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설민석_십장생한국사

설민석의 십장생한국사 - 2회 잃어버린 땅, 간도

Buddhastudy 2018. 2. 26. 20:27


빼앗겨서는 안 될 땅이죠. 지켜야 될 땅이죠. 그것이 독도라면, 이미 빼앗겨버린 우리가 지키지 못한 땅이 있습니다. 바로 간도가 되겠습니다. , 보통 제가 간도를 여러분들께 여쭈어보면 무슨 섬입니까?” 또 한자로 봐도 (사이 간, 섬 도) 딱 섬으로 알기 좋은데, 이곳은 섬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여기를 보시죠.

 

간도의 위치를 보면 우리나라 이렇게 있잖아요. 요 산이 뭐에요? 백두산입니다. 비가 내리잖아요. 요렇게 강물이 흘러서 서해안으로 흘러나갑니다. 요 강을 뭐라고 부르냐하면 압록강이라고 부릅니다. 백두산에 비가 내려요. 요렇게 흘러서 동해안으로 흘러가는 요 강이 바로 두만강이 됩니다.

 

압록강 같은 경우는 강폭이 넓어서 실제로 보면 국경선 같아요. 이 압록강 위쪽으로 뭐라고 부르냐하면 서간도라고 불러요. 문제는 두만강인데, 두만강 북쪽이 북간도거든요. 여기가 바로 북간도, 우리가 말하는 간도고, 연길, 연변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문제가 되는 게 뭐냐하면 두만강 같은 경우는 강폭이 대게 좁아요. 강폭이 아예 좁은 지역 같은 경우는 실개천 비슷해서 겨울 되면 꽁꽁 얼어서 걸어서 지나가고 그러거든요. 고려 말에 우리나라 국경선이 여기까지였어요. 고려 말 공민왕 때 여기까지 국경선을 끊었고, 세종대왕이 여기 살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오늘날 압록강 두만강 라인을 만드셨어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는 함경도 사시는 분들이 첨벙첨벙 걸어서 건너간 거예요. 여기 있는 북간도 지역에서 열매도 따먹고, 농사도 짓고 우리 땅처럼 사신 거예요. 그런데 조선시대 전기적만 해도 이 중국 간족이 만든 명나라는 이 땅을 신경 안 쓰고 지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넓은 땅이 있는데 저 변방에 작은 땅을 뭘 신경을 쓰겠어요.

 

그런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라는 나라가 등장을 합니다. 요게 중국 여진족이 만든 나라인데, 여진족의 발원지가 바로 여기에요. 그래서 자기들한테 꽃피고 새우는 고향쯤 되는 거죠. 얘들이 막 뭐라고 그러는 게에요. “우리 땅인데 왜 조선인들 넘어와서 사느냐.” 분쟁이 벌어집니다.

 

조선시대 후기 숙종 때가 됩니다. 당시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온 사신 이름이 목극등이라는 사람이었어요. 오라총관 목극등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당시 우리가 보낸 사신 이름이 박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간에 합의를 봐요.

 

청나라와 조선의 영토를 나누었다. 그래서 합의를 본 다음에 그것을 종이에다 적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훼손하지 못하게 비석에다가 깊이 새겨서, 여기 있는 백두산 중턱에 갖다 놨거든요. 이것을 우리는 백두산 정계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럼 백두산 정계비에 따르면 당시 합의 본 영토가 어떻게 되느냐?

 

서위압록 동위토문(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압록강 이남이 조선의 영토가 되는 거고, 동쪽으로는 토문강, 백두산에서 발원해서 만주 쪽으로 흘러 나가는 이것이 바로 토문강이 되는데, 요 토문강 이남이 바로 조선 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럼 사실상 숙종 이후로 여기 북간도는 우리 땅으로 양측에서 합의 봤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얘기가 끝나는 거예요.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1880년대가 됩니다. 이때 왕은 고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내치 외치할 것 없이 당시 청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청나라가 이제 저 간도 뺏고 싶은 거죠. 그래서 뭐라고 우기느냐? “여기 북간도 우리 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아이, 무슨 얘기 십니까? 여기는 백두산 정기에도 우리 땅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토문강 이남 아닙니까?” “아 그 토문강이 흐르는 이게 토문강이 아니고, 요 두만강 발음 세게 해봐라. 두만강, 도문강, 토문강. 요 토문강이 두만강이다.” 라는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러니까 정계비에 있는 토문강의 위치가 이 강이냐? 이 강이냐? 이거에 따라서 이게 우리 땅이 될 수도 있고, 중국 땅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때 어윤중을 고종께서 보내셔서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해서 잘 넘어갔는데, 문제는 1909년이 되요. 1909년이 되면서 간도와 관련된 협약을 맺었으니 이것이 간도 협약이 됩니다. , 간도협약은 당시 청나라와 일본 간의 맺은 협약이 되는데요, “아니 우리나라 땅 간도와 관련된 협약인데, 왜 일본이 협상 테이블에 나갑니까?” 그 이유는 바로 4년 전이 1905년에 있었던 을사늑약 때문이다.

