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으로 가득했던 도시가 고요합니다.
자동차 엔진소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에어컨 웅웅대는 소리, 확성기, 공장, 공사장 소리
이 모든 도시 소음이 사라졌습니다.
도시 소음이 사라지자
거리에는 새소리 나뭇잎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만 울려퍼집니다.
주택가 골목에서는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들이 길게 울어댑니다.
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다른 생물들은 그대로입니다.
자연 환경도 그대로입니다.
오직 인간만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제일 먼저 찾아온 변화는 정적입니다.
-일주일 후-
조용한 지상과 달리 지하는 자연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뉴욕이나 런던 모스코바처럼 지하철을 땅속 깊이 건설한 도시에서는
지하터널을 수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매일같이 수천 리터의 물을 퍼냅니다.
그런 펌프 작동이 중단되면 지하철역과 터널은 며칠 만에 물에 잠깁니다.
지하에 물이 차올라 포장된 도로 밑에 흙이 씻겨나가고
도로 여기저기가 갈라집니다.
하수구는 비닐로 막혀 곳곳에 새로운 물길이 생깁니다.
도시의 물은 더 이상 정해진 길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한 달 후-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들이 몇 주 만에 가동을 멈춥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발전소들은 그보다 오래 버티겠지만
사람의 관리가 없으면 언젠가 멈추게 됩니다.
지구는 다시 불빛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발전소는 단지 멈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디젤 발전기가 비상 연료까지 다
소모하면서 작동을 멈춥니다.
발전기가 멈추면 냉각수는 금세 끌어 증발해 버립니다.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전세계 440여 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차례로 과열됩니다.
발전소 절반이 불타고 나머지는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쪽이든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공기 중으로 유출됩니다.
발전소 반경 수백 킬로미터가 오염되고 대류권에 방사능 물질이 유입됩니다.
인간이 사라져도 인간이 남긴 죽음의 재는 망령처럼 전 세계를 떠돌아다닙니다.
-1년 후-
인간이 사라지면 당장 목숨을 건지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그 중 새들은 정말 많은 목숨을 건집니다.
전 세계 새들 중 매년 10억 마리 이상이 고압 전선에 부딪혀 죽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부딪혀 죽거나
비행기에 부딪혀 죽는 채도 매년 수억 마리에 달합니다.
사냥으로 희생되는 새는 매년 수천만 마리입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되고, 자동차가 멈추고, 총성이 멈추면서 수많은 새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은 여전합니다.
앞으로도 매년 수십억 마리의 가미가제 새들이 텅 빈 건물의 유리창을 공격할 겁니다.
사람 없는 도시의 유리창은 점점 깨져만 가고 영원히 복구되지 않습니다.
-10년 후-
사람이 사는 집은 몇십 년을 거뜬히 버티지만
사람 없는 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몇 년째 난방이 중단되면 집에 배관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배관이 얼고 높기를 반복하면서 건물 내부도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다가
결국 심각하게 손상됩니다.
벽과 지붕 사이에 연결부가 떨어져 나가고 균열한 곳마다 비가 스며듭니다.
볼트가 녹슬고 외장이 일어나면서 단열재가 노출됩니다.
사람 없는 집은 목조 가옥이라면 기껏해야 10년
일반 집은 대부분 50년
길어야 100년을 못 버팁니다.
-20년 후-
도시의 기능이 마비된지 20년째
자연은 이제 불로 인간의 흔적을 더 빨리 지우려 합니다.
20년이면 피뢰침이 삭아 꺾이기 시작합니다.
무방비 상태가 된 지붕에 번갯불이 떨어지고 건물이 불길에 휩싸입니다.
몇 십년째 수북히 쌓인 마른 낙엽 위로도 번갯불이 떨어집니다.
매년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도시 곳곳이 불타오릅니다.
멕시코만과 쿠웨이트의 천연가스 유정도 번갯불에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번 불이 붙으면 가스 뚜껑을 닫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하에 매장된 가스가 다 없어질 때까지 수십 년 동안 불타오를 수도 있습니다.
