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살 계본에 보면 '자신의 의견은 솔직하게 표현하되 고집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표현을 하자니 상대가 기분이 나쁠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되 고집하지 않는다'라는 게 있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너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시비가 되고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되는 거예요.
오늘 “스님 법문은 그래요? 기분 나쁘게?”
이러면 법률스님을 시비하는 거고
“오늘 스님 법문을 듣고 나니 저는 마음이 조금 불편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스님을 시비하는 건 아니란 말이오.
자기 마음이 그렇다는 걸 내가 어떡해?
그런데 “왜 불편했는데?”라고 물어볼 수는 있겠지.
그러면 이러이런문제가 불편합니다.
오 그래? 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말하면 이런 사람이 불편하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다음에 내가 말할 때 조금 그건 조정할 수가 있겠지.
나보고 시비하는 건 아니니까,
자기가 그랬다니까.
예를 들어서
아이는 3년은 엄마가 키우면 좋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 법문 듣고 저는 오늘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 왜 불편했는데?”
“제 경우가 애 키우는데 힘든데 스님이 자꾸 3년 키우라니까 제가 불편합니다.”
이건 나를 보고 뭐, 시비하는, ‘스님 법문 잘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란 말이오.
그 얘기를 들으니 내가 불편하다.
“알았다” 이러지만, 다음에 법문할 때는
저런 사람을 고려해서 조금 설명을 자상하게 하든지
30대 엄마들이 말을 안하든지, 조정을 해야 하겠다.
이런 게 내가 정화를 해야 한단 말이오.
솔직하게 내놓는 건 좋은 거요.
도반한테 그냥 얘기하면 돼.
이 감정이 실려서 얘기하면 안된다는 거야.
지금 자기가 감정이 실려니까 말이 나오기가 어려운 거야.
감정이 안 실리면 말하기가 쉬워.
감정이 안 실리려면 아까처럼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저런 사람도 있구나”
‘~구나’하고 볼 수 있어야지.
“네가 그런 말 할 수 있어?” 이러면 감정이 실리지.
그래서 내 마음이 불편하면
무조건 어떻게 하라고?
누구 문제라고?
도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지.
불편함이 없는 가운데 내 놓아야 돼.
불편하면 불편하다는 말만 내 놓아야 해.
“저는 그 얘기 들으니 숨이 콱 막히네요.”
자기 상태만 얘기하면 돼.
그러면 중생수준으로 사는 거지.
우리 다 그래.
우리 다 할말 하고 사나? 못하고 사나?
못하고 살아.
그래서 아까 저분이 좋은 차 샀다해서 내가 특별히 문제 안 삼는 것처럼
자기 수준에 그 정도면 됐어.
자기가 물으니까, 이럴때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니까
그러면 감정없이 얘기 해라 이러지만
그 감정없이는 안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살아야지 뭐 어떻게 하겠어. ㅎㅎ
감정이 좀 있더라도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야. 잘해. ㅎㅎ
그러니까 어떤 아까도 저 질문했지만
어떤 사람이든 상대가 무슨 얘기하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가 명절에 오랜만에 갔는데
부모가 시집을 갔니? 안 갔니? 시집을 갔니? 안 갔니?
기분이 나쁘잖아.
자기는 좋은 마음으로 왔는데, 또 그걸 하니까
이럴 때 기분이 나쁜 거는
‘그런 말 하지 마라’가 아니야.
‘하지 마라’는 것은 엄마가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 말에 간섭하는 거야.
엄마는 자식을 봤으니까 딴 할 말이 없어.
만약에 다리가 부러져 오거나 머리가 깨져 오면
‘시집가라’ 이런 말 할까 안 할까? 안 해.
그러니까 좋게 생각하면
‘아, 시집을 가라’ ‘취직을 가라’ 이 말은 뭐요?
‘너 건강하구나’ 이 말이에요.
건강하니까 그 말을 하지,
건강한데, 건강해라, 이 말을 할 것도 없고 딴 할 말이 없잖아.
그러니까 ‘시집가라’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잖아. 다른 무슨 말을 할 게 있노?
취직 안했으면 ‘취직해라’
다리가 부러졌으면 ‘다리 어떡하노?’ 이 말 하지.
그럼 집에 갈 때 그런 말 안 들으려면 다리를 부러뜨려 휠체어 타고 가든지,
그러면 ‘아이고, 이래서 어떡하노? 안 아프나?’ 이런 얘기 하다가 시집 얘기는 할 수가 없지.
그게 건강하다는 그 표현이에요.
사람이라는 건 우리가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되는데, 마땅히 할 얘기가 없잖아.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자꾸 시비해.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처럼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그러나 개선하는 게 좋겠다하면 내가 얘기를 하면 되지.
그게 잘되면 자기가 도사지, ㅎㅎ
수행자라는 것은
과정에 있다는 거요? 완성 됐다는 거예요?
과정에 있으니까 이렇게 이치를 알아도 잘 안 되니까 연습이 뭐하다?
필요하다.
요번 또 놓쳐서 불편했다.
“아이고, 또 내가 고집하구나. 다음에는 내가 그런 말 할 때 웃으면서 들어야지.”
또 안 되면
“아이고 내가 또 놓쳤구나”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해가는 거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벌써 3년째 봉사하고 있는데 왜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0) | 2021.06.04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710회] 나이 들어 무릎이 아픈데 108배를 계속해야 하는가? (0) | 2021.06.03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남을 도와주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0) | 2021.05.31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몸에 덜 끄달리고 제시간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0) | 2021.05.28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708회] 가르침대로 검소하지 못해 죄책감이 듭니다 (0) | 202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