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동물의 행동양식은 유전인자, 유전인자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급동물일수록 거의 99% 지배를 받고, 이 포유로 쪽으로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그 비율이 조금 떨어지면서 그 행동양식에서 유전인자 말고 다른 요인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학습에 의해서다. 학습에 의해서. 즉, 훈련이 된다. 이 말이오. 사람에 오면 어떠냐?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졸리면 자려고 하고, 이런 것들은 유전인자에 의해서 거의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렇게 말을 하고, 한국 사람은 한국말하고 미국사람은 미국말하고 된장찌개 맛이 더 좋다고 느끼고, 이런 것들은 다 유전인자에 들어있는 거요? 아니오. 이런 것은 다 태어난 이후에 배워서 이루어진 거다. 이 배워서 이루어진 것 중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아주 갓난아기 때 태어나자마자 3개월 사이에 그때 배워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때는 배우는 게 아니에요. 배우는 주체는 없어. 거기는 각인이 돼.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오면 도장이 찍히듯이 팍 찍혀버려. 인쇄되듯이. 그러니까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리겠죠. 잘 고쳐질까? 안 고쳐질까? 안 고쳐져. 그래서 옛부터 뭐라고 그래요?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자아가 되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자아라는 것. 그게 자아가 되니까 고칠 수가 없겠죠.
내가 뭔가를 고쳐야 되는데, 그게 나라고 하는 것의 근거가 되니 그게 어떻게 고쳐지겠어요. 그러니 이것은 업식을 소멸시키고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것을 기초로 해서 소위 배움이라는 게 이루어지죠. 유치원과정 국민학교 대학교 쭉 올라가서면 보고 듣고 배운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의 행동양식에는 이렇게 학습에 의해서 많은 행동양식이 이루어지는데 학습에 가장 중요한 게 뭐요? 정보란 말이오. 정보. 아시겠습니까?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혀를 통해서 손으로 만지면서 정보가 들어오고, 그 정보를 머릿속에서 요것저것 분별해서 이렇게 해서 자꾸자꾸 여러분들이 지금 의식이 변해간단 말이오. 정보가 들어와도 정보를 제대로 못 읽어서 헛다리짚을 수도 있지마는, 그러나 정보자체가 왜곡되어서 들어오면 어떻겠어요? 이것은 진실을 발견할 수가 없겠죠.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정보가 사실이 사실대로 들어와 줘야 되요. 여러분들은 있던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싶어요? 그냥 거꾸로 알고 싶어요? 사실대로 알고 싶죠. 그게 더 충격이라. 내가 예를 들어서 암이 걸렸다면 암이 걸렸다는 것을 알고 싶어요? 모르고 싶어요? 알고 싶지.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어때요? 알면 안 좋다. 이런 생각하지만, 본인은 다 알고 싶어요.
울든지 말든지 어떻게 하든지 내가 알고 난 뒤에 내가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은 내가 선택할 일이고, 일단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싶다. 속고 싶지는 않다 이거요.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오. 어쨌든 여러분들은 다 바라는 게 그거 아니오. 남편이 나하고 연애하기 전에 다른 여자하고 연애를 한 경험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안 알고 싶어요? 알고 싶지. 그것을 내가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게 있었으면 있었다. 없었으면 없었다. 사실은 사실대로 알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이건 인간의 기본 심성이오. 사실을 사실대로 아무튼 알고 싶다. 그것을 이렇게 왜곡되어 잘못알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고. 이게 인간을 사회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분석해도 이 정보가 정확하게 들어와야 그 정보를 토대로 해서 인간은 그것을 축적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받고 이래요.
우리가 직접 경험해서 아는 것 보다 인간은 간접경험해서 아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인간은 특징이 정보를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한 정보가 있다면 타인에게 전해주고, 타인이 준 정보를 자기가 받아들이죠. 여러분들이 다 풀 먹었고, 이건 나물인지 독초인지 어떻게 구별합니까? 다 수도 없는 사람들이 먹고 죽고 토하고 하는 그 수십만 년의 역사의 경험 속에서 어때요? 이건 독초니까 먹지마라. 이것은 약초니까 어떨 때 먹어라. 이것은 나물로 먹어도 좋다. 이런 걸 배워 여러분들 다 따라하죠. 그거 다 경험해서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내하나 같지만, 내가 가진 이 정보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하고 적어도 과학적으로 말하면 한 3백만 정도 누적된 정보를 여러분들이 다 전수받아서 갖고 있는 거요. 유전인자 하나만 딱 분석하면 그 사람 몸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사람의 두뇌 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분석하면 인류역사가 그 속에 다 들어있어요. 아직 이것은 못 밝히고 있어서 그렇지.
