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버지가 독자이신 집에서 1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독자이시다 보니 남아선호사상이 심하셨고
저는 남녀 차별로 상처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도 비슷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2남 1녀 중 차남인데
집에서 장남과 차남의 차별을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남편 또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며느리들까지
차별을 하시는 것 같아서 많이 서운하고 속상합니다.
어렸을 적 상처가 있어서 그런지 더 마음이 괴로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부모님에 대한 저의 마음을 풀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남편도 제가 어떻게 해야 부모님과 마음을 풀 수 있을까요?//
남편이 푸는 것은 못 풀어.
남편이 풀면 몰라도, 남편이 와서 즉문즉설하면 몰라도 ㅎㅎ
자기가 무슨 재주로 자기것도 못 풀면서 남의 것 풀어주려고.
그러니까 남편은 빼고.
남을 자꾸 어떻게 바꾸려고 하면 안 돼.
그 사람, 그런 사람 그대로,
그대로 내가 수용을 하는 게 수행이지
자꾸 바꿔서 쓰려고 그러면
거기에 에너지를 다 써서
죽을 때까지 용만 쓰다가, 피곤하게 살다가 죽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차별을 받았는데?
...
그럼 그 시대에 자기만 그랬나? 딴 집도 다 그랬나? 대다수가?
그럼 그게 차별이가? 그 당시에는 문화가?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그럼 어머니가 나빠서 그러나? 아버지가 나빠서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밖에 보고들은 게 없어서 그러나?
그럼 그걸 어떡해?
그럼 자기도 만약에 학교를 안 갔으면 차별의식을 느꼈을까?
학교 가서 남녀평등이라는 걸 배워서 차별을 느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봐, 부모가 아예 고등학교를 안 보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잖아.
초등학교도 안 보내버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자기가 초등학교도 부모가 안 보내버렸으면 자기 차별의식 못 느껴.
원래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이래 사는데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머리가 좀 깨는데
오빠는 대학 보내주고 나는 안 보내준다,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거기에 딱 걸려서 부모에 대해서 고마움을 모르는 거요.
오빠는 보내주고 나는 안 보내준다, 이것만 가지고 자꾸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인도에 천민마을에 학교를 세워서 애들 공부를 시키거든요.
내가 처음에 그 마을에 갔을 때, 아이들이 나한테
”스님, 우리 마을에 학교 지어주세요“이렇게 얘기를 해서 지어줬을까?
내가 보니까 애들이 구걸하고 학교도 안 다니니까
“아이고, 애들이 학교도 안 다니고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하노” 싶어서 학교를 지었을까?
내가 그렇게, 내가 안 지어줘도 걔들은 나를 원망할까? 안 할까? 안 해.
자기들은 그냥 태어나서 그렇게 살은 거야.
아버지도 학교 간 적이 없고, 어머니도 학교 간 적 없고, 형님도 학교 간 적 없고.
그러니까 그게 그냥 일상생활이야.
학교를 못가서.. 뭐 이런 것도 없고, 배우고 싶다, 이런 것도 없어.
왜? 전 동네 사람이 다 그렇게 사니까.
누가 옆에서 학교 다녀서 공부를 해서 출세한 사람이 있어야
그걸 보고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하는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단 말이야.
그러면 내가 가서 보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겠나.
저래서 셈본도 할 줄 몰라서, 글자도 몰라서 어떻게 할까?
물어보면 나이도 모르고.
그래서 학교를 지어서 공부하러 오라 그러면 올까 안 올까?
‘감사합니다’ 하고 올까? 안 올까? 안 오지.
그럼 부형은 학교 보낼까? 안 보낼까? 안 보내겠지.
왜? 이거는 교육열이 없어서 그럴까? 아무도 학교를 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될까?
학교 오면 학용품 같은 거 필요 없단 말이오. 애들은 사탕이 제일이요.
학교에 오면 늘 사탕을 준단 말이오.
그럼 애들은 공부하러 올까? 사탕 먹으로 올까? 사탕먹으러 온단 말이오.
그러니까 공부 좀 하면 나중에 어떻게 한다?
