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바라보는 행위는 단순하지만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합니다.
도시에서 몇몇 희미한 별을 바라보든
지구의 외딴 곳에서 수많은 별을 바라보든
고개만 들면 그리고 상상력만 조금 발휘하면
우리 머리 위로 광활한 우주가 펼쳐집니다.
우리는 또한 세계 최고의 천체망원경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합니다.
아름다운 태양계 행성들
바람개비 같은 나선 은하의 팔
별들이 탄생하고 있는 가스 구름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전체 사진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감탄이 나오고
또 한편으로 어떻게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금이야 첨단 광학기술과 디지털 이미지 기술로
편리하게 천체를 기록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천체를 기록하는 일이 굉장한 수작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문학자들이 보는 천체는
어떤 방법으로든 정확히 기록해서 보관해야 하는데
그런 방법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진화해왔습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는
눈대중으로 스케치하는 것이
천체를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달을
세밀한 스케치로 남겼습니다.
조반니 카시니는 토성의 고리에 틈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1859년에 리처드 캐링턴이 그린 태양 흑점 그림들은
아직도 태양천문학에서 참고 자료로 쓰입니다 .
그러나 아무리 세밀하게 그린다 해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린 그림은 정확도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900년대 초반에
마침내 천문학에도 사진술이 도입되었습니다.
필름이 개발되기 전인 당시에는
사진 건판을 이용해 상을 현상했습니다.
사진 건판은 빛에 잘 반응하는 화학 물질로 코팅된 얇은 유리입니다.
할로겐화은 감광유제라는 물질로 사전 처리된 이 유리는
밝은 빛에 노출될수록 많은 광자가
감광유제를 때려
더 어두운 상이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사진 건판을 현상하면
어두운 부분이 밝게 나오고
밝은 부분은 어둡게 나오는 흑백 네거티브 사진이 만들어집니다.
이 네거티브 건판을 종이에 인화하면
마침내 일반 사진이 됩니다.
그러면 옛날 천문학자들이
사진 건판으로 어떻게 우주를 기록했는지
굉장한 수작업의 현장을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사진 건판
1900년대 천문대용 사진 건판은 주로 코닥에서 제공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배송받은 여러 크기의 코닥 건판을
다시 망원경의 카메라 크기에 딱 맞게 손수 잘라서 썼습니다.
넓은 시야를 담기 위해 쓰는 가로세로 약 43cm 크기의 건판부터
하늘의 좁은 부분을 들여다보는 손톱 크기만한 간판까지
다양한 크기로 간판을 절단했습니다.
사진 건판이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절단 작업은 천문대 내부에 마련된 암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사진 건판을 올려놓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절단기를 써서
거의 감각에만 의존해 건판을 원하는 크기로 잘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문학자들의 손은 언제나 베인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절단 작업이 끝나면 즉석에서 화학 처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진 건판 자체가 이미 화학 처리된 것이었지만
여기에 추가로 화학 처리를 하면
노출 시간이 단축되거나
특정 파장의 감도가 더 높아지는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화학 처리는
건판을 증류수에 흠뻑 적시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오븐에 굽거나 냉동실에 보관하는 등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과감한 방법은 암모니아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건판을 암모니아수에 담그면
특히 적외선 파장의 감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밀폐된 암실에서 암모니아 가스를 들이키며 작업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감도를 높이려다 질식돼 쓰러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천문학자 조지 월러스타인은
암실에 들어갈 때마다 조수에게 이런 비장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15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암실로 들어와서 나를 구해주시오.”
다행히 암모니아는
더 효과적인 화학 처리 방법인 수소 가스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전 문제라면 수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소는 폭발의 위험이 따랐기 때문에
암실 내부에 다시 특수한 방을 만들어 작업해야 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방을 힌덴부르크라고 불렀습니다.
마침내 암실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오면
이제 사진 건판을 카메라에 설치할 차례입니다.
건판 설치 작업의 핵심은 건판의 방향입니다.
화학 처리된 유리면이 반드시 하늘 쪽을 향해야 합니다.
만약 반대로 설치하면
그날 밤의 관측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어둠입니다.
역시 사진 건판에 빛이 들어가선 안되기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리의 앞뒤면을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믿음직한 감각은 시각보다 미각입니다.
할로겐화은은 약간 단맛이 났는데
그래서 건판 가장자리를 혀로 살짝 맛보는 방식으로
건판의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덕분에 경험 많은 천문학자들은
여러 가지 코닥 감광유제마다 맛의 차이까지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더 현명한 전문학자들은
반대로 화학 처리되지 않은 쪽을 핥아 확인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건판의 달콤한 맛을 봤다면
이제 건판을 카메라에 밀어 넣는 마지막 작업이 남았습니다.
