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스스로 의심이 끊어지는 공부

Buddhastudy 2024. 10. 15. 19:27

 

 

자기 공부가

물론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그 공부를 먼저 하신 분에 의지해서 가긴 하거든요.

 

근데 공부를 해보니까

자기가 의심이 끊어져야 돼요.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자기가 확신이 있어야 돼요.

 

사실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공부가 됐다

이렇게 얘기해 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공부를 하다 보면 진짜 온갖 산전수전 다 겪잖아요.

그 순간에 자기의 인연에 딱 맞닥뜨렸을 때는

그런 경험 안 해보세요?

수많은 책도 읽고, 지식도 있지만

진짜 그게 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살고 죽는 거에 가까운 그런 일이 닥쳤을 때는

그런 생각 나던가요?

사실 안 나거든요.

 

그리고 자기가 뭐 30년을 공부하든, 40년을 공부하든

어느 스님 밑에서 공부하든, 아니면 무슨 선사 밑에서 공부하든

들은 말은 많을 건데

내가 진짜 정작, 내가 살고 죽는 문제 딱 임박했을 때

아무 그 생각 안 나요.

내가 그동안에 몇천 권을 읽은 책도 생각 안 나요.

가만히 있어봐라, 이 상황에 관련된 게 뭐가 있더라?”

이런 생각 안 나요. 절대.

 

그러니까 자기가 이미 살고 있는 그것만이

내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보이는 것이지

내가 저기 어디 가서 또 인정받고 인가받고

공부가 또 몇십 년 됐고 한 거는

그거는 자기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분명함이 뭐냐면

, 이거 확실해이런 말이 아니라

이렇게 안 보고 싶어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자기 거거든요.

 

왜냐하면 그때는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거를

이렇게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그런 것도 떠오르지도 않고, 진짜 절박한 순간에는.

 

그러면 이미 갖추어져 있고

이미 나의 선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오고 가지 않은 것만이

그것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보는 게 아니에요.

 

자기 거가 됐다라는 거는

그런 상황에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어디서 본 것이 떠오르지도 않고

내가 아는 것도 떠오르지도 않고

내가 확실하지 않은 것도 떠오르지 않고

우리가 이게 분명하다, 힘을 얻는다라고 하는 거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는 게

그게 확실한 거거든요.

 

누가 인정하지 않고 이거 맞아하는 그 자기 암시도

더 넘어선 거예요. 그냥

그냥 이렇게 안 보고 싶어

내가 보기엔 저게 진짜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로 보고 싶은데

그렇게 안 보이는 지경이 되는 게 확실한 거거든요.

 

그걸 공부라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우리 그렇잖아요.

이 공부 왜 합니까?

힘을 얻으려고 공부하는 거거든요.

삶에서, 살고 죽는 문제에서.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힘을 얻으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공부를 여러분은 너무 좀 그게 작아요.

포부가 작아.

공부를 어떻게 바라봐야 되느냐?” 어떤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 공부를 통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겠다

아니면 어떤 이익을 보겠다

이거는 아주 작은 욕심인 거예요.

 

이걸 통해서

내가 편안해지겠다, 아니면 뭐 돈을 벌겠다,

아니면 명예가 높아지겠, 아니면 사람한테 알려주겠다.

이건 아주 작은 욕심이고

 

진짜 큰 욕심은 뭐냐면

내가 이거 공부가

내가 진짜 절박한 순간에, 살고 죽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진짜 힘을 얻고 흔들리지 않는 공부를 하고 싶어

이게 큰 욕심 아닐까요?

그게 큰 욕심이거든요.

그렇게 큰 욕심을 내야 되는데.

 

그런 마음 자세면

누가 인정해 주고, 인정하지 않고의 마음이

이게 흔들리지 않아요.

사실은 그리고 가서 묻지도...

 

왜냐하면 절박한 그 문제는 누가 대신 경험해 주지 않거든요.

오로지 자기 혼자 완전 고아예요. 아무도 없어.

자기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때 힘을 쓰려면

누구한테 가서 잠깐 기다려보세요. 어디 가서 물어보고

이게 공부가 됐나 안 됐나 힘을 얻었나 물어보게

이게 안 돼요.

아무도 없는데 누구한테 물어볼까요?

그 사람이 내 삶을 대신해 주지 않는데.

 

저도 비슷했어요. 초기에는.

뭔가 공부 잘한다고 얘기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고

막 사람들에게 뭔가 어떤 팁을 힌트를 줘서

뭔가 그 사람이 깨어날 수 있는 인연이 되면

너무너무 너무너무 뭔가 뿌듯하고

내가 공부가 잘 돼가고 있구나이렇게 생각했는데

 

공부 체험을 하고 이렇게 지나다 보니까

진짜 자기가 큰 경계를 만나게 되잖아요.

근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그런 것들은.

그리고 오롯이 자기 혼자 그걸 경험하고 있어

가까이 있는 사람도 그걸 경험 못 해요.

 

가족도요, 그럴 때는 남입니다.

솔직히 솔직히 아니라 그 팩트라 이건

그 사람들이 사랑이 없고, 뭐 그런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현실이 그런 거예요, 현실이.

가족도 남인데 그러면 다른 사람 남이 아니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오로지 우주에 나 혼자만 있는 외로움이 있어요.

오로지 혼자 그걸 견뎌내야 되는데

그때 누가 인정해 주고, 점검받고 이거는

진짜 아무런 힘이 안 되거든요.

 

공부하려면 그렇게 해야 돼요.

