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4회 무유호추원 (20:22)

Buddhastudy 2012. 2. 19. 20:39

  방송 보기: 불교TV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깃들여져 있는 것만이 현상에만 눈이 가리워져 가지고 그 현상에서만 치우치기 때문에 오랜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저희가 48대원을 공부하고 있거든요. 아미타, 미타 48대원이라고 하는 놀라운 발원을 쭉~ 공부해 가고 계신데, 벌써 3번째, 4번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발원이 신구의 삼업을 새롭게 하자. 이렇게 시작이 됐어요. 그것이 무삼악취라고 하는 것이 있거든요, 삼악취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하는 것이 있어요. 원해서 취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삼악은 없게 하자. 이런 뜻입니다. 삼악은 아시죠? 삼악은 지옥, 아귀, 축생을 일러서 삼악이라고 표현하죠.

 

그래서 삼악은 뭐라고 우리가 쉽게 표현하는지 말씀드린 것처럼 고통스러운 세계, 가난한 세계, 또 그다음에 뭐죠? 어리석은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라고 하는 그런 발원에서 출발이 됩니다. 두 번째 불갱악취원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이게 두 번째 거죠. 이것도 역시 뭐죠? 원해서 취하고 싶어요. 뭘 취하고 싶어요? 다시는 악한 것에 들지 않겠습니다. 그런 뜻이죠. 그래서 이것을 바꿔가는 방법은 악한 것으로 악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선으로 바꿔주고, 죄적인 것에는 뭐죠? 신성스러운, 선업이 가득한 세계로 바꿔가자는 그런 뜻이었죠.

 

그다음에 실개라고 하는 세 번째 것이 실개금색원이었죠. 원하온데 금색의 몸을 원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 얘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금으로 몸을 태어나는 것처럼 금으로 몸을 자기를 휘장한 것처럼 그렇게 풍요로운 삶의 것이 이미 그것이 실다웁게 들어차 있다. 요런 말씀이죠. 그래서 요 세 번째 것이 다른 발원으로 말씀드리면 모든 것을 성취하게 하자. 요게 세 번째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네 번째로 넘어가시면 굉장히 아주 중요한 네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의 네 번째 것이 뭐냐 하면 무유, 있게 없다 하다가 뭐냐 하면 원하는데 뭘 원해요? 추한 것, 좋고 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없게 하자. 이런 뜻이죠. 쉽게 표현하면 그런 뜻이죠.

 

그러니까 다시 이런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무슨 뜻이냐 하면, 시비 분별이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요런 뜻입니다. 시비, 분별없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오늘 네 번째가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요 네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뭐가 생기냐 하면 신통이 쭉~ 따라오게 됩니다. 거기 보면은 숙명통원이 생기고, 천안통원이 생기고, 천이통원이 생기고, 심타통원이 생기고, 신족통원이 생기죠. 그다음에 열 번째는 뭐죠? 누진통원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가 막힌 언어가 있거든요.

 

이 모든 분별을 일으키고, 집착을 일으키고, 고통을 일으키고, 가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이 가지는 그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토대가 이것이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사람한테 영향을 주는 것이 자기 상황에 의해서 더 많은 결정이 움직여져요. 그래서 그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라고 이걸 표현 하냐 그러면, 지금 현재 이렇게 쓰여져있는 이걸 상황이라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이게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어요? 지금. 있는 그대로 요 상황에 의해서 묘한 것이 생겨요. 뭐가 생겨요? 마음에 경향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경향이라는 게 뭐냐 하면 그쪽으로 살짝 기울여지는 거에요. 그렇게 들어가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이 요게 묘한 것이 있어요. 요게 가장 영향을 주는, 상황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자기 마음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보고 이거를 보고 우리는 뭐라고 말해요? 자기 마음이라고 그래요. 자기. 이거를 자성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요 상황을 현재 그래도 들여다보는 마음에 의해서 이게 상황이 변해져간다는 것을 봤어요. 진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진리는 글자 그대로 법칙이거든요. 법칙은요 껍데기만을 보는게 아니라, 그 안의 내용까지도 보면은 우리가 육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은 그 육체가 본래 비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뭐라고 그래요? 제법이 다 공하다. 이렇게. (제법은 공하다. 거기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크고 작음도, 늙고 죽음도, 깨끗하고 더러움도, 일어나고 사라짐도 없다)