결석을 자꾸 하니까, 사탕 주는 걸 처음엔 똑같이 주다가 차등해서 준다고.
온 애는 많이 주고, 결석한 애는 적게 주고.
어느 정도 1년쯤 지나면
“사탕 먹을래? 공부할래?” 이렇게 자꾸 물어본단 말이오.
애들은 말을 안 해.
왜? 공부도 하고 싶고, 사탕도 먹고 싶어서.
그런데 조금 지나면
“공부할래요.” 이런 애들이 대답에 한두 명 나온다.
어린애들은 사탕 먹을래요 이러고 큰 애는 공부할래요 이러고.
중간에 있는 애들은 이쪽도 손들고 저쪽도 손들고 이런단 말이오.
이런 과정을 겪어서 10년, 20년이 가면서
형아가 학교 다니고, 누나가 학교 다니니까 밑에 애도 따라서 학교 오고, 따라서 학교 오고 이러니까
지금은 학교 입학하라, 이런 말 할 필요가 없어.
다 자기 동네에 다 친구들도 학교 가고, 선배도 학교 가고, 자기 언니 누나도 학교 가고 하니까
애는 어릴 때부터 벌써 학교, 학교, 안단 말이오.
그러니까 저절로 오게 된다.
그런데 초등학교만 원래 해주려고 그랬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관뒀어. 문명 퇴치를 목적으로 했어.
남자애들은 멀리 있는 중학교를 갔는데,
여자애들은 동네 밖으로 못 나가니까 학교를 못 다니니까
나한테 와서 중학교 좀 만들어 달라.
그래서 내가 그거까지 여력이 안된다.
다음에 또 5명이 와서 만들어 달라.
그래서 유치원 애들 돌볼 수 있겠다 그래서
중학교 여자애를 아침에는 와서 유치원을 돌보고, 점심 먹고 중학교 과정을 하게 한 거요.
이렇게 해서 학교를 운영하면서
중학생은 유치원 가르치고, 고등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가르치고,
그래서 대학가는 애는 초등학교 상급반 가르치고.
이런 식으로 전부 자격있는 선생은 하나도 없고.
그런데 대다수가 정부학교 시험치면 다 A학점을 받는거요.
정부학교하고 비교하면 상위클라스에 속하는 거요.
왜? 전부다 그렇게 열의를 갖고 하니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라
그럼 얘가 초등학교를 다닌 뒤에 중학교를 안 보내주면 원망할까? 안 할까?
그럼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를 안 보내주면 원망을 더 할까? 안 할까?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 보내달라는데, 안 보내주면 어떨까?
원망하는 정도로 마칠까? 해코지할까??
해코지해. 해꼬지.
막 밖에 소문 내.
“좋은 일 한다 해 놓고 학교도 안 보내주고, 뭐 준다 해 놓고.”
왜? 글도 알고, 공부도 알고, 다니고, 비판의식이 생기니까
모아서 자기 뜻대로, 자기 원하는 거 안 해주면 해코지 하는 거요.
그러면 사람들은 배은망덕하다고 그래.
그래서 기분 나빠서 가버리는 사람도 있는 거요.
스님이 생각할 때는
그 애들을 도와주면 그 애들이 고마워할 애도 있지만
그 애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그 애들이 크면 뭐다?
이 공부라는 것은 해고지 할 줄 아는 머리가 되는 거 아니오. 공부를 하면.
해코지도 할 줄 아는 머리가 되잖아.
그러니까 이걸 다 죽을 때까지 책임져주지 않는 이상은 언젠가는 원망을 들을까?안 들을까?
듣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줄 때는 도와주고
아, 감사하는 인사만 들을까? 도와준 결과는 원망이 더 많을까? 원망도 많지.
그래서 모든 부모는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는데
내 자식한테 원망을 듣잖아.
그러나 부모가 되려면 원망 들을 각오를 하고,
이런 좋은 일을 하려면 원망들을 각오를 해야 해.
그런데 많은 어리석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면서 칭찬 들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다가 그만 두는 거요.
실망을 해서.