망원경의 거울은 별빛을 하나의 점이 아니라
정사각형 모양으로 된 촛점면으로 모읍니다.
어떤 망원경은 이 촛점면이 살짝 굽어있는데
그럴 땐 건판 역시 곡면으로 되어 있어야 최고의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얇고 뻣뻣한데다가
예리하게 절단해서 특수 화학 처리된
심지어 한번 핥기까지 한 사진 건판을 조심스럽게 구부려서
카메라에 설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건판들이 부러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침내 사진 건판을 제자리에 설치하면
이제 관측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망원경과 돔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관측하려는 천체를 조준합니다.
카메라가 열리고
노출이 시작되고
사진 건판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프라임 포커스
광자는 중간에 가로막히지 않는다면
망원경의 주경을 때리고 다시 튀어 올라
부경에 도달해 촛점을 맺습니다.
이 초점을 프라임 포커스라고 부릅니다.
카메라도 바로 이 프라임 포커스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프라임 포커스에는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작은 케이지가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밤새도록 이 케이지에 머물면서
건판을 설치하고, 카메라를 조작하고
망원경을 조정하는 작업 즉 망원경 가이드 작업을 합니다.
물론 중간중간 내려올 수는 있지만
케이지에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이 엄청난 시련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는 편을 택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드라이아이스를 담은 보온병을 들고 올라가 밤을 시작합니다.
차가운 드라이아이스를 카메라에 부으면
카메라 열기 때문에 이미지가 왜곡되는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아이스는 카메라에 붓고
빈 보온병은 방광 문제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밤샘 관측자에게 닥치는 진짜 시련은
방광이 아니라 추위입니다.
천문대는 일년 내내 관측을 수행하지만
가장 관측하기 좋은 때는 겨울입니다
겨울에는 밤이 길어서 일단 관측 시간이 길고
또한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망원경 가이드 작업이란
관측자가 몇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버텨야 하는 섬세하고 연속적인 작업입니다.
이때 돔 내부 난방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실내 온도를 높이면 돔에서 떠오르는 열이
망원경 위에 공기를 휘저어 별빛을 교란시키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높은 산 꼭대기에 위치한 천문대에서
등 뒤로는 겨울밤을 향해 돔이 활짝 열려있고
교대 인원도 없이 10시간 동안 꼼짝없이 추위에 떨면서
망원경을 수동으로 조작하는게
옛날 천문학자들의 일이었습니다.
사실 추위에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관측 작업은 놀랍도록 평온하고 낭만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관측자들은 오랜 시간 접안 렌즈를 들여다보며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프라임 포커스에서 주경을 내려다보면
거울에 반사된 별들이
손을 뻗어 한 움큼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케이지에 홀로 앉아 건판을 갈아 끼우고
망원경을 수동으로 움직이고
무료함을 달래줄 음악을 틉니다.
누군가가 천문대 여러 돔 사이를 걷는다면
겨울밤에 맑은 공기를 타고
여러 돔에서 서로 다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걸 들었을 겁니다.
+++ 세대 교체
낭만적이든 고된 노동이든 어쨌든 천문학자들의 목표는
천체를 잘 기록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노출된 사진 건판들을 암실에서 현상한 뒤
유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우주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디지털 사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진 건판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진 건판은 마치 오래된 LP판처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소용돌이 치는 나선은하
섬세한 성운 가닥들
신비로운 태양계 행성들
이 모든 장면이 빳빳한 유리 속에 그대로 보이니까요.
우리가 더 큰 망원경을 사용하고
디지털 자료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한 기술적 향상을 이루어 왔지만
유리 속 우주는 그 자체로 묘한 감동을 줍니다.
전문대 사진검판은
전하결합소자 CCD가 등장하면서 세대 교체를 이루었습니다.
1970년대에 도입된 CCD는
사진 건판보다 빛에 훨씬 민감했습니다.
받아들인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서
더 상세한 자료를 얻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손쉽게 테이프나 디스크 또는 서버에 저장할 수 있는 데다가
얼마든지 복사가 가능했습니다.
컴퓨터가 천문대를 장악해 나가면서
천문학자들이 더 이상 카메라 곁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천문학자들은
다른 곳에서 망원경을 자동으로 가이드하고
CCD에 담긴 이미지를 컴퓨터로 분석합니다.
원격으로 명령어와 자료가 오가는 동안
망원경은 거의 홀로 열린 돔 안에 남겨집니다.
그렇다고 누구도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그리워하진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CCD를 통해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는 프라임 포커스에 인간의 눈을 가져다 댈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과학을 예전보다 훌륭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최첨단의 기술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직접 다루면서 관측하고
말 그대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던 별들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기에 멋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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