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상의 힘만으로 엄청난 변화를 이루어 낸 이야기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 조종사 잭 샌드 대령은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수용소의 반 평도 안되는 방에서 7년 동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격리된 감금 생활을 하면서
신체적인 활동이나 사람들과 접촉을 전혀 하지 못했죠.
무료함과 갑갑함을 느끼던 어느 날
그는 비록 몸은 갇혀 있어도 정신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자신이 다녔던 골프 코스를 생생하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골프장의 풍경과 냄새, 스윙할 때의 느낌까지
상세하게 이미지로 떠올렸습니다.
어두운 감옥에서 바닥에 누운 채 머릿속에 골프장을 그리고
파란 잔디와 주변의 나무, 골프 웨어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다음 골프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7년 동안 매일 상상 속에서
골프장에 나가 18홀을 돌았습니다.
골프장의 바람, 소리, 냄새,
골프채에 공이 맞는 순간의 짜릿함까지 경험했습니다.
상상 속 골프장에서는 모든 공을 완벽하게 칠 수 있었습니다.
반 평의 감옥 안에서
매일 완벽한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사치를 누린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VR가상 현실과 같은 것이죠.
해군 조종사가 되기 전에 그는
가끔 골프장에 나가 평균 100타 정도를 치는 아마추어였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머릿속으로 골프를 칠 때는
그의 상상 속에서는 완벽한 프로 골프 선수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매일 머릿속으로 그리던 골프장에 돌아온 그는
놀라운 결과를 보았습니다.
예전에 평균 100타였던 성적이
석방 후 처음으로 친 라운드에서 74타를 기록한 것입니다.
골프 연습은 고사하고 7년간 신체적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감금 상태로 지냈는데도
상상 속 연습만으로 20타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전혀 몸을 쓰는 훈련을 하지 않고
머릿속 상상만으로 25%의 향상을 가져온 것이죠.
이런 것은 특별한 한 사람만의 사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 기기 측정으로 이런 결과를 검증한 연구도 있습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20세에서 35세 사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일주일에 5회 가량 이두박근 알통에 힘을 주는 상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12주간 진행되었고요.
실험이 끝날 즈음 실험 대상자들이 측정한 이두박근의 힘이
평균 12.5퍼센트 강화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근육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효과는 실험이 끝나고도 3달 동안이나 유지되었습니다.
이처럼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상상을 하는 것이
뇌뿐만이 아니라 근육과 같은 운동 능력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사실이 증명이 된 것이죠.
상상만으로도 몸의 능력이 변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래도 이건 내 몸이니까 나의 상상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면 내가 상상한 것이 외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프랑스의 르뇌 푀크 박사는 특이한 실험을 통해서
마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오리나 병아리들은 갓 태어났을 때
자신이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고 따라다니죠.
이것을 [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각인 현상은 반드시 생물이 아니라 물건이라도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 실험에서는 로봇을 어미 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찾아보니 최소한 닭의 형태로 제작된 것도 아니고
그냥 깡통처럼 생긴 로봇을 사용했더라고요.
일단 로봇은 아무 데로나 무작위로 움직이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이동 경로가 확률적으로 절반은 왼쪽으로
절반은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졌고요.
처음에 로봇을 병아리가 없는 곳에 놓고 움직임을 기록했을 때
로봇은 정해진 구역 안에서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방금 부화한 병아리가 맨 먼저 로봇을 보게 했습니다.
병아리는 로봇을 어미로 생각하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각인 과정 후에 병아리를 구역 바깥에 있는 우리 안에 넣습니다.
병아리는 우리 안에서 로봇을 볼 수는 있지만
따라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놀라웠죠.
어미로 착각한 로봇 근처로 가겠다는 병아리의 의도가
무작위로 움직이던 로봇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친 것이었습니다.
로봇의 움직임 경로를 관찰해 본 결과
로봇은 처음처럼 구역 전체를 골고루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아리들과 가까운 쪽으로 주로 움직인 것으로 기록되었던 것이죠.