여러분들은 한 개인의 역사나 한 가계의 역사가 아니에요. 그 속에는 전 인류의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그런 정보를 여러분들이 받아들이면 인류가 되고, 그런 정보가 차단이 되어서 못 받아들이면 사람이 안 됩니다. 생물학적인 사람이 되지만, 인류학적인 사람은 안 된다 이 말이오.
즉 애기를 낳자마자 사람하고 못 만나게 하고 돼지우리에서 키우면 사람이 될까요? 돼지같이 흉내 내고 하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말할 때 “아, 사람이 돼지흉내 낸다.” 이래야 말이 될까? 어, “돼지가 사람같이 생겼다.” 이래야 말이 될까? 헷갈리죠. 예. 생물학적인 인간종자라고 해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인류로서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큰 오산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말하는 인간할 때 그것은 생물학적인 인간 종에다가 바로 인류로서의 인간, 즉 인류가 경험한 모든 정보를 어때요? 전수받았을 때 그게 인류로서의 인간이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왜곡해서 전달하면 어떻게 하겠냐? 이 말이오. 안 되겠죠.
이것은 종교 따로 이런 거하고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누구나 다 그것은 왜곡해서 전달하면 안 돼.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왜곡해서나, 안 그러면 잘못된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뭐가 되었어요. 이렇게 해매고 있단 말이오. 쥐약을 쥐약인 줄 알아야 되는데, 그게 맛있는 것인 줄 이렇게 착각하는 것은 다 잘못된 정보의 도입에 의해서 형성된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여기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보를 왜곡해서 전달하지 마라 이 말이오. 동의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뭐라고 그래요? “인간이 인간인 것은 정보를 똑바로 주고받아서 이렇게 오늘날 인간이 성장해 왔는데, 거짓말 안하고 어떻게 사노?” 이래요.
말, 믿을 신이 뭐요? (사람 인)에다가 (말씀 언)자 쓰죠? 글자마저도 그렇게 생겼어요.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거요. 말은 진실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라는 게 필요하지, 거짓말하기 위해서 말이 생긴 게 아니란 말이오. 서로 뭔가 경험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라는 것이 원래 생겨났단 말이오.
그런데 이것을 거짓말하는 도구로 쓰니 부엌칼을 만들어줘 놓으니까 사람 찔러 죽이는 거와 같단 말이오. 잘못 쓰고 있다. 이런 얘기요. 정보의 올바른 전달. 어떤 면에서 좁혀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거짓말 하지마라.’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좁은 의미의 얘기고, 이것의 근원적인 것은 정보가 그대로 전달되어야 된다.
즉, 정보가 한쪽에 몰려서 정보가 이렇게 갇혀서 ‘접근금지’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거요? 안 된다는 거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에 관계되는 정보는 한때 누가 독점했어요? 안기부가 독점했지. 우리한테 알려줬어요? 안 알려줬어요? 안 알려줬죠. 그러니까 맨날 거짓말만 알려줬지.
그러니까 우리들의 의식 속에 북한에 대해서는 잘못된 의식이 가득차 있단 말이오. 지금 잘못된 위식에 휩싸여서 거기 수백만 동포가 굶어죽어도 그 고통이 전달이 안 되고 자비심도 잘 안 일어나는 거요. 그 잘못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여러분들이 반응을 하기 때문에 “빨갱이”하면 “죽여 버려야 된다.”라고 자동적으로 생각이 일어난단 말이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요. 이게 정보가 비공개, 늘 공개가 안 되어서 문제가 생기지, 공개를 해야 돼. 늘. 열어놔야 돼. 모든 정보를 다 열어놔야 돼. 사람은 다 사실을 시살대로 알고 싶어 해. 왜곡하지 마라. 공개를 해야 된다는 것 그리고 또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 개인 간에 거짓말 정보를 전달하면 뭐가 된다? 불신을 초래하게 되죠. 그러니까 피해가 개인에게만 미칩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거짓말 하거나 이러면 피해가 더 넓어지죠. 종교인이 거짓말 하면 어때요? 피해가 더 넓어지지. 세상사람 다 못 믿어도 종교인은 믿을 수 있다. 어쨌든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이 거짓말 하면 어떻겠어요? 피해가 엄청나죠.
