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무기계약직 근로자 관리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근로자 처우 개선을 할 때 마음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요구가 더해지면서 업무가 부담이 되고
근로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들이 못살게 굴어요?
...
자기가 사장이에요?
자기가 사장 아닌데 왜 부담을 가져.
그런데 뭐가 문제에요.
처우개선해달라하면 사장한테
“처우개선해달라합니다.”
사장이 안 된다 하면
“사장님이 안된다 합니다” 이러면 되지.
자기가 사장처럼 지금
자기가 마치 사장 부인이 되나, 사장 애인이 되나?
왜 자기가 사장처럼 노동자를 불편하게 여겨?
같은 노동자인데.
그 사람들 요구야, 요구는 어떻게.
누구든지 요구야 할 수 있지.
해주고 안 해주고는 사장이 결정하는 거고.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 되잖아.
그런데 빨리 요구한다, 늦게 요구한다.
그 빨리, 늦게를 누가 결정하나?
자기가 결정하나?
자기 생각에 빠르면 빠른 거고, 자기 생각에 늦으면 늦은 거야?
그게 잘못된 생각이잖아.
노동자입장에서는
매달 올려줘도 빠르다고 생각하겠나?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요구는
그게 부당하다 하지 말고
그 사람은 그 사람 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인간의 마음을 몰라서 그래
내가 만약에 자기한테 돈 100만 원을 주면 자기 기분이 좋겠어? 안 좋겠어?
한번 안 주고 매달 주면 기분이 더 좋겠나 덜 좋겠나?
더 좋겠지.
그러면 1년이 지났다 1년째 100만 원 받을 때 기분하고
첫 번째 100만 원 받을 때 기분은 어느 게 좋을까?
왜 그래?
첫 번째는 100만 원밖에 못 받고, 1년째는 1200만 원째 받는데?
아니 근데 실제로 어떨까?
제일 첫 번째 100만 원 받을 때 기분이 좋을까?
매달 줘서 1년 지나고 그때 100만원 받을 때가 기분이 좋을까?
첫 번째가 좋지.
이게 바로 인간의 마음,
욕망이 충족됐을 때 느끼는 그 만족도가 감퇴하는 거예요.
똑같은 백만을 주는데도 시간이 흐르면 그 만족도가 점점 떨어지는 거예요.
근데 만약에 3년을 매달 100만원 준다.
그러면 3년째 100만원 받을 때는 기분 좋을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을까?
당연하게 받겠지, 당연하게.
일부는 약간 불만 안 생길까?
“어머, 3년이 지났는데도 100만 원 밖에 안 주나, 매달 100만 원밖에 안 주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
그럼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3년이나 줬는데도 고마워할 줄 몰라
오히려 불만이야.
근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3년쯤 지나면 당연히 주는 거로 생각하잖아.
아무런 기분 좋음도 없어, 감사함도 없고.
말로 이제 뭐 만나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도
실제로 속으로 첫 번째 받을 때처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가 안 나와.
이미 그것이 현실이 돼 버렸기 때문에.
첫 번째 월급을 올려줄 때는 기분 좋지.
자기가 첫 달은 100만원 주고, 두 번째 달은 200만원 주고, 세 번째 300만 원 주고
이러면 비슷할 거예요.
근데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당연한 게 돼버렸다.
우리가 숨을 한 번 못 쉬어봐.
숨을 한 번 쉬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어.
그러나 내 숨을 쉬고 사니까
우리는 숨 쉬는 거에 대한 감사함이 없잖아.
사막을 여행하거나 해서 목이 말라봐.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
여러분들이 지금 농사를 안 지으니까
비 오는 거에 대한 감사함이 없잖아.
우리는 너무너무 가물어서 곡식이 타들어 죽고
매일 그 막 물뿌리기를 갖고 물 뿌리는 게 하루 농사의 절반 일인데
하늘에서 비가 오니까 얼마나 고마워.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애를 쓰지만
자식은 늘 받다 보니 고마운 줄 모르고 불평만 생겨요.
여러분들 다, 부모한테 불만만 있지 고마운 거 못 느끼잖아.
그런데 부모는 여러분들한테 해 준 거밖에 없는데도
여러분은 자기 원하는 만큼 안 해준다고 불만을 갖는다는 거예요.
