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러면 자기는 어느 게 좋겠어요? 시동생이 잘 살고 자기 남편이 못살아서 맨날 시동생한테 얻어먹으러 가는 게 낫겠어요? 우리 남편이 살고 시동생이 못살아서 이렇게 얻어먹으러 오는 게 낫겠어요? 둘 중에 하라 그러면 어느 거 하겠어요? 네? 예. 그러니까 불만 가지지 마세요. 두 형제 중에는 하나는 잘살도록 하나는 못살도록 인연이 지어져 있어가지고. 자꾸 그렇게 시동생이 와서 폐 끼친다고 불만하면 입장이 바뀌어 져요. 입장이 바뀌는 게 낫겠어요? 이대로 가는 게 낫겠어요?
으음. 동생이 아니오. 이거는. 동생이 아니고 인연이 아들 인연이에요. 그러니까 아들 하나 더 둔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네. 동생이라고 하지마는 남편 마음에는 이 동생이 엄마가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책임감같이 그렇게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본인은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러니까 그냥 놔두세요. 그러니까 마음은 아들 같고 생각은 동생이고, 그래서 이게 지금 본인도 헷갈리는 거요. 본인도 지금 자기 인연을 잘 몰라가지고. 아시겠어요? 아들 같으니까 안쓰러워할 때는 누구같이 느껴지고? 아들처럼 느껴지고. 꼬라지 볼 때는 누구같이 느껴진다? 동생같이 느껴지고. 그래가지고 왔다갔다 왔다갔다하는 거요.
그렇다고 그러면 동생이 나가가지고 그러면 거지같이 살도록 내버려둘 수 있느냐? 못 그럽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또 와서 다 뒷바라지 아들같이 해주느냐? 그것도 못해요. 왜? 동생하고 아들 이중이 돼 있어서. 그러니까 마음은 아들같이 돼서 잘못되면 아픈 마음은 아들같이 느껴서 못 버리고, 생각은 이게 다 큰 게 동생이 저러니까 자꾸 또 시비하고. 그러니까 부인이 남편한테 “아이고 당신 큰아들인데 그냥 놔두소. 마 놔두소.” 이렇게 자꾸 다독거려요. “우리 큰아들인데 키웁시다.” 이렇게.
아들이면 어떡하겠어? 그래도 키워야지. 갖다 버릴 수 없잖아. 그렇게 오히려 기도를 해주면 자립을 해요. 이걸 쳐내지 말고 ‘아들이다.’ 생각하고 이렇게 다독거리면 마음이 좀 안정이 돼요. 왜 그러냐 하면 엄마 일찍 죽고 마음을 못 잡아서 그래요. 그러니까네, 동생도 형님인데 형님이면서 동시에 아버지 같은 거요. 자기도 모르게. 아시겠어요? 거긴 안가고 이 집에만 붙어있죠. 인연이 그래서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어떻게 해. 아들 하나 더 있다. 자기 집에 아들이 몇이야?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러니 ‘큰아들 하나 더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키우세요. 알았어요?
그냥 앞으로 계속 이렇게 돼요. 어차피 계속 이렇게 되면 이거 갖고 시비하며 싸우는 게 나아요? 그냥 인생이 이런가 보다. 아니고, 내가 안 얻어먹고 그래도 내가 먹이는 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낫겠어요. 감사한 마음을 내야 돼. 이걸 한탄하면 안 돼. 알았어요? 어떤 분이 이렇게 나한테 물었어요. “스님요.” 어떤 보살님이. “왜요?” “제가 팔 남매 맏이에게 시집을 갔거든요.” “그래서?” “제가 7명 시누이 시동생을 다 시집 장가를 보냈어요. 20년간 뼈 빠지게 그렇게 했는데 그랬으면 이제 다 자기들이 살아야 되는데 아직도 큰집만 쳐다보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요.” 이래.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안 쳐다봤으면 좋겠어요?” “예.” 그래요. “그거 방법 간단하지.” “아이고 그게 어떻게 간단해요.”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할까 몰라.” “아이고 좋은 방법 있으면 제가 해야죠.” “어떻게 하면 되는데?” “폭삭 망해버려라.” 폭삭 망해버리면 해결이 돼요? 안 돼요? 해결이 되죠.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와줘요? 안 도와줘요? 도와주죠. 그래서 내가 그래 “폭삭 망해가지고 시동생들한테 도움받고 살래. 그래 가진 거 있어서 조금씩 줘가면서 살래?” 그러니까 “아이고 스님, 알았습니다. 됐습니다. 됐습니다. 가지고 살게요.” 그래. 자기도 어떻게 할래? 하하하.
그런데 집집마다 이런 경우가 있어요. 아들 중에도 이렇게 애먹이는 게 있고, 동생 중에도 이렇게 애먹이는 게 있고, 어떤 땐 또 시누이가 또 시집도 안 가고 붙어가지고 어때요? 이렇게 애먹이는 집도 있고 집집마다 가끔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없어요? 있는데 그거이제 남편은 그게 여동생이든 남동생이든 자기 동생이니까 그래도 건사해요? 안 해요? 하는데 부인입장에서 볼 때는 진짜 저 왜 저런가 싶으잖아. 남의 집에 와가지고. 그런데 며칠 전에 제가 질문받은 거는.
시동생이 셋이 장가를 안 가고 그렇게 붙어산데요. 셋이서. 하나는 60이 다 되고, 50 몇이고, 40 몇이고. 셋이 장가를 안 가고 그렇게. 그래서 내가 “야~ 당신 좋겠다.” 이러니까 “왜요?” “남자를 넷이나 데리고 사네.” 많이 데리고 사는 게 좋은 거 같지만 안 좋죠. 그죠? 여러분은 남자가 여자 넷 데리고 살면 좋아 보이잖아. 그것도 사실은 남자 넷 데리고 사는 거나 같아요? 달라요? 똑같아요. 그래서 많이 데리고 사는 게 좋은 거 아니오. 하나 데리고 사는 게 제일 좋아요.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으음.
그런 인연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인연이 있더라도 그걸 갖고 괴로워하면서 살아야 되겠어요? 그 속에도 즐겁게 살아야 되겠어요? 그 속에도 즐겁게 살아야 되요. 그걸 뭐 인위적으로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래 세상 삶이 똑같지 않아요. 똑같이 나무를 심어도 똑같이 안자라고, 똑같이 콩을 심어도 똑같이 안자라고 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살다 보면 이런 인연도 있고 저런 인연도 있고 이러잖아. 이것도 큰 괴로움이라지만 그래도 동생 애먹이는 게 나아요? 아들 애먹이는 게 나아요? 동생이 애먹이는 게 낫고. 이렇게 애먹이는 거는 **지마는, 가족 중에 병들어서 똥 수발하고 집에 누워 있어도 돌봐야 되요? 안 돌봐야 되요? 돌봐야지. 그런데 이런 건 다 자기 밥 먹고 돌아다니잖아. 그죠. 그런 거 생각하면 사실 별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느냐? 문제에요. 그러니까. ‘아, 이건 나한테 이런 인연이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고 ‘아이고,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아요. 아들 하나 더 데리고 살든지 남편을 둘 데리고 살든지. 자기 생각 나름으로 하세요. 하하하. 아들을 하나 더 데리고 사는 게 나을 거요. 인연이 이거는 남편인연보다 아들 인연이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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