이렇게 마음의 힘이
내 몸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움직이는 로봇의 이동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마음을 먹으며
어떤 상상을 해야 할까요?
내가 뜻을 세우고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태양과 같은 항성이 되고
특별한 의지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 주변을 도는 행성이 된다고 하죠.
어미 근처에 있고 싶다는 병아리의 강한 의도가
아무 생각이 없는 깡통 로봇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좀 더 와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마치 3D 프린터와 같다고 보는 것이죠.
3D 프린터로 작업하는 장면을 보시면
마치 실과 같이 가는 원료를 계속해서 쌓아가면서
형태를 만들어 나갑니다.
약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꾸준히 작업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형태를 가진 물건이 딱 만들어집니다.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죠.
내가 마음에 품고 상상하는 것이
마치 실과 같은 원료가 계속해서 쌓여가면서
현실로 점점 만들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실과 같은 원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런데 3D 프린터가 물체를 만들려면
첫 번째로 무엇이 필요할까요?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구체적인 도면입니다.
치수와 형태가 정확하게 기록된 설계 파일을 입력하면
프린터가 그것을 받아서 제작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끌어당김의 3D 프린터 역시 도면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상상이 되어야겠죠.
앞에서 상상으로 골프 연습을 했던 해군 대령 역시
파란 잔디와 나무, 골프 웨어를 입은 자신을 상상하고
골프장의 바람, 소리, 냄새, 골프채에 공이 맞는 순간의 짜릿함까지
아주 구체적인 도면을 그린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목표가 명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한 자신이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이 된다는 것은
끌어당김의 3D 프린터에 정밀한 도면을
정확하게 입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도면이 흐릿하다면 어떨까요?
일단 내 머릿속에서도 명료하지 않으므로
미래에 대한 상상 역시 초점이 맞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제작되는 물건도 흐리멍텅하고 제대로 형체를 갖추지 못하겠죠.
원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결과 역시 명확하게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겠죠.
사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 해도 상당히 많이 접근한 상태입니다.
보통 우리의 진심은 많이 가려져 있는 상태죠.
어려서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너는 커서 대통령이 되어라, 법관이 되어라”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라죠.
저만 해도 어려서 공부만 잘하면
의사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개구리 해부를 하면서
비위가 엄청나게 상하는 것을 보고
‘아, 의사는 내 길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죠.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라는 말을 하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정말 행운이죠.
또 사회로부터 나도 모르게 주입되는 메시지들도 무척 많습니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관념들입니다.
이런 수많은 잡음들이 하나의 관념의 껍질이 되는 것이죠.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데만도
많은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끌어당김의 3D 프린터가 원하는 현실을 찍어내려면
이처럼 정확한 도면
즉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장기간 같은 목표를 유지하는
꾸준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죠.
프린터가 가느다란 실로
현실을 한층 한층 계속 해서 쌓아나가고 있는데
다른 도면을 넣었다가, 또 바꾸었다가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형태가 나오겠죠.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는 것이라면
중간에 바뀔 일이 없습니다.
중간에 잠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본래의 목표를 하기 위한 과정이 되는 것이지
목표 자체가 바뀌지는 않게 됩니다.
이와 관련되어 해리슨 포드의 사례가 있죠.
20대의 그는 배우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엑스트라로 몇 군데만 출연했을 뿐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었습니다.
생계는 해야 했으므로 목수 일을 하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은 했지만
연기를 하겠다는 끌어당김의 도면은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목수 일을 하면서 주로 가구를 만들었는데
고객 중에서 조지 루카스가 있었고
그의 사무실 일에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조지 루카스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었고
결국 스타워즈 시리즈에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간 과정이 될 뿐입니다.
반면 내 마음이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없이
그때그때 내키는 것들을 한다면
어떤 것을 쌓아 올리다가 부수고
다른 것을 쌓아 올리다가 부수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된 결과가 출력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꾸준히 현실의 3D 프린터로 쌓아가는 과정이라면
내가 평소에 주로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는
결국 무엇을 현실에 쌓아나가고 있는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 한다면 과거에 관심을 주면 과거가 형상화되고
미래에 관심을 주고 상상한다면 미래가 형상화됩니다.