 

육체본무에요. 육체본무라 그래요. 글자 그대로. 육체가 본래 빈 거거든요. 그렇다 그러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요, 물질의 본체가 실체가 없다는 거에요. 물체를 우리가 빌딩이고 사람하고 세면이고 사용하잖아요. 이게 실체로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도 이게 사용하고 있기는 있어도 거기에는 실체가 없어요. 요 말은 굉장히 어렵거든요? 쉽지 않은 거에요. 왜 연필도 사용하고 이렇게 사용하잖아요. 그래서 석가세존은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이 모든 물질이나 이 육체는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거기에는 실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랬거든요. 경전 안에 아주 여실하게 설명돼있어요.

 

물질이나 육체는 늘 머물러 있지 않아서 계속 움직여져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실효한 것이 없다는 거에요. 실효란 말 알죠? 이게 뭐죠? 육체본질이 없다는 거에요. 본질이 있다면 이것이 뭐냐 하면 마음세계 라는 거에요. 누구 마음이에요? 자기 마음이에요.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음이 이게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물질도 움직이고 육체도 움직여 준다는 거에요. 이게 지금 경전 안에 내용이 뭐라고 그랬어요? 무유라고 그랬잖아. 무유. 무유호추원. 이렇게 설명돼 있죠. 무유, 무유,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없는 게 뭐가 없어요? 좋다라고 밉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게 없다는 것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생명 안에 자기가 내가 나쁘다라고, 못생겼다라고, 힘들다라고 말하고 이런 것을 뭐라고 말해요? 이게 뭐냐 하면 자기의 마음이 실망 속에 있고, 자기 마음속에 이미 실패의식이 있어요. 왜 실망과 실패가 쫓아다닐까요? 딱 하나밖에 없어요. 분별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비하고 앉아있어요. ~ 자기가 실망하고 실패는 자기가 만들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놀라운 것을 봤어요. 그게 뭐냐 그러면요, 자기의 마음의 경향이 자기 육체를 지배해요. 일어나기 싫어요. 그래서 마음이 깨워지지 않는 사람 계속 방에서 집에서 누워있어요. 그렇게 세월을 오래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뭐가 생겨요? 우선 마음에서 분별이 자꾸 생겨요.

 

이런 사람이 제일 하고 있는 것이 뭘 하고 있냐하면 마음속에는 언제든지 변명만 늘 가급적이면 입만 벌리면 변명이야. 입만 벌리면 불평하고 앉아있어. 입만 벌리면 불평하고 앉아 있고 들들들들 하고 앉아있어. 그러면 뭐가 없어져요? 물질이 자기한테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고요. 그러니까 부자 되는 건 포기하고 사는 게 딱~ 맞아. 건강해지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되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상황 이 현실을 지금 바꿔주는 방법이 뭘 하면 되느냐 그랬죠? 분별, 시비에서 떠나버려야 돼. 이건 좋은 것이다. 이건 나쁜 것이다에서 벗어나야 돼. 이건 이쁜 것이고 이것은 안 이쁜 것이다라고 허지 말아야 되.

