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너무 크게 한다고? 크게 하고? 그래서?
으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요. 지금보다 내가 말을 더 빨리해야지. 너무 늦다. 더 빨리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해보세요. 지금 말하는 게 빠르지 않아요. 괜찮아요. 목소리 큰 게 좋아요.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내가 왜 ‘더 빨리하라.’ 그러냐 하면 자기보다 말 더 빠른 사람하고 만나면 자기 말이 빠른 걸까? 늦은 걸까? 자기보다 더 빠른 사람하고 자기가 말을 더 빨리 하는 걸 목표로 하면 지금 말이 늦어요? 빨라요? 늦어요. 그래서 늦고 빠른 건 본래 없어요.
두 사람이 이렇게 길을 가는데 엄마는 뒤에 가고 아빠는 앞에 가. 그럼 아빠는 뭐라고 그럴까? 앞에 가면서 “뭐하노? 빨리 안 오고. 늦어.” 이러고. 뒤에 가는 엄마는 “지금 뭐하러 저렇게 빨리 가노?” 이래요. 빠르고 더딘 게 없고 다 자기 기준으로 얘기해요. 누가 우리 어린이보고 말 빠르다고 누가 자꾸 그렇게 말해요? 선생님이 그래요? 엄마가 그래요? 엄마가 문제요. 엄마가. 괜찮아요. 내가 보니까 그 정도 말하는 거 보니까 괜찮아요. 더 빨리 한 번 해봐요. 내가 얼마나 빠른지 보게.
긴 글을 읽을 때 너무 빨리 읽어요? 괜찮아요. 어린애가 말이 늦는 게 문제지 빠른 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어린애가 영감처럼 천천히 하면 그거 문제요. 어릴 때는 빨라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느려져요. 스님도 옛날에 말이 굉장히 빨랐어요. 그런데 요즘 좀 이렇게 입이 잘 안 돌아가요. 빨리하고 싶어도. 가끔 헛 단어도 나오고. 괜찮아요. 스님이 ‘괜찮다.’ 했으니까 괜찮아요. 됐어요? 안 괜찮아요? 또 물을 거 있으면 물어봐요.
Q2
그런데 죽으면 어떨까? 하는 사람은 산 사람만 그런 걱정하고 죽을 때 되면 그런 걱정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 아니 그러고 죽을 때 되면 그런 걱정을 대부분 안 하더라고. 아프면 “아야야야야야.” 이러지. “아이고 내 죽으면 어떻게 하노?” 이런 사람 내 못 봤어요. 죽는 사람 많이 봤는데. 그러니까 ‘아이고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아직 죽을 때가 멀었다는 거요. 그러니까네 그거는 생각에서 괴로운 거지 죽음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자기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괴로운 거지. 죽음하곤 아무 관계 없어요.
죽음은 그냥 준비할 것도 없고, 태어날 때 자기가 준비해서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그냥 툭~ 튀어나온 거지. 그런 것처럼 죽을 때도 어느 날 쑥 가버리는 거요. 아무 걱정할 거 없어요. 준비할 것도 없고. 앉아 죽을까? 서서 죽을까? 그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죽는 주제에 앉아 죽으면 어떻고 서서 죽으면 어떻겠어요?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걱정은 죽음하고는 관계없이 죽음 자체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 생각을 자꾸 하니까 걱정이 되는 거요.
안 하면 되요. 그러면 고개를 흔들고 그냥 딴생각을 하면 돼요. 그건 해결책이 없어요. 굳이 내가 설명해줄 수는 있는데, 그런 설명을 듣는다고 그게 해결이 안 된다. 이 말이오. 듣는다고. 예를 든다면 여러분, 바다에 가서 보면 파도가 출렁거리잖아요. 그때 파도가 가만히 보면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죠,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거의 다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잖아. 그죠. 분명히 생기고 사라지잖아요.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볼 때는 생기고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만 출렁거린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죠.
그러기 때문에 요걸 작게 보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이러는데, 크게 보면 나고 죽는다고 할 게 없어요. 그냥 변화만 있어요. 변화만. 바닷물이 출렁거리듯이 삶의 큰 물결들이 출렁거리고 있는 거요.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우리끼리 보니까 10년 더 살고 20년 더 살고 굉장한 거 같지마는, 큰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찰나에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거요. 하루살이 아시죠?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못사니까 하루살이 아니에요. 그죠?
하루살이가 오후 4시에 죽으면 40살까지 죽는 거고, 5시에 죽으면 50 살다 죽는 거고, 밤 10시에 죽으면 100살 살다 죽는 건데. 자기가 뭐 오후 4시까지 살았든 저녁 8시까지 살았든 얼마밖에 못살았다? 하루밖에 못사는데 그거 뭐 몇 시간 더 살면 어떻고? 덜 살면 어떻고 난리를 피우는데 크게 상관 아니듯이. 큰 눈으로 보면 좀 더 살고 덜 살고 중요한 거 아니에요. 예수님은 33살까지 살다 갔는데도 영향이 컸고, 이차돈은 22살에 죽었는데도 컸잖아. 그죠?
그런데 뭐 어떤 사람은 나이가 90이 돼서 죽어도 뭐 아무 영향도 없고 그러니까. 그거 크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것도 없어요.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못산다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없어요. 우리가 사는 데까지 그냥 사는 거요. 사는 데까지. 그러니까 일부러 죽으려도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수면제 사러 가야지. 안 그러면 *사와가지고 기둥에다 묶어야 목 걸어야지. 얼마나 귀찮아요. 그게.
살아있을 때는 사는 데까지 살고. 또 반대로 죽으려 그럴 때 난리를 피우면 그것도 힘들어요. 사는 거 죽이려도 힘들고. 죽어가는 거 살리려도 힘들고.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는 그냥 사는 게 쉽고. 때가 되면 죽는 게 쉽고. 그래요. 쉽게 생각하면 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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