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말씀을 들어보면
제가 한참 때 느꼈던 그런 생각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서두에 얘기했잖아요.
뭐 무늬 마을에 대한 시,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저랑 나이 차이도 나지 않으신 분인데
대학 다닐 때는 그분이 직장생활하시다가 대학원을 들어오신 분이라
시를 쓰셨거든요.
근데 저도 문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해주고
그런 거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그게 지금 생각해 보면 문학이 좋아서라기보다
뭔가 거기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마음을 갖고 그 시기를 보내다 보면
자기 나름대로 시도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글도 써보기도 하고, 책도 읽어보기도 하고
철학 같은 경우도 관심을 갖고 하기도 하는데
거기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거는 뭐냐 하면
이상하게 그걸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심도 있게 뭘 배우거나 알아서 어떤 결과를 내서가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어떤 허망한 느낌? 그런 것들이 있어요.
뭔가가 그 찐이 아니라는,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공허한 게
사실은 문학도 결국은
뭔가가 나의 진짜 비껴가 있는 듯한 느낌
그다음에 내 얘기를 쓴다고 하지만 내 얘기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들
그리고 뭔가 틈이 벌어져 있는 듯한 느낌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거의 한계도 보게 되고 그런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 한참 때
그러다가 진짜 운이 좋게 그것도
어떤 기복 불교가 아니라
곧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그 가르침의 정수에 통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을 제시하시는 그런 분을 만나서
딱 얘기 들어보니까 이게 맞는 것 같은 거예요.
사실은 처음에는 여러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인연인지
아주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 딱 알아듣게
“이게 맞구나”라는 거를 알아듣게 한 게
그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에 만났을 때.
사실은 시간에 대한 거는
암암리에 우리가 좀 생활 살아가는 데서 좀 뭐랄까 좀 가깝기도 하고
우리가 우리 삶에서 뭐 거의 맞닿아 있는 부분이죠.
근데 그 시간의 어떤 그거를 알긴 알아요.
시간이 약간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고정관념은 뭐냐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되게 질서정연하게 고정돼 있는 것처럼 여기잖아요.
그래서 우리 초등학교 들어가면 산수시간에 배우잖아요.
과거- 현재- 미래 이 시제 시간
그다음에 영어에도 그런 거 배우잖아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 이런 식으로
한 번도 과거- 미래- 현재 이런 식으로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데도 없고
항상 보면 패턴이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된다, 이 패턴으로
항상 모든 수학이든 뭐 언어든 뭐든 걸 다
이런 구조에서 얘기를 해요.
그러면 우리는 항상 그걸 또 부모님이나 아니면 이웃하고 대화에서도
그런 맥락으로 무의식적으로 시간성을 얘기하죠.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순서성을 그냥 공고하게 이렇게 만들어주는
그런 대화라든지 그 가르침들이 무의식적으로 진행이 되는데
근데 거기서 뭔가 우리가 이상한 걸 느끼잖아요.
이 공부를 안 하더라도 저는 그때 그랬던 것 같아요.
과거라는 게 그게 마음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과거라는 거는 없지 않냐?
그래서 조금 더 우리가 세속에서 지혜롭다고 하시는 분들은
“왜? 과거 때문에 네가 상처받아, 과거는 잊지도 않은데”
이런 얘기를 줄곧 하세요.
근데 그런 말에서
“과거는 그냥 생각이잖아, 기억이잖아”
이 정도는 받아들이게 돼서
거기에서 과거에 대한 어떤 기억이나 상처들이 떠올라도
그냥 그건 좀 가벼운 어떤 경계로서 좀 놓게 되는
그런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잘 기억을 안 하기도 하고
별로 과거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지 않은, 썩 좋지 않은 기억들로 이렇게 점철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도 그랬던 것 같아요.
과거는 잘 기억이 안 났어요.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행복했던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데 “현재가 분명하게 있다”라는
이런 실제적인 그런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당연히 있는 것 같고
그래도 분명히 올 것 같은 그 느낌에서 벗어나서 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처음에 제가 선생님 만나뵀을 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과거도 지금 일어난 기억이고, 생각이고
미래도 지금 일어난 생각이고
사실 현재도 그렇다”
이런 얘기를 딱 하시는데
그래도 제가 이분의 말씀에 뭔가가 있을 거다라는 믿음을 가져서 그런지
아니면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그게 딱 와닿는 거예요.
과거는 그럴 거라는 좀 약간 그런 생각은 있었지만
“당연히 미래도 없는 거네.”
그 순간 딱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과거는 당연히 그런 거고, 미래도 그런 거네.”
그다음에 현재라는 것도
저는 그때는 생각을 돌려서 이해를 했어요.
어떻게 제 나름대로 그 ‘현재가 없다’라는 걸 이해를 했냐면
“봐봐, 과거하고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는데
과거하고 미래가 없는데 어디에 현재가 있어?