이게 인간 심리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임시적이다가 만약에 정규직으로 해준다면 고맙지.
그럼 정규직이 되면 죽을 때까지 내내 고마워할까?
아니겠지.
그럼 뭘 월급을 올려 달라든지, 수당을 더 달라든지.
또 임시적인데 임시직 계약을 1년마다 계약하다가 3년으로 연기해주면 고마워하겠지.
근데 3년직을 기지고 있으면 그 사람 3년직 보다는 뭘 더 원할까?
5년직을 원하고, 10년직을 원하겠지.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뭘 원할까?
정규직을 원하겠지.
그 사람들 요구잖아.
가지도 그렇게 살아봐라, 그런 요구가 생기지.
그런데 그걸, 그 사람이 왜 나쁘다고 그래?
그러니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되, 세상은 또 그걸 다 해줄 수 없잖아.
그러면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회사에 물어보고
해줄 수 있다면 해주고
못 해준다 그러면 못 해준다고 말하면 되잖아.
자기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지, 자기가 결정권자가 아니잖아.
그래서 뭐, 그 사람이 나가면 그 사람 손해든지, 회사 손해지
자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자기는 그들의 의견을 회사에 최대로 반영해주고
회사입장을 그들에게 최대로 잘 설명해주면 되지.
자기는 그 역할, 중계역할 하고, 자기 월급 받고 살면 되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마치 사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 계약을 이렇게 주니 고마워야지.
또 금방 다른 거 원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그들의 요구는 당연해.
또 회사에서 못 해주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그 사이에서 자기는 자기 생각을
자기가 결정권이 없어.
그러니 자기는 노동자의 요구를 위에다 전달해 주고
회사에서는 또 어떻게 해라 하면 또 그 지침대로 설명해 주고
자기가 나서서 뭐 사장인 것처럼 사람들을 욕을 하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오.
또 자기가 뭐 노동자인 것처럼 해서, 회사 가서 대신 항의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하고 올려드리고
그러면 사장이
“안 된다”하면
“회사입장에서는 이러이래서 이거는 안된다 합니다”
그들이 나한테 항의하면
그건 내가 발표를 하니까 나한테 항의하지, 나한테 항의하는 거 아니란 말이오.
사장한테 항의하는 거지.
그걸 자기가 기분 나빠할 필요 없어.
항의 실컷 듣고
“아, 노동자들이 이렇게 항의합니다.”하고 사장한테 전달해 주면
사장이 또 자기 앞에서
“그거 나쁜놈이다”라고 욕을 한단 말이야.
그럼 자기 보고 욕하는 거 아니오.
그건 노동자 보고 욕하는 거지.
그러면 듣고 자기는
“사장님이 그런 얘기 하니까 화를 내시면서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전달해 주면 돼.
과장하지도 말고.
그거 뭐 어렵다고 그래?
이쪽에서 공 받아서 저쪽에 전해주고
저쪽에서 공 받아 이쪽에 전해주고 이러면 되지.
...
그러니까 조금 자기가 지금.
그래서 내가 아까 농담으로 그러잖아.
자기가 사장이냐? 자기가 사장 부인이냐? 사장의 애인이냐?
왜 자기가 사장처럼 생각하느냐? 이거야.
노동자의 의견도 충실하게 받았고
회사의 지침도 노동자에게 충실하게 전해줘야 해.
자기가 과장해서 막 노동자에게 억압해도 안 되고
자기가 노동자 편이 되어서 사장한테 가서 노동을 이렇게 해서 되느냐
이렇게 해도 안 돼.
그건 그들이 결정할 일이지.
그들 사이에 결정할 일이고, 자기는 괸리하는 중간자잖아.
그 중간자의 역할만 하면 돼.
힘들 일이 하나도 없어, 자기는.
...
자기가 아마
근로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보고
자기가 나서서 사장님한테 건의해서 이렇게 했는데
이것들이 거기서 더 요구하니까
자기가 지금 기분 나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자기가 마음내서 괜히 하고,
그거 다 인간이 다 그래요.
인도 성지순례 가면 아이들이 ‘박씨시’ 하고 따라오거든요.
그러면 줄 수 있으면 주면 되고 안 주면 그냥 가면 되는데
주로 학교 선생님들이 주로 그래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막 나눠줘요.
그런데 애들이 받고 가면 되는데, 애들이 받고 또 달라 그래.
