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사극을 접할 거예요. 용어나 이름이 오늘날과 생소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죠. 왜냐하면 수백 년 전이야기 이니까요. 오늘 제가 이름, 용어 정리 완벽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사극 영화가 10배는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먼저 왕의 이름부터 이야기를 해볼게요. 조선시대의 왕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요, 그 중에 우리는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휘’라는 건데요, 이건 말 그대로 네임이에요. 이름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하면 ‘묘호’라고 그래서 왕이 돌아가시면 신주라는 것에 이름을 새기고 거기에 제사를 지내거든요. 요것을 묘호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종, 영조, 정조, 이런 것들이 묘호가 되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이름에 얽힌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요, 한 글자입니다. 주로 그랬어요. 외자입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님의 이름은 이도,
연산군의 이름은 이융,
조선후기 영조의 이름은 이금,
아들 사도세자의 이름은 이선,
그의 아들 정조의 이름은 이산이에요.
그럼 왜 이렇게 외자로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왕의 이름은 거룩하고 존엄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글자로 써서도, 입으로 발음해서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피휘’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백성들 편하게 하려고 잘 쓰지 않는 발음으로 한 글자만 정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몇 개 드리면요,
연산군 때에는요, 유생들이 임금의 이름 글자를 발음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귀양하고 귀향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벌인데요,
귀향은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거고,
귀양은 멀리 섬, 유배지로 가는 걸 귀양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도 팁이 되겠네요.
지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극서지가 어디에요? 대구광역시 아닙니까? 분지잖아요. 엄청 더운데, 이 대구의 한자가 원래는 대구(大丘)이런 형태였어요. 그런데 대구(大邱) 요런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그 이유는 뭐냐하면 공자님 아시죠? 유학의 창시자, 공자님의 본명이 공구(孔丘)에요. 그래서 한자가 겹친다고 그래서 지명의 한자를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야사문집에 연려실기술을 보면요, 영조의 이름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영조 때 어느 날 승지, 그러니까 오늘날 비서가 되겠죠. 상소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말문이 꽉 막힌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하면 영조의 이름인 금자가 상소문에 실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말을 못하고 덜덜덜덜 떠니까 영조대왕께서
“괜찮다. 됐다. 그냥 읽어도 된다.” 이렇게 허락을 맞고 ‘금’이라는 발음을 했다 라는 에피소드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자, 이번에는 돌아가신 다음에 신주의 이름을 적는 묘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나라를 세운 왕은요, 태조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버금가는 업적을 세운 왕은 태종이라고 그러고요,
모든 제도와 문물을 완성한 임금을 ‘이룰 성’자를 써서 성종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태조 왕건이 있고, 성종이 있고요,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성계, 이반. 그리고 성종이 있는 것이다. 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것이 끝에 붙는 ‘조’나 ‘종’자는 이건 뭐 왜 구분하는 거냐? 라고 하시는데, 내용이 대게 복잡한데,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종가집이라고 들어보셨죠? 왕의 대를 이어가는, 그러니까 전왕의 대를 이은 왕들이 있죠. 요 사람들 뒤에는 ‘종’이 붙습니다.
그리고 세자출신이 아닌데, 갑자기 쑥 들어와서 왕이 되는 경우는 ‘조’자가 붙었어요.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자, 조신 시대 왕을 봅니다. 이성계부터. 태조니까 나라를 세웠죠? 그리고 그 다음이 정종, 그리고 태종, 그리고 세종. 이렇게 내려가죠. 그러니까 요것은 뭐에요? 전부다 대를 이어가고 있어요. 문종 단종 가는데,
그 수양대군이 있지 않습니까? 영화 관상에도 나왔던 이정재. 이 수양대군은 본인이 세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다 시피 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뒤에 ‘조’가 붙는 거죠.
그리고 쭉쭉 내려가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까지 갔다가 선조 때부터 조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원래 이 분이 선조가 아니라 선종이었는데, 그 아들이 광해군이 거든요. 요 광해가 우리 아버지가 임진왜란을 막아냈다. 이렇게 업적을 높이기 위해서 선종을 선조로 바꿨어요. 이 이후에 조선후기에는
“아, 이 조가 종보다 좋은 거구나.” 그러니까 ‘조’는 업적이 많은 왕을, 그리고 ‘종’은 덕이 있는 왕을 말하는 것이구나. 라고 사람들이 인식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조라는 묘호가 유행을 해요. 그래서 예를 들면 조선 후기에 영조, 정조, 순조, 이 분들이 원래 묘호가 영종, 정종, 순종이었거든요. 그런데 유행처럼 번져버리니까 조자로 바꾼, 이런 예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나왔던 광해군은 끝에 왜 ‘군’이 붙느냐? 자, 우리 나라보면 조선전기에 연산군, 조선후기에 광해군이 있어요. 왜 군이 붙어요? 어떤 공통점이 있어요? 그렇지. 쫓겨난 왕에게는 ‘군’자가 붙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분들은 다른 분들과는 달리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실록이 붙지 않고,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 일기로 끝나는 불명예를 안는다. 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왕을 봤으니까 이번에는 그 자식들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그 왕의 자식들이 쭉 있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 왕이 될 사람을 ‘세자’로 딱 책봉을 합니다. 그래서 왕 다음을 이을 그 자리를 세자라고 부르죠. 여러 자식들 중에 보통 적장자, 정실부인의 중전의 첫째 아들이 그것을 잇는 경우가 원칙인데, 여러 가지 사연에 의해서 꼭 적장자가 세자로 책봉되지는 않습니다.