그러기 때문에 종교적 거짓말에 미친 사람들은 고치기가 어렵단 말이오. 왜? 종교적 지도자에 대해서 확실히 믿어 버리니까, “우리 스님이 말씀하셨어.” 이러면 진리란 말이오. “우리 신부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이러면 진리가 되어버린단 말이오. 개인이 뭐라고 그러면 “에이, 거짓말. 그것을 어떻게 믿어.” 이렇게 얘기하지만, 신문에 나오거나 방송에 나와 버리면 믿어버리죠. 뭐라고 그럽니까? “TV에 났더라야.” “신문에 났던데?”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개인적 거짓말보다도 더 위험한 건 뭐다? 언론의 거짓말이란 말이오. 그런데 이 ‘거짓말 하지 말라.’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 하냐? 개인 사이의 거짓말만 자꾸 해석을 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사회문화적으로 정말 인류에게 가야할 어떤 길로써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개인 간의 그저 사적인 문제, 이런 것으로 다가온단 말이오.
왜 이렇게 해석했을까? 왕이 거짓말을 하고, 종교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그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제외시켜버리기 위해서는 이 거짓말은 개인과 개인끼리 하는 거짓말, 그런데 취급을 한단 말이오. 부처님이 만천하를 깨달으신 분이 그런 개인사에 예를 들면 “엄마 애기 어디로 나와요?” “어. 배꼽으로 나와.” “거짓말. 왜 거짓말을 가르쳤나?” 붓다가 이런 거 문제 삼고 인생의 5가지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계율 중에 ‘거짓말 하지 마라.’ 이런 말씀 하셨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아니란 말이오.
바로 진실한 정보, 그리고 공개. 이게 투명성이잖아요. 정보가 딱 공개가 되어야 된다. 그리고 그 정보는 어떤 이유로 어떤 이해관계로 중간에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 사람이 어떤 진실성은 바로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해야 되는 거요. 그런 여러분과 저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기서는 어떤 계기로 해서 제가 이 관념의 울타리를 탁 좀 벗어났다. 이런 깨달음이라는 차이도 있지만, 또 하나는 여러분보다 저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여러분보다 뭔가 더 앞서가고 “어떻게 아실까?” 이런 생각이 든 것 중에는 바로 바른 정보를 보다 더 많은 양을, 여러분들이 접근되어지지 않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왜 제가 스님이면서 평소에 북한 연구도 안한 사람이 2년 만에 완전히 학자보다 더한 북한문제전문가처럼 취급을 받을까? 많은 사람이 북한에 대해서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또 지나가 버린 정보를 가지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국가 정보기관마저도 소수의 군사정보만 받아들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동참을 하다가보니 우연히 어때요? 수많은 북한의 민중을 만나게 되고, 그 민중을 만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서 현재의 북한, 현재의 민중들의 고통이 어떠냐?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빨리 정확하게 파악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딱 정확하게 정보가 파악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되도 안 되는 얘기를 했을 때 믿어져요? 안 믿어져요? 안 믿어지지. 정부기관이 뭐라고 그래도, 유명한 외국 학자가 뭐라고 그래도, “아니야 당신 잘못 알았어.” 그러니 처음에는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겠어. “당신 학자요? 당시 정부 기관 사람이오? 당신 북한 가 봤어?” 이렇게 엄청나게 수모를 겪었죠.
그리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 취급을 받았단 말이오. 그러나 끄떡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나 분명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2년이 안 지나서 어때요? 대부분 다 인정을 하죠. 그럼 역사는 이렇게 될 거요. “스님이 도통해서 구름타고 내려다 봤을 거다.” 아니오. 정보를 정확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에 대해서 평소에 갖고 있는 직관력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검증을 하죠.
