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기 싫어하는 욕구와
도덕주의적인 가치관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며
무책임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고 적개심에 사로잡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그리고 대회에서 남들 모르게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
심사 위원이 뒷돈을 받고 부정하게 승부 조작을 하는 경우 등입니다.
부당한 일, 선 넘는 행위를 마주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제 행동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마음은 평온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까요?//
내가 ‘화가 난다’, ‘괴롭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는 것은
바로 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말을 들은 내가 화가 나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화가 났다’,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내가 슬펐다’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행자라면 ‘나의 문제다’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를 내버려 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달이 뜨는 게 싫으면 내가 창문을 가리면 돼요.
달이 뜨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구가 돌아가는 것을 멈출 힘이 부족하니
내가 달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리는 방법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걸 보고 화가 난다 해도
내가 구름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만약 멈추게 만들 수 있다면 멈추면 돼요.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창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일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보고
화를 내는 것 또한 내 문제입니다.
그 일에 대응을 할 거냐 말 거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에 해당합니다.
화가 나서 대응할 수도 있고,
화가 나지 않아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혹은 화가 나지 않아서 외면할 수 있고,
반대로 화는 나지만 외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서 대응을 하게 되면 싸움이 커질 수 있죠.
또한 화는 나는데 외면하게 되면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질 겁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가 그 사람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런 일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고
옳지 않은 행동을 말릴 수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내가 힘에 부치는 일이라면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한테 손실이 적고
화가 난 상태에서는 나한테 손실이 큰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일에 대응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일에 화가 나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라는 거예요.
그러니 화내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화를 안 내고 외면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니까 규칙을 정할까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없는데도 규칙을 정할까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있으니까
훔치지 말라는 규칙을 정할까요?
훔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규칙을 정할까요?
부처님이 ‘술 먹고 취하지 마라’ 하신 것은
술 먹고 취해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술을 밥 먹듯이 먹고도 취하거나 행패 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술 먹고 취하지 말라는 계율을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규칙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걸 어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규칙도 정해지지 않습니다.
규칙 자체를 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열 명에 두 명일 경우
규칙을 만듦으로써
열 명에 한 명으로 줄이는 것이 규칙의 존재 의미입니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아주 없앨 수는 없어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어지면
규칙 자체도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제로에 가깝도록 할 뿐입니다.
앞에서 질문자가 열거한 일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이에요.
성추행도 있는 일이고, 성폭행도 있는 일입니다.
타인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윤리 도덕이 있으니
바깥에서 보다는 가족 안에서 덜 일어나지만
어떤 특수한 환경 아래서는
가족 간에 더 많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규칙을 정하는 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줄여서
피해를 줄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벌을 하는 것은
원래 규칙을 어기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처벌을 복수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꾸 보복을 하려고 해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든지, 죽여 버리고 싶다든지,
이런 마음을 갖는데 그것은 복수의 개념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 규칙을 어기는 일은
세상에 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윤리와 법률을 내세워 가능하면
그런 일이 더 이상 늘지 않도록 하려는 거예요.
윤리에는 처벌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저 비난을 할 수 있을 뿐이죠.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겁니다.
법률로 정해 놓은 것은
처벌을 해서라도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을 줄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법으로 정해 놓아도
오히려 그런 일들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질문자가 도덕적인 관점을 갖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본인이 도덕적으로 살면 되는 것인데
질문자는 지금 자신도 비도덕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서
자꾸 남에게 도덕을 적용하려고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남에게 간섭하고 싶은 거예요.
도덕이란
남보고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
신호등과 차선, 주차 구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교통 법규를 어길 때는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남이 어기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화를 내지요.
본인은 가능하면 규칙을 지키되, 남이 규칙을 어길 때는
‘아, 나도 교통 법규를 어기고 싶을 때가 있지’
‘저 사람이 바빠서 저러는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강의 시간이 촉박할 때는
갓길이라도 막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의 행동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정신적인 질환 문제로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옆에서 볼 때는 규칙을 어겼다는 상황 하나이지만
개개인마다 물어보면
거기에는 수백수십 가지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내가 화가 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가능하면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는 것이
나에게 피해가 적습니다.
과보가 적게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자꾸 저절로 화가 일어난다고 한다면
어릴 때 입은 트라우마가 있거나
가정 환경적으로 규칙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자라서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은 가정 폭력을 보고 자랐을 수도 있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적이었다면,
어릴 때 어머니가 피해를 입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같이 피해자가 되어
아버지를 미워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이 생기거든요.
어릴 때 어떻게 해서 생성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질문자에게는 그런 카르마가 있습니다.
본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습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거예요.
자신의 습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한번 관찰해 보십시오.
‘아, 내가 이런 말과 행동에 특별히 민감하구나’ 하고
자기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따라 이해관계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도 있고
성적인 문제나 명예에 민감한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습관에 반응하는 것을 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화가 날 때
‘나는 이 문제에 민감하구나’
‘나는 이것에 대해 시비 관념이 강하구나’ 하고
자신을 알아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고뇌로부터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하루] 매너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되갚아주고 싶어요. (2024.12.06.) (0) | 2024.12.11 |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북러 군사 협력, 우리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2024.10.23 촬영 영상) (0) | 2024.12.10 |
[법륜스님의 하루]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 혼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2024.12.04.) (0) | 2024.12.10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대학을 졸업한 아이에게 용돈 지원을 계속해야 할까요? (0) | 2024.12.09 |
[법륜스님의 하루] 과연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고민이 됩니다. (2024.12.03.) (0) | 202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