과거의 안 좋았던 일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반복해서 넋두리하는 분들이 있죠.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재반복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소중한 나의 에너지를
과거를 재생산하는데 쓰는 것이 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 계속 노출이 되면
뇌에서는 생존-도피의 비상 모드가 켜지게 됩니다.
물질의 몸을 당장의 위협에서 보호하는데
온 에너지가 쓰이게 됩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근육으로 더 많은 혈액을 보내며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뇌에서도 본능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후뇌가 활성화되며
합리적이고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전뇌의 활동은 가라앉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곰이 달려오는데
창조성이고 합리성이고 간에
생각하고 앉아 있다가는 먹이가 되고 말겠죠.
일단 잽싸게 달아나기부터 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뇌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상황에서는
몸이 생존을 준비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에너지는 부족하게 됩니다.
다시 정리하면,
끌어당김이라는 3D 프린터로
나의 에너지라는 원재료를 실처럼 쌓아 현실을 창조하게 됩니다.
내가 관심 갖는 곳, 생각하고 상상하는 곳이
에너지가 향하는 곳이며
이 상상을 조금씩 쌓아 현실로 만들어 냅니다.
내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관심을 두면
그것을 기반으로 또 다른 부정적인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생존에 집착하면 몸이나 물질에 매이게 되고
그쪽으로 에너지가 흩어집니다.
미래의 긍정적인 상상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을 도면으로 긍정적 현실을 구축하게 됩니다.
양자역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관계를 얘기하죠.
파동이 우리의 상상이라면
그것이 구현되는 현실은 입자라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보듯이
물질은 파동도 되고 입자도 될 수 있다고 하죠.
이 파동은 입자처럼 딱 하고 어느 한 점에 딱 찍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점에 나타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뉴턴에서 시작된 고전 역학과 현대의 양자역학은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고전 역학은 물질이 입자로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관련된 해석입니다.
현재의 물리적 조건에 따라 미래의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공을 얼마만큼의 힘으로, 어떤 방향으로 던지면
어디에 도착할 것이다 라고 기계적으로 예측이 가능합니다.
이 해석에는 마음의 힘이 작용할 여지가 없죠.
반면 양자역학은 물질이 파동으로도 작용한다는 해석이죠.
파동 자체가 한 점이 아니라 넓게 퍼진 에너지의 상태입니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 불확실성의 원리를 말합니다.
즉 상자 안의 고양이가 관측되기 전에는
죽어있을 수도 있고 살아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개념이 확대되면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다중 우주
즉 여러 가지 중첩된 가능성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한 것이
나의 미래가 된다고 하는 것이죠.
미래를 고르는 것에
나의 의도, 에너지가 가장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이고요.
조 디스펜자 박사는
이러한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는 파동의 공간을 양자장이라고 합니다.
이 양자장에 접속할 수 있다면 모든 가능성의 세계에 드는 것이 되고
이 모든 가능성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양자장에 드는 방법으로 디스펜자 박사는
순수의식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몸으로 존재하게 되면 물질, 입자의 상태로 있는 것이죠.
물질로는 결코 파동의 세계인 양자장에 접속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의식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물질이 아닌 파장, 파동의 상태입니다.
이 의식이 물질인 몸과의 접착으로부터 분리되면 어떻게 될까요?
나를 몸이 아닌 존재로 느끼게 되고
몸의 감각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을 순수의식이라 합니다.
이 순수의식의 상태라야 에너지장인 양자장에
온전히 접속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머리로 이해할 필요 없이
순수의식을 경험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몸과 감정과 생각에서 분리되어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몸도 내가 아니고, 감정도, 생각도 내가 아닌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라고 하게 됩니다.
순수의식으로서의 나, 참나는
에너지이자 파동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의식의 나가 뇌파, 주파수를 계속 낮추어
알파파에서 세타파로, 세타파에서 델타파로 계속 미세한 상태로 내려갈 때
우주의 근본 대역인 에너지 장, 양자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뇌파가 낮아지는 것은
호흡과 명상 등 훈련으로 가능한 부분입니다.
