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_죽음이야기

11.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8월 21일 방송 (12:03)

Buddhastudy 2012. 2. 26. 20:45

  출처: 유나방송

. 안녕하십니까. 최준식입니다. 이제 죽음학 전반에 대해서 말씀을 다 끝내고, 이 번 시간과 다음 시간, 두 시간에 걸쳐서 한국인의 죽음관에 대해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아마 이제 어느 정도 짐작은 하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 우리 한국인들은 과연 어떤 세계관, 가치관을 갖고 있을까요? 죽음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로 대단히 현세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죽음관에 대해서 아주 현세적인 세계관, 그러니까 죽음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여기 삶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신봉했던 종교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요.

 

그렇습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은 대부분 종교에 큰 영향을 받고 형성이 됩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과연 어떤 종교가 많이 영향을 줬을까요? 유나방송이 불교방송입니다마는 안타깝게 한국 사람들의 의식구조형성에는 불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건 이유가 있죠. 그것은 왜 그런가 하니요. 불교는 조선시대 때 박해를 받으면서 사회에 실세자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샤머니즘과 같이 변두리 종교처럼 되게 된 거에요. 그 자리를 유교가 꿰어차고 들어오게 되죠. 만일에요, 조선도 고려처럼 불교가 국교였다면, 조선 후에 혹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굉장히 달랐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집에서 제사 안 지냅니다. 당연히 제사지내는 것은 불교 절에 가서 하는 것이고. 또 남녀차별도 이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남녀차별이 가장 덜한 종교죠. 세계적 종교 가운데서. 어떻든 유교가 조선의 주 이데올로기가 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유교에 절대적인 영향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문제 관해서는 제가 다른 책에도 썼습니다만. 좌우간 우리는 우리가 기독교인이다. 몇 대째 기독교인이다. 불교 같은 경우는 몇 십대가 불교인이겠죠. 이게 소용이 없습니다. 속으로 들어가면 전부 유교인입니다. 항상 나이 따지고, 아래위 따지고, 직급 따지고 이런 것들. 남녀 구별하고. 이거야 말로 유교의 기본적인 모습들이죠.

 

~ 그런데 유교적인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유교적인 모습 그 핵에는 무속적인 거,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제가 여기는 죽음학이라서 샤머니즘 얘기는 별로 못 했습니다마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샤먼의 DNA가 존재하는 거 같아요. . 그건 나중에 제가 시간 있으면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이 샤머니즘은 한국 역사 동안에 한 번도 절멸되어 본적인 없는 가장 한국인과 가까운 종교였습니다. 상층종교가 불교가 되든, 유교가 되든, 기독교가 되든, 그 밑에는 샤머니즘으로 점철 돼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이 무당들의 파워를 알기 위해서 무당들이 얼마나 많은 걸 알기 위해서 뭐 그렇게 힘들일 것도 없습니다. 시내 곳곳에 무당집들이 있고. 또 일간 스포츠 신문 보면 적어도 두면 이상 하단에 전문 광고가 나옵니다. 버스에도, 의자카바에도 전문 광고가 나옵니다. 하다못해 모 TV 프로그램에도 무릎팍도사. 세팅장면이 무당집인 경우가 나옵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샤먼적인 것들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 깊게 취면되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샤머니즘과 유교의 강한 영향이 있는데, 이 두 종교가 과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느냐? 굉장히 현실적인 거죠.