내가 승려인데 왜 함부로 말하겠어요. 저도 제 인생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인데. 내가 역사 속에서 어떤 말을 한 거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인데, “몇 백만이 죽었다.” 왜 이런 걸 함부로 말할까요? 어떤 사람보다도 정보와 루트를 다 가지고 난 후에 결론에 대해서 말하죠. 내가 무슨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 전문가도 아니고 그거 얘기한다고 그래서 나한테 이익이 오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일단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줘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가능한 한 바른 정보를 받아들여야 돼. 여러분들이 바른 정보를 받아들이고 싶으면 여러분도 바르게 전달해야 하며, 여러분들이 누군가가 정보를 숨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뭔가를 숨기지 말고 가능하면 공개를 해야 된다. 그래야 우리 인류가 다 같이 바르게 나아가고, 다 같이 성숙되어 가는 거 아니오. 나 혼자 깨달으면 좋을 거 같아요? 외롭죠.
외롭다는 게 어떤 고통스러운 외로움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기보다 나은 사화를, 나은 삶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나은 것이 함께 가줘야 될 거 아니오. 이게 무슨 경쟁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거짓말 하지 말라.’ ‘이것은 진실을 말하라.’ 이런 얘기요. 소극적으로는 아무리 후퇴하더라도 뭐는 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적극적으로 말하면 진실을 말하라.
진실이라는 게 어떤 거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진실이오.
진실이라는 게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오.
틀렸을 때 틀렸다하고 아는 게 뭐다? 진실이오.
거짓을 거짓이라고 하는 게 뭐다? 진실이오.
진실이라는 게 별도로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진실은 그냥 사실이오. 사실.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오.
그래도 우리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크게는 거짓말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지만, 작게는 정보를 왜곡시키는 거짓말이 있고,
두 번 째는 사람 듣기 좋게 여기 가서는 요 말하고 저기 가서는 저 말하고 이렇게 두 가지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뭐라고 그래요? 양설. 이렇게.
그 다음에 꾸며서 말하는 거요. 듣기 좋게 뭐라고 뭐라고 꾸며서 말하는 거 이것을 뭐라고 한다? 기어. 악구. 악담하는 것. 욕설하고 저주하고. 이런 것을 악구다. 이렇게 말해요.
이런 거 다 듣기 좋아요? 듣기 싫죠. 욕하고 악담하고 저주하는 거, 듣기 싫죠? 예. 내 눈앞에서만 갈랑갈랑 거짓말 하고 돌아와서 딴 얘기하고 이런 거 좋아요? 싫잖아. 그러니 다른 사람도 다 그래. 거짓말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다 큰의미의 거짓말에 속한다.
그러니 거짓말이라는 것은 크게는 한마디로 망어가 되고
그것을 조금 더 좁혀서 나누면 망어, 기어, 양설, 악구.
이렇게 4가지가 있다. 이것을 하지마라. 이런 얘기죠.
자, 수단을 써서 거짓말을 한다. 수단을 써서 거짓말을 하지 마라 그랬죠. 정치인이 선거 때 공약을 난발하는 거 다 거짓말이오? 아니오? 거짓말이죠. 오늘 아침에도 우리 원로들이 모여서 지방자치 문제하고 이런 것을 갖고 아침 7시 반부터 간담회를 했어요. 거기 전에 국회의장 했던 최문식씨가 나와서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고 그러는데, 그분 얘기 중에도 그래요.
자기가 국회의원을 7번 했던가? 그런데 늘 선거운동을 하면서 “내가 이런 짓을 해야 되느냐?” 이런 한쪽의 그 죄책감과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어때요? “당선되어야 된다.”는 그 사이에서 고뇌를 했다. 왜? 거짓말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요. 사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즉, 우리가 대구 밑에 부산 위에 있는 게 위청공단이란 말이오. 대구사람들은 자기들 식수 밑에 있으니까 공장을 세워도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공장을 세워야 된다. 부산 사람들은 자기 식수 위에 있으니 절대 세우면 안 된다.
