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절에서 지나치게 많은 불사금을 얘기하셔서 부담됩니다.
천도재에 관해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불자가 있는지
이에 관한 법륜 스님 법문 듣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러면 사실이든 아니든
자기가 스님의 그런 위로와 종교적 의식을 통해서 자기가 위안을 얻었다하면
그걸 본인이 더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불사할 때
자기가 낼 수 있는 형편 범위 안에서 보시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근데 그게 양이 조금 많다. 나한테 부담이 된다. 그러면
그걸 왜 고민합니까?
내 돈 내가 내는데
“아, 스님 죄송합니다.
요새 사업이 좀 안 돼가 형편이 안 돼가
제가 그만큼 많이 못 내고 이것만 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또 선생님 요즘 제가 사업이 잘 안되고 형편이 안 돼가
불사의 뜻은 좋은데
제가 이번에는 불사에 동참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
...
그야 뭐 친구지간에 형제간에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해가 돈 빌려 달라면
자기 돈 빌려줄까?
똑같은 거지.
돈 빌려달라 할 때 걱정이 되는 거는 안 빌려주면
형제간에 친구 간에 이것도 먹을 것 같고
빌려주면 돈을 못 받을 것 같고.
이게 돈 빌려달라는 것 때문에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것도 먹기 싫으면 뭐다?
돈을 좀 버리면 되고
돈이 버리는 게 아까우면 이걸 좀 얻어먹으면 되는데
두 가지 다 안 하려니까
“돈도 안 읽고 욕도 안 하고 먹는 무슨 뾰족한 수가 없습니까?”
이런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이게 고민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돈을 주면 돌려받기가 좀 어렵겠다 싶으면
욕을 좀 얻어먹어야 해.
형제간에 몇 년간 서로 안 본다든지
친구지간에 연락 안 한다든지
그 정도 감수해야지.
내가 나쁜 짓 한 게 아니라 돈 빌려달라고 해서 내 못 준다는데
자기가 안 보겠다는 걸 어떻게 해요
아무리 절친이라도
“그래 그러면 기다릴게” 이렇게 하면 되고
아무리 형제라도
“그래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릴게, 풀릴 때까지 기다릴게”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지.
그다음에 사람이 사는데
형제간에 우애가 중요하고 친구 간의 우정이 중요하면
뭐 돈 그까짓 거 버리면 되잖아.
주식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돈 까짓거 좀 버리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거를 양쪽 다 움켜쥐니까 고민이 되지.
둘 중의 하나를 딱 선택해서
“그래 돈을 버리자” 아니면
“그래, 그냥 욕 좀 얻어먹자.” 이렇게 딱 하면 된다.
이거 똑같은 거 아니에요.
보시해라
‘안 하면 그동안에 스님이 나한테 해준 거에 대해서 욕할 거 아니냐’
또 ‘내 기도 잘 안 해줄 거 아니냐’
또 이런 식으로 또 한쪽에 머리를 굴리고
돈을 드리려니까 또 부담이 되고.
그러니까 이게 스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스님은 그냥 내 문제에 그런 사건이 벌어진 거의 하나일 뿐이다.
거기에 내가 어떡하겠냐?
내가 욕심을 내기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이 얘기요.
얼른 들으면 이거 남이 들으면
‘스님이 불사한다고 돈 많이 달라 그래서 생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행적 관점이 아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 빌려 달라거나, 무슨 뭐 해 달라거나
불사하라거나, 시주하라거나 하는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것은
내 문제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스님과 위안을 받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뭐 재산의 절반이라도 팔아서 주는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게까지 내가 돈을 줄 이유는 없겠다, 나한테는 너무 부담이 된다.’ 이러면
‘선생님 그동안에 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마는
이번에는 불사에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서 욕을 좀 얻어먹으면 되지!
비판하면 비판하고
전에는 오면 차도 한 잔 주고 하다가
인사해도 안 받는다. 그러면
돈을 안 줬는데 그 사람은 기분 나쁠 거 아니야.
기분 나쁜 거를 내가 인정해야지.
돈도 안 줘놓고 기분 나쁜 거, 그것도 인정을 안 하겠다.
그러면 안 되지.
