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_죽음이야기

11.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8월 21일 방송 (25:22)

Buddhastudy 2012. 2. 26. 20:45

  출처: 유나방송

대문밖에 붙어있고, 모퉁이 옆 뒤로 돌아가서 붙어있고 이런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세계관에서 나온 생각들이 우리 속담에 녹아있죠. 이승 저승과 관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구에 회자되는 속담은 이런 거죠. 말똥에 굴러도 이 승이 좋다. 또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또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전부 이승에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얘기하는 거에요. . 그것은 왜 그럴까요? 간단하죠. 저승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그냥 어떻게 해서든 부귀를 누리면서 부귀도 아니에요. 말똥에 굴러도 좋다니까. 뭐 개로 살아도 좋으니까 죽은 정승보단 개가 낫다 이거에요. 살아 있는 개가.

 

무조건 이생에 살겠다. 엄청난 이생에 대한, 이 승에 대한 집착이죠. . 그렇습니다. 유교는 어떨까요? 유교도 내세관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종교 가운데에요, 세계 가르침 가운데에서 내세관이 없는 종교가 거의 없는데, 유교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내세관이 없습니다. 유교의 생사관을 보면 뭐 상당히 간단합니다만. 공자가 말한 논어에서 말한 게 다 나와 있습니다. 유명한 얘기죠. 제자가 죽음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죽은 뒤 어떻게 되느냐? 죽음이란 게 뭐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니까 공자는 바로 되받아칩니다. 너는 사는 것도 잘 모르면서 왜 죽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느냐?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어떤 다른 제작 귀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귀신은 어떻게 대하면 되겠는가?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너는 살아있는 사람도 제대로 잘 모시지 못하면서 귀신 모실 것을 걱정한다.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면 된다 라든가. 이런 식의 말을 합니다. 이것은 공자가 사후생에 대한 존재 여부의 언급을 회피한 거에요. 그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공자님은 저승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문제인데요. 공자님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처럼 이렇게 온갖 삼천대천세계를 돌아다니고 말이죠. 이런 분은 아니고. 그냥 살아서 부모에게 효도 잘하고 주위 사람 공경 잘하고 이런 정도의 스승에 그치는 거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이분이 몰랐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기가 모르는 걸 질문하니까 이럴 때는 최선의 방책이 뭡니까? 되받아치는 거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틀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재미난 얘기들이 많은데 넘어가기로 하고. 문제는 공자가 이렇게 죽음 뒤에 세상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한 것 때문에. 혹은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서 부정을 했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유학자들은 한결같이 죽음 뒤의 세상을 부정합니다. .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이게. 뭐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자기들이 교주로 생각하는, 세계에서 인류가 생겨난 이래에 가장 훌륭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공자가 죽음 뒤의 세계를 부정했으니 자기들도 어찌할 수가 없겠죠.

 

제가 유학하는 사람들은 요새는 거의 보지를 않습니다만 예전에 같이 이런 문제가지고 얘기를 하면 정말로 뭐 싸울 듯한 태세를 가지면서, 죽음 뒤에 있는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하여튼 증거도 없어요. 그냥 공자님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그럴 뿐이에요. 참 그렇습니다. 이게 이제 유가. 어떻든 보십시오. 이것도 죽음 뒤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거죠. 죽음.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사문제와 결부시키면 재미난 문제가 하나 나옵니다. 이게 모순점이 발견이 되거든요? 그다음에 이 신유가. 그러니까 주자학이나 양명학 이런 데서 다소 복잡한 인간론이 나오게 됩니다.

 

죽음, 인간이 어디서부터 생겨나서 어떻게 진화하다가 어떻게 사라지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죽음 뒤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금 복잡하긴 한데. 이게 사실 이런 것들은 칠판에 써서 해야 되는데. 말로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우리 인간은 어디서 오는가? 유가. 신유가들은 일기. 혹은 원기. 하나의 기운, 혹은 근원적인 기운. 여기에서 오는데. 여기에서 귀와 신. 이게 바로 귀신입니다. 우리가 귀신할 때 귀와 신으로 나뉠 수 있게 됩니다. 정신. 그러죠. 사람의 정신. 이게 여기서 나오는 건데 정과 신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또는 혼과 백. . 그래서 백은 음적인 거고 혼은 양적인 게 됩니다.