석유화학 공장에서 난 불은 가스 유정만큼 오래가진 않겠지만
대신 시안화수소나 납, 크롬, 수은 같은 독성 물질을 대기 중으로 방출합니다.
중금속에 오염된 구름은 무역풍을 타고 전 세계로 흩어집니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불에 탄 단열재와 여러 화합물, 그을린 가로수가 도시의 흙에 양분을 제공합니다.
거리마다 식물이 무성히 자라고, 이끼로 가득한 벽은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릅니다.
불 타고 뼈대만 남은 고층 건물에 붉은 꼬리매와 송골매가 둥지를 틉니다.
거리에는 코요테, 늑대, 붉은 여우, 살쾡이들이 돌아다닙니다.
이 같은 야생 포식자들은 도시에 남겨진 반려견의 후손들을 다 잡아먹습니다.
아스팔트 정글이 진짜 정글로 변해갑니다.
-100년 후-
인간이 사라지면 생태계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더 이상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덕분에 코끼리의 개체수가 100년 만에 20배로 늘었습니다.
코끼리의 수가 상아 거래가 횡행하기 전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밀렵꾼에게 희생되던 수많은 멸종 위기종들도 개체수가 늘었습니다.
반면 너구리, 족제비, 여우 같은 작은 포식자들은 개체수가 오히려 줄었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남긴 엄청난 수의 작은 포식자들
즉 고양이들과 생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입니다.
북아프리카의 소는 한때 야생이었지만
사람과 몇천 년을 살다 보니 몸이 둔해졌습니다.
보호해주는 인간이 없으면 소들은 곧바로 사자와 하이에나의 잔치 음식이 됩니다. 대초원의 풀을 독차지하던 소가 사라지면 또 다른 초식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자연은 늘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빈자리도 누군가가 채울까요?
인간의 조상들은 한때 다른 영장류들과 경쟁 관계였겠지만
먼저 나무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두뇌가 발달해 최상위 포식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덕분에 개코원숭이 같은 영장류들은
플라이스토세 기간 내내 뇌가 발달할 기회를 빼앗겼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잠시 중단되었던 그들의 두뇌발달이 빨라지게 될까요?
먼 미래에 개코원숭이의 후손이 우리의 빈자리를 차지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아마 지구에서 아주 짧게 번성했던 특이한 포식자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300년 후-
인간은 농업 덕분에 정착하게 되었고 정착은 도시화로 이어졌습니다.
지구 땅덩이에 약 3%가 도시이거나 주거지이고 경작지는 그보다 훨씬 많은 12%나 됩니다.
목축지까지 포함한다면 인간의 식량 생산에만 이용되는 땅은
전 세계 땅덩이에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농업과 목축을 멈춘다면
거기에 쓰이던 땅이 전부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까요?
인간이 사라진 지 300년, 온대 지역의 농지는 대부분 임야로 변했습니다.
사람이 일구었던 논과 밭이 사람이 정착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먹던 밭작물들도 야생종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량된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등은 동물에게 다 먹히고 다시 작고 맛없는 야생종만 남았습니다.
옥수수는 옛 DNA를 되찾아 크기가 작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식물, 농작물, 동물종들은 수백 년 만에 전멸하고 맙니다.
-500년 후-
다시 500년 뒤에는 뒤에는 농지뿐 아니라 온대지역에 교우의 주택지까지 완연한 숲이 되었습니다.
숲속의 드문드문 묻힌 알루미늄 부품과
스테인레스 조리기구들이 한때 이곳이 주택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조리기구의 플라스틱 손잡이는 갈라져 있을뿐아직도 단단합니다.
-1천년 후-
도시도 점점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연못은 습지로 다시 태어나고 공원은 숲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도로였던 곳과 쓰러진 건물 위로도 식물이 무성히 자랍니다.