 

, 이라는 것은 강제되는 조약이다. 그래서 조약이라고 안 하고 을사늑약,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조약, 늑약 다 괜찮아요. 다 괜찮은데 을사보소조약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일본 입장의 조약이 되니까, 강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늑약이라는 표현도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이 을사늑약 때 우리가 외교권을 빼앗긴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일본이 대신 나간 거죠. 그래서 청나라한테 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여기 있는 일본은 아노, 정계비에 있는 토문강 이남은 두만강인 것 같다.” 그러면서 여기 있는 청나라한테 간도를 팔아넘긴 거죠. 그래서 그 순간 이 북간도는 중국 땅이 되어버리 게 되는 거구요, 여기 있던 우리 조선인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으로 전락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이 간도 협약은 무효에요. 왜냐하면 간도 협약 때 일본이 협상테이블에 나갔던 것은 을사늑약 때 외교권을 그들이 가져갔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있는 을사늑약에는 우리 고종황제의 직인, 옥새가 찍히지 않았어요. 당시에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그래서 을사 5적이라고 그러죠. 당시 대신들이 대신, 자기들 도장을 날인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황제의 허락이 없었기 때문에 이 조약 자체가 무효입니다. 그럼 을사늑약이 무효니까 자연스럽게 여기 있는 간도협약도 무효가 되는 거죠. 이것은 국제법상 이것은 우리 땅이에요. 그런데 보통 한 지역을 100년 이상 어떤 나라가 지배를 하면, 실효적으로 지배를 하면 그 땅으로 인정해 주는 게 관행이거든요.

 

그래서 100년째 되는 해, 우리나라에서는 차길진법사라는 분이 20099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지금 제소해 놓은 상태입니다. “간도는 우리 땅이에요!” 하고 제소해 놓은 상태지만, 현실적으로 이 땅은 우리가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 있는 간도를 찾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우리는 하고 있지 않는데,

중국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준비와 노력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공정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동북공정, 서북공정, 이런 거 들어보셨죠. 이 공정이라는 게 한자로 따지면 일의 진행 정도를 나타낸 건데, 그냥 공공의 정책, 국가의 정책, 이렇게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중국 같은 경우에는 50여개의 소수민족이 중국 한족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형태가 됩니다. 어느 한 소수민족도 이탈하는 것을 그들은 막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여기 있는 서북쪽에 있는 위그루라고 있습니다. 위그루는 투르크, 터키계열의 민족인데요, 이들을 독립하지 못하게 하려고 서북공정 프로젝트로서 위그로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다.’라고 역사를 그냥 만들어버렸어요.

 

그리고 서남공정 프로젝트라는 것은 서남쪽에 뭐가 있어요? 티베트가 있지 않습니까. 티베트는 그렇게 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데, 중국은 절대 티베트를 독립시켜 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경제적으로 이득이 엄청납니다. 크롬, 마그네슘, , 70여종의 지하자원이 묻혀 있습니다. 그것을 왜 놔주겠습니까?

 

그리고 티베트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어떤 고지대 확보를 따른 군사적인 이점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놔주지 않고, 그 옆이 인도잖아요. 인도와의 군사적 완충지대 이런 것 때문에 무력으로 진압을 하고, 그리고 아예 티베트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서남공정 프로젝트까지 한 거죠.

 

그리고 중국이 완료한 게 뭡니까? 바로 동북공정(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공정)프로젝트입니다. 서남도 북간도 합친 이 지역을 만주라고 부르는데요,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동북쪽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래 이 지역에 있었던 역사들, 다 우리의 역사 아닙니까? 최초의 국가가 뭐에요? 그렇죠. 여기 있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이런 나라들이, 이런 역사들이 우리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라고 왜곡하는 작업,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되고요, 이것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국가의 엄청난 그 지원을 받으면서 수많은 교수들과 역사학자들이 동원 되었구요, 우리 역사학자 분들도 거기에 맞섰지만 이건 예산이랄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규모에서 많이 밀려있는 상태죠. 이렇게 역사적 명문까지 왜곡하는 이것이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입니다.

 

여러분들,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 명분을 얻기 위해서 식민사관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역사를 왜곡했지 않습니까? 중국 뭐가 다릅니까? 전시 상황이 아니고 침략의 제국주의만 아니라는 거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당시 일제 식민사관과

저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무서운 중국의 행보를 볼까요? 아리랑 아시죠? 아리랑이 누구의 무형문화유산입니까? 바로 우리의 민속요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 있는 중국에서 조선족들이 아리랑을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2011823일날 중국에서 자신들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해버린 거예요. 이게 수순인데,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하려면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먼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등재를 해버렸어요. 그리고 유네스코에 신청을 하려고.

그래서 우리가 뒤늦게 움직여서 다행히 지금 유네스코에는 아리랑이 우리나라의 유산으로 등재되어있지만, 중국이 이런 시도를 했다는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죠.

 

그뿐입니까? 한글이 누구의 문자입니까? 우리의 문자잖아요. 한글공정 프로젝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여기 있는 조선족이 쓰는 한글을 자신의 문자라고 지금 이들이 주장하고 왜곡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아리랑도 자기네들 것이고, 한글도 자기네들 것이고, 여기 있었던 만주에 있었던 역사도 다 자기네들의 것이고, 백두산 반쪽은 이미 가져갔고, 간도는 100년 전에 뺏어갔고, 이게 중국이에요.

 

이렇게 엄청난 나라와 우리가 지금 인접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을 해야겠죠. 이런 말씀 하실 수 있어요. “아이, 100년 전에 뺏긴 나라 생각도 하기 싫은 나라 뭐 하러, 다시 찾을 수 없는 나라 뭐 하러 거론하느냐?” 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찾을 수 없더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