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랑 늦게까지 잠을 못 자고 같이 뉴스를 봤습니다.
아들이 평소에도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뉴스를 보면서도 계속 걱정스러운 얘기를 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대부분 여당이나 야당 둘 중에 하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양쪽 다 너무 극단적으로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그들을 보는 제 시각은 부정적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게 올바르게 보는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이런 시국에서 저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주면 좋을까요?//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안에서 보면
내일 망할지도 모를 만큼 문제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서 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굉장히 발달된 나라입니다.
지금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에 가보면
대한민국을 매우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미국을 ‘아메리카 드림’이라고 하며 동경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한 번 가보는 게 꿈이고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을 굉장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동경하듯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영어를 할 줄 몰라도 외국인을 만나면
‘굿모닝’, ‘땡큐’ 이런 말은 할 줄 알았던 것처럼
지금 동남아나 서남아에 어느 시골을 가서 누구를 만나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제가 부탄 산골 마을에 가봐도
주민들이 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전쟁 통에 지진이 난 시리아에 학교를 짓는 일을 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정도는 다 할 줄 알았어요.
이렇게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건
국제적으로 창피한 일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잘잘못을 떠나
국가의 위상이 손상될 수 있는 행위입니다.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던 10.26 사건 때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에도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계엄령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많은 희생과 인권 탄압이 발생하며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45년 동안 계엄령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안정된 국가로 평가받아 온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어뜨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여러 가지 국정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에는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그래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너무 지나친 행위라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계엄령을 선포한 당사자는
여러 가지 문제 제기를 많이 받으니까
계엄령을 선포할 때라고 생각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내전이 일어나서 난리잖아요.
미얀마도 2021년 2월에 군부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지금까지 내전 중이고
태국도 군부 쿠데타로 난리가 난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해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예요?
6시간 만에 끝났잖아요.
이런 모습은 대한민국이 굉장한 나라라는 방증입니다
무엇이든 한 측면만 보면 안 됩니다.
앞에서 말한 모습만 보고
대한민국이 문제라고 봐서도 안 되고
뒤에서 말한 모습만 보고
대한민국이 굉장하다고 봐서도 안 됩니다.
이번에 일어난 비상계엄령 사태에도
대한민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섞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질문자의 아이는 대한민국의 나쁜 점만 보고 걱정하는데,
좋은 점도 보고 나쁜 점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은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사는 20대와 30대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말합니다.
왜 지옥만큼 살기 어렵다고 말할까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심정도 이해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이 좋은 나라를 왜 지옥이라고 말하느냐 하겠지만,
이것은 인간의 의식 작용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 중 연세가 60대, 70대인 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입이 조금씩이라도 늘었어요, 줄었어요?
집 평수가 늘어났나요, 줄어들었나요?
제가 어릴 때는 시골에 방 한 칸에서
부모님 하고 애들이 6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커서 결혼하면 셋방을 얻더라도 단 둘이서만 살게 되니까
사는 게 좋아졌다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계속 좋아지는 상태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청년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사는 부모님의 아파트가 30평이라고 하면
부모님의 방이 따로 있고, 내 방이 따로 있고, 동생 방이 따로 있고
거실과 주방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만약 결혼하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살던 집보다 작아집니다.
결혼 전후를 비교해 보면 집안일이 많아집니다.
결혼 안 하고 부모님 하고 살 때는
엄마가 밥을 해주죠. 빨래와 청소도 내가 좀 거든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대부분 해줍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둘이 살면
밥도 빨래도 청소도 자기들이 해야 하니까 불편해집니다.
그러니 결혼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하면
신혼집으로 15평 아파트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방에서는 구할 수 있는데
지방에 직장이 있는 청년들이 흔치 않습니다.
전부 서울이나 대도시에 집을 구해야 하는데
대도시에 있는 아파트는 평생 벌어도 살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독립된 생활을 꾸리면
부모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생활 수준이 떨어집니다.
우리가 좋은 데 살다가 나쁜 데 가면
지옥에 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인 거예요.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온 가족이 방 한 칸에서 살면서 중학교밖에 못 다녔는데도
결혼해서 집도 사고
아이들도 대학 보내고 부모 봉양도 다 했는데,
너는 대학 나와서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왜 네 생활도 제대로 못하냐?’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면
꼰대 같은 소리 한다며 다 싫어합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판단은
심리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기 어렵다고 하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를 이해한다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어요.
오히려 여러분들이 내 자식이라고
애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아이들에게는 지금 큰 어려움이 된 겁니다.
저처럼 어릴 때부터 청소도 하고, 일도 하고 살면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벽에 못을 칠 줄도 모르고, 전등도 갈 줄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 버린 겁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가 됐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들의 기대 수준에서 보면
기대만큼 못 미치는 겁니다.
노인들은 옛날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졌다고 얘기하지만
청년들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못할 것 같으니까
대한민국을 지옥이라고 얘기합니다.
어제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일이 생긴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에 안 맞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계엄령 선포에 대해
이렇게 깔끔하게 빠른 시일 내에 종결을 시킨 경우가
대한민국 말고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굉장한 나라예요.
이렇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아이에게 한쪽만 보지 말고
양쪽을 다 보라고 얘기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좋은 점은 계승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문제점은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모 세대가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눈 대화 내용은
그냥 세상의 얘기가 아닙니다.
굳이 불교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정함이 있음이 없는 법’이라고 해서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여기 거울이 있다고 합시다.
이 거울 앞에 시계가 오면 거울은 시계를 비추고
물컵이 오면 물컵을 비춥니다.
그렇다면 이 거울은 물건을 몇 개나 비출 수 있을까요?
이 거울이 한 그림이라도 그린 적이 있어요?
그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한 법은 무수히 많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온갖 질문을 하면
제가 거기에 따라 모두 대답을 하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이 아는 것도 많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울은 아는 것이 많아서 수없이 많은 물건을 비출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울은 다만 비춰 줄 뿐이에요.
여러분들의 번뇌가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치면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 비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각할 때만 변화가 일어나지
누구의 말을 들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하고 얘기하다가
‘별일 아니네!’, ‘내가 고집이 세나 봐!’
이런 자각이 일어났다면
변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법륜스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하시더라!’ 이러면
강연장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를 살피는 힘이 있어야 해요.
자기를 살필 줄 알면
여러분 모두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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