 

그런데 아까 기왕 꿈을 꾸려면 뭔 꿈을 꿔요? 좋은 꿈을 꿔야 돼. 그러면 좋지 않은 것도 좋게 보면 다 좋아지는 거에요. 그러면 아직 내가 깨우쳐가지고 다음 생에 삼계를 윤회하는 육도 윤회하는 그런 끊는 데 큰 깨우침이나 공덕력은 쌓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금생에 복되게 하고, 금생에 행복하게 하고, 금생에 지금 나아지고 좋아져 가는 삶을 채워가시려면은 뭣부터 해야 되냐하면 시비분별에서 마음을 놓으셔야 돼. 너무 쉽다. 이렇게 쉬운 거를 눈앞에서 변해져요. 이건 제가 실제로 해본 나머지입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아무리 고약한 관계라도 아무리 안타까운 상태에서도 가서 손을 잡아주고 얘기해주고 말해주고 그럼 그 사람도 좋아져요.

 

이게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사용할 줄 몰라서 자기가 부가 이루지 못하고, 자기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탓이지, 절대 육체 탓할 거 없어요. 어디 조금 사고가 생겨서 문제가 있거나 병이 있거나 이런 경우라도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마음밖에 없다는 거에요. 자기 신경이고 자기 감성이고 자기 정서거든요. 이 정서 때문에 자기 안에 들어있는 자기 틀을, 가난한 틀을 몰아놓고, 세상에 평생 살지 말아야 되요. 얼마나 억울한 짓이야? 이건요 누누이 말씀드리잖아요. 이거는 하늘하고도 바꾸지도 않고 부처님하고도 바꿀 수 없고요. 이 얼굴 절대 못 바꿔요. 이걸 누구랑 바꿔.

 

장동건씨한테 좀 바꿔달라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고 그러데. 마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법칙. 마음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제1법칙이 마음은 일체 만물의 주인이며 창조주에요. 누구의 마음이요? 우리의 마음. 나의 마음 안에 모든 일체 만물의 주인이라는 거에요. 왜 허덕이고 살아요? 왜 괴로워서 살을까요? 왜 힘들어 하고 살아요? 이 세상을 창조 할 만큼 그런 위대한 힘을 가진 게 우리들 불성이고 우리들의 마음이거든요. 우리들의 영혼이고. 육체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거에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마음이 기쁜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자꾸 감사를 채울 줄 알면요, 관상도 변해요. 육체도 변해오고요. 거 참 묘한 거에요.

 

2. 마음은 실재하는 존재에요. 마음은 모양새도 없잖아요. 먼저도 본문 말씀 일러 들였죠? 마음에는 모양도 없어요. 불구부정이고 부증불감이고 더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그러나 언제든지 있어요. 전에 먼저 강좌 하면서 법문 말씀 드렸거든요. 절대 마음 알려고 덤비지 마세요. 평생 그짓하다 끝나. 자성을 밝혀야 된다. 밝혀야 된다, 이러고 있잖아요. 그거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만분의 일밖에는 안 되는 거에요. 그러나 그건 그분 위대한 분들이고. 그러나 나는 금생에 살면서요, 그렇게까지는 공부를 못할지언정 우리는 뭘 지어야 되요? 공덕을 지어야 되요. 보시를 할 줄 알고, 따뜻한 마음 나눌 줄 알고, 염불수행 공부할 줄 알고, 또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감사행을 행해서 자기를 훌륭한 공덕체로 만들어 가는 거에요.

 

그럼 평생 살면서 여유롭게 살게 돼요. 평생 살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요. 평생 즐겁고 기쁜 일들이 자기를 지배해요. 그런데 거꾸로 살아요. 거꾸로. 이게 실체거든요. 마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지금 사용하시면 돼요. 지금. 위대한 시스템으로, 완벽한 시스템으로 마음이라는 게 우리 안에 갖추어져 있어요. 들리세요 이게. 들리셔야 돼요. 제가 굴러다니는 거시기해가지고 거시기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시기하지 않아요. 깨우쳐 줘요. 사람을 깨우쳐 줍니다. 완벽하게 자기를 만들어 줍니다. 꼭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실천하시면 돼. 그냥 지금 감사하세요. 지금 고마워하세요. 지금 사랑하시고, 지금 이쁘다고 말하고. 으응. 그렇죠! 그죠.

