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자에게 아이를 낳는 것이 왜 두려운지 물었습니다. 질문자는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서 나보다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고 답했습니다 [09:08].
- 아이가 있어도 괜찮고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는 관점을 가지라고 조언했습니다 [13:16].
-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키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15:01].
- 출산율을 높이려면 살집을 구하기가 쉬워야 하고, 유가 과정이 어느 정도 평등해야 하며,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7:17].
- 아이를 낳을지 말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안 낳는다는 관점을 가지라고 조언했습니다 [18:20].
- 미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므로 노후 문제는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8:42].
- 늙었을 때 아이가 없으면 외로울까 봐 걱정이라면 어린이 집에 가서 봉사를 하면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19:13].
- 아기 문제는 나 혼자 결심한다고 되는게 아니므로 남편하고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조언했습니다 [20:34].
저는 결혼 15년 차, 34살 주부입니다.
신혼 때는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지만
살아가며 생리사별(生離死別)의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서
나보다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인생무상을 체득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트라우마로 인해 아이 낳는 것이 두렵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제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만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행복해 보이면 부럽습니다.
남들은 다 낳는 아이를 나만 낳지 않으려니 불안하고
또 낳았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아이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반면, 낳지 않으면 노년에 자식 없이 외로워질까 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습니다.
이런 저와 달리 남편은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지금 우리 둘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고 버겁다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의 인생 목표는 행복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아이 문제만 아니라면 지금 저희는 행복합니다.
아이를 낳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또 아이 없이 살아가더라도
후회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볼 때 법륜스님은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 괴롭게 사는 것 같아요?
법륜스님은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는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식은 없지만 남편과 둘이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 ‘혼자 사는 법륜스님도 행복한데
둘이 사는 우리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옆에 사람이 많으면 일이 많습니다.
질문자는 자식 하나 낳는 것도 힘들다고 안 낳으면서
법륜스님처럼 수많은 사람 속에서 사는 건 괜찮아 보이나 봅니다.
친구들이 아기 낳는 건 부럽고, 내 아이를 낳는 건 귀찮다고 하더니,
제가 많은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은 또 좋아 보이나 봐요.
그런데 막상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어려운 일도 많이 생깁니다.
질문자는 본인이 낳은 아이 한 명도 일찍 죽을까 봐 걱정이 되는데
저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으면
시시때때로 누군가는 죽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어제도, 오늘도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하는 말처럼
남이 볼 때는 좋아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시골에서는 예전부터 자식이 많은 집을 부러워했습니다.
일할 사람이 많아 농사짓기에 좋겠다는 이유에서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하는 측면에서 본 거예요.
실제로 자식이 많은 집의 어머니는
아이가 많을수록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옆집 사람은
‘저 집은 자식이 여럿이라 다들 커서 돈도 벌고, 일도 도우니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질문자도 지금 그런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꼭 법륜스님이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 사람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둘이 살고 있으니까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자녀를 여러 명 낳아서 잘 살아가는 부부도 많습니다.
자녀를 한두 명 낳는다고 해서 못 살 이유도 없다는 거예요.
아기가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남편과 둘이 살면 됩니다.
아기가 생기면
‘우리 어머니는 다섯 명도 키웠는데 내가 아이 한 명을 못 키울쏘냐!’
이렇게 생각하면 되고,
아기가 안 생기면
‘법륜스님은 혼자서도 잘 사는데 우리는 둘이 사니 못 살 게 뭐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있어도 괜찮고, 아이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
왜 하늘이 무너질까요? 원래 아이가 없었잖아요.
아이가 없을 때도 잘 살았는데, 있다가 없어지는 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
가슴이 좀 아프면 어때서요?
물을 마시던 이 컵 하나도 깨지면 아까운데,
사람이 죽었는데 당연히 아쉽죠.
...
그렇게 힘들 것 같으면 아이를 안 낳으면 됩니다.
저도 같이 활동하던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힘들어서 못 살겠으면 관계를 끊고 혼자 살아야죠.
세상과 관계를 끊고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살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죽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관계를 많이 맺으면
필연적으로 죽는 사람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질문자는 한 명만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죽으면 마음이 더 아플 것이라고 했는데
두 명 낳았다가 둘 다 죽으면 더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요?
질문자는 아직 아이를 낳을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개가 강아지를 낳을 때
‘새끼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지?’ 하고 미리 걱정할까요?
모든 동물은 키울 걱정을 안 하고 그냥 낳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낳으면 저절로 크기 마련입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하고 걱정을 많이 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으면
젖이 나오도록 신체 구조부터 바뀝니다.
그것처럼 생각도 바뀌어요.