일단은 첫 단계로 몸에서 벗어나
순수의식, 물질이 아닌 온전한 파동으로만 있을 수 있어도
이 모든 현실 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순수의식으로 양자장, 에너지의 장에 온전히 풍덩 들어갈 수 있으면
수많은 가능성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온전히 풍덩’이라는 것이 쉽게 되지가 않습니다.
깔끔하게 순수의식이 되면 좋은데
의식이 항상 어딘가에 접착되어 있거든요.
의식에 어딘가에 붙어 있으면 순수의식이 아니죠.
의식이 접착되는 대표적인 것이 몸입니다.
몸과 찰싹 달라붙어서 몸을 나로 느끼고 있죠.
몸이라는 것이 본래 영의 존재인 인간을
물질 차원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죠.
때문에 몸의 주요 기능은 물질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감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죠.
눈으로 물질을 보고, 귀로 주변의 소리를 듣고
입으로 물질을 맛보고, 코로 물질의 냄새를 맡고
손으로 물질의 촉감을 느낍니다.
명상하려고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 거리죠.
눈을 뜨고 누군가를 보고 싶고, 음악 소리를 듣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커피 냄새도 맡고 싶고 등등
몸의 욕구가 올라오게 됩니다.
이처럼 몸은 오감을 통해 물질의 느낌을 추구하게 되어 있죠.
이러한 감각 세계에 많이 빠질수록
의식은 몸에 갇혀서
순수의식으로 거두어져 나오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인간에게 오감 말고 또 하나의 감각이 있죠.
육감입니다.
오감은 물질의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육감은 영 또는 에너지로 느끼는 것이죠.
육감을 발달시킬수록
이것도 몸의 감각에서 벗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감까지만 발달하면 물질적 인간이지만
육감이 개발되면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죠.
이처럼 감각에 너무 치중하면 의식이 몸에 접착되어
순수의식으로 양자장에 온전히 접속하는 것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수행에서는 보통 금촉수련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금지하다 할 때의 금이고, 접촉하다 할 때의 촉, 해서 금촉禁觸입니다.
뭔가를 안해보는 훈련이죠.
우리 몸의 에너지는 물길과 같아서
계속 쓰이는 쪽으로만 흐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청각 쪽으로 주로 에너지가 흐르고
음식을 좋아한다면 미각 쪽으로 에너지가 흐르죠.
눈으로 보는 시각이나 몸으로 느끼는 촉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물질적 몸의 감각에 치중하게 되면
의식이 몸에 고정이 되고,
아까 말씀드렸던 육감, 즉 물질을 넘어 느끼는 감각이
깨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때문에 일주일이면 일주일, 정해 놓고
자신이 주로 하던 것을 하지 않는 것이죠.
예를 들어
듣는 것을 금촉을 한다, 하면
그 쪽으로 흐르던 에너지가 내 안에서 충만해져서
다른 차원의 것들을 느끼는 감각을 깨우게 됩니다.
그리고 물질의 몸에 잡혀 있던 의식이
좀 더 잘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지죠.
특히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디지털 금촉입니다.
스마트폰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그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다들 잘 모르고 있죠.
이것은 도파민 체계를 자극해서
중독증상과 동일한 현상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면
유튜브 쇼츠도 대단한 중독성이 있죠.
저도 처음에는 유튜브 첫 화면에 쇼츠가 뜨길래 눌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라고요.
멍하니 다음 영상, 다음 영상 이렇게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던 거죠.
몇 번 그런 경험을 한 후에는
이제는 쇼츠는 아예 시작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기업에서 광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인간의 인지 기능을 악용하는 것이죠.
인간이 자기 의지로 또렷하게 깨어있는 것이 아닌
충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물론 유튜브도 긴 영상은 잘만 고르면 좋은 정보가 많습니다.
하지만 쇼츠는 대부분이 스낵처럼
잠깐의 뇌자극을 주는 영상들이 주가 됩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서 휴대폰이
우울증이나 수면, 뇌건강에 영향이 있다고도 하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런 다양한 자극들로 인해서
본래 감각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몸에 의식이 매이게 됩니다.