그러면 대구에 가서는 “세워주겠다.” 부산에 가서는 “절대 안 세우게 해주겠다.” 이것은 성립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만 정치인을 그렇게 말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요. 그러니까 정치인은 선택을 해야 된다는 거요. 어느 쪽으로 하나 선택을 해야 정치가 바로 되는데, 늘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해서 넘어가니까 공약이 지켜질 수가 없죠.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
학자가 양심을 속이는 것,
언론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
종교인이 삿된 도리를 얘기하는 것.
돈이 좀 필요하면 어때요? 돈 내면 복 받는 얘기 슬쩍해서 영험담 얘기해 주죠. 너희는 어떻게 어려웠는데 보시를 해서 어떻게 했더니 무슨 좋은 일이 생겼다. 이렇게 그래서 늘 옛날에 어떻게 되었다. 이런 얘기 떡 해주면 어때요? 마음이 “아이고, 나도 어려운데 돈 좀 내고 뭐 좀 해야 되나보다.” 이런 생각이 일어나죠. 정말 보시를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있으면 해결되는 일도 있고.
그러나 딱 그렇게 어떤 법칙에 맞아서 “아, 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면 재산을 버려야 되겠다.” 이렇게 딱 법을 통해서 일러주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재물을 얻기 위해서 한단 말이오. 조그마한 신통력을 가지고 이렇게 보여서 은연중에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려고 하고, 이렇게 한다든지, 부처님이 ‘가진 신통력도 쓰지 마라.’고 그랬는데 없는 신통을 쓰지 마라 그랬겠어? 안 그랬어?
그러니까 계율에 딱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불법을 워낙 모르니까 현혹되는 거요. 딱 들어보면 법에 이미 너무나 분명하게 딱 정해져있단 말이오. 인천사람보고 “남쪽으로 가라.” 이러면 “틀렸다.” 금방 알 수 있잖아. 그런데서 우리가 이러한 거짓말은 결국은 자신과 타인까지도 결국은 괴롭히는 근본이 되죠. 그래서 이러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아까 부처님도 한번 보세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는데도 그 사람들이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안 믿었지. 그럴 때 부처님이 평소에 거짓말을 한두 마디라도 했으면 해결될 길이 없었겠지. 그러니 그 분이 평소에 거짓말을 안 하고 정말 진실하게 사셨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아하, 저 사람이 평소의 언행으로 봐서 거짓말을 아직까지 한 번도 안했으니까 믿어보자.” 이렇게 해서 듣고 보니까 야, 굉장한 얘기였죠.
그러니 안 믿는 그 사람들도 문제지만, 만약에 그 전에 거짓말을 몇 번 했다면 그 사람도 책임이 있죠. 왜? 그 사람도 못 믿을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늘게 되고, 거짓말을 한번 해 놓으면 거짓말 탄로 안 나게 하기 위해서 또 거짓말 하고 또 거짓말 하고 이렇게.
제가 아는 어떤 신도님 한분은 자살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자살을 하려고 각오를 해놓고 저한테 상담을 신청했어요. 부인인데. 그런데 시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어. 2년간 거짓말이 누적이 되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왔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이가 대학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하는 것을 공부를 잘한다고 그 아버지가 공부 못하면 아이를 두드려 패서 그 어머니가 아이를 도와준다고 성적표를 늘 아버지한테 안보여주고 등수를 계속 속여서 말한 거요.
그러니까 이 아이가 아버지는 마땅히 그 정도면 어느 대학 정도는 갈 수 있다. 최소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아이는 그 대학도 갈 수가 없는 거요. 원서를 아버지가 얘기하는 그 대학에 안 낼 수가 없는 거요. 이것을 탁 밝혀야 되는데, 이것을 못 밝히고 거짓말해서 넣어서 떨어졌는데, 아버지한테는 붙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래서 입시학원에 보내면서 대학에 등록금을 내놓고 다니는 것처럼 속인 거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해외 출장 가 있고, 이런 상태니까. 이렇게 해서 누적이 되어서 이듬해 시험을 쳤는데 또 떨어졌어. 붙으면 얘기를 하려니까 또 떨어져서 이제 2학년이 되었어. 그래서 그 다음에 시험 쳐서 또 떨어졌어. 이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된 거요.
