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39회 말투, 죽음

Buddhastudy 2013. 2. 14. 22:17

출처: BTN

 

말을 너무 크게 한다고? 크게 하고? 그래서?

으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요. 지금보다 내가 말을 더 빨리해야지. 너무 늦다. 더 빨리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해보세요. 지금 말하는 게 빠르지 않아요. 괜찮아요. 목소리 큰 게 좋아요.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내가 왜 더 빨리하라.’ 그러냐 하면 자기보다 말 더 빠른 사람하고 만나면 자기 말이 빠른 걸까? 늦은 걸까? 자기보다 더 빠른 사람하고 자기가 말을 더 빨리 하는 걸 목표로 하면 지금 말이 늦어요? 빨라요? 늦어요. 그래서 늦고 빠른 건 본래 없어요.

 

두 사람이 이렇게 길을 가는데 엄마는 뒤에 가고 아빠는 앞에 가. 그럼 아빠는 뭐라고 그럴까? 앞에 가면서 뭐하노? 빨리 안 오고. 늦어.” 이러고. 뒤에 가는 엄마는 지금 뭐하러 저렇게 빨리 가노?” 이래요. 빠르고 더딘 게 없고 다 자기 기준으로 얘기해요. 누가 우리 어린이보고 말 빠르다고 누가 자꾸 그렇게 말해요? 선생님이 그래요? 엄마가 그래요? 엄마가 문제요. 엄마가. 괜찮아요. 내가 보니까 그 정도 말하는 거 보니까 괜찮아요. 더 빨리 한 번 해봐요. 내가 얼마나 빠른지 보게.

 

긴 글을 읽을 때 너무 빨리 읽어요? 괜찮아요. 어린애가 말이 늦는 게 문제지 빠른 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어린애가 영감처럼 천천히 하면 그거 문제요. 어릴 때는 빨라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느려져요. 스님도 옛날에 말이 굉장히 빨랐어요. 그런데 요즘 좀 이렇게 입이 잘 안 돌아가요. 빨리하고 싶어도. 가끔 헛 단어도 나오고. 괜찮아요. 스님이 괜찮다.’ 했으니까 괜찮아요. 됐어요? 안 괜찮아요? 또 물을 거 있으면 물어봐요.

 

 

 

Q2

그런데 죽으면 어떨까? 하는 사람은 산 사람만 그런 걱정하고 죽을 때 되면 그런 걱정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 아니 그러고 죽을 때 되면 그런 걱정을 대부분 안 하더라고. 아프면 아야야야야야.” 이러지. “아이고 내 죽으면 어떻게 하노?” 이런 사람 내 못 봤어요. 죽는 사람 많이 봤는데. 그러니까 아이고 죽으면 어떡하나?’ 이런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아직 죽을 때가 멀었다는 거요. 그러니까네 그거는 생각에서 괴로운 거지 죽음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자기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괴로운 거지. 죽음하곤 아무 관계 없어요.

 

죽음은 그냥 준비할 것도 없고, 태어날 때 자기가 준비해서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그냥 툭~ 튀어나온 거지. 그런 것처럼 죽을 때도 어느 날 쑥 가버리는 거요. 아무 걱정할 거 없어요. 준비할 것도 없고. 앉아 죽을까? 서서 죽을까? 그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죽는 주제에 앉아 죽으면 어떻고 서서 죽으면 어떻겠어요?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걱정은 죽음하고는 관계없이 죽음 자체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 생각을 자꾸 하니까 걱정이 되는 거요.

 

안 하면 되요. 그러면 고개를 흔들고 그냥 딴생각을 하면 돼요. 그건 해결책이 없어요. 굳이 내가 설명해줄 수는 있는데, 그런 설명을 듣는다고 그게 해결이 안 된다. 이 말이오. 듣는다고. 예를 든다면 여러분, 바다에 가서 보면 파도가 출렁거리잖아요. 그때 파도가 가만히 보면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죠,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거의 다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잖아. 그죠. 분명히 생기고 사라지잖아요.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볼 때는 생기고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만 출렁거린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죠.

 

그러기 때문에 요걸 작게 보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이러는데, 크게 보면 나고 죽는다고 할 게 없어요. 그냥 변화만 있어요. 변화만. 바닷물이 출렁거리듯이 삶의 큰 물결들이 출렁거리고 있는 거요.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우리끼리 보니까 10년 더 살고 20년 더 살고 굉장한 거 같지마는, 큰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찰나에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거요. 하루살이 아시죠?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못사니까 하루살이 아니에요. 그죠?

 

하루살이가 오후 4시에 죽으면 40살까지 죽는 거고, 5시에 죽으면 50 살다 죽는 거고, 10시에 죽으면 100살 살다 죽는 건데. 자기가 뭐 오후 4시까지 살았든 저녁 8시까지 살았든 얼마밖에 못살았다? 하루밖에 못사는데 그거 뭐 몇 시간 더 살면 어떻고? 덜 살면 어떻고 난리를 피우는데 크게 상관 아니듯이. 큰 눈으로 보면 좀 더 살고 덜 살고 중요한 거 아니에요. 예수님은 33살까지 살다 갔는데도 영향이 컸고, 이차돈은 22살에 죽었는데도 컸잖아. 그죠?

 

그런데 뭐 어떤 사람은 나이가 90이 돼서 죽어도 뭐 아무 영향도 없고 그러니까. 그거 크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것도 없어요.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못산다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없어요. 우리가 사는 데까지 그냥 사는 거요. 사는 데까지. 그러니까 일부러 죽으려도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수면제 사러 가야지. 안 그러면 *사와가지고 기둥에다 묶어야 목 걸어야지. 얼마나 귀찮아요. 그게.

 

살아있을 때는 사는 데까지 살고. 또 반대로 죽으려 그럴 때 난리를 피우면 그것도 힘들어요. 사는 거 죽이려도 힘들고. 죽어가는 거 살리려도 힘들고.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는 그냥 사는 게 쉽고. 때가 되면 죽는 게 쉽고. 그래요. 쉽게 생각하면 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