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가다가 이런 분들이 계세요.
“마음공부하고 나서 더 안 좋아졌어요.”
많이 계세요. 생각보다 많습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나서 오히려 내 삶이 더 모노톤이 된 것 같아요.
가끔가다 이런 생각도 한 대요.
차라리 이런 것을 몰랐을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이제 앎이라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죠.
앎이라는 거는 한 번 알아지면
절대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몰라질 수가 없어요.
더 힘들게 되죠.
이러한 현상들은요.
수행을 하면서, 마음공부를 하면서 누구나 한두 번씩은 거쳐 가는
일종의 버스 정류장 같은 단계예요.
저도 그랬고요. 수십 수백 번을 거쳐왔죠.
많은 분들이 여기서 너가 떨어지고, 포기하고 그러면서 또 뭘까요?
완전히 또 놓지도 못하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앎이라는 거는 몰라질 수 없다라고요.
놓지 못해요.
제대로 놓지 못하니까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것 같고
계속 마음공부를 하려고 하면
내면에서 저항만 더 세지는 것 같고
막 이런 경우 많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누구나 거쳐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이 시기를 어떤 식으로 슬기롭게 지혜롭게 헤쳐 나가느냐가
공부의 관건이 되는 거죠.
아니 생각해 보세요.
고시 공부 한 번 하는 것도 10년씩 목숨 걸고 공부하죠.
하물며 삼라만상을 존재하게 하는 원천인
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그다음에 나의 삶 자체를 새롭게 재규정하는 공부인데
이게 뭐 쉬우면은 말이 안 되죠.
그러니까 고시 공부보다 쉬우면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두 번씩은 이 좌절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좌절에 맞닥뜨렸었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어 하실 정도로.
누구나 그래요,
부처님도 그랬는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되고
그다음에 이런 현상들의 원인은 정확하게 뭘까요?
그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음공부 후에 더 안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건
마음이 더 허해지고 감성적으로 더 약해지고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
이게 바로 [관념의 저항]입니다.
큰 카테고리에서 보자면 관념의 저항이에요.
그러면 이런 저항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저항이라는 거는 다른 게 아닙니다.
저항이라는 거는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고유한 드라마를 인정하지 못할 때
허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서 일어나는 게 저항이에요.
딴 게 아닙니다.
내 공부가 나를 지금 힘들게 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지금 이 관념의 저항으로 허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오히려 명확해요. 뭐가?
원인이.
원인을 모르는 병은 치료하기가 힘들죠.
원인을 모르는 어떤 증세는 치료하기가 힘든데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원인 자체가 명확한 거예요.
허용이 제대로 안 될 때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저항이.
저항은 뭔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고유의 드라마를 인정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게 저항입니다.
그럼, 고유의 드라마가 뭐예요?
뭐의 고유의 드라마를 인정을 하라는 거죠?
존재하는 모든 것
말 그대로 모든 것.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나의 고통
내 삶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현상하는 모든 것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타인들 다른 존재들
심지어는 마음에 안 드는 나의 외모, 육체, 건강
이러한 모든 것들.
그러니까 존재하는 것들은
일체의 예외도 없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그럴 만한 고유의 드라마를 가지고
완벽한 존재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허용하지 못할 때
이러한 저항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저항은
어떤 하나의 [아상]이라 그러죠.
‘나는 이것이다’라는 자기규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 저항도 강해져요.
요즘 말로 치면 ‘에고가 강하다’ 그렇게도 표현이 될 수 있겠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삶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
내 삶에서 안에 내 삶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그럴 만하기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인정을 하셔야 돼요.
이것을 먼저 인정을 해주셔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성과 동시성과 전체성에 대한 앎이
여기 가슴에서 뻥 하고 터지면서
하나가 되어야 되겠죠.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공부해서 오히려 안 좋아지는 데서 두 번째 이유
일단 저항 때문에 그렇죠.
허용이 일어나지 않아서 허용을 못해서.
허용을 못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왜일까요? 허용을 못하는 이유?
가장 중요한 건데
지금, 이 순간에 마음공부를 하는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딴 게 아닙니다.
이 개체 존재죠. 이 몸 이 몸
여러분의 홍길동, 김 아무개라는 그 몸
지금 여기 앉아서 영상을 찍고 있는 카밀로라는 이 몸 있죠.
이 개체의 존재.
이게 나라고 생각을 하고 그다음에 뭡니까?
얘가 모든 것을 하는 주체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허용이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분들한테 단언해 드리건데요.
생각, 느낌 ,감정, 의도, 심지어는 행위까지
이 개체 존재로서의 내가 하는 것은 없습니다, 없어요.
심지어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도 얘가 하는 게 아니에요.
얘가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부분을 먼저 가슴 깊이 간직하고 마음공부를 하셔야 해요.
그래야지 마음 안에서 저항이 나타나고, 관두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지고, 막 그럴 때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한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십중팔구 어때요?
왜 어렵고 왜 힘들다라고 생각을 해요?
이 내가 하고 있다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담감이죠. 부담감.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개체 존재로서의 나라는 것은
궁극의 실체가 그려내는 자기 자신의 표현을
상영해 내고
관찰하는 하나의 통로이자 렌즈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심지어 마음공부마저도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뭐가 일어납니까?
인정을 못하게 돼요, 허용을 못하게 되고 그러니까 뭡니까?
관념들이 계속 저항을 하게 됩니다.
이 저항하는 관념들은
단순히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내적인 갈등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뭐예요?
우리의 삶이 뭐라 그랬죠?
관념의 표현, 투영이라고 말씀드렸죠.
내 삶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만들어 내면서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악화되는 것 같은 상황들을 연출해 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절대로 걸려 넘어지시면 안 돼요.
속으면 안 됩니다.
이게 전부 다 저항이고
도망치고자 하는 어떤 페르소나
어떤 자아 하나가 이렇게 가면을 딱 쓰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거예요.
저항, 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예요.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잊어버리면 안 돼요.
여기서 이렇게 저항하는 나마저도 허용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받아들인 다음에 묵묵히 또 걸어갈 수 있어야
공부가 완성이 됩니다.
여러분 마음공부에 대한 저항이 나타날 때
내가 잘못되었다라고 느끼실 필요 없어요.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무언가를 허용하지 못하고 있고
어떠한 자기규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아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리고 또 뭡니까?
지금 나의 삶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한번 들여다보시면 돼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하는 게 아니에요.
누구한테 맡겨요?
궁극의 실재에게 던져버리십시오.
궁극의 실재가 여러분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사는 게 아니에요.
자유로워지십시오.
다음 시간에 또 찾아뵐게요.
또 다른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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