이 일 자체는 바로 원망 들을 일이야.
가만 놔놓으면 원망 안 하는데, 건드리면 원망을 듣는 거야.
그러나 원망을 들어도 이 아이들은 배워야 할까? 안 배워야 할까?
배워야 해.
자,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볼 때는
대학을 안 보내준 게 원망스럽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를 어디까지 공부시켜줬나?
여상 보내서 취직까지 하게 해줬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이게 원망할 일이가? 감사할 일이가?
...
그런데 그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밖에 안 배운 걸 어떻게 하노?
나는 남녀차별을 합리화하거나 잘했다는 거 아니야.
남녀 평등하다는 게 부처님 가르침인데
이 경우에 그러면 부모가 나쁘다는 사람밖에 안 되잖아.
자기 부모가 나쁜 사람이 되면 좋으나?
아버지는 어머니는 뭘 몰랐다, 어리석다라고는 할 수 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부모에게 이 상처를 치유하려면
감사기도를 해야 한다. 감사기도를.
자꾸 대학 안 보내 준 것,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낳고 키워 주시고,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줘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자기 속에 있는 차별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해 진다.
그럼 시어머니도 나빠서 그런게 아니라
보고들은 게 그거밖에 없다 이 말이야.
그걸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남편도 이 법을 공부한게 아니니까
자기 상처 입은 그것만 갖고 자꾸 부딪힌다 이 말이오.
장남인데, 형님한테는 잘해주고 나는 안 해주고, 이거밖에 생각 안한다, 이거야.
며느리는 남자한테만 해주고, 딸한테는 안해주고 하고
남편은 뭐한다? 장남한테는 해주고 나는 안 해주고
둘이 피해자끼리 모여서 그렇게 잘 살아라. ㅎㅎ
그러니까 나는 딸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차남장남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할 일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자기는 하더라도 그거는, 이걸 고발 조치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방법이 없다, 이 말이오.
왜?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해온 거니까.
그래서 자기가 감사기도를 해서 자기를 치유하고
남편은 내가 얘기하듯 이렇게 남편한테 얘기해 준다고 되는 거 아니오.
남편 등 두드려주고 격려하고.
그러면서 자기라도 건강하면 이건 자식대는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차별은.
법률용어는 다 없어졌죠.
딸 아들 똑같이 유산분배 되고, 차남장남 없이 다 되잖아, 그죠?
법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살아있을 때는 그래도 아직 관습이 남아서 누구한테 많이 줄까?
딸보다는 아들한테 많이 주고, 큰아들한테 많이 주고.
그것까지 법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이게 문화이기 때문에.
그럼 이건 개선되려면 시간이 좀 흘러야 해, 시간이.
어떻게, 계속 원망하고, 피해자끼리 둘이 붙어 그렇게 살래?
내가 우리 어머니 생각해도 우리 어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야.
그런데 딸은 대학을 안 보내고, 딸은 결혼할 때 일체 10원 한 장 안주고, 유산도 하나 안 주고
이거는 어머니 아버지가 내가 존경할 만큼 좋은 분인데도
그건 내가 생각해도 진짜 너무하다 싶어.
그런데 그게 설득이 안 돼.
내가 아버님한테, 저한테 준 조금의 유산을
누나하고 여동생한테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했더니
그것도 안된다는 거요.
그만큼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건 우리 세대는 그걸 변화시켜야 되지만,
윗 세대 그 생각을 자꾸하면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상처를 치유하세요.
감사절을 좀 해야 돼.
”아이고, 제가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를 고등학교까지 보내주고,
그래도 여상 다녀서 은행이라도 취직하게 해주고“
은행이라도 다녔으니까 결혼해서 잘 살 거 아니오.
그렇게 감사기도 하셔야 돼, 알았죠?
--
내 얘기 들으면 젊은 여자들은 난리일 거야.
스님이 남녀불평등을 무마했다.
그런데 지금 어떡할 거요, 지금.
늙은 부모님을, 돌아가신 부모한테.
그러나 그분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분들은 그것만 듣고 보고 살아오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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