 

사실 혼은 혼과 백만 가지고 얘기를 해 볼까요? 우리가 혼비백산했다 할 때 말이죠. 거기 나오는 혼백이죠. 이 혼은 영혼을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백은 육체적인 것을 얘기를 합니다. 사람이 원기에서 혼과 백이 갈라져서 죽~ 삶을 영위를 합니다. 죽게 되면 혼은 하늘로 해서 그냥 사라져버리고. 백은 땅으로 들어가서 그냥 없어져 버리고. 이겁니다. 이거. 다시 일기 혹은 원기로 돌아가는 거에요. 아무것도 남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주자인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예외의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 한이 맺혀서 죽은 사람들은 그 혼이 죽은 뒤에 바로 없어지지 않고 한동안 있다가, 아니 계속 존재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결국은 좌우간 꽝이에요. .

 

죽으면 끝입니다. 이게. 그럼 제사는 왜 지내느냐? 조상의 혼이 없다는데 어디서 오느냐? 물어보면 답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답하는 유교인. 제가 뭐 부친하고 제사지내고 이럴 때, 집안 어른들하고 옛날에 지낼 때, 혼이 어디 있다 오는 겁니까? 하고 물어보면 정답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충 피해버리고 맙니다. 이런 데서 모순이 생기는 거죠. 요 문제는 제사문제는 다음 시간에 제사문제를 볼 때 다시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사실은 제사라는 것은 유교식의 영생법이에요. 자기는 이렇게 없어지지만, 아들의 뇌리 속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되살아나는 것. 아들의 뇌리 속에서 기억됨으로 해서 되살아나는 것. 이것을 꾀하는 게 바로 제사입니다. 다른 것도 있습니다만.

 

이런 의미에서 간접적인 영생법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불교나 기독교 같은 경우는 자기 혼이, 개인적인 혼이 죽어서도 그냥 남아있게 되죠. 그래서 이건 직접적인 영생법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 그러나 유교 같은 경우에는 자기 개인적인 영혼은 없어지지만, 아들에 의해서, 아들이 차려주는 제사의 의해서, 일 년에 몇 번씩 아들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 이것을. 혹은 자기 분신인 아들을 남기므로 해서 가통을 잇게 하고,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따라서 간접적인 영생이라고 부릅니다. . 그런 데에서 많이 다름을 보이는데.

 

옛날 그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나이가 들게 되면, 나이가 들어서 늙게 되면, 가장 큰 소원은 죽어서 자식들을, 아들이죠! 물로. 아들의 제사 받아먹는 것. 그래서 제사를 안 지내 줄 거 같으면 굉장한 공포에 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제사 때문에 논 몇 마지기를 맡기느니 마느니 말이죠. 그러다가 기독교인 며느리가 들어오면은 초비상사태에 들어갑니다. 지금은 아닙니다만. 제사를 안 지내 줄 것이다 라는 그런 생각 때문에. 사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간접적인 영생. 자기는 죽지만 아들의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런 간접적인 영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그래서 생각하는 죽음을 보려면 저는 철학적인 데서 볼 필요는 없고요, 가령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얘기. 여러분은 불교도니까 다 아시겠습니다만 윤회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갤럽조사를 해보니까요. 지금 윤회를 사실로 믿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불교도건 아니건 간에 봤더니 한 10여 년 전 조사를 보니까 일반 국민 가운데 윤회를 믿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별로 그렇게 큰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교리 철학적인 교리가 아니고 한국 사람들의 죽음의식, 사후생에 관한 것들은 그들이 행하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의례에서만이 찾아질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 시간에 장례식, 그다음에 제사, 이 문제를 가지고 한번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인들의 죽음의식이 정말 적나라하게 확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거기 조금 하나 더 붙이자면 풍수지리, 이게 장지와 관계되는 거죠. 풍수지리.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현세적인가가 이 풍수지리에서도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들어보시면 아~ 우리들, 우리들 조상들이 갖고 있었던 가치관이 이렇게 현세적이었구나. 그래서 한국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연명에 집착을 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