지금 만약에 남편한테 얘기하면 애하고 자기하고 맞아죽는 거요. 이것을 감당 못하니까 자기가 자살해버리려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만 일에 뭐 죽나 하지만, 그 사람으로서는 감당을 못할 경지에 이르렀단 말이오. 이렇게 조그마한 거짓말도 자꾸 자꾸 자꾸 막다가보면 어때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턱 깨서 한대 맞으려는 요량으로 얘기했었어야죠. 미리.
그럼 지금이라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예. 자살할 각오가 있다면 한 5백대쯤 맞을 각오하고, 두 다리 부러질 각오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가 자기 죽이는 것 보다 맞아죽는 게 쉽잖아. 이렇게 딱 각오하고 공개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못 이긴단 말이오. 이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회사에서 다 자살한 사람들. 얼마 전에도 간부 한 사람 자살했죠? 이게 다 숨기다가 숨기다가 완전히 공개가 되면 그것을 감당을 못한단 말이오.
그래서 거짓말 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고통이다? 자신에게 고통이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신용이 있으면 인생살이에 유리합니다. 신용이 있으면 설령 잘못해도 많은 면에서 유리하죠. 여러분들이 다 사업이 망하고 다 망해도 평소에 신용만 있다면 제기할 기회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신용이 있으면 제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라든지 다른 것은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궁지에 처했을 때는 큰 도움이 못 됩니다. 그런데 쌓아야할 신용은 안 쌓고 그 허물어질 무상한 재물만 쌓죠. 그거 어리석은 생각이오. 재물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재물에 목숨을 걸 일이 아니다. 이 말이오. 다 잃어버리고 나면 후회하죠. 별거 아닌 거, 그때 팍 줄걸. 아이 그거야 무가 못해요. 저도 인천에 배만 들어온다면 뭐. 여러분들에게 1억씩 팍 나눠주겠어요. 저도 복권만 당첨된다면 어때요? 여러분들에게 백만 원씩 나눠줄게요. 그것은 누가 못해요? 그런 얘기 하지마세요.
뭐뭐만 된다면, 다시 한 번 회복한다면 그때 제가 보시할게요. 그런 얘기는 안하는 거요. 지금 좋아야 돼. “아, 탁 털어버리니까 오히려 좋구나. 믿을 게 못되는 것을 내가 그 동안 믿고 살았구나. 아,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을 이제야 내가 알 수 있었구나. 수억의 재물을 날리고 도 재물이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만한 공부 값으로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인생살이에는 늘 학습비를 내어야 된다니까. 아시겠습니까?
공부 값을 내어야 돼. 그래서 실패를 딱 사면 억울해 하지 말고, 어때요? “다음에 하면 참 잘하겠다.” 이제는 아, 한번 이 공부 값. 인생 사는데 실패라는 것은 늘 학습비란 말이오. 학습비. 아시겠어요? 사업해도 망하셔도 직장 나와서 퇴직금 받아서 쥐고 뭐할까 하다가 대부분 다 속아서 증권에 투자를 하든, 뭐 남이 시키는데 뭘 하든, 해서 1~2년 못가 톡 털어버리죠. 그럼 허무하죠. 평생 공무원 하셨던 분은 세상 경험도 없고. 그래도 딱 생각을 돌이켜보면 어때요? “아, 세상이 만만한 게 아니구나.” 그 정도 깨닫는 비용으로 한 2~3억 쓰는 거 괜찮아요.
공무원하면 세상이 만만한 줄 알거든요. “아, 만만한 게 아니구나.” 그러면 만만한 게 아닌 줄 알았으면 영리하게 임해야 되겠죠. 예. 요즘 20살 먹은 애들이 아무 세상 경험도 없이 벤처기업 시작합니까? 안합니까? 하죠. 그런데 세상 다 살은 경험이 있고, 친구도 있고, 한 사람이 나이가 50이나 60되어서 왜 못하겠어요? 훨씬 잘 할 수 있죠. 못하는 이유는? 과거생각에 휩싸여서. 내가 지금 나이가 50이나 된 게 내가 지금 그거 하고 있으란 말이냐? 이 생각 때문에 안 되는 거요. 늙은 내가.