‘어떻게 해서든 내 아이는 내가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요.
엄마는 때로 자기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아이만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바로 옆에 폭탄이 떨어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엄마가 아기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너 없이는 못 산다.’ 하며 죽고 못 사는 부부도
막상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이 되면
배우자는 안중에도 없이 혼자 도망가기 바쁩니다.
그런데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는 다릅니다.
아기를 가슴에 안고 엎드려서
아기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것처럼 아이를 낳기 전에는 머리로 많은 걱정을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누구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가 있는 거예요.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울 것인지
미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생기면 낳고, 낳으면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를 낳고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어떤 생각에 과도하게 사로잡혀서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거예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아이를 키우려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를 키우는 기준을 지나치게 높여 놓은 탓에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해 외부로부터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방식과 조건을
너무 많이 교육받다 보니
‘내가 과연 아이를 낳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육아 비용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하는 불안이 커져서
결국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전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개가 강아지를 낳고, 닭이 병아리를 키우듯이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돈을 조금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질 거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첫째, 살 집을 구하기가 쉬워야 합니다.
둘째, 육아 과정이 어느 정도 평등해야 합니다.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충분히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교육이 없어져야 해요.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아기 때만 잠시 돌보고
만 3세 이후부터는 어린이집이 책임지고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는 정부가 교육을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겠죠.
셋째,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치를 낮추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끼리 집에 두고 시장에 다녀오거나 잠깐 집을 비워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아동방임죄가 됩니다.
그러니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이
예전에 여러 명을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다들 겁내는 거예요.
아이 키우는 일이 두려우니까
차라리 낳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렇게 잔머리를 굴릴 바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낫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면 잔머리를 안 굴려야 해요.
아이 낳는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안 낳는다는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또 남편 말대로
‘우리 둘이 살기도 벅찬데, 아이 없이 살자.’ 이렇게 합의했다면
굳이 낳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미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예전에는 자식을 여러 명 낳았기 때문에
키울 땐 힘들어도
노후에 자식 중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한두 명만 낳게 되면
그 아이가 결혼하면 양가 부모 네 명을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노후 문제는
사회 보장 제도를 통해서 풀어야지,
자식이 해결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만약 늙었을 때 아이가 없으면 외로울까 봐 걱정이라면
어린이집에 가서 봉사를 하면 됩니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같이 놀아 주고 돌봐주면 되는 거예요.
문제는 ‘내 것’이라는 집착입니다.
‘내 아이’, ‘내 손자’라는 생각이 문제인 거예요.
집착만 내려놓으면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모든 아이가 내 아이입니다.
손자가 있다고 해도
요즘 세상에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실제로 손자가 있어도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어린이집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들하고 놀아 주는 게
노후에 외로움을 훨씬 덜어줄 수 있습니다.
큰 집도 필요 없습니다.
괜히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까 집 관리에 돈이 들고,
‘내 별장’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걸 유지하느라 비용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1년에 별장에 가는 일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차라리 필요할 때 공용 숙소에서 자고 오는 게 훨씬 경제적입니다.
내가 쓰면 내 것이고,
내가 쓰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 겁니다.
내 자식, 내 물건, 내 집, 내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이게 다 한 생각입니다.
이 한 생각만 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기를 낳을까, 낳지 말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아기 문제는 나 혼자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남편하고 의논해서 아이를 하나 낳자고 서로 동의가 되면
아이를 낳고 살면 됩니다.
키우다가 도저히 못 키우겠다 싶으면,
입양을 보내면 됩니다.
어차피 원래 없던 아기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평소에 돈 없이도 잘 살았는데
누군가가 10억을 줬다고 합시다.
그 돈을 몇 년 쓰다가 잃어버렸다면
아예 처음부터 없는 편이 나았을까요?
아니면 잠시라도 누려본 편이 나았을까요?
당연히 잠시라도 가져본 쪽이 낫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처음부터 없었을 때는 괴롭지 않았는데
있다가 없어지면 괴로워합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없어도 되는 것이지만
한 번 경험해 봤다는 이유만으로 집착이 생기는 거예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함께 살아본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겁니다.
또한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살아갈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일단 같이 살아 보는 겁니다.
그러다가 서로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됩니다.
혼자도 사는데 같이 살아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삶이에요.
이혼이 무슨 큰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이혼한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몇 년이라도 살아 봤으니까 스님보다는 낫다고 위로를 해 주죠.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가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머릿속에서 내내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니까 머리가 아픈 거예요.
이게 바로 번뇌입니다.
머리가 너무 기네요. 좀 깎아 보면 어때요?
그러면 잔머리 굴리는 게 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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