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의성과 자각의 중요성: 창의성은 자각을 바탕으로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험 실패를 예시로, 실패에 자책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00:40]
- 자유로운 사고: 아이들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인정하고, 모순된 지적 외에는 비판을 삼가는 것이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01:04]
- 자기 인식과 변화: 스스로의 단점을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며, 타인의 지적은 방어기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01:46]
- 소통과 이해: 가족 구성원 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03:32]
- 고정관념 탈피: 창의성은 고정관념이나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발휘되며, 예측 불가능하고 엉뚱한 사고방식이 중요해지는 사회 변화를 언급합니다. [03:53]
- 미래 사회: 기존의 명령 복종 시스템으로는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인공지능이 기존의 지식 기반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04:49]
-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학교 성적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06:03]
--
스님의 통찰력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창조성과 창의성을 지닐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네, 창의성이나 창조성이라는 것은
자각을 근거로 해야 됩니다.
시험에 떨어졌는데 ‘떨어졌다 실패했다’ 이렇게 가면 안 일어나고
이렇게 돌아보는
‘내가 나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내가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이런 자각을 기초로 해야
창의성이나 창조성이 생기고 자립정신이 생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 정답을 안 줘야 돼요, 정답을.
그러니까 “이거 해봐라” 이랬을 때 애가 이렇게 했을 때
그거 틀렸다 이러면 안 되고
“그런 방법도 있었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그래서 생각이나 방법에 대해서 자유로움을 줘야 돼요.
다만 지적을 할 때는
“네가 앞에서 말한 거 하고
네가 뒤에서 한 거 하고는 앞뒤는 모순이다.
이거 자기 스스로 모순이다.”
“아까 얘기한 대로 다양성을 얘기해 놓고는
획일성을 주장할 때 이거 모순이지 않느냐?”
이런 정도 지적하는 거 외에는
‘맞다’ ‘틀렸다’는 얘기를 안 해야
창의성이든 창조성이 발생을 한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알아차린다.
“내가 약간 고집이 세나?”
“내가 약간 욕심 많나?”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러면 변화가 한다’가 아니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옆에 사람이
“너 고집이 세, 너는 욕심 많아”
이런 거는 들어도
아까 뇌의 구조를 얘기했죠. 방어가 됩니다.
“내가 왜 욕심 많아?”
“내가 왜 고집이 세?”
또 반드시 다음에 뭐가 나와요?
“너는 고집이 없나? 너는 욕심 없나? 욕심 없는 사람이 요새 누가 있노?”
이런 식으로 늘 자기를 방어하는
이 사유 체계가 우리에게 일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이렇게 한 거는
힘으로, 일시적으로는 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용수처럼 튕겨서, 다 원래대로 돌아가 버려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이들이 사춘기가 딱 되면
엄마가 말하면
“아니야” 하고 반발을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요게 어디, 엄마 말도 안 듣고” 이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아 아이가 마음에 어릴 때 내 얘기에 동의를 못했구나
심리가 약간 억압이 됐구나
그러니까 이제는 반발을 하는구나”
이렇게 딱 받아들이고
“얘가 심리가 억압이 됐구나” 이렇게 딱 보고
지켜보면서 대화를 하면서
어떤 것에 의해서 아이들의 심리가 억압이 되는지를 살펴봐야 되는 거예요.
그런 게 없어요.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을 보고
“왜 저러지?” 이렇게 연구를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은 그냥 막
“네가 문제야, 아니야”
이것만 자꾸 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잘 안되고 있다.
그런 데서 창조성이나 어떤 창의성, 이런 거는
고정관념, 정해진 룰, 이런 것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야 돼요.
이렇게 죄를 단죄하듯이
저런 식으로 접근하면 창조성 같은 거 잘 안 일어나요.
그래서 요즘 사회에서는
약간 이런 예측이 안 되는 인간들
뚱딴지 같이, 엉뚱한 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사유 체계가
어떤 딱 법칙으로 안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는 게
굉장히 자유로운 거예요.
근데 그게 질서가 정해진 사회에서는 다 문제아 취급받습니다.
심하면 정신질환자로 취급받고.
그런데 이 변화의 시기에는
저런 사람들이 돋보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따라 배우기해서.
우리 학교 우리 한국 사람처럼 학교교육을 받아서
ox 정답을 가진 이런 사람은
명령 복종 시스템
이거 갖고는 절대로 지금의 문제에 앞서가기가 어렵습니다.
이 인간의 사유가.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 애들을 자꾸 등수, 학교 등수
하등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럼 뭐하고 똑같냐?
조선시대 말엽에 과거 시험에 있을 때
서당에서 시 잘 찍고, 글 잘 써서 과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지만은
산업사회에서 그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는 거하고 똑같아
지금의 학교 교육은
곧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왜?
이 법칙이 있고, 규칙이 있고 하는 거는
다 뭐가 대신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다 대신할 수 있어요.
자동 기계가 다 대신할 수 있어.
그러니까 거기에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 등수가 좀 앞서 갔다고
그게 뭐 공부 잘한다, 이거는
미래 사회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미래 사회는 어떤 게 도움이 될까? 미래 사회가 어떨까?
그건 누구도 지금 예측을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되면 이렇게 할 수 있고
저런 상황이 되면 저렇게 할 수 있고
불교로 말하면 무유정법의 사고를 가진.
-농사지으라면 농사지을 수 있고
-장사하라면 장사도 할 수 있고
-열악한 데 가서 살라면 열악한 데도 살 수 있고
이렇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훈련이 되면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상관없어요.
부서를 옮겨도 상관없고
근데 우리는 딱 기계 부속품처럼
지금 교육을 하고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부속, 자기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래 사회는 그 질서가 지금 허물어지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 학교 교육에
그 등수에 너무 목매달 필요도 없고
등수가 조금 좋았다고
그게 뭐 굉장한 자기 재능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앞으로 별 의미가 없는 게 된다
이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113.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가해야 할까요? (0) | 2025.04.14 |
---|---|
법륜스님 [핫이슈-쟁점을 파하다] 탄핵 극복과 대한민국의 시대 과제 (0) | 2025.04.10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111. 6살짜리 여아를 추행한 아들 (0) | 2025.04.09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이런 저도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0) | 2025.04.08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위기의 대한민국, 해법을 제시하다 (0)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