그래야지 진짜 우리가 실질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나는 욕심이 많은 거라고 보거든.

 

대원력, 대법에 밝아지는 그거는

누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가 아니라

내 스스로 완전히 의심이 끊어져야 돼.

 

그리고 남한테 묻는다고 해서 그 의심이 해소되지 않아요. 정말.

그건 그래요.

남이 인정해 줘서 그 의심이 해소되지 않는다니까.

그거 한번 해보세요. 공부를 해보시라고.

 

그래서 공부 모임 하다 보면요.

어느 스님한테도 인가받았다, 몇십 년 공부했다

그런 분들은 또 다 가서 인가받고 싶어서 막 돌아다녀요. 절에.

그래서 몇십 분한테 인가받았다 해도

자기 의심이 남아있으면 아무 힘이 없어요.

 

공부는 그렇게 해야 저는 공부라고 보거든요.

그렇게 그런 마음이

자기 공부를 진짜 진지하게 보게 되고, 굳건하게 해나가게 해요.

그런 욕심을 부려야지, 욕심을 그렇게 해야죠. 내야죠.

포부를 크게 가지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 자기를 보지

누가 나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보는 거는 사실은...

물론 이제 공부가 좀 되신 분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고, 그거를 무시하지 않게 되지만

결국은 그거는 두 번째의 어떤 점검인 거고

첫 번째 점검, 가장 중요한 점검은 자기 점검인 거예요. 자기 분명함.

 

그런 어떤 좀 자기 공부에 자기가 그 어떤

이런 면에서는 자기가 주체가 돼야 되는 거예요.

자기 생각을 믿으라는 게 아니라.

의심이 끊어졌느냐?”

내 스스로 확실하냐?”

이것을 자기 공부에 가장 중심적인 어떤 점검?

아니면 중심으로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해보십시오.

절대 남이 인정해 준 거요?

절대 힘 안 됩니다.

내 문제 그거 해결 안 해져요. 안 돼요. 그거. 힘 안 돼요.

 

여기 참여해서 제가 여러 가지 얘기 중에

긍정적인 신호로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게 힘 안 됩니다.

자기 분명함이 힘이 되는 거지.

 

공부를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하면은

공부될 때까지 하거든요.

자기 의심이 떨어질 때까지.

안 돼도 무조건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 얘기를 자주 하는데

내가 공부가 됐는지 안 됐는지

그 가장 굵직한 점검 포인트는 뭐냐 하면

내가 죽는 순간

의심이, 다른 마음이 딴 게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일어나겠느냐? 일어나지 않겠느냐?

그거를 보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점검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내가 흔들리느냐?

그럼 아직 공부 부족한 거예요.

 

마음이 뭐가 흔들리느냐?

두려움이나 공포가 안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오롯이

그것만 있고, 흔들림이 없고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헤매다니지 않을 수 있느냐? 그 순간.

오롯이 그 경험만 온전하냐? 그거밖에 없느냐?

 

근데 공부가 부족하면 뭐가 있는 것 같아요

막 이거 찾고 저것 찾고, 이래도 되나?

누구 말 듣고 막 흔들리고.

 

마음이 고요하지가 않아, 그냥 막 흔들리는 거야.

이런가 저런가, 이래도 되나 저래도 되나.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고 막 휘둘리는 거지.

그게 지옥이지 뭐 딴 게 지옥이겠습니까?

 

괴로운 게 지옥이 아니에요.

마음이 막 정신없이 흔들리는 게 그게 지옥인 것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그런 것이지.

 

근데 그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 상황이

그게 사실은 번뇌인 거지.

진짜 온전히 그 경험 요거 하나밖에 없고, 이것밖에 없으면

그냥 고요한 거예요, 그게.

딴 게 고요한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우리가 경전이나 어록이나

아니면은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 있잖아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 가르침이 온전하냐?

 

그러니까 색이라는 건 두렵고 힘들어.

근데 그게 공임이 온전하냐?

그게 색이 안 일어나는 게 고요가 아니라

그 색이 공인 게 온전한 고요인 거거든요.

 

그게 진짜 이것밖에 없느냐?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그 두려움이 온전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이냐?

그게 고요한 거예요.

딴 게 고요한 게 아니라

 

이건가? 저건가? 이게 없어요.

그냥 그것이 오롯이 이것이냐

이게 공인 것이죠.

 

그 경험의 공이냐?

이 경험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냐? 이것이냐?

근데 맞나? 틀리나? 이게 다가? 아닌가? 뭐가 있나?

그게 고요하지 않고 시끄러운 거죠.

 

그런 좀 결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겪는 어떤 혼란이나 이런 것도요 크게 보게 되죠.

뭐 공부가 아직 부족해서 이렇구나, 그냥 해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물론 중간중간에 자꾸 걸리거나 막힌 거 빨리빨리 이렇게 얘기해서 놓아버리면

빨리 우리가 안목이 밝아지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그래서 또 한 번의 재발심의 계기가 돼야 되고, 이런 기회들이.

그다음에 재발심이라는 건 뭐냐?

진짜 내가 큰일을 겪었을 때

아무 일 없을 수 있을 만큼 내가 밝아졌고 힘을 얻었느냐?

이 관점에서 공부를 바라보셔야 된다.

 

그러면 이런 마음이면 공부요?

다 됩니다.

될 때까지 가는 거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 하게 되니까

안 될 이유가 없죠.

그래서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이게 이겁니다, 저겁니다막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뭐냐 하면

자꾸 이 사람의 공부하는 마음 태도 이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공부 그때그때 얘기해도 크게 나아질 수가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