는데도 낫지 않았다 해서 불만을 갖는데, 병에 따라서 다릅니다.

 

나을 수 있는 병이 있고, 현재는 치유법이 없기 때문에 현상유지, 악화를 방지하는 치유법이 있고,

현재는 악화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악화되는 속도를 막아준다.

1년밖에 못 산다면 2년 살게 해준다. 이런 치유법도 치유에 들어간다.

 

그럼 우리 아이에게 이런 불안장애라든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장애가 있다하면

엄마는 아이를 온전하게 이해해야 돼.

, 이런 장애가 있구나

그러면 현대에 발견된, 의학적으로 발견된 치유법으로는 어디까지 치유할 수 있냐?

완치한다. 이거는 지금 없습니다.

 

현재 증상이 70이면 한 80이나 90까지는 어느 정도 치유할 수가 있다.

그런데 얘를 100까지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열등의식을 갖게 돼.

해도 안 되니까.

자기도 지치고.

그리고 치유를 포기하게 되고 효과가 없다이렇게 된다.

몇 년을 했는데도 치유가 안 되잖아.” 이렇게 판단한다.

 

그러니까, “좋아졌다.” 적절하게 이렇게,

그 아이의 능력에 맞게끔 살도록 엄마가 도와줘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자기가 불안할 이유도 없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요.

 

오히려 적절한 장애가 있으니까

고거는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다.

놀이 치유가 있다면 놀이 치유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고,

 

그런데 그 아이를 빨리 정상화되도록 자기가 원하면

자기도 지치고, 아이도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

이게 첫째 제일 자기가 유의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장애아가 태어났다하면

딱 불교를 잘못 믿는 사람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자식을 낳았나?”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거야.

 

그러면 장애는 어떤 죄의 값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죄지어서 장애가 된 게 아니에요.

이게 잘못된 인과응보사상이에요.

 

장애는 그냥 고장 난 거요.

장애는 장애일 뿐이에요.

장애는 불편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건 앞으로 의학이 발달하면 장애는 어느 정도 치유로 극복이 되거나,

안 그러면 그런 장애를 가지고도 이 아이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걸 관점으로 가야 돼.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애가 있더라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친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지

이 장애는 네가 죄를 지어서 이런 장애를 받는다.’ 이런 게 불교가 아니다.

 

장애가 아이에게 있으면 보통 엄마들은 이걸 힘들어하지만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아이를 위해서 내가 조금 이라도 도움 되는 행동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그럴 때 아이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지만,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지만,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장애는 있지만, 행복해진다.

 

여기 수많은 신체적 장애가 없는데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이 행복하지 못한 것의 원인을 따지면

대부분 부모가 행복하지 못해서 그래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부모가 갈등이 없고,

부모가 짜증이 없고, 불안이 없고

평화로운 상태의 엄마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심리적으로 어릴 때부터 불안하고, 조급하고 이렇게 되어 있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는

신체는 비록 네가 장애라도 나에게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마음만큼은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겠다.”이런 자세로,

내가 너를 딴 거로, 장애를 개선할 수 있는 내 능력이 없지만,

그거는 의사가 할 일이지마는,

내가 너를 행복하게 살도록은 도와주겠다.”

 

그러려면 내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한 거요.

 

아이 키우는 걸 내가 부담스러워하면

엄마 마음이 힘들면

아이 마음이 힘들게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행복하게 살아야 돼.

 

다른 말로하면

기독교 신자라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야 된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그러니까 그게 잘 안 되니까, 108배를 하고, 300배를 하는 거지,

108배가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그냥은 도저히 마음이 안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는 나를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100배도 하고, 300배도 하면서

 

내가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내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내 자식 아닌 일체중생의 아픔도 다 자기 아픔으로 껴안는다는데,

남은 몰라도 내 자식 하나 만큼은 내가 그렇게 마음을 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관세음보살을 닮겠다고 기도하는 게 절이다.

 

그러니까 108배니 300배니,

‘300배 힘들면 치우고 108배할까

뭣 때문에 절을 하는데?

 

으흠, 그러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힘들어서

자꾸 마음이 중생심으로 가니까,

 

내 마음을 항상,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가 되는 마음을

내가 잊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 뭘 한다?

하루 300배 절을 한다.

 

이렇게 해야 돼.

하루 300배 절을 하면 건강에도 아주 좋아요.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