 

이 두 종교를 내세관이 없습니다. 곧 다시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런 가치관의 영향 때문에 제가 누누이 얘기를 했지만, 불치병에 걸렸을 때 한국인들은 많은 경우에 끝까지 삶에 집착을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건 뭐 문화적으로 전승돼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빠져나갈 도리가 없어요. 소수의 불교인, 기독교인들만이 내세를 믿고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삶의 집착을 하게 됩니다. 이생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고, 무리한 항암치료를 하게 되고. 그래서 나중에 혼수불성이 되요. 불성이 되고, 황망하게 본인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뭐 환자를 수발하는 가족들 경우도 마찬가지죠. 많은 돈을 써야 되기 때문에 집 팔아서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고, 전셋집에 살던 사람은 더 나쁜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가야 되고, 수발하다 집이 망하고 말이죠. 그런가 하면 온 가족이 환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모님들 마지막 가는 길에 효의 논리죠. 참 숭고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러면서도 또 나름대로 현실적인 그 문제가 많이 있는 것을 또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항상 그럽니다. 한국인들은 죽음에 관한 한 병원에 중환자실에서 내팽개쳐져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 그러면 과연 어떤 세계관이 있길래 이 샤머니즘이나 유교에서 말이죠. 이렇게 됐을까? 먼저 샤머니즘을 볼까요? 무속에서는 기본적으로 죽음은 한스러운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영은 저승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헤매게 되죠. 그래서 그 한 때문에. 사실 이전에 한없이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특히 여성들, 얼마나 고생하다가 죽었을 것이고, 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이 많이 걸리고. 여러분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1900년도 초에 얼마인 줄 아십니까? 25세밖에 안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아이를 낳다가 많이 죽기 때문에. 반타작이라는 얘기를 하죠. 그래서 그렇게 죽은 아이들이 평균을 깎아 먹기 때문에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참~ 60 넘게 살기가 힘든 그런 시대였죠.

 

그렇게 죽으니까 많은 경우에 한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그 한 때문에 저승을 못 갔다. 이렇게 믿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친지를 못살게 된다. 사실은 못살게 굴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그래요. 무당 얘기를 들어보면 죽은 조상들이 자기가 힘드니까, 자손들보고 굿을 해달라고 와서 쓰다듬는다나요? 영의 상태로 와서. 그게 그들은 쓰다듬는 거지만 당하는 자손들은 액이 되가지고 나쁜 일을 당하는 거에요. 병이 들기도 하고 나가 죽기도 하고. 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건 그쪽 얘깁니다. 제 얘기가 아니고. 그래서 천도재를 지내게 되죠. 물론 이제 깨끗하게 산분들한테는 안 지냅니다. 다 지내는 건 아니에요. 객사를 하거나 불의의 사고, , 이런 거를 어려서 죽거나 이런 경우에.

 

이때 하는 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진오귀굿. 새남굿. 서울에서는 새남굿이라 그러고요. 전라도에서는 씻김굿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서울지방 경기지방의 굿을 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바리데기 공주, 바리공주죠. 서울 지역 무당의 시조입니다. 여기 재미난 얘기가 많습니다만 뭐 다 생략해야 되겠습니다. 바리공주가 끌고 저승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문제를 없애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든 문제는 제가 굿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문제는 그것은 아니고. 문제는 샤머니즘의 저승관이 희박하다 이거에요. 굳이 샤머니즘. 무속에 저승관이 있다면 이것은 불교의 영향입니다. 무당들이 칼산지옥 한빙지옥 이런 얘기하거든요. 칼산지옥은 칼이 나 있는 그런 산에 칼이 있어서 거기 매일매일 찔려가지고 죽었다 또 살아나서 또 찔리고. 이런 거. 한빙지옥은 아주 추운 곳에 홑겹만 입고 덜덜덜 떠는 거.

 

이런 식의 지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다 불교에 나오는 겁니다. 이 지옥에 대한 유명한 그림이 있죠. 통도사의 극락전인가요? 거기 가면 많이 인용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승이 어디 있는지 별 관심이 없다는 거에요. . 이거를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 속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샤머니즘도 그렇지만 한국인도 그렇습니다. 저승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무당들에게 대문 밖이 저승이다. 아니면 뭐 길모퉁이 돌아서면 저승이다. 이런 거에요. 저승이라는 게 기독교나 불교처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승에 붙어서 빌붙어서 존재는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한 거에요. 부차적인 공간이에요. 중심은 이 승에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