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2>의 오토 옥타비우스 박사는
핵융합 에너지를 연구하는 과학자입니다.
그는 삼중수소에 레이저를 쏘아 핵융합을 일으키는 실험을 하다가
사고로 아내를 잃고 닥터 옥토퍼스라는 악당이 됩니다.
닥터 옥토퍼스는 다시 삼중수소를 구해 핵융합을 시도하지만
폭주하는 플라스마와 함께 강물 속에 빠져 죽고 맙니다.
네. 영화 <스파이더맨>은
비록 과학적 사실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핵융합을 나름 인상적으로 소개한 영화입니다.
핵융합은 이 외에도 여러 영화에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실보다 공상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 핵융합 기술이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미래에나 실현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꿈속에서 머물던 핵융합 기술
그런데 최근에 한 실험을 통해
꿈이 아닌 현실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4일 미국의 에너지부 장관이
사상 최초로 핵융합 점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국립 점화 시설에서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들어있는 작은 용기에
레이저를 쏘아 헬륨을 합성시키면서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시킨 것입니다.
오랜 숙제였던 핵융합 점화가 성공하면서
과학계는 핵융합 발전에 돌파구, 중대한 이정표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네, 오늘은
이번 핵융합 점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핵융합 기술은 어디까지 왔는지
핵융합의 원리는 무엇인지 등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다소 설명 위주의 영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핵융합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과연 닥터 옥토퍼스가
빌런이 되어가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핵융합이란 무엇인가?-
핵융합, 핵물질, 핵발전
이때 핵이란 원자의 중심에 있는 원자핵을 말합니다.
원자핵은 천조분의 1m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크기지만
이 작은 원자핵이 서로 합치거나 쪼개질 때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우라늄같이 무거운 원자핵이 둘로 쪼개질 때에는
질량 차이로 인해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를 핵분열 반응이라 합니다.
이 핵분열을 상용화한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입니다.
반면 수소같이 가벼운 원자핵이 합쳐지면서 헬륨을 생성할 때에도
질량 차이로 인해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이 화학 반응이 오늘의 주제인 핵융합입니다.
핵융합은 아직 상용화되지 못한 채
70여 년째 연구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구상에 핵융합 발전소가 단 한 개도 없는 것과 달리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핵융합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 혜택은 바로 태양 에너지입니다.
태양의 중심부는 초당 6억 톤의 수소를 연소시키는
거대한 핵융합 발전소와 같습니다.
이 발전소에서 생산된 뜨거운 열로
태양은 빛나고 지구는 생명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핵융합 기술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곧 지구에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인공 태양
기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인공 태양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막대한 에너지 효율 때문입니다.
핵융합 발전이 성공한다면
단 1g의 수소 연료로
석유 8톤과 맞먹는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핵융합 발전은 또한 연료가 거의 무한하고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에너지입니다.
원자력 발전과 달리 누출 사고의 위험이 없으며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을 배출하지도 않습니다.
개발만 된다면 정말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꿈의 에너지라 불릴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꿈의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인공 태양 만들기-
원자핵을 융합하려면 먼저 원자핵끼리 충돌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원자핵은 전자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원자끼리는 충돌해도
원자핵끼리 충돌할 일은 없습니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먼저 보호막 역할을 하는 전자부터 떼어내야 합니다.
전자를 떼어내는 일반적인 방법은
물질을 아주 뜨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온일수록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도 고속으로 움직입니다.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원자는 서로 충돌하면서 전자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전자와 원자핵이 마구 흩어져 날아다닐 정도로
고온의 물질 상태를 ‘플라스마’라고 합니다.
온도에 따라 물질의 상태를 구분할 때
고체, 액체, 기체 다음이 바로 ‘플라스마’이죠.
태양도 플라스마로 되어 있습니다.
태양의 중심부는 1500만도씨의 고온에서
주로 수소 원자핵과 전자가 마구 흩어져 날아다니는
수소 플라스마 상태입니다.
1500만도씨는 물론 엄청나게 뜨거운 온도이긴 하지만
핵융합 반응이 왕성하게 일어날 만큼 뜨겁진 않습니다.
1500만도씨에서 원자핵은 그렇게 빠르게 날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의 중심부는
거대한 중력으로 인해 밀도가 아주 높습니다.
밀도가 아주 높은 곳에선 입자의 속도가 느려도 자주 부딪히기 때문에
핵융합이 일어나게 됩니다.
느려도 고밀도 이것이 바로 태양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의 비결입니다.
지구에서는 태양처럼 고밀도 상태를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공태양은
밀도 대신 온도를 높이는 전략을 택합니다.
