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년에 고1, 고3이 되는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밝은 편인데
제가 뒷바라지하는 것에 비해서는 공부를 참 안 하는 편이에요.
저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데
아이들을 보면 뭔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공부할 게 아니라면 열심히 하는 다른 걸 찾기라도 해야 하는데
기껏 하는 건 친구들끼리 게임을 하거나 문자 하거나 카톡을 주고받는 등
스마트폰을 가지고 하루에 6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부모입장에서
‘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아이들을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지인과 이야기를 할 때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3년 다니는 동안 차라리 동면을 하고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제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아이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것도 아니에요.
지금 부모가 공부를 강요하니까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농사일을 하라고 강요하니까
저한테는 농사가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볼 때는 일을 하지만
아버지가 안 볼 때는 일을 안 하게 되었어요.
공부가 일이 되면
아이들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볼 때는 공부하는 척하지만
안 볼 때는 안 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이가 공부를 못하게 막거나 공부한다고 야단을 치면
몰래 숨어서라도 공부하게 될 거예요.
저는 어릴 때 공부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작대기로 마룻바닥을 때리면서 농사일하러 밭에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몰래 숨어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겨울밤에도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하면
기름 닳는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은 날이 밝을 때나 보면 되지,
무슨 책을 보는 데 기름까지 쓰냐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불로 문을 가리고 책을 봐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저한테 공부는 놀이였습니다.
못하게 하는 걸 숨어서 해야 하니까
공부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지금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건
공부를 의무로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스마트폰이나 게임하는 걸 의무로 하도록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하루에 다섯 시간씩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야단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전부 다 스마트폰을 던져버릴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른 세대나 아이들 세대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부모에게 농사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의무가 아니었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것이고
지금 아이들이 자라서 한 세대가 바뀌면
그때는 또 상황이 달라질 거예요.
지금 아이들이 부모 세대가 되면 자식들한테
‘우리는 어릴 때 스마트폰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곤 했는데,
너희들은 왜 그걸 안 하니?’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할 때 열심히 하게 됩니다.
반면,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걸 부모가 시키면
억지로 하게 되고
그러면 지켜볼 때만 하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가 아이들한테
‘너희들을 학원에도 보내주고, 책이며 필요한 걸 다 사주는데
왜 공부를 안 하느냐?’ 하고 말하는 것은
저희 아버지가 제가 어릴 때
‘땅도 있고 연장도 있는데, 왜 농사일을 안 하느냐?’ 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아이들이 자라면 자기 자식들한테
‘나는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핸드폰을 혼자서 보고 배우고
그 안에 기능들을 다 익히고 그랬는데
너는 왜 그거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니?’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뭐든지 자기가 좋아서 하면 놀이가 되고
남이 강요해서 하면 일이 됩니다.
놀이와 일의 구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여기 무대가 있습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게 하는데
무대 위에는 수당을 주고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춤을 추게 합니다.
무대 아래에서는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내게 하고 춤을 추게 합니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일하러 온 사람들이고,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놀러 온 사람들인 거예요.
끝날 시간이 다 될 무렵에 마감 시간을 연장한다고 하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항의를 합니다.
그들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왜 추가 수당을 주지 않느냐며 항의를 하는 거예요.
반대로 무대 아래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공짜라며 신나게 춤을 더 춥니다.
둘 다 같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한쪽은 일로써 춤을 추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놀이로써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할 때는 행위가 중심이 아니라 돈이 중심입니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니까 이때의 일이나 행위는 수단에 불과하고
목표는 돈입니다.
반대로 놀 때는 돈 때문에 노는 거예요?
놀이 때문에 오히려 돈을 쓰는 거예요?
놀이 때문에 돈을 쓰니까,
이때는 놀이가 수단이 아니라 목표이자 주체가 됩니다.
똑같은 행위를 하는데도 이렇게 다릅니다.
돈을 받고 일로써 하게 되면
그 행위는 돈을 위한 수단이 되고
돈을 내고 놀이로써 하게 되면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즉, 내가 그 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항상 뭔가를 팔려고 합니다.
늘 돈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재능도 팔려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나 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위해서 그것을 합니다.
이렇게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삶이 늘 주체적이지 못합니다.
삶이 주체적이지 않으니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건 육체적으로 힘든 것과는 별개입니다.
때로는 노는 게 일하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더 힘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월요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주중에 일하는 것보다 주말에 더 힘들게 놀 때
월요병이 생기는 거죠.
그렇지만 그렇게 놀고 나면
몸은 피곤하더라도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고 표현하잖아요.
이런 이치를 어느 순간에 탁 깨달으면
인생이 놀이가 됩니다.
돈을 받고 안 받고는 별로 안 중요해져요.
똑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체육복을 입고 하면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군복을 입고 하면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복을 입고 훈련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눈치 봐서 안 하려고 하거나 도망을 다니는데,
체육복 입고 운동을 한다고 하면
열심히 하는 거예요.
산을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등산할 때는 자발적으로 산에 올라가니까
엄청 큰 배낭을 메고도 거뜬히 올라갑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산 정상에서 휘파람을 붑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혀서 높은 곳에 올려 보내거나
어떤 노동자에게 등짐을 주면서 그 높은 곳에 올라가라고 하면
다들 죽는다고 난리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 작용을 조금만 살피면
지금보다 훨씬 스트레스 없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제 말의 뜻을 알아듣겠어요?
알아듣긴 뭘 알아들어요?
이게 알아듣기가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이것만 알면 인생살이의 모든 괴로움이 끝이 납니다.
이 이치만 깨쳐도 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집니다.
이걸 알면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고
둘이 있으면 둘이 있어서 좋고
일하면 일해서 좋고
일이 없으면 쉴 수 있어서 좋아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일이 있으면 힘들다고 난리고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난리입니다.
직장 다니기 힘들다고 하면서
또 직장이 없다고 실의에 빠져서 난리입니다.
이래도 문제이고, 저래도 문제인 겁니다.
집에 있으면 놀 수 있어서 좋고
직장에 다니면 일이 있어서 좋고
둘이 있으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귀찮지 않아서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늘 거꾸로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은 스님이 돈을 받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이렇게 사는 게 다 놀이입니다.
제가 강사료를 받고 강연을 하면
강연이 놀이가 아니고 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아무런 돈을 받지 않고 강연을 하면
강연이 놀이가 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냥 놀다가 오는 거예요.
반대로 월급을 받거나 강의료를 받으면,
‘여기는 돈을 많이 준다’, ‘저기는 돈을 적게 준다’ 등의
분별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저는 강의료를 일절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는 가고, 시간이 안 나면 못 가고
강연을 해도 괜찮고, 강연을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삽니까?’ 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처음이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다 먹고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생각을 조금 바꾸면 좋겠습니다.
특히 방송, 연예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여러분들은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더 경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평소 일하는 환경이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승리해서
이기는 관점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제가 볼 때는 다들 인물도 잘 생기고 훌륭한데,
늘 비교 대상이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니까
마치 자기 자신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아야 합니다.
소득이 많고 적고
인기가 많고 적고를 너무 따지지 말고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 모두 쾌활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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