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랑 중학생을 키우고 있는데요.
저랑 아이 아빠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과 인성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생활 습관을 교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수십 번 얘기해도 안 고쳐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럴 때는 애들한테 계속 강요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두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인성을 중요시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너무 편하게 대해서인지,
아이들이 가끔 선을 넘을 때가 있어요.
엄마를 친구같이 대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좀 가졌으면 하는데,
그런 게 안 될 때는 갈등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들의 생활 태도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예요?
정리 정돈을 잘 안 합니까?
(옷도 그냥 그대로 허물 벗어놓듯이 벗어놓습니다.
저는 옷을 세탁기에 갖다 놓고, 양말도 안 뒤집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옷을 건조기에서 빼서 다 뒤집어야 하잖아요.
저는 워킹맘이라 살림까지 챙기기가 힘든 부분이 있는데
애들은 그런 거를 몰라주니 섭섭한 마음도 좀 있습니다.)
언제부터 애들 보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가르쳤어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첫째, 어릴 때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뒤에 고치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질문자의 잘못이에요.
둘째, 질문자가 아이들이 동의할 수 없을 만큼
무리하게 요구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반발심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해라! 나는 이렇게 한다’ 하는 태도로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거예요.
이런 두 가지 경우에는
애들을 야단쳐서는 잘못된 습관을 고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데에 보통 3년 정도 걸립니다.
즉, 3살 때까지 자아가 대부분 형성되는 것이죠.
그 시기에 아이를 학대하면 대뇌 발달이 굉장히 미약해집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야지 아이가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리니까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수록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자아가 형성되는 3살 때까지는
바깥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경험이
아이의 뇌에 그대로 새겨져 버립니다.
이것을 각인 작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각인된 것은 나중에 잘 안 바뀝니다.
그 경험이 ‘나’라고 인식하는 것의 모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안 바뀐다’, ‘천성이 변하는 것을 보니까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는구나’
이런 속담들이 생긴 것입니다.
아이를 어릴 때 입양하면
그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내 유전자를 갖지 않았을 뿐이지
심성은 내 아이예요.
엄마라는 것은 기른 자라는 뜻이지
낳은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낳은 자가 곧 기른 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주로 낳은 자가 엄마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DNA로 친모와 친부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 인류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의 자궁이 아니라 인공 자궁을 통해서
아이를 낳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낳은 자가 누구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요즘 대리모는 아이를 낳아도 엄마가 되지 못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른 자가 엄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른 자’란 아이의 자아의 형성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양육자를 말합니다.
내가 직장 다니며 바빠서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3살까지 키워달라고 맡겼다면
그 아이의 정신세계에서 엄마는 누구일까요?
할머니가 엄마입니다.
유모에게 맡겼다면 유모가 엄마예요.
의식의 차원에서는 낳아준 사람이 엄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할머니가 엄마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엄마가 할머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내 자식으로 키우려면
3살 때까지는 내가 키워야 합니다.
자아가 형성된 후 4살부터는 배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유치원 과정과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아이가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뭐든지 모방을 해요.
원숭이보다 더 모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하지 않으면서
아이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면 절대로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는 항상 마음속으로 ‘엄마는?’ 이럽니다.
지금 질문자가 좀 충격받을지 모르겠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어쩌면 자기는 안 하면서
애들에게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을 수 있습니다.
한집에 사는 아빠가 옷을 아무 데나 벗는다든지
아니면 엄마가 그러든지
누군가가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따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보는 대로 따라 배우니까요.
여러분이 자기는 늦게 들어오면서
아이 보고 ‘10시까지 들어와라’ 이러면
아이들이 힘에 눌려 당장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엄마는?’ 이래요.
그래서 그건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억압된 심리는 다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자유롭고
친구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상하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극상이 일어나는 곳은
항상 질서와 위계를 중요시하는
군대, 경찰, 조폭과 같은 조직입니다.
심리가 억압되면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치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애들이 사춘기가 되어
아빠 엄마가 뭐라고 할 때 항의하고 대들면
‘이게 어디 부모한테 대들어?’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됐구나’ 하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어 자기 할 말을 못 하고 눌러 놓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겼을 때 치고 나오는 거예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항상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야단을 치는 건 3일만 지나면 효과가 없어집니다.
화내지 말고 벗어놓은 옷을 앞에 놔두고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엄마가 일하니까 네가 정리를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한 번 말했는데 안 따른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따라 배우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범을 보이는 게 교육이지
가르치는 게 교육이 아닙니다.
특히 생활 습관이나 성격은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가 검소하게 살기를 원하면
돈이 있어도 부모가 검소하게 살아야 됩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어디를 가도 항상 KTX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호텔에서 잘 겁니다.
그럼 아이는 태어나서 호텔에서 자 본 기억밖에 없습니다.
뭘 타도 비행기나 KTX밖에 타본 적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아이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듯이 여행을 가면
여관이나 민박집에서 자지 않습니다.
세 번 여행 갈 것을 한 번만 가더라도
돈이 있든 없든 호텔에서 자고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겸손하기를 원하면
엄마가 아빠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남녀는 평등하지만, 아이가 따라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손가락질하고 싸우면
아이가 전혀 겸손해질 수가 없어요.
아이들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이런 아이들의 성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성질을 모르니까 갈등이 생기고 안 맞는 거예요,
모든 고통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벌주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지은 것도 아니고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몰라서 생기는 거예요.
먼저 아이를 관찰해 보세요.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쭉 관찰해 보는 겁니다.
내 기준에 좀 안 맞더라도
‘그래, 옷을 잘 개어 놓는 것이나 그냥 벗어 놓는 것이나 그게 그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놔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야단치는 것보다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훨씬 낫습니다.
야단을 치면 상처만 받고 고쳐지지도 않습니다.
내버려 두면 일단 고쳐지지는 않아도 상처는 안 받잖아요.
그러다가 가끔 아이의 방이 너무 지저분하다 싶으면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겠니?’ 하고 물어보세요.
괜찮다고 하면
‘그래,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돼요.
아이가 ‘문제인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하면
‘그래. 엄마가 봐도 문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다그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엄마의 말은 만성이 되어 버렸어요.
야단을 치고 협박을 해도 안 먹혀요.
엄마가 때려 봐야 어느 정도인지 다 알아요.
다리가 부러지도록 안 때리는 걸 다 압니다.
무서운 건 한두 번 때릴 때지
그다음부터는 이미 내성이 생겨서
교육적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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