도시를 지탱하던 쇠는 녹슬어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도시의 상징과 같던 건물들도 수백 년 동안 차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금융가이던 곳에서는 스테인레스 강철로 된 은행 금고들이
아직 파묻혀 있습니다.
금고 안에 든 돈은 곰팡이가 쓸긴 해도 안전하게 보관 중입니다.
-1만 년 후-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은 대부분 무너지고 사라졌습니다.
농경사회를 이루고 1만년 동안 번성했던 인류 문명이 다시 1만 년 만에 폐허로 변했습니다.
지구에는 이제 인간이 남긴 멀쩡한 물건이 없습니다.
멀쩡한 물건은 오히려 지구 밖에 존재합니다.
지구에서 38만km 떨어진 달에는 오래전에 남겨둔 탐사 장비들이 아직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바람과 미생물이 없는 곳에서 인류의 마지막 문명이 조용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3만5천 년~ 25만 년 후-
인간이 사라진지 35,000년
토양에 침전된 납이 마침내 전부 씻겨나갑니다.
이에 비해 카드뮴은 완전히 씻겨나가기까지 7만 5천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산업화 시대 유산인 중금속이 수만 년 동안 동식물의 몸을 거치면서 재순환되고 희석되고 있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비로소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인간이 번성했을 때 급격히 치솟았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10만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부식된 핵탄두에서 뿜어져 나오던 방사능이 25만 년 만에 자연적인 복사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13,000여개의 핵폭탄에 들어있던 약 5kg의 플루토늄이 10번의 반감기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수만년 수십만 년이 걸려도 자연은 끝내 스스로를 회복하고 정화합니다.
변화는 자연의 큰 특징입니다.
자연과 시간이 결합하면 그 무엇도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1억 년 후-
인간이 사라진 지 1억년 뒤, 이제 인간이 남긴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모든 게 무너지고 분해되고 다른 물질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인공물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 인공물 중 하나는 바로 밥그릇입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 종류는 과학적 성질이 화석과 비슷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파괴되지 않는 한 수억 년 동안 보존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죽어서 밥그릇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도자기와 함께 청동 조각품도 이때까지 형태가 유지됩니다.
청동상의 경우 겉이 부식하면서 녹청이 두꺼워질 뿐, 모양은 변함이 없습니다.
구리로 된 자유의 여신상도 화학적 변화를 거치고 바다에 빠져 조개에 뒤덮일지언정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만약 다음 시대에 고고학자들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살던 시대를 청동기 시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30억 년 후-
인간이 사라지고 30억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지구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에 수많은 생물들이 번성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지금과 너무 다른 모습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지구는 영원한 고향이며 삶의 터전입니다.
지구의 주인은 돌고 돕니다.
-45억 년 후-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팽창함에 따라 지구가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도 지구 최초의 생물을 닮은 미생물들은 적어도 수억 년 동안 살아남습니다.
지구는 다시 원시생명체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50억 년 후-
죽어가는 태양이 수성, 금성, 지구를 차례로 집어삼킵니다.
지구가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지구가 사라진 지 영원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만약 우주에 또 다른 고등문명이 있다면
우리 태양이 팽창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관측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속에서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리진 못할 겁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상상 속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우주의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래전에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는 계속해서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울고 웃고 떠들던 소리들 싸우고 사랑하고 살아가던 장면들이
조각난 전파의 형태로 우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전파 신호는 비록 미약하긴 해도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1분과학·북툰·S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Kurzgesagt] 역사 이전의 인간, 인류의 기원 (0) | 2023.04.03 |
---|---|
단 1g으로 30만 가구 전기 뚝딱⚡️인류 운명 바꿀 꿈의 에너지|과몰입 ep.1|크랩 (0) | 2023.03.27 |
[Life Science] 꼼장어는 장어가 아닙니다.. ㄷㄷ (0) | 2023.03.22 |
[Kurzgesagt] 공룡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0) | 2023.03.21 |
[Kurzgesagt] 웜홀이란 – 시공간의 파괴 (0) | 2023.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