온도를 극단으로 높이면
원자핵의 속도도 극단으로 빨라집니다.
그러면 밀도가 낮더라도
원자핵끼리 부딪칠 기회가 많아져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핵융합 점화의 개념이 나옵니다.
핵융합 반응이 한 번 일어나는 건
예를 들어 부싯돌을 한 번 부딪히는 것과 같습니다.
부싯돌의 불꽃이 에너지로 쓰이려면
나뭇가지에 옮겨붙어서 스스로 타올라야겠죠.
그렇지 않다면 부싯돌만 열심히 부딪히게 되는데
이는 힘들게 에너지만 투입할 뿐 산출되는 에너지가 없는 상황입니다.
부싯돌의 불꽃, 즉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
융합으로 생성된 헬륨 원자핵이 고속으로 튀어나옵니다.
이 헬륨 원자핵이 주변 입자와 부딪히면서 플라즈마가 다시 가열됩니다.
이 가열이 충분히 유지되면
주위에서 핵융합 반응이 더욱 촉진되고
핵융합의 불이 연료 전체로 번져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핵융합 반응에서 일어나는 점화입니다.
스스로 타올라
투입한 에너지보다 산출된 에너지가 더 많아지는 상황이죠.
지구에서 만들려는 인공태양의 목표 온도는 1억도입니다.
1억도의 플라스마 상태를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다면
핵융합의 점화가 실현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과연 1억도의 초고온은 어떻게 만들까요?
만든다 해도 1억도의 초고온을 담아두는 용기가 존재할까요?
어떤 용기이든 1억도의 플라스마가 닿기만 하면
녹아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원자 수준으로 해체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초고온의 플러스마를 가두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
프랑스 남부의 카다라쉬에서는 거대한 핵융합로 건설이 한창입니다.
1988년에 시작된 국제핵융합실업로 사업 일명 이터iter가
2025년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터는 전 세계에서 7개국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핵융합로 실험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나라도 2003년에 합류해 플라스마 유지기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터는 2035년에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여부를 가리고
2050년에 실제 발전소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터가 플라스마를 가두어 핵융합을 일으키는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D자형 전자석으로 진공 용기에 도넛 모양의 자기력선을 형성시킵니다.
2) 용기에 수소 연료를 주입하면--> 곧 플라즈마가 되고
--> 중심의 전자석으로 플라스마의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3) D형 전자석, 중심 전자석, 폴로이드 전자석
이 세 전자석의 조합으로 자기력선을 비틀어 플라스마를 가둡니다.
플라스마는 진공 용기 둥둥 떠 있기 때문에 융합로 벽에 닿을 일이 없습니다.
4) 이제 플라스마의 온도를 1억도까지 올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게 합니다.
가열 방법은 여러 가지를 동원합니다.
-플라스마에 흐르는 전류에 의해 자체 발열되기도 하고
-고주파의 전자기파를 쏘거나
-중성입자 빔을 쏘아 가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핵융합으로 생성된 헬륨 원자핵이 다른 입자와 충돌하면서
플라스마의 온드가 올라갑니다.
5) 1억도의 플러스마에서 핵융합 반응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 중성자가 튀어나와 융합로 내부의 블랭킷을 데웁니다.
6) 이 블랭킷의 열로 물을 데우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성합니다.
네, 꿈의 에너지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물을 데워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 어쩐지 구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주 소량의 연료로 엄청난 에너지를 뽑아낸다는 점이
다른 구식들과 다른 점입니다.
혹시 1억도 짜리 플라스마가 폭발하거나
닥터 옥토퍼스의 인공 태양처럼 폭주할 위험은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핵융합 발전은 원리상 폭발하거나 폭주하지 않습니다.
플라스마는 연료가 주입되지 않으면 곧바로 식어버립니다.
플라스마에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도 급격히 식습니다.
그래서 융합로 벽이 녹는 일이 생긴다 해도
녹은 불순물과 플라스마가 섞이면
그 즉시 플라스마가 식어버립니다.
사실 이 때문에 플라스마를 가열하는 기술보다
초고온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기술이 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초전도 핵융합로 케이스타는
1억도의 플라스마를 30초 동안 유지하는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100초 이상 유지하면
연속 핵융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핵융합의 연료-
융합로 안에 플라스마는
연료가 없으면 금방 식어버린다고 했는데
그건 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도 수소 연료가 소진되면 식어버립니다.
물론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50억 년 후이겠지만요.
그렇다면 인공 태양의 연료는 충분할까요?
여기서 핵융합 발전에 대해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점이 바로 연료입니다.
태양과 인공 태양 모두 수소를 연료로 쓰지만
원소 구성이 좀 다릅니다.