그러니까 없는 거야”
이렇게 나름대로 이해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것도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잖아. 그렇죠.
논리적으로.
현재는 어디에 있냐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죠.
우리의 고정관념은 그래요.
근데 과거도 기억이고 미래도 기억이면
현재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과거가 되죠
1분 전 내가 1분 전 과거였죠
1분 전 아까 조금 여기 나오시기 전 5분 전?
없죠? 그렇죠.
미래도 앞으로 5분 후에 무슨 일이 있을까요? 있을까요?
없죠, 생각이죠.
그럼 과거와 미래가 없어 그럼 현재는 어디 있죠?
근데 이렇게 내가 이해는 했죠.
이해에요, 이건 한 생각 굴린 거거든.
근데 그때는 내가 한 생각 굴린 줄도 모르고
맞네.
그러니까 이렇게 한 생각 굴려도 납득이 됐기 때문에
이분의 가르침이 딱 와닿는 거예요.
현재도 없고
물론 과거나 미래도 지금 일어난 생각이다.
여기서 뭔가가
그 공부에 대한 좀 어떤 그런 거 있잖아요.
체인지, 게임체인지 같은 거.
그동안에 할까 말까? 이런 게 있나? 한번 간을 보던 것이
확 들어오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확 들어오는 거예요. 이쪽으로.
진짜네
뭔가 이게 이해의 수준이긴 하지만
딸가닥, 뭔가 체인지가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어떤 인연이거든요.
“진짜 그러네. 이 가르침이 맞네”라는 게
그냥 피부로 확 와닿는 어떤
그것도 이해지만
그런 게 첫 이렇게 선원에 갔을 때
어떤 문답의 세계가 왔던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그냥
“그래 과거도 생각이고 미래도 생각이고
그러니까 뭐 현재도 그 중간에 있으니까 생각이지” 이게 아니라
“진짜 그러네.”
이게 아주 중요해요.
“진짜 그러네”가
우리가 확 이 참여하게 되는 그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되는 거
그냥 멀거니
“무슨 얘기하는지 한번 들어볼까?” 이런 게 아니라
“진짜 그렇구나”
“여기에 뭔가 있어”
이렇게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아니 이건 내 현실을 말하는 거잖아요.
그냥 막연히 그렇게 했던 게 아니라
“진짜 그러네. 그럼 여기 뭔가 있어
내가 지금 알지는 못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와닿지 못하지만
이게 뭔가가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되냐?
내가 발심하는 게 아니에요.
사공이 낚시를 드리우면 딱 낚인다 하잖아요.
물고기가 탁 물면 이렇게 탁 낚아는 기분이야
낚싯바늘이 탁, 내 어떤 여기에 딱 채는 듯한 느낌.
그때부터는 어떻게 돼요?
그냥 몸부림을 치는 것이 공부인 거예요.
그냥 이런 식의 체인지가 돼야 돼요.
왜 그러냐면
이 공부라는 거는
우리가 지식을 늘리는 게 아니라
비유를 하자면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다 바꾸는 작업이거든요.
내가 세상을 봐왔던 시선이
완전히 무너지는 작업인 거고.
어떤 시스템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스템이 있어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이 시스템이 붕괴하는 과정인 거예요.
그럼 그러면 어떻게 돼?
공부가 되면 될수록 딴 사람이 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온몸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온몸으로 자기를
“여기에 뭐가 있어” 그게 뭐 억지로는 되지 않겠죠.
이렇게 참여하지 않으면
자기 변화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없어요.
물론 이것도 인연이긴 하지만
이 가르침이 맞다 싶으면
의도를 했든,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그렇게 그 지경까지 됐든 간에
의문의 싸이든가 궁금함에 목말라진다거나
하여튼간 이렇게 자기를 던지는 듯한 그런 전환이 와야 돼요.
공부에.
그렇게 와야지
머리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발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온 몸과 마음으로 공부하게 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공부는 진짜 안 된다.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그래서 이 몰입이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이 공부에서 몰입.
이게 중요해요.
그 이전에 이 공부에 대한 확신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이게 뭔가 있다”라는 믿음이 중요해요.
그래서 그걸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죠. 믿음.
근데 이게 맞다라는 그 확신 속에서
맞다라 하고 싶으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이 속으로
공부 속으로.
'릴라선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라선공부] 스스로 의심이 끊어지는 공부 (0) | 2024.10.15 |
---|---|
[릴라선공부] 관념의 옷을 벗고 깨어난다 (0) | 2024.10.08 |
[릴라선공부] 법문을 집중해서 들어야 할까요? (0) | 2024.10.07 |
[릴라선공부] 좋고 나쁜 것이 똑같다는 본질적 자각 (0) | 2024.10.01 |
[릴라선공부] 역경계에서 법에 밝아진다 (0) | 2024.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