탁 놔버리면 지금이 유리하죠. 그렇게 생각 안하세요? 그래서 망한 사람들 상담해서 제기한 사람들 많이 있어요. 20살에 아무 경험도 없고, 돈도 없고, 자전거한대 갖고 사업시작해서 벌어서 50대에 다 날려버리고, 와서 망했다고 그러는데, 지금 새로 시작하면 그땐 자전거 한대 있지만 지금은 고물 자동차라도 한대 있고,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마누라 자식까지 후원군이 있고, 그때는 아는 친구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는 친구도 있고, 그때는 경험도 없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여전히 경험이 있잖아요.
시작하면 훨씬 유리하죠. 안 되는 이유는 뭐요? 이미 지나가버린 “예전엔 내가 몇 십억 굴렸는데, 사장이었는데 지금 내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 딱 굶어죽기 알맞은 생각을 자꾸 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중요한 거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관념을 벗어버리면 새사람이 되는 거요. 마치 봄에 새순이 나오듯이. 나이하고 상관없이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딱 새로 시작하는 거요. 아무거나. 마치 이런 데 와서 봉사를 새로 시작하고, 때를 기다리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 나이에 밀려서 옛날에 추억에 밀려서, 노름하는 사람은 늘 따려고 시작했다가 잃죠. “야, 딸 수 없다 그만해라.” 그러면 “딴다.” 이렇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딸 수 없다 그만하라고 그러면, 그 말은 알아듣는데 뭐라고 그래요? “본전만 하고.” 예. 본전 하다가 집 팔고 논파는 거요. 노름은 다. 본전생각하시면 안 돼요. 본전은 아무것도 없는 게 본전이에요. 빈털터리로 부터 본전이란 말이오.
주식이 5천원주고 샀는데 만원했단 말이오. 그러다 못 팔고 있다 도로 5천원 떨어지면 지금 팔아도 본전 하죠. 그런데 못 팔죠. 왜? 만원 올라왔던 그거 기다리다가. 그러다가 3천원 되면 정말 못 파는 거요. 왜? 팔면 손해 보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5천원주고 샀지만 3천원에 팔면 2천원 손해 본다 이러시면 안 돼요. 앞으로 천원 더 떨어질 거 같으면 지금 팔면 천원 이익본 거요. 인생은 늘 지금부터 생각해야지 지나간 것은 아무 소용없어요.
방송이 없으니까 그런 것을 뭐라고 그래요? 죽은 자식 부랄 만진다 이러잖아요. 아무 쓸데없는 얘기란 말이오. 그냥 본인의 망상이죠. 마치 어제저녁에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데. 개꿈 무슨 꿈을 꾸었든 무슨 상관이오. 어제 내가 뭐했는데. 아무 소용없는 얘기요. 그러니까
지금에 깨어있으면
과거에 모든 잘하고 잘못한 경험이 다
엄청난 정보 자료가 되고,
과거에 사로잡히면
꿈을 꾸는 사람과 같다.
미래에 대해서 사로잡히면
걱정만 하고 산다.
걱정하는 사람은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는데
벌써 걱정하는 거요.
어제도 어느 분 상담하니까 딸 결혼식 걱정하길래 난 내일 모래 날짜 잡았나 싶었더니 아직 애인도 없는데 벌써. 그게 뭐냐?
걱정은 미래를 현재화 시키는 망념 속에 있고,
괴로움은 과거를 현재화 시키는 망념 속에 있고.
그래서 현재에 살면서 꼭 꿈꾸는 사람하고 같아.
깨달음이라는 것은
현재에 깨어있는 거요.
과거는 다만 예측해가면서 가는 거고,
미래는 경험 삼는 것 밖에 아니오.
부부간에도 진실을 말하면 좋죠. 솔직하게 말하세요.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면 맞을 일 있으면 한대 맞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끝내버리면 되요. 그럼 서로 살기기 편해요. 이렇게 꼬부쳐서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이해하려고 서로 골치 안 섞여도 되잖아요. 말대로 믿어도 되죠. “빙 둘러서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겠지.” 이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사실대로 말하세요.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는 데, 상대가 기분 나쁠 것 같으면 시기를 조금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죠. 사실대로 말한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데 거기다 똑 쏘는 것은 아니란 말이오. 현명치 못하단 말이오. 조금 있다가 밥 먹고 조금 있다가 얘기하면 되잖아. 그죠. 시기를 조절하는 그런 것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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