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어떻게 하면 외모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23.12.18.)

Buddhastudy 2024. 1. 24. 19:48

 

 

저는 외모강박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에게

정신적 괴롭힘을 당한 후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후 작은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제 외모를 무시했던 일진 친구들과는 다르게

새로운 친구들은 제 외모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았던 저는 사람들이 왜 저를 칭찬해 주는지 의아했고,

그때부터 외모가 갖춰져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구나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가서는 집착이 더 심해져서 식이장애도 생겼고,

성형수술도 해보았지만 이전보다 이상해졌어요.

올해 상반기는 우울하게 보내다가 엄마를 따라서 마음공부를 시작했고

전처럼 저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외모로 평가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계속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오랜 정신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원숭이 입장에서는 사람이 잘 생겨 보일까요, 원숭이가 잘 생겨 보일까요?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은 원래 없어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기 나라 사람들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부는 예외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이 크고, 피부가 하얗고, 콧날이 오뚝하면

잘생긴 얼굴이라는 인상을 갖습니다.

그냥 딱 보면

그런 사람이 잘생겨 보여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릴 때 파랗고 큰 눈에 하얀 피부를 가진 인형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뇌에 각인이 되어서 그런 인상의 사람을 보면

호감이 딱 생기는 거예요.

 

<하멜표류기>를 보면 서양 사람이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한국 사람을 보고 그들이 짐승같이 생겼다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어릴 때 특히 가정이나 학교에서

얼굴도 못생긴 게하면서 구박을 받으면 트라우마가 생겨요.

요즘은 신체를 평가하는 말도

희롱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못하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섹시하다라고 하면 칭찬하는 말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성희롱에 해당하죠.

뚱뚱하다느니 말랐다느니 이런 말도 삼가야 합니다.

 

요즘 미국 같은 곳에서는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를 물어도 법에 저촉이 됩니다.

왜냐하면 결혼했고 안 했고는 회사 업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관계없는 사항을 물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얼굴이 까맣다든지 노랗다든지 키가 작다든지 크다든지

이렇게 외모를 평가하는 말은

가능하면 안 쓰는 방향으로 문화가 정착되고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그런 말을 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볼 때

꺼먼 건 꺼멓고, 작은 건 작고, 큰 건 크고, 뚱뚱한 건 뚱뚱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걸 쓰지 말라고 한다고 안 쓰는 것은 아닙니다.

 

속으로는 다

저 사람 뚱뚱하네’, '저 사람 키가 크네하고 평가를 해요.

그러나 존재에는 어떤 것이 더 잘 생겼고 못생겼고는 사실 없어요.

 

다만 시대마다 평가 기준이 다를 뿐이죠.

요즘은 홀쭉해야 좋은 평가를 받지만,

조선시대에는 부잣집 맏며느리감이 홀쭉 말랐을까요, 통통할까요?

통통했습니다.

양귀비가 통통했을까요, 홀쭉했을까요?

통통했습니다.

우리도 옛말에 배가 나와야 사장이라는 말이 있지 않았습니까?

문화가 다 다를 뿐입니다.

 

미모나 몸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코를 수술하고 볼을 수술하고 턱을 수술한다고 해서 해결이 안 돼요.

 

그러다 보면 성형중독증이 되고

나중엔 얼굴 전체를 망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해요.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해도 그냥 들어야 합니다.

코가 낮다고 하면,

코가 숨 쉬려고 있지 높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눈이 작다고 하면

눈이 보려고 있지 커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는 씹는 데 사용하는 것이지

모양이 좋은 건 부차적인 겁니다.

 

이렇게 얼굴이나 몸은 그 기능이 잘 작동하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돼요.

그런데 질문자는 어릴 적 트라우마로 상처를 받아서

외모강박증이 생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것보다 지금은 정신과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어릴 때 형성된 트라우마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을 굉장히 오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에 영향을 주거든요.

현대 서양의학으로는 무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공황장애가 있다면

응급치료는 어디를 가는 것이 빠르겠습니까?

상하는 것보다는 병원에 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 치료는 그때뿐이지 또 발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야 완전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대로 응급치료를 하면 좋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질문자가 말하는 것처럼 수행 정진을 해 나가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하면

그다음에는 정진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하고 약을 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타인을 살해하거나,

안 그러면 본인이 죽거나 할 때는

약을 먹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약을 먹고 있는 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확률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아예 약을 안 먹었거나, 중간에 끊었거나 할 때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 말을

병원 진료만 받으면 된다는 말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질문자는 지금 강박증이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은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고

수행을 겸하는 길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수행으로만 극복하겠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초기에는 수행을 하다가 잘 안되면 포기할 확률도 매우 높아요.

그러니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고

의사가 이상이 없다하면

그때는 수행만 해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치료를 받으면서 수행을 겸하면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

 

병이 심할 때는 상처를 유발하는 사람을 안 만나야 합니다.

다리를 다치면 깁스를 해서 아물 때까지 다리를 못 쓰도록 하잖아요.

다 아물어서 깁스를 풀면 재활 운동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두면 나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해요.

 

마찬가지로 내가 병이 심할 때는

내가 상처를 받는 환경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는 이모가 아니라 부모라도 안 만나는 게 좋아요.

 

병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됐다면,

그때는 점검을 위해서 만나봐야 합니다.

만나서, ‘왜 그렇게 살이 쪘니?' 하면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서 체중이 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반대로 왜 그렇게 살이 빠졌니?‘하면

요새 다이어트 좀 했어요하고 대답하면 돼요.

이렇게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으면

내가 치유되었다는 반증이에요.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 또 상처를 받는다면,

당분간은 수행을 더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조금 더 하고 다시 만났을 때

상처가 조금 있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가 아니라면

이제는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도 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때는 완전히 치유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미성년자라면

부모는 자식을 돌봐야 하고,

자식은 부모의 의견을 어느 정도 들어야 합니다.

 

자식이 성인이 됐다면

누구를 만나든 안 만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합니다.

부모라고 간섭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은 불효나 예의에 어긋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는 나라마다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도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어릴 때부터 이모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모의 문제도 있지만

질문자의 본래 정신력이 약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자랄 때 부모는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냥 보는 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살이 빠져서 보기 싫다라고 하거나

뭘 먹고 살이 이렇게 쪘니?’하고 쉽게 얘기를 해요.

요즘이야 외모에 대한 평가를 삼가라고 권장하지만

인간은 본래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얘기를 합니다.

 

저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조금 나쁘네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보통의 정신력이에요.

이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그런 말을 하는 이모도 분명 문제지만,

질문자의 정신력도 아주 약하다고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