황제의 경우는요, 태자라고 부르고요,
그 다음 황제가 될 자식을, 왕의 경우는 세자라고 불러요.
우리는 고려시대에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한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황태자가 존재 했구요, 고려 말에 몽골에 의해서 80년 동안 지배를 당하면서 몽골황제가 우리나라의 황제를 다 왕으로 격하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황태자라는 말이 사라지고 왕세자로 격하가 되는 거고,
조선시대에도 명나라를 아버지 국가처럼 모셨죠.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다 왕이고, 왕세자가 된다 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왕의 자식들은요, 크게 대군과 군으로 나누게 되는데 그 차이 혹시 아십니까?
대군이라는 것은 정실부인, 즉 중전의 자식을 대군이라고 그러고,
군이라는 것은 첩의 자식, 즉 후궁의 자식을 군이라고 부르는 거죠.
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중전의 딸을 공주,
후궁의 딸을 옹주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조선시대의 왕 27명 중에 최초로 후궁의 자식, 군이 왕이 된 자식이 있는데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선조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내가 대군이 아니라 후궁의 자식, 첩의 자식이야.” 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굉장히 예민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조선 후기의 영조의 경우는 아예 후궁도 아니고 천민, 무술이의 자식입니다. 최초의 천민의 자식, 얼자라고 그러죠. 이 사람이 왕이 되었으니 이 분이 바로 영조대왕이 되십니다.
자, 얼자라는 게 뭐냐? 궁금해 하실 수도 있는데, 여기 한번 볼게요.
조선시대 양반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가 양반인데, 어머니가 농민이지 않습니까. 그럼 농민이면 양반이 이렇게 있으면 보통 정략결혼을 해서 같은 양반끼리 결혼을 해요. 아, 이것을 좀 보여드려야 겠구나.
조선시대가
일부다처제일까요?
아니면 일부일처제일까요?
요런 거 잘 모르시던데.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일부일처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부다처제 아니에요. 일부일처제인데 뭐가 있느냐하면 처첩제가 있는 겁니다. 처는 한명이고 나머지는 다 첩. 제1첩, 제2첩, 제3첩, 이렇게 들이는 것이죠.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신데렐라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의 신분이 낮잖아요. 그럼 첩으로 들여 버리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정실부인은 양반끼리 결혼을 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마음에 드는 여자는 제1첩, 제2첩, 이렇게 들이면 된다고 봐요.
그런데 양반의 제1첩이 농민이다. 그럼 그 자식은 첩의 자식이니까 ‘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제2첩이 엄마가 천민이에요. 이 자식은 ‘얼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자보다 얼자가 더 신분이 낮다고 보시면 되는데, 통상 서자의 ‘서’와 얼자의 ‘얼’을 합쳐서 ‘서얼’ 첩의 자식 ‘서얼’ 이렇게 부르면서 신분을 차별했던 것이고,
이들의 특징은 뭐냐하면 조선시대의 농민들도 볼 있었던 과거 시험 중에 ‘대과’라고 불리는 문과 시험을 못 봤어요. 그래서 무과나 잡과 시험은 가능했는데, 문과 시험은 못 보게 했던. 물론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분들이 소청, 민원제기하고 상소 올려서 해결이 되기는 하지마는, 이런 차별을 받았던 게 ‘서얼’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조의 어머니는 천민이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되는 거예요? ‘얼자’출신의 왕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왕 되기 전에 뭐라고 불렸어요? 연잉군이라고 불렸어요. 대군이라고 불리지 않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조신시대의 왕들의 이름, 그리고 호칭, 자식들의 호칭, 이런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를 기억하십니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이름 석 자는 그냥 상대방을 부르는 호명하는 그 이외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보면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어떤 익명성을 이용해서 조금 안 좋은 그런 문화들도 많이 퍼져있는데요, 요런 거 조금 지향을 하고요, 내가 가진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멋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 설민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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