몸에 매이면 순수의식으로 분리되기가 어렵고
무한한 가능성인 파동의 세계에
온전히 풍덩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이 됩니다.
이렇게 몸에 매이는 것 외에
순수의식으로 떨어져 나오기 어렵도록 하는 또 한가지 요인은
물질에 매이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죠.
물론 당연히 물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휴대폰, 노트북, 자동차, 은행 계좌, 아파트는
활용할 대상일 뿐, 당연히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넉넉하면 오히려 좋죠.
그런데 자칫하면 그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물질로부터 내가 소유를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한 번뇌와 집착이 영적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잊고
오로지 물질세계에 빠져 살도록 하는 것이죠.
휴대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한 상태가 된다?
휴대폰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휴대폰이 나를 소유한 것입니다.
순수의식은 입자가 아닌 파동의 상태라고 말씀드렸죠.
물질에 관심을 많이 둘수록 순수의식의 파동 상태가 아니라
물질의 입자 상태에 더 동조가 됩니다.
내가 본래 파동이라는 사실을 잊고
3차원 세계의 입자라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고급 명상자 분들 중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저는 물질에 대한 집착 이런 거 몰라도 순수의식은 느낄 수 있는데요?”
맞습니다, 순수의식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일정 부분 느낄 수는 있어도
파동의 세계에 ‘온전히 풍덩’ 하기는 어렵죠.
의식의 한 부분이 ‘물질’ 즉 ‘입자’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이게 한 쪽 발을 물질계에 걸친 것과 같아서
파동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가기는 어렵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알겠는데
순수의식으로 파동의 세계에 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할까요?
굳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릴 필요는 없겠죠.
핵심은 자유로우면 됩니다.
휴대폰이 있으면 잘 활용하지만 없어도 괜찮으면 되는 거죠.
돈이 많으면 물론 좋지만, 돈을 가지기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 됩니다.
약간 아이러니하죠.
뭔가를 얻기 위해서 끌어당김의 법칙에 관심을 가졌는데
비워야 순수의식이 되고 가능성의 장에 접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담긴 청사진이 현실을 찍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원한다는 것은 거기에 결핍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결핍이 현실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죠.
많은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
‘실제로 풍족한 상태가 되어라’라고 합니다.
실제로 풍족한 상태는 무엇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고 자유로운 것입니다.
비운 것과 같은 상태인 것이죠.
사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나의 것’, ‘소유’라는 개념도 관념에 불과합니다.
순수의식, 참나에 머물게 되면
모든 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관념이라고 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임시적 약속일 뿐이죠.
예를 들어서
사과, 라고 한다면
이것의 이름이 원래부터 사과인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이름이 없죠.
사과라는 이름은 인간이 편의상 만든 관념입니다.
우주만물이 본래는 이렇게 어떠한 관념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데
인간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관념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해석하죠.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관념들의 향연이 됩니다.
‘나의 것’ ‘소유’라는 것도
본래 존재하며, 흘러가고 있던 우주 만물의 일부를
나의 관념을 가져다 붙인 것이죠.
이 개념을 이렇게 상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원자를 계속 확대해 보면 양성자, 중성자, 전자 외에는
99.9999%가 공간이자 에너지의 장이라고 하죠.
그나마의 아주 작은 전자와 같은 입자도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고요.
이런 에너지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나라는 존재나 물질 모두
하나의 엮인 에너지로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내 것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냥 모든 것이 한 덩어리의 에너지이자 파동일 뿐이겠죠.
결국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 내 것이라는 것은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저차원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에 많이 묶일수록 물질에 대한 집착이
나를 고차원, 순수의식의 파동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붙잡게 됩니다.
정리해 보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죠.
그 모든 가능성들이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양자장에
온전히 접속할 수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미래 역시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양자장, 에너지 장에
온전히 풍덩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순수의식, 파동 상태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죠.
온전히 파동 상태로 존재하는 순수의식이 되려면
몸이나 물질에 매이지 않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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