그러면 성질을 버럭 내면서
“너 아까 받았잖아, 저리가”
조금 있다가
애들 버릇 나빠서 안된다고,
“주지마라”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애들이 달라 그러면
자기가 주기 싫으면 안 주고 가면 되고
자기가 주고 싶으면 주면 되고
또 받지, 또 받든지 그건 애들 문제이지
아니, 그 동전 하나 주는데 애가 그거 갖고 어떻게 만족을 하겠어.
아예, 그냥 100만원을 줘봐라. 애가 또 달라 그러는가, 달라 안 그러지.
자기도 노동자 처우 개선을 한 달에 천만원씩 줘 봐라,
처우 개선 해달라 그러겠는가.
찔끔 해줘놓고,
전보다는 좀 낫지면 그거 갖곤 부족하다.
제가 인도에서 애들이 ‘박씨시’ 하고 따라와서
하도 따라다녀서, 줘도 따라오고, 줘도 따라와서
제가 앉아서, 달라는 애한테 동전을 줘봤어요.
또 손 벌리고, 또 손 벌리고, 또 손 벌리고.
체크를 했는데 37번째 손을 안 벌리더라고.
37번 딱 하더니, 이제 손을 안 내밀더라고.
그래서 나도 밥그릇을 하나 딱 꺼내서
애들 앞에 따라다니면서
“박씨시 박씨시” 하고 내가 따라다녔어.
그러니 애들이 우스워죽겠다고 깔깔대더니
자기가 얻은 돈 중에 내 밥그릇에 돈을 넣는 애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하고
못하면
“죄송합니다”이러고 사는 거예요.
남이 원하는 거를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게 다 될 수도 없다.
자기는 그 인도 아이들에게 불쌍하다고 돈 주고
질서 안 지킨다고
받았다 또 받는다고 성질내는 사람하고 똑같다.
자기가 불쌍하다고 처우 개선 해 줘 놓고,
더 달라한다고 성질낸다고 사람한테 실망했다 그러고.
그런 관점을 내려놔야 한다.
알았죠?
그런데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인생이 다그래요.
자기가 좋아서 막 해줘 놓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또 성질을 내고
괜히 해줬다 그러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인생이 그런 거예요.
그게 어리석음에서 빚어진다.
그러니까 회사 편안하게 다니세요.
항상 그들의 요구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 하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전달하고
또 사장이 뭐라뭐라면
“사장 입장에서는 그럴만 하다” 또 전달해 주고.
자기가 뭐 이걸 중간에서 어떤 결정을 하려고 너무 머리 쓰지 말고.
의견을 물으면 조금, 상대가, 노동자들이
“대리님 보기에는 우리 요구가 어떻습니까?”
“내가 보니 조금 과한 거 같아”
사장이
“자기가 보기에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떤 거 같아?”
“현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처우 개선이 좀 필요합니다”
이 정도로 그냥 얘기해야지
자기가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해.
물으면 의견 내지, 의견은 가능하면 너무 나서서 안 내는 게 낫다.
...
아니 스님하고 대화하면서 뭔가 자기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아, 제가 사장인 척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라든지
“제가 어땠습니다”라든지
뭐 자기 소감이 있을 거 아니오.
멍하고 스님한테 야단맞았다, 기분 나쁘다, 이런 거예요?
그럼 “스님한테 괜히 말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이렇게 소감을 얘기하면 되지.
아니 안 기쁜데
“기쁩니다” 그러면 어떡해?
그러니까 자기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생각할 게 뭐 있노?
“아, 스님 얘기 들어보니까 제가 괜히 사장노릇했네요.
그 사람보고 부담가질 필요가 하나도 없네요.”
이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여야지
그걸 뭐 며칠 생각할 게 있어요.
며칠 생각하라고 즉문즉설 하는 거 아니에요.
즉문즉설은 그냥 이 자리에서 느낀 대로 잘 안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는 잘 안 됐다, 이 얘기에요. ㅎㅎ
...
제가 볼 때, 병원에 갈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의사 선생님하고 한번 상담해보면 좋겠어.
자기도 그런 갖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면 정신이 좀 약해요.
세상이란 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거거든요.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모든 게 잘 되고,
비도 적당히 오고, 햇빛도 적당히 나오고
그런 세상은 없어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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