태양의 핵융합은 수소 원자핵을 이용하는 반면
인공 태양의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 원자핵을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양성자만 있는 수소 원자핵은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너무 커서
인공적인 합성이 어렵지만
중성자를 가진 중수소와 삼중수소 원자핵은 상대적으로 합성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가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접착제 없이 수소 원자핵만으로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1억도 보다 몇 배나 더 높은 온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의 양은 사실상 무한합니다.
삼중수소는 그보다 좀 어렵고 비용이 더 듭니다.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양이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주로 리튬을 이용해 핵융합로 안에서
인공적으로 삼중수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닥터 옥토퍼스도 구하기 어려운 삼중수소를 받는 조건으로
스파이더맨을 잡아다 주죠.
미래에는 삼중수소 대신
헬륨-3를 핵융합 연료로 사용한다는 대안도 있습니다.
헬륨-3는 달의 적도 부근에
100만 톤 이상 깔려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달에 가든 스파이더맨을 잡아다 주든 어쨌든 핵융합 연료는
기존의 화석연료나 원자력 연료에 비해
구하기 쉽고 안전하고 거의 무한합니다.
-토카막 vs 레이저-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하자면
핵융합 기술의 핵심은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오래 유지하는 기술
즉 플라스마를 가두는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은 거대한 중력으로 플라스마를 가둡니다.
이터는 자기장으로 플라스마를 가두고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내는
자기 가둔 방식을 이용합니다.
이를 토카막 방식이라고 하는데
토카막은 핵융합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평가받습니다.
자기장을 이용한 토카막 방식 외에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 가둠 방식도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성공한 핵융합 점화가 바로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 가둠 방식입니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국립 점화시설에서
거대한 레이저 장치들이 가동됩니다.
192개의 강력한 레이저가
비비탄 크기의 구슬을 집중해서 쏩니다.
구슬 안에는 핵융합의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들어 있습니다.
레이저의 에너지를 흡수한 원자핵이
관성을 가지고 움직이다가
반대 방향에서 또 레이저를 맞아 딱 가둬집니다.
사방에서 레이저 공격을 받은 구슬은
순식간에 고온이 됩니다.
구슬 바깥쪽은 증발해 팽창하고
안쪽은 그 반작용으로 중심을 향해 급격히 수축합니다.
이 수축 시간은 백조 분의 1초로 아주 짧지만
순간적으로 고밀도 상태가 되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번에 국립점화시설에서는
연료 구슬에 2.05메가줄의 레이저 에너지를 투입해서
3.15메가줄의 핵융합 에너지를 얻어냈습니다.
투입 대비 산출 에너지 비율이 1.54배입니다.
이 에너지 회수율이 플러스를 넘긴 적은
핵융합 실험 사상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핵융합 발전소가 세워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핵융합이 상용화 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관문들이 많습니다.
그 중 우선적인 관문은
투입 대비 산출 에너지 비율을 훨씬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2.05메가줄의 레이저 펄스를 생성하기 위해 끌어모은 전력은
300메가줄이나 됩니다.
작은 불을 붙이려고 부싯돌을 한번 켜는데 집채만 한 불을 동원한 셈입니다.
이터도 자기장을 만들려면 전력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핵융합 에너지가 경제성을 갖추려면
최소 30배 이상의 에너지 회수율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실용적인 규모로 자리 잡으려면
100배 정도의 회수율을 달성해야 할 겁니다.
토카막보다 레이저 방식이 먼저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과학자들은 핵융합 상용화의 미래가
결국 토카막이 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토카막이 처음부터 연속 반응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반면
레이저 방식은 연료 구슬을 하루에 하나씩 재장전하는 단속적인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레이저 방식이 상업용 에너지로 쓰이려면
초당 10개의 구슬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레이저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장비는 커지고 비용은 비싸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레이저 방식의 성공은
핵융합 연구 전반에 큰 희망을 심어줄 것입니다.
이터에 대한 투자와 관심도 더 집중될 전망입니다.
-투자와 관심-
투자와 관심은 국립시설에만 해당하는게 아닙니다.
미국에서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벌써부터 핵융합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는 30여 개의 핵융합 스타트업 기업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미국 회사들이며 우리나라에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핵융합 산업이 떠오르면 전 세계 투자 환경도 변할 수 있습니다.
헬륨-3를 염두에 둔 달 탐사 사업도 더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핵융합 실험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과를 낸다는 전제에 달렸습니다.
수십만 년 전 부싯돌로 일으킨 모닥불 하나가
지금의 인류 문명을 일으켰듯이
지금의 핵융합 점화 하나가
미래의 문명을 새롭게 일으킬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변화하는 인류 문명사의 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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