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동훈스님_일대시교

(동훈스님의 일대시교) 7회 수행의 목적은 4가지 눈을 뜨는 것

Buddhastudy 2016. 12. 12. 15:22

 


 

그 다음에 여기서 또 중요한 게 나오는데, 일체동관분, 18에 나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은 눈을 몇 개 가지고 있어요? 부처님은 5눈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무슨 눈을 가지고 있어요? 육안, 색의 세계요, 공성의 세계다. 제가 이걸 상당히 중요시 얘기하는 건데, 두 눈의 보면 색의 세계, 분별의 상이 보인다. 나누어서 본다.

 

너는 날씬하고 나는 안 날씬하고. 전부 분별상, 우리는 분별 때문에 부처님 못 본다는 거예요. 분별상 때문에. 이미 전부 그런 건데, 내 경험에 나타난 모든 세계인데, 분별을 나타내어서 부처님 못 본다. 이게 색의 세계에요 색즉시공할 때 색의 세계에요.

 

그런데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은 공성의 이건 공의 세계에요. 요거 잘 이해가 가요? 조금? 그런데 여기는 눈을 감고도 보는 세계에요. 부처님 당시에 아나율존자, 부처님한테 너무 졸다가 법문할 때마다 졸아서, 잠 안자고 석달 열흘 공부하다가 눈이 멀었어요. 그런데 눈이 멀었는 데도 공부를 많이 해서 천안이 열렸어. 그래서 천안 제일이 아나율존자야. 아누루따라고도 그러고. 천안제일 아난제일.

 

그런데 눈을 멀어서 바늘귀는 못 껴. 그런데 가사가 낡아서 이걸 꿰매야 되겠는데 바늘귀를 꿰매야 꿰맬 수 있어. 바늘귀는 못 껴. 꿰매기는 거는 대충 꼬매도. 그러니까 누가 복을 짓고 싶은 사람은 바늘귀를 껴줘라. 바늘귀를 끼워줄 사람이 없느냐 ?”라고 물으니까 내가 바늘귀를 끼워주마.” 그러면서 부처님이 바늘귀를 껴줍니다.

 

그러니까 아난존자가 부처님이시여, 부처님 같이 복이 많으신 분이 무슨 복을 더 지으시려고 바늘귀를 뀌어준다고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나보다 복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 세상에 없느니라.” 이 세상 살아가는 건, 여러분들이 법문을 들이 여기 올 수 있는 건강과 시간과 모든 것을 준 것도 복력으로 살아가는 거요. 이 세상은. 복력으로 살아간다.

 

이 세상은 우리는 업력으로 살아가지 마라. 내가 지난 생부터 과거생에 지은 업, 습관을 가지고 그 힘으로 살아가지 마라. 끄달려서. 이건 윤회의 삶이다. 복력으로 살아가야 법문 들을 수 있고, 법문을 들어도 이해하고, 실천해서 내가 행복을 얻고, 복이 있어야 성불도 하고, 복력으로 살아가야 돼. 모든 게. 그러면 어디가도 미움도 안 받고 전부 칭송받고, 모두 다 좋아하고 승진도 잘되고 다 그래.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말씀은 시사하는 게 뭐요? 나만큼 복짓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라는 얘기. 그래서 여러분들 복을 많이 지으시라는 거요. 복을. 복을 안 짓고는 안 되누만. 그래서 이 천안제일이 아나일 존자 얘기고, 전부 같은 얘기인데 불안이 제일 높은 단계인데, 우리는 이 눈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되는데, 이게 안목이에요. 세상을 보는 안목.

 

여기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보는 세계에서 끝나. 그 세계만 봐. 거기서 분별하면서 시비하고 싸워. 많다 적다 크다 작다 예쁘다 안 예쁘다. 분별하면서 지지고 볶고 살아. 아침이 웃고 저녁에 울고. 그런데 이 세계는 안목이 넓어져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못 뛰어나와서 세상을 보는 세계야.

 

그래서 금강경에 반야지혜는 이 눈을 뜨라고 공부하는 거야. 맨날 상을 짓고 아만부리고, 나는 나고, 너는 너고, 많고 적고, 열등의식 갖고, 그런 거 갖고 살면 육안만 가지고 사는 세계다. 그러니까 두 눈으로 보고 싸우지 마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 내가 이렇고, 너는 그렇고, 감정이 맞고 스타일이 안 맞고 부부간에도 그렇고 가족 간에도 그렇고, 이거 따지지 마세요. 육안만 가지고 사는 세계야.

 

그래서 불교의 진짜 그 가치, 부처님의 가르침의 어느 종교도 볼 수 없는 가치는 수행을 해서, 기도를 해서, 그냥 막연한 믿음과 신앙이 아니고, 이러한 눈을 뜨려고, 이런 안목을 가지라고 천배도하고 삼천배도하고, 대다라니 밤새도록 하고, 관세음보살도 밤새 부르기도 하는 거예요. 이 눈뜨려고.

 

이 눈뜨고 세상을 보니까 너와 내가 구별이 없으니까 걸림이 없고 갈등이 없고, 넓은 마음으로 가니까 너도 좋아지고 나도 좋아지고, 돈 좀 꿔달라 하니까, 한 사람한테 꿔달라니까 10사람이 꿔주고, 우리 아빠가 멀리 가서 쌀을 달라고 하니 10사람이 갖다 주고.

 

이렇게 해서 넓은 지혜의 마음이 생기니까, 반야지혜가 생긴 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기니까 너도나도 다 도와줘. 두 눈 가지고 색에서 판단하니까 너는 너뿐이 몰라. 아상, 너는 너만 알아. 그럼 너의 복과, 너의 지식만 가지고 살아. 도와줄 이유가 없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이 눈을 이렇게 뜨라는 거, 수행의 목적은 이 4가지 눈을 뜨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