절에 오면 전 같은 뭐 ‘거사님 오셨느냐’ 그러고
뭐 차도 내고 여러 가지 이렇게 했는데
이제 와도 뭐 못 본 척하고 인상 쓰고 그래도
그거 그 정도 받아야지 돈이 얼만데 돈값을 하려면 그 정도 감내해야지.
그거 기분 나쁘다고 딴 절에 가면 그건 의리가 없는 인간이지.
돈을 안 냈으니까.
죄 지은 건 아니야.
형편이 안 되어서 안 낸 거니까.
그러나 좀 냉대 좀 받고, 외면 좀 당하고,
그래도 절에 꾸준히 다니면
또 몇 년 다니면 해결이 될까? 안 될까? 해결이 돼.
지금 그 스님도 돈이 필요한데 안 주면 기분 나쁘지
시간 좀 지나면 또 풀린다는 거예요.
사람이라는 거는.
그래서 자기가 어떡하겠냐?
세 가지 길이 있어요.
-돈을 버리든지
-욕을 얻어먹든지
-세 번째는 그냥 돈을 조금 주고 그냥 때우던지
돈도 조금 주고 욕도 좀 얻어먹고
이렇게 상쇄한단 말에요.
예를 들면
돈 100을 잃고 욕을 안 얻어먹든지
돈 안 잃고 욕을 100을 얻어먹든지
안 그러면 돈 50주고 욕을 50을 얻어먹든지
세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돼요.
그래서 주로 친구나 가족 중에 돈 빌려달라
1천만 원 빌려달라 이러면
100만 원을 줘버려요.
“아이고, 나 천만 원 빌려줄 건 없고
네가 어렵다니까 100만 원 좀 지원할 게.”
빌려주는 게 아니고 줘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지는 천만이 필요한데 100만 원 갖고 만족하겠어요?
그러나 천만 원은 빌려주는 거고 100만 원은 줘 버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이고 미안하다. 아이고 형평이 그리 어렵나?
내 천만 원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내 지금 빌려줄 돈 없다.
마침 나한테 100만 원밖에 없는데 네가 어렵다니까
뭐 친구 간에 빌려주고 그럴 게 뭐 있나
쓰고 나중에 뭐 또 형편 되면 내 어려울 때 도와라.”
이렇게 하고 때우면
욕도 조금 적게 얻어먹고 돈도 조금 적게 읽고 이런 게 있잖아.
스님 보시하라 그러면
뭐 100만 원 하라 그러면 한 10만 원 가져가든지
천만 원 나라면 한 100만 원 가져가든지
1억 해라하면 한 500만 원 가져가서 드리고
“스님, 제가 그 정도 드리면 좋겠는데 형편이 지금 그래 안 됩니다.
제가 이거라도 조금 보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러고 말면 되지
뭐. 그게 어렵다고
내 돈을 가지고 내가 걱정해
그거 참 바보 같은 사람이네.
그걸 왜 또 이 절에 다니다가 그만한 일에 또 딴 절에 갈 생각을 해?
의리 없는 인간이네, 보니.
어려우면 예수님한테 욕 좀 얻어먹고 그냥 다니면 되지
뭐 또 기분 좀 나쁘다고 또 다른 절에 간다고 또 설치고
좋아서 그러면 몰라도 기분 나쁘다고 가는 거는 수행이 아니에요.
정토회보다 딴 절이 더 좋은 게 있어서 간다.
이거는 괜찮아요.
사람은 자기 자유가 있으니까.
근데 뭐 정토회 다니다 기분 나쁘다고 간다.
수행자가 뭐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관점을 가진다면 내가 볼 때는 별로 걱정이 아닌 것 같은데
...
요즘 교회도 목사도 교회 크게 짓는다고 벌려놓고
돈 안 들어와서 지금 짓다가 말면 부도 날 수가 있고
그래서 교회도 짓다가 팔리는 거 있고
절도 짓다가 코로나 나고 수입 떨어지고 하니까
수입이 안 들어오니까 돈 좀 있고 아는 사람한테 자꾸 부담을 크게 할 수밖에 없잖아.
그죠?
그건 뭐 세상 이치인데 뭐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 망한다고 나까지 따라서 망할 수는 없잖아.
의리를 중요시하면 같이 망해서 죽던지
안 그러면 나는 빠지고 욕 좀 얻어먹던지
그건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다.
...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늘 닥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중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게 인생이다
이렇게 이해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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