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준식입니다. 자~ 지난번까지 강의로 죽음이라는 현상.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현상이 과연 어떤 것인가? 에 대해서 근사체험과 더불어서 같이 보아왔습니다. 자~ 오늘 강의는 지금까지 했던 강의를 종합하는 강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종합으로써 죽음교육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에~ 이~ 죽음학에 많은 것은 말이죠. 결국에는 죽음교육으로 귀착이 되기 때문에 죽음교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죠. 우리가 제대로 죽음을 맞이하려면 역시 죽음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죠.
저의 한국 죽음학회의 표어는 그겁니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속절없이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저 아무 준비를 못 하고 당하는 것보다 미리 준비를 해서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을 만들자 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겠죠. 그리고 이런 죽음교육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죽음교육은 나중에 하면 늦는다. 계속 이렇게 강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그때 가서 보자. 죽을 때 가서 보자. 이렇게 얘기를 하고 피해 가도 결국은 죽음은 찾아오고 우리의 생명을 뺏어가게 되죠.
유명한 얘기가 있죠. 불경에. 죽음을 도피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바닷속 깊은 곳에 숨고, 어떤 사람은 산속에 깊은 곳에 숨고. 이렇게 여러 곳에 숨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그들도 죽습니다. 네. 그렇게 피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긍정적이고 좀 적극적인 죽음 교육을 통해서 우리의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노상 하는 얘깁니다만 성교육은 유치원 때부터 해 놓고, 그것도 제대로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죽음교육은 어느 곳에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의 실정입니다.
그런 반면에 제가 독일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독일에는 고등학교에만 21가지에 달하는 죽음 교육교과서가 있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21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각 고교에서는 이 21가지 책 가운데에서 골라서 교재로 쓸 수가 있는 겁니다. 지금 한국은 어떻습니까? 고등학교는 고사하고 대학교에서도 쓸 수 있는 죽음교육교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네. 이게 바로 한국의 현실이죠. 자~ 그러면 이 죽음 교육이 왜 필요한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 쭉~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강의들의 정리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일본 죽음학의 대부라고 그럴까요? 뭐 그런 독일 신부님이 있는데, 알폰스 데켄 신부님이라고 있습니다. 이 분이 정리한 것에서 많이 따왔습니다.
자~ 죽음 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그러니까 임종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또 죽어감의 과정, 죽음의 과정이 무엇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다. 라는 거에요. 임종환자들이 과연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또 죽음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에서 이해를 돕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 마지막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이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이분들도 아니죠? 우리들 얘기죠. 우리 중에도 지금 죽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분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고독과 고통입니다. 아~ 그렇죠. 우리가 죽음 앞에서 결국은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에, 또 죽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고독감은 아마 상상을 *할 겁니다. 이럴 때 우리 옆에 있는 가족들은 항상 우리가 당신과 같이 있을 것이고, 항상 당신을 지지 지원할 것이다. 따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 이 고독 문제는 가족이 옆에 있으면서 계속 도와주면 많이 풀릴 수 있습니다. 고통문제는 의사의 몫이겠죠.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약으로 얼마든지 고통완화제죠. 진통제로 얼마든지 경감시킬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지금 약으로 고통의 약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자~ 다시 말씀드릴게요. 고독과 고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임종환자들에게. 인간의 죽음을 말할 때 우리가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이 엘리자베스 큐블로 로스라는 분이었죠. 제가 이 분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을 했습니다만 이분이 얘기한 인간의 죽음의 다섯 단계. 이게 On Death and Dying 이라는 책이죠. 한국 제목으로는 인간의 죽음. 이렇게 번역이 돼 있습니다만 이건 죽음학에서는 고전으로 치부되고, 가장 널리 읽힌 그런 책이죠. 이분은 아마 아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이 분이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를 다섯 단계로 나눴죠. 동양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일단 보도록 하죠.
첫 번째 부정하는 단계입니다. 불치병을 선고를 받은 다음에 첫 번째 반응은 부정하는 단계.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설마 나에게 죽음이 다가왔겠느냐? 라는 그런 반응입니다. 이건 뭐 정말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죠. 그 받아들일 수가 없죠. 자기 자신이 몇 개월 뒤에 죽는다는 사실이. 그다음에는 분노의 단계입니다. 부정하다가 아니 이게 아니거든요. 이게 분명히 걸린 거 같거든요. 이럴 때는 부정이에요. 아니다. 왜 내가 죽어야 되느냐? 왜 내가. 와이 미죠. 이러면서 분노를 터트리게 됩니다. 특히 가족과 의료진에게 이런 분노를 터트리게 됩니다. 이때 가족들은 그것을 되받아치면 안 되겠죠. 네. 좀 초점을 옆으로 가게 한다든가, 혹은 위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잘 달래야 할 것입니다.
자~ 이렇게 분노의 단계가 지나가면 그다음엔 타협을 하는 단계에요. 분노해봐야 안 되거든요. 화를 내서 풀릴 문제라면 매일 화내고 살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안 된다는 것을 본인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타협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입니다. 타협을 하는 단계. 바겐하는 거에요. 흥정을 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몇 달만 더 살게 해주신다면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 또 혹은 이번 여름까지만 살게 해 준다면 제가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겠습니다. 이런 얘기라든가. 아니면 딸의 결혼식 때까지만 좀 살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의 흥정. 타협을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 단계까지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네 번째죠. 우울증에 걸리는 단계입니다.
환자가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고 느낄 때 빠지는 감정이 바로 이 우울증과 절망입니다. 그렇죠. 이제 도저히 어떤 짓을 해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큰 포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조금 단계가 지나면 우울한 우울증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 단계까지 오도록 얘기할 때 환자가 불치병이 걸렸다는 것. 간암 말기다. 폐암 말기. 이런 암에 걸렸다고 얘기를 과연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라는 문제가 항상 그 대두됩니다. 물론 죽음학회에서의 모범답안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경우는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왜 그런 고하니 어차피 죽는데 말이죠. 만일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얘기해주면 말이에요. 그다음부터는 우울 단계로 빠지게 됩니다. 자포자기 상태로 빠져서 병세가 순간적으로 악화돼서 그냥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대쪽에서 보면 그렇게 해서 말을 안 해가지고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말을 해서 죽음을 찬찬히 준비하게 하는 게 더 본인에게는 좋은 것이다. 이런 의견을 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만일 그런 말기 환자라면 진실을 듣고 그다음에 준비를 하고 그런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죠. 이것은.
네 번째 단계 그렇게 끝나고. 다섯 번째 단계는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입니다. 어쩔 수 없죠. 이제는 수용을 해야죠. 네. 여기까지가 다섯 번째 단계인데요, 여기에 알폰스 데켄 신부는 한 단계를 더 추가를 시켰었어요. 여섯 번째 단계로 기대를 하고 소망을 갖는 단계. 뭔고 하니 사후생의 존재를 알려주고, 또 죽음을 착실히 준비할 수 있게하고. 이런 기대와 소망, 희망을 갖게 해주는 단계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바로 이 단계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만일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다면 진실을 듣고 그다음에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두 번째 목표입니다. 죽음 교육이 필요한 두 번째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준비시키고,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건 뭐 지금까지 많이 얘기 돼 왔던 거죠.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가. 이런 것들을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많은 정보를 가지고 알려줘서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거를 말합니다.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 목표는 슬픔, 혹은 애도 교육입니다. 자~ 제가 지금까지 한 열 번 정도의 강의를 하면서 애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조금 좀 전문적이고 그럴까 봐 말씀을 안 드렸는데 사실은 이 주제가 죽음 앞에선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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