 

전 못생겼는데도요. 아침마다 거울 보고 놀래면서 이렇게 잘생겼나!’ 마음은요, 내가 태어나있거나 내가 금생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남아 있을 거거든요. 요거를 내가 수없이 얘기를 해도 요걸 퍼뜩 깨우치는 사람은요 금생에 아주 부자로 살아요. 이거 이해가 안 되시는 가봐. 헤매다닐 거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산천초목을 다 돌아다녀서 봄을 구하러 갔는데 봄은 자기 뒤뜰에 복숭아나무 꽃에 거기 봄이 있는 걸 이제 보는 거에요. 볼 거 없어요. 집에서 보세요. 자기 자신에서 볼 수가 있다니까. 시비분별을 떠나는 것이 비구 법장비구의 지금 원력이에요.

 

네 번째에요. 이 네 번째가 오늘 통과하면은 그다음부터는 육신통이 나한테 자제하기 시작하게 돼요. 육신통이라고 다 들어보셨죠? 절에서. 거기에 보면 끝까지 가면 뭐죠? 엄청난 것이 거기 깃들어 있죠. 하나만 더 정리를 할게요. 육체, 육체나 물질이나 환경이나 이게 다 마음의 그림자라는 뜻입니다. 이 얘기는 뭐냐 그러면 우리 마음이 결국 내 환경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요고, 마음 사용을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 따라서 불교 수행은 결정적으로 달라지고 나타나요. 마음의 그림자라는 거에요. 요거를 분명히 확인해 주셔야 돼. 내 다 마음의 그림자니까요.

 

내가 먹고사는 문제, 내가 삶을 사는 문제, 행복해지는 거, 삶에 대한 어떤 모든 것들. 이거 다 뭐죠? 우리들의 마음의 그림자라는 거에요. 저 고통스러운 모든 고통적인 내용들도 그거는 마음의 그림자에요. 실제가 아니에요. 마음의 그림자다. 이렇게 말해요. 그다음에 이 말은 하나 더 붙이면 좀 어려운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4.현상은 연기되어 있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불교의 핵심에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게 똑같은 말이거든요. ~ 이 현상은 뭐죠? 연기되어 있다.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인연되어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연기되어 있다. 뭐든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거에요. 아닌 거 같은데도 다 연기가 돼 있어요.

 

인연 따라서 다 일어나게 돼 있어서 현상은요, 어떤 것이라도 거기에는 문이 없고 답이 없어요. 어떤 물질에도 질문이 없고 답이 없어요. 다만 끌어다 놓는 사람이 쓰는 거에요. 물질을 풍족하게 하고 싶으면 마음을 풍요롭게 하시면 돼요. 그러면 답이 나와요. 아무리 설명해도 이렇게 설명 드려도. 다시 반야심경에 보면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육체 본래 없다 이렇게 말해요. 그걸 보고 다른 말로 뭐라고 그래요? 무안이비설신의. 이렇게 말해요. 육체 본래 없다는 거에요. 눈귀코입 몸뚱아리가 본래 없는데 거기에 왜 병이 깃들을까? 눈귀코, 뭐죠? 안이비설신, 이 몸뚱아리 오관에 의해서 여기에 본래.

 

이게 본래 없는데 거기에 가난이 왜 들고, 왜 병이 거기 깃들고, 왜 불행이 깃들고, 왜 괴로움이 거기 깃드는가? 본질로 보면 없다는 거에요. 이건 굉장히 어려운 말 중의 하나인데요, 그래도 쉽게 알아들으시면 돼요. 묘하죠. 그죠. 듣는 귀가 있으세요. 듣는 자성이 있으시기 때문에 이걸 듣는 거에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예경을 가지고, 조금만 뭐죠? 정성을 들여서 참여하고 이렇게 공부를 해 가시면은 귀가 열려요. 왜 그러냐 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자성이 불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 불자님들도 전부 뭐죠? 불성 세계를 꽉~ 